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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변증법의 민주시민교육: 자유민주주의는 언제부터 대한민국 헌법에 등장했는가?

뉴라이트들이 입에 주문이라도 걸린 듯이 읊조리는 말이 자유민주주의다. 놀라운 것은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늘 다른 어떤 것의 반대말로만 사용할 뿐,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정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건국되었기 때문에 공산주의 북한을 절대 용납할 수 없고, 거기에 동조하는 자는 헌법에 반하는 국기사범이라는 흐름을 따라간다. 여기에서 아무리 예리한 분석을 하더라도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공산주의의 반대말이란 의미 뿐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주장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기실 반공인 셈이다. 뉴라이트나 어버이연합을 가장 당황스럽게 하는 질문은 그러니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입니까?"일 것이다.

그럼 자유민주주의는 도대체 무엇일까? 뉴라이트들의 천조국인 미쿡의 위키피디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나온다.

Liberal democracy is a form of government in which representative democracy operates under the principles of liberalism. It is characterized by fair, free, and competitive elections between multiple distinctpolitical parties, a separation of powers into different branches of government, the rule of law in everyday life as part of an open society, and the equal protection of human rights, civil rights, civil liberties, and political freedoms for all persons.

아린지 영어 교육을 옹호했던 뉴라이트 분들이야 이 정도 영어는 술술 읽겠지만, 요점만 말하자면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에 기반한 대의정치이며, 그 특징은 1)복수의 자유로운 정당들의 경쟁에 의한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2)권력의 분립, 3)개방된 사회의 한 부분으로서 일상의 법치, 4) 모든 사람들의 인권, 시민권, 시민자유, 정치적 자유의 평등한 보장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반대말 따위의 말과는 천지 차이이며, 오히려 독재의 반대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구태여 '자유'자를 붙일 이유도 없이 민주주의와 혼용되는 말이다. 미국 대통령은 연설할때 '민주주의'를 지키자라고 말하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자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자유'를 지키자 이런 말은 자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에 반대하느냐 마느냐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치, 언론 등의 자유가 얼마나 보장되며, 각 권력기구의 권한이 얼마나 잘 분산되고 시민의 견제를 받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반공의 이름으로 정치적 자유를 축소시키고 언론을 통제한 유신정권은 가장 전형적인 자유민주의 적인 것이다.

어쨌거나 종북 색출에 혈안이 되고, 검열을 강화하자고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운동권 출신을 문제삼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이 나라의 정체성이 어디로 가는것이냐며 좌경화를 우려한다고 떠들어댄 이 나라 대통령의 주장은 위에서 제시된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요건을 오히려 부정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시민참여정당, 시민참여 정부를 전면에 내세우고 언론자유를 최대로 보장한 노무현 대통령이 제대로된 자유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정치학에서의 이야기고, 대한민국 헌법으로 와 보면 또 사정이 다르다. 뉴라이트들이 국부로 내세우는 이승만의 1공화국 당시 헌법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아예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1호헌법(제헌헌법) 전체를 다 뒤져봐도 민주주의라는 말은 나오지만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제헌헌법 전문을 한번 보자.

제헌헌법 전문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제도를 수립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여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결의하고 우리들의 정당 또 자유로히 선거된 대표로서 구성된 국회에서 단기 4281年 7月 12日 이 헌법을 제정한다.

이 전문에서 밝힌 대한민국의 목표는 3.1운동의 독립정신 계승, 민주독립국가의 재건, 민주주의의 여러 제도의 수립,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 세계평화에의 기여 등이다. 여기에 자유민주주의라거나 혹은 공산주의와의 대결, 공산주의 확산 방지 따위의 냉전적 용어는 들어있지 않다. 이 전문은 4.19 혁명으로 수립된 2공화국때도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킨 뒤 제정한 3공화국 헌법에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3공화국 헌법은 3.1운동의 독립정신에다가 4.19의거와 5.16 혁명의 이념에 입각한다는 내용이 추가되었을 뿐인데, 반공이 등장한다면 5.16 이념이 그나마 미약한 근거가 될 것이다. (흥미있는 사실은 4.19 의거로 수립된 2공화국이 아니라 그 정부를 무너뜨린 박정희가 헌법에 4.19 계승을 명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반공을 국시처럼 내세우고, 그것을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며 자유민주주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박정희때 부터로 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3공화국, 더 나아가 3선개헌때까지도 박정희의 헌법에서조차 대한민국의 정체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였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헌법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악명높은 유신헌법때 부터다. 유신헌법 전문 중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하여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라는 대목이 새로 등장했다. 여기서 새로 등장한 용어가 둘인데 하나는 1) 평화적 통일, 다른 하나는 2)자유민주적 기본질서다. 흥미로운 것은 통일을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등장했다는 것인데, 이는 북한의 적화통일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청화통일을 주창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엉뚱하게 기본질서라는 말과 연결되어 있는데, 정치학적으로 이는 형용모순이라고 할 수 있다.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만들때 김일성과 서로 교감을 이루면서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같은 시기에 김일성은 북한에서 사회주의 헌법이란 것을 만들면서 1인 독재체제를 굳혔다. 이때 김일성은 "자주적 사회주의국가"로 북한을 규정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로부터 이탈하는데, 같은 맥락에서 박정희는 "자유민주적 질서"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민주주의로부터 이탈한 것이다.

어쨌거나 유신시대조차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가치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었다. 그러니 유신 정권은 헌법정신에 입각한 통일이라는 주장을 하면 헌법에도 없는 반공의 이름으로 잡아 족친 스스로를 부정한 정권인 셈이다. 또 5공화국 시절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다'라고 국회에서 발언한 국회 부의장 유성환이 국보법 위반을 체포되기 까지 한 것은 탈헌법적 조처라 할 수 있다. 유신헌법에서조차 대한민국의 국시는 '통일'이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는가?
박정희가 죽고 광주를 피로 물들인 뒤 집권한 전두환의 5공화국 헌법에서도 이 기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당시 헌법 전문을 보면,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 정의, 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4.19 의거의 정신이 삭제되었다. 광주에서 혼이 난 전두환의 멘붕이 느껴진다. 또 5.16 혁명의 이념도 삭제되었다. 전두환이 5.16을 부정한 셈이다. 따라서 반공정신 역시 헌법에는 아무 근거도 없게 되어버렸다.

다만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 자유민주적 질서를 세운다는 유신헌법은 그대로 이어졌다.  이렇게 자유민주주의는 확고하게 만들어야 할 어떤 질서가 되고 말았다. 결국 박정희와 전두환 등의 독재자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를 실시하고 싶었지만 독재라는 말을 차마 쓸 수 없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말을 창안한 것이다. 김일성이 자주적 사회주의란 말을 창안한 것 처럼. 지금 뉴라이트가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 그것은 독재의 다른 말에 불과한 것이며, 유신헌법 이전에는 헌법에 등장하지도 않는 것이다.

불행히도 현행 헌법도 완전한 민주주의 헌법이 아니다. 헌법 전문만 보아도 유신헌법에서 5공화국 헌법으로 이어내려온 그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계승하는 정신 목록에 3.1운동뿐 아니라 임시정부, 그리고 4.19 의거를 추가했을 뿐이다. 5.18이나 6월민주항쟁의 정신도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유신의 잔재인 '자유민주주의'가 여전히 헌법 전문에 남게 되었다. 속히 대한민국의 원래의 건국정신인 '민주주의'로 돌려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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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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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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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