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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근간을 뒤흔든 통계청의 조작: 조선시대라면 실록을 조작한 꼴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이어 이번에는 통계청이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계속해서 정부에게 유리한 통계치가 발표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조작은 아니다. 숫자를 뜯어고치거나 한 것은 아니니까. 문제는 산출 방식이다. 

통상 통계조사 분야에서는 6년 정도가 지난 통계결과는 신뢰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새로 개발된 통계 기법들이 많기 때문에 그 결과를 새 기법으로 보정할 수 있으면 보정한다. 이 보정을 하지 않으면 엄청난 통계 왜곡이 가능하다.


예컨대 1980년 초등학교 6학년이던 나는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을 1240 달러로 배웠다. 그러나 2012년에 작성한 통계지표에서는 1980년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을 3220달러로 표시하고 있다. 산출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걸 반영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30년 동안 7배 증가한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19배 증가한 것으로 엄청난 뻥튀기가 될수도 있는 것이다. 숫자를 지우거나 바꿔치지 않고서도 말이다.


이번에 양심선언으로 폭로된 내용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새로운 통계기법은 항상 통계 수치와 현실이 어긋나기 시작할때 도입되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갱신되어야 통계치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그런데 새로운 통계기법이 정권 입맛에 맞지 않으면 사용할수 없고, 입맛에 맞는 부분만 사용하고, 이런 식이라면 이건 통계가 아니라 쓰레기다. 현실과 동떨어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그렇다. 그 동안 우리는 통계청이 발표한 0.310을 일단 사실로 받아들였다. 물론 의심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이 지니계수로는 대만보다 낮다. 따라서 대만보다 우리나라가 빈부차가 적은 나라라는 뜻이다. 그런데 빈부차를 나타내는 또 다른 중요한 지표인 빈곤선 이하 인구 비율이 대만은 1.5%에 불과한데, 우리나라는 16.5%나 된다. 국민 여섯명중 하나가 빈곤층인 나라가 60명중 하나가 빈곤층인 나라보다 지니계수가 더 낮다? 매우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믿고 사용했다. 왜냐하면 통계청에서 발표한 수치였기 때문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하는 통계치는 매우 신뢰로운 것으로 권위를 인정받는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나 언론사에서 그 타당도나 신뢰도에 대해 따지지 않고 그대로 원자료로 사용한다. OECD나 세계은행등 각종 국제기구에서도 의심없이 원자료로 사용한다. 통계청이 이런 신뢰를 받는 이유는 특별히 유능하거나 기법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그 기관이 통계청이기 때문에 사기업이나 사설 연구소와 달리 철저히 중립적으로 산출한 객관적인 자료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계청이 정치적 압력으로 인해 제멋대로 통계치를 발표했다? 이렇게되면 이건 재앙이다. 


우선 통계청의 자료들을 원자료로 활용한 각종 2차자료와 연구들도 모조리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특히 사회과학 분야 논문들은 거의 재앙에 가까운 폭격을 맞는다. OECD등 국제 기구의 자료도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더 나아가서 한국에서 제출되는 통계자료나 회계자료는 모두 의심스러운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막대한 신뢰비용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 이후 한국 학자들이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려면 예전보다 훨씬 까다로운 검증절차를 거쳐야만 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국제기구, 국제비즈니스계에서도 한국에서 제출되는 자료, 보고서에 대해서는 그 자료의 진실성을 입증하라는 까다로운 요구를 붙일 것이다. 


IMF때 한국경제가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었던 까닭도, IMF총재의 모욕적인 발언을 감내해야 했던 까닭고 통계수치가 엉터리였기 때문이다. 통계수치가 죄다 엉터리니 이 나라의 경제상황을 IMF제대로 파악할수가 없었고, 이런 믿기 어려운 상대에게 돈을 빌려주는 IMF가 고자세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건 국정원의 선거개입보다 더 큰 재앙이다. 국정원이야 애초에 이승만이 만든 특무대, 방첩대, 박정희가 만든 중앙정보부 등 그 전신 시절부터 구린 기관이었고, 없어져야 할 기관이었다. 유신과 5공시절을 겪은 사람들이라면 국정원이 하는 말은 하나에서 열까지 믿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반면 통계청은 그렇지 않다. 수학이 그토록 여러 과목중 왕대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계청은 나라의 숫자를 총 책임지고 있는 기관이다. 그런데 은근슬쩍 거짓말을 한 것이다. 아니 거짓말을 강요당한 것이다.


과거 조선왕조때는 실록을 기록하는 사관이 있었다. 국가의 기록은 이후 중요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일점 반획의 왜곡이 있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기개있는 사관들은 왕이 아무리 협박해도 사초를 왜곡하지 않았다. 귀양은 예사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도 자주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확한 기록을 남겼다. 사마천의 '사기'가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이 세계 최고의 기록으로 인정받는 까닭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중요한 기록은 서술이 아니라 수치로 기록된다. 오늘날 통계청은 조선시대 사관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사관이 무너지면 왕조가 무너지는 것이듯, 통계가 무너진다면 이 나라의 모든 가치체계와 신뢰체계가 무너지는 것이다. 국정원 따위의 뻘짓보다 나는 이게 더 슬프다. 나라가 속속들이 다 망가졌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기초공사마저 망가졌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젠장 우울증이 도질까 겁난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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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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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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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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