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복 등교를 허용하라. 학교는 고행의 장소가 아니다.

하지가 지나면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이 되었다. 원자력 발전소를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정부의 이른바 블랙아웃 경고와 에너지 절약 시책에 따라 학교는 특수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일반 가정집과 마찬가지로 전기를 아껴서 산업시설에 더 많은 전기가 가도록 해야 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일반 가정집은 20평에 많아야 네다섯명이 거주하지만 학교는 20평에 30명 이상이, 그것도 일생중 체온이 가장 높은 시기의 아동과 청소년들이 펄펄뛰며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집에서야 정 더우면 활동을 멈추고 오수를 즐기던가 할 수 있지만, 학교는 그렇다고 쉬어서는 안되는 곳이다. 더워도 공부는 해야 하며, 최신 교육학에 따라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학습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냉방과 관련한 어떤 배려도 받지 못하고 있는 학교는 전기요금 폭탄을 피하기 위해 냉방을 거의 가동하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 많은 학생들이 움직이고 있을 뿐 아니라 학교 건물 자체도 어마어마한 열을 흡수한다. 대부분의 학교건물은 콘크리트로 무성의하게 지어진데다가 이렇다할 단열재도 이중창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단열도 통풍도 제대로 되지 않는 학교건물은 한여름의 햇볕을 받으면 손대면 뜨거울 정도로 달아오르고, 이렇게 달아오른 열기는 빈약한 단열재를 뚫고 교실에 그대로 복사된다. 핀란드 사우나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특별한 배려나 조치는 꿈도 꾸지 못하며 그저 공공기관 실내온도 28도 기준에 맞추어 냉방하라는 공문시행의 대상으로 취급된다. 그런데 엉뚱하게 대부분의 다른 공공기관들은 에어컨의 설정 온도를 28도로 맞추어 가동하라는 것으로 이 공문이 해석되는데, 학교는 기상청 발표 외부 기온이 29도가 되어야만 에어컨을 가동한다는 쪽으로 해석되고 있다. 쉽사리 달아오르는 학교건물의 특성에다 많은 학생들의 체온이 뭉쳐 있는 교실 특성상 외부 기온보다 3-4도 높을 교실 상황은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을때는 거론이 되지만, 냉방을 해야 할 근거로는 거론되지 않는다.

게다가 전기요금 절약이 학교평가에 반영된다는 낭설까지 떠돌면서 학교들은 웬만하면 냉방을 가동하지 않고 버티는 쪽을 선택하고 있다. 그 결과 학생들은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고 졸음이 쏟아지는 교실에서 공부라는 것을 강요당한다. 혹자는 교무실에는 에어컨이 가동된다면서 교사들에게 손가락질을 하지만, 교사들의 일터는 교무실이 아니라 교실임을 유념하자. 교무실의 에어컨은 교감용일 뿐이다.

그래도 학생들은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옷을 가볍게 입고, 풀어서 입고자 한다. 현재 대부분 학교의 교복은 기본적으로 정장 스타일이기 때문에 한 여름에 냉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교실에서 활동적인 수업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학생들은 그 나마 바람이 잘 통하고 특히 남학생의 경우 반바지를 입을 수 있는 체육복 차림을 선호한다.

그런데 일부 학교에서는 이것마저 강하게 규제하면서 학생과 학교간의 불필요한 충돌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심지어 일부 자율형 사립고등학교는 고가의 생활복 등교는 허용하면 저렴한 체육복 등교는 불허하면서 앞으로 이 학교에서 여름을 더 보낼 일이 없는 고3 학생들의 원망을 듣고 있다. 심지어 체육시간 이외에는 교복 풀세트를 갖출 것을 강요하고, 복장 검사를 도리어 강화하는 학교까지 있다. 학생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쾌락을 느끼는 도착증 환자가 아닌 다음에야 있을 수 없는 처사다. 더구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처사들이 대개는 교사들의 여론이 아니라 시원하고 드넓은 공간을 홀로 사용하는 교장의 개인적인 취향과 고집, 혹은 그것을 미리 읽고 과잉 충성하는 교감이나 생활지도부장에 의해 이루어지고 강요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조치다. 냉방을 제한하면서 복장까지 더 까다롭게 규제하다는 것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성인들이 근무하는 공공기관조차 냉방을 줄일 경우 복장을 완화한다. 정장대신 간편복을 입고, 노타이로 출근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이 앞장서서 반바지 출근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성인들이 간편복이나 노타이로 출근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학생들에게는 교복이 아닌 옷을 입고 등교하는 것이 마땅히 허용되어야 한다. 게다가 체육복은 교복과 마찬가지로 학교의 마크와 이름표가 새겨져 있어서 사실상 유니폼이라는 점에서 교복과 같은 옷이다. 구태여 막을 이유가 없다.

사실 학생들도 체육복차림으로 등하교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다. 너무 모양이 안 나기 때문이다. 그러니 체육복 등교는 더운 날씨에 냉방도 되지 않는 교실에서 수십명이 무더기로 공부를 해야 하니 선택한 궁여지책일 뿐이다. 따라서 굳이 학생들의 단정한 복장을 봐야만 한다면 그 복장으로 활동이 가능하게끔 실내 온도를 낮추어 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궁여지책이라도 허용해야 한다. 학교는 공부를 하고 활동을 하는 곳이지, 도를 닦고 고행을 하는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생들의 체육복 등교를 허용한 송파구의 P중학교에서는 눈에 띄게 수업 분위기와 학습 효과가 좋아져서 교사와 학생들이 모두 만족해 하고 있다. 그 밖에도 체육복 등교를 허용함으로써 학습 효과를 높인 학교들의 사례는 얼마든지 더 찾아볼 수 있다. 안 그래도 입시경쟁에 사교육에 고문당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제발 하나라도 덜 괴롭히자.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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