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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출신 검사가 뭐가 문제라는건가? 난 운동권 출신 교사다. 천번이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운동권일 것이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6월 17일 황교안 법무장관을 상대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는데, 주임검사를 하필이면 운동권 출신 검사에게 맡기냐”고 비판했다고 한다. 이걸 비판이라고 보도하는 언론도 안습이지만 일단 비판이라고 치자. 그 비판은 국정원 사건 공소장을 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담당검사가 서울대 부총학생회장 출신이라는 것을 두고 한 발언이라고 한다.

기가 막힌다. 운동권 출신이란 말을 부정적으로 그것도 극히 부정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진태의 말에 따르면 운동권 출신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공소장을 써서는 안된다. 그러면 이 논리는 자연스럽게 검사들을 운동권 출신과 비운동권 출신으로 분류하자는 주장으로 발전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운동권 출신들을 공직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주장까지 발전할 것이다. 바로 매카시즘인 것이다. 

운동권이 도대체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길래 6억에 대한 조세포탈범을 대통령으로 모시고, 강간법, 성추행범도 과거지사로 퉁치고 넘어가는 새누리당 의원인 김진태가 수십년이 지나도 용서할수 없는 대죄라도 지은 양 입에 게거품을 무는가? 김진태 의원은 83학번이다. 1983년부터 1986년까지 대학을 다닌 세대다. 

1983-1986년이 어떤 시절인가? 전두환과 그 꼬봉 노태우가 독재를 휘두르며 나라를 농단하던 시절이다. 이명박은 교묘한 트릭으로 나라돈을 꼬불쳤지만, 전두환은 대놓고 몇조 단위로 나라돈을 삥뜯었다. 언론은 국정원(! 당시 안기부)의 감시하에 제대로 된 기사를 쓰지 못했고, 학생들에게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토론식 수업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초등학교 교사를 빨갱이로 몰아 해직시켰다(당시 그 매카시즘 기사를 보도한 당시 MBC 기자는 천수를 못누리고 죽었다. 사필귀정이다. 지옥에 있을 것이다). 피의자도 아닌, 피의자의 후배라는 이유로 영장도 없이 끌려간 대학생이 경찰에게 고문을 당하다가 목숨을 잃기까지 했다. 그 흔한 대통령 선거조차 없어서 체육관에서 2000명이 모여서 대통령을 뽑았고, 대통령 선거를 주장하면 "빨갱이"로 몰려서 어느날 의문사 사체로 발견되던 시절이다. 노동조합도 만들수 없었던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착취당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공장에서 머리까지 스포츠로 깎고, 복장 두발규정 어기면 해고당하던 어이없던 시절이다.

운동권이 누구인가? 이런 시대에 저항한 사람들 중 좀더 적극적인 사람들이다. 그리고 당시 대학에 다니던 학생들중 대다수는 이들을 지지했고, 동경했고, 이들에 대해 부채의식도 가지고 있었다. 자기들은 나서서 싸우지 못하는데, 감히 나서서 싸우는 이들에 대한 미안함 같은 느낌을 가지지 않았던 사람들은 당시 대학에서 소수였다. 심지어 오세훈조차 당시 나서서 싸우지 못함에 대해 미안함을 담고 있을 정도였다.

나 역시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운동권 출신 교사다. 나는 학생들에게 내가 운동권 출신임을 처음부터 밝히며, 그 시절에 운동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기득권을 포기하는 일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길을 선택했는지 알려준다. 물론 나는 때로 운동권으로 사느라 학업을 등한시하고, 이 땅을 바꾸기 위해 유학을 포기한 것을 애석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상황에 또 직면하면 다시 운동권을 선택할 것이라 믿는다. 그런 상황을 천번을 만나면 천번 운동권이 될 것이다.

그런데 김진태는 운동권 출신이 무슨 천형이라도 되는 양 운동권 출신 검사를 문제 삼는다.   그는 대학 시절 운동권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운동권에게 동조한 적도 없는 학생이었음에 분명하다.(안철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임을 명심하자). 도대체 그 시절, 시대를 외면하고 자기 공부만 한 사람이, 그래서 다른 운동권들이 학점 깔아주면서 세상을 더 좋게 만든 빈틈을 파고들어 고학점을 누린 이들이 어떻게 감히 운동권 출신이라 안된다 만다 운운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 시절에도 유신시절과 5공시절을 정상적인 시절로, 유신과 5공에게 저항하는 것을 빨갱이라고 부르는, 그래서 심지어 6월 항쟁 당시 서울 시청앞에 탱크를 몰고가서 시민들을 총으로 쏘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 마디로 자유도 민주도 부정하는 사람이며,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고, 이 나라를 북한처럼 몇몇 지배층이 독점하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운동권 출신 검사 운운하는 김진태 의원은 자신이 대학시절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음을 스스로 고백한 셈이다. 철 없는 일베들이야 겪어보지 않아서 잘 몰라서 그렇다 치지만 그 시절을 제대로 경험한 83학번이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렇게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뇌리 속에는 4.19, 5.18,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역사가 공식적인 역사가 된것에 대한 강한 반발, 그리고 유신, 5공에 대한 가없는 동경과 열망이 숨어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그는 민주주의의 적이며, 반헌법 세력이다. 

김진태 의원에게 권한다. 귀 당은 운동권 출신 정도가 아니라 운동권 수괴 출신의 최고위원과 도지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재오와 김문수를 보라. 서울대 부총학생회장 정도의 검사가 문제라면, 수많은 총학생회장들을 주렁주렁 거느리며 지령(!)을 내렸던 이재오와 김문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운동권 시절이 잘못되었다고 밝힌적이 한번도 없다. 그들 역시 자신들이 80년대때 힘써 싸웠던 것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김진태는 말단 검사 따위 신경쓰지 말고 당신 당 이재오, 배일도, 심재철 의원, 그리고 김문수 도지사나 몰아내도록 하라. 그들이 진짜 거물 운동권들이었으며, 현재 지위도 일개 검사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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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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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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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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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