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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록의 노무현과 NLL 논란 한방에 정리하기

진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노인층들을 중심으로 "노무현이가 김정일한테 서해바다를 팔아먹으려 했다"는 따위의 말이 먹히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늙은이가 젊은이를 가르쳤습니다만 지금은 젊은이가 늙은이를 가르쳐야 하는 역사회화의 시대입니다. 그때를 위해 최대한 간단하게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NLL관련 회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도 사회수업의 일종.

먼저 NLL(Northern Limit Line:북방한계선)이 무엇인지 부터 살펴봅시다.  NLL은 일부 어버이님이 주장하는 것 같이 바다에 그어진 휴전선(군사분계선)이 아닙니다. 다만 그 동안 사실상의 분계선의 기능을 해 왔을 뿐입니다. 일종의 임시라인입니다. 그러니 NLL은 포기해야 하는게 맞습니다. NLL을 지우고 분쟁의 소지가 없는 정식의 분계선을 긋는것이 원칙입니다. 


땅에는 휴전선을 그었지만, 바다에는 나중에 협의하기로..


이 분쟁은 NLL이 처음 그어지는 첫단추 때문에 비롯되었습니다.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의 휴전협정 당사자인 UN군(대한민국은 여기에 끼지 못했음)과 북한, 중국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조인합니다. 이때 오늘날의 휴전선은 협정문에 포함되어 정확하게 상호 추인되어 명확한 국경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해상 경계선은 북한의 12해리설(연안으로부터 12해리까지: 1해리는 18.8Km)과 UN의 3해리설(연안과 최외곽 섬으로부터 3해리)이 충돌하면서(국제 관례를 따져보면 이 경우는 3해리설이 맞습니다. 안 그러면 부산 앞바다도 일본 영해가 되니까요)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연해의 섬 및 해면'에 관한 통제권은 625 전쟁 이전을 기준으로 하되, 서해5도는 UN군 관할로 한다는 단서규정만 두고 일단 미봉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클라크 UN군 총사령관은이 여기에 따라 서해상에 38선 이남구역 중 북한 연안 3해리 남쪽, 그리고 서해5도수역을 연결하는 북방한계선(NLL)을 설정하였습니다. 협약에 따라 해상경계선이 확정될때 까지의 임시 분계선을 설치 한 것이니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유엔군사령부는가 이를 대한민국 해군에만 전달하고 북한에는 공식 통보하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대한민국 해군에게 "저 선 북쪽으로 넘어가지 마"라고는 통보했으나 북한 해군에게 "저 선 남쪽으로 내려오지 마"라고는 통보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분쟁의 소지가 싹틉니다.

침묵은 곧 동의다


그런데 북한 측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 이 선이 북한에 일언반구 통보 없이 일방적으로 그어졌지만 북한이 1973년 까지는 이 선을 그은 것에 대해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20년이나 침묵을 했으니 이건 사실상 동의로 간주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래서 NLL은 어느새 해상분계선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1973년 12월 이후 북한이 여기에 계속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에서 연장선을 그은 뒤 그 이북 수역을 자신들의 해역이라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후 1999년까지도 계속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러니 NLL은 남한과 미국만이, 그리고 북한이 주장하는 해상경계선은 북한만 인정하는 상황에서 남한의 해군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심지어 대한민국 법률에도 북위 37도 이북인 소청도 이북 지역은 영해에 대한 규정이 모호합니다. 헌법에는 한반도와 부속도서가 모두 영토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북한이 또 다른 국가인 상태이니 빚어지는 일입니다. 이럴 때는 어쨌건 협상을 해서 양측이 상호승인한 정식 분계선이 합의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정식 분계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이렇게 분쟁의 소지가 있는 선이 어느 한쪽의 힘에 의해 실효적으로 지배된다면 다른 쪽 역시 힘으로 이를 위반하고자하는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분쟁이 끊이지 않게 되는데 특히 분쟁이 잦은 수역은 서해안의 황금어장인 연평도와 백령도 사이 수역입니다.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황해도 연안에서 출어한 북한 어선이 NLL을 지키면 고기 잡을 곳이 없습니다. 자연히 침범할수 밖에 없는데(서쪽에서 중국 어선도 그렇게 침범하죠), 폐쇄적인 북한 정부는 이 어선들을 또 감시해야 하니 군함이나 경비정도 실실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계속 긴장상태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래서 등장하게 되는 것이 공동어로 구역이니, 평화수역이니 하는 것입니다. 어쨌거나 제대로 된 분계선이 확정되는 것은 협상의 협상을 거듭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니, 그 사이 기간에 분쟁의 소지가 되는 수역을 같이 쓰자, 뭐 이런 취지입니다. 말은 그런데, 이걸 가지고도 또 서로 조금이라도 이익을 더 보기 위해 줄다리기가 심합니다.

