뉴라이트 교과서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현대사학회 주장 중 옥을 가려내야 한다

한국현대사학회 핵심 간부들이 참여한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여기에 대해 네티즌들은 뉴라이트 친일교과서가 나오게 생겼다면서 흥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교과서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리 친일/반일의 구도로 몰고가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나는 소위 진보진영이 걸핏하면 만사를 외세매판/민족자주 의 대결구도로 몰고가서 빛과 어둠의 대결이라는 일본 판타지 만화 수준의 사회인식을 강요했던 점을 매우 언짢게 기억하고 있다. 이른바 ‘100년 전쟁’은 그 단순한 현실인식의 극치이며, 그걸 수업용으로 어떠한 비판적 균형 장치 없이 학생들에게 틀어준 교사는 쉴드 칠 여지가 없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 반대 급부로 뉴라이트의 역습을 얻어맞는것도 일정부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자신들이 뉴라이트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국현대사학회의 주장들 중 상당수가 소위 진보 역사교육계를 비판하고 이를 바로잡는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이 학회 소속 연구자들의 주장 중에는 일부 귀담아 들을만한 부분들이 있다. 그래서 이 현대사학회=뉴라이트 라는 공식을 모략이라고 반발할 법도 하다. 그러나 5월 30일 아산재단에서 발표한 “교과서 문제를 생각한다.” 세미나에서 발표한 내용의 상당수는 실제로 뉴라이트, 극우파라고 불릴만한 소지가 있다. 좌편향을 공격하면서 우편향을 답이라고 내어 놓으니 이거야 말로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된 것이다.

그래도 이날 발표 내용들 중에는 함께 뭐묻은 개로 치부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러니 먼저 이날 발표 내용 중 옥을 먼저 가리고 난 뒤, 나머지 돌들을 뭉쳐서 버리도록 하자. 이른바 진보사학쪽(사실은 민족사학)에서는 옥이 어디 있느냐고 흥분할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옥은 있었다.

김도형 통일미래사회연구소 연구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는 중학교 역사교과서의 근대사 서술이 “지금 시점으로 역사를 재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건 욕먹을 주장도 친일파 주장도 아니다. 사실 지금 시점으로 역사를 재단하고 있다면서 이른바 민족주의 사학을 비판한 대표적인 학자는 좌파학자는 임지현이며, 미국의 대표적인 좌파 역사학자인 브루스 커밍 역시 “한중일 모두 중화주의에 빠져서 고대사에서부터 체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예컨대 김춘추를 일컬어 “외세를 끌어들여서 동포인 고구려와 백제를 공격한 사대주의자” 이런 식으로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영토개념을 고대에 들이대고, 그 범위 안에 거주한 사람을 모두 한 민족으로 간주해야 성립가능한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거의 어떤 시대의 사건을 무리하게 현재 시점에서 재단하지 말고, 과거 그 시점에서 일의적인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김연구원이 태어나기 100년전 독일 ‘역사주의 학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역사를 어떤 합목적적인 행로로 해석하려는(사실상 현재를 목적으로 두고 역사를 현재를 향한 경로로 바라보는, 그리하여 정해진 미래의 경로도 있다고 주장하는) 헤겔주의에 반발하면서 나온 것이다. 이들은 역사적 사건을 현재로 이어지는 어떤 인과성에 고리에 무리하게 넣어서 ‘설명’하려 하지 말고, 그 시점, 그 시대의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독일 역사학파의 영향을 받은 막스 베버가 자본주의와 근대를 역사의 어떤 필연적 단계가 아니라 16-17세기 유럽의 몇몇 조건의 우연한 조합에 의한 결과로 파악한 것이 바로 이 학설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베버는 서유럽, 인도, 중국을 비교하면서 서유럽의 자본주의화는 당시 성장하던 상공업 계급과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우연한 조합의 결과이며, 따라서 인도경제와 중국경제가 시간이 지나면 자본주의 경제가 되었을 것이라는 어떤 필연성도 없다고 하였다. 


그런데 만약  현재를 목적으로 삼고서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설명하려고 하면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온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현재가 되어야 할 역사의 흐름이 어떻게 방해 받았나 하면서 악당을 찾는 단순한 역사관이 되는 것이다.  이건 너무 쉬운 길이며, 지적으로 게으른 길이다. 오히려 비슷한 시기, 비슷한 조건을 갖추었으나 다른 결과가 나타난 사례들을 서로 중첩시켜서 무엇이 다른가를 끈질기게 분석함으로써 변인을 찾아내어야 한다.

그런데 그 동안 우리나라 진보(?) 사학계가 외세의 간섭과 수탈이 없었으면 역사가 합목적적으로 흘러갔을 것이라는 신념에 경도된 것이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식민지(일본 제국주의) 통치로 인해 근대화, 자본주의화의 경로가 방해받았고, 종주국인 일본은 한국의 봉건세력들과 손을 잡음으로써 이러한 불완전 근대화를 온존시켜서 통치했다라는 것이 80년대 이후 지루할 정도로 유포되어 온 진보진영의 정통사관인 셈이다. 그러니 친일파는 단지 국권을 넘긴 세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근대화, 자본주의화를 지체시키는 세력으로 승격되며, 이후 산업화의 모순, 민주화의 지체는 모두 이 친일파 때문으로 손쉽게 설명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강화도조약 체결 약 30년 뒤 나라를 빼앗기는 이유는 일본이라는 거대한 악마보다는 조선이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에 초점을 먼저 둬야 할 것”이라고 한 김 연구원의 주장은 상당한 함의를 가지고 있다. 그가 지적한 대로 소위 진보, 민족 역사학계의 비교역사학적 방법의 부족을 아프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연성에 사로잡힌 역사가는 모든 나라의 역사가 보편적인 어떤 행로를 갈 것이라 전제하기 때문에 외세의 방해 외에는 우리나라의 근대화의 실패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 진보는 중화주의적 성향이 강해서 일본이 개항하던 1852년에 이미 조선보다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월등히 앞서 있었음을 인정하지 못한다. 결국 20년 먼저 개항해서 총포를 갖춘 일본이 무력으로 침략한 데다가 내부의 배신자(친일파) 때문에 우수하고 위대한 한민족이 그만 스텝이 꼬였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교역사학적 관점에 서면  불과 20년 먼저 개항한 일본이 열강의 반열에 올라선 반면, 조선은 왜 그렇게 형편없이 무너졌는가에 주목하게 되며, 양국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분석하게 된다. 


한 나라의 운명은 한 두개의 변인에 의해 좌우될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철저한 비교분석을 통해 조선의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변인들을 발견해야 한다. 이건 매우 지루한 작업이며, 민족사관을 펼치는 것처럼 폼나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학문은 그렇게 해야 한다. 이런 지점에서 비판받기 시작하면 아예 논쟁이 성립되지 않는다. 방법론적 미숙함과 안이함을 지적받는 상황에서 무슨 대등한 토론이 되겠는가?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하다 보니 현대사학회에서 옥을 가려내는 것 보다는 진보진영의 역사관을 비판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쓴 것 같다. 그런데 아직도 분이 안풀릴 정도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것이 주제는 아니고, 또 진보진영 역사학자들이 다 저모양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 하자.

뉴라이트는 너무 좋아하지 말자. 칭찬은 여기까지니까. 저 하나 빼고 나머지는 거의 다 궤변이었으니까. 상대를 비판하려면 먼저 우리편 중 X맨을 가려낸다는 차원에서 진보진영을 비판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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