아래의 지도는 김정일이 제안한 공동어로 구역인데(노란색으로 표시된 부분), 남한이 주장하는 경계와 북한이 주장하는 경계 사이의 교집합이 되는 지역을 공동으로 평화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남한은 실효적으로 100% 지배하고 있던 수역을 북한과 반빠이 해야 하니 손해입니다. 북한은 아주 많이 남는 장사죠. 김정일이 노무현에게 제안했던 것도 이것이며, 박근혜가 2011년에 하겠다고 했던 것도 이겁니다.  만약 노무현이 이 안을 받았다면 NLL을 사실상 포기했다 어쩐다 하는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노무현은 이 안을 받지 않습니다.



이때 노무현은 NLL 흉을 한참 봅니다. 협상 상대방을 안심시키는 수법이죠. 그래 놓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쪽 사람들한테는 이게 실제적인 힘이 있으니" 운운하면서 자기가 NLL을 양보할 수 없다는 핑계를 댑니다. 노련한 외교술이죠. 하지만 여기서 그만두면 결국 협상은 제자리입니다. 그래서 노무현은 다음 그림과 같은 제안을 합니다.



NLL을 당장 없에는 것은 곤란하지만, 너희들 어업 문제도 있고 하니, 어선들을 NLL남쪽으로 내려오도록 해 주고 감시는 군함대신 경찰이 하도록 하자, 그런데 기왕 그러는것 남쪽 어선들도 NLL북쪽으로 올라갈수 있도록 하자, 즉 NLL을 경계로하여 남북 일정 구역을 공동어로 수역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안이 나오자 김정일이 당황합니다. 북한쪽에서야 NLL남쪽으로 내려가도 바다지만, 남한쪽에서는 NLL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황해도 연안에 닿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평화수역으로 하고 군함을 빼자고 하면 서해안에서 북한 해군은 사실상 기동이 불가능합니다. 북한 최대의 해군기지인 해주항 눈앞까지 남한 어선들이 들락날락 거리는 상황입니다.   

이걸 읽고 있는 노무현은 "그렇게 하는 김에 개성에서 해주를 잇는 거대한 평화구역을 만들자"까지 치고 나갑니다. 사실상 북한더러 "돈 벌게 해 줄테니 무장해제 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김정일이 "아니, 해주는, 해주만큼은" 하며 버티게 되고, 그래서 해주 앞바다를 제외한 다음 그림 같은 공동어로 수역을 합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연평도에 포격을 가했던 포대들이 집중된 동산곶 일대도 훤히 남한 어선에게 노출되는 상황이니 김정일이 이걸 정말로 실행할지는 사실 의문입니다. 하지만 평화 하자는데 대놓고 반박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NLL문제를 재론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며, 최소한 애초 그들이 주장하던 저 남쪽 아래로 그어 놓은 해상분계선은 사실상 폐기처분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김정일이 주장하던 노란색이 얼마나 작게 줄어들었는지, 그리고 그 중 절반은 NLL북쪽으로 넘어갔음을 유념해 주세요)



대화록 공개로 최고 존엄이 손상된 북한


이번 대화록 공개로 큰 상처를 입은 쪽은 국정원, 박근혜 뿐 아니라 김정은 쪽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김정일은 최고존엄이라고 불립니다. 한 마디로 신이죠. 그런데 이 대화록을 주욱 읽어보면 이 신적인 김정일이 여우같은 노무현에게 말려서 애초에 주장하던 해상경계선을 다 내주고 NLL남쪽으로 조금 내려갈 권리, 그것도 북쪽을 같은 면적 내어주고 나서야 겨우 얻어내는 위치로 내몰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심지어 "해주는 , 그건 안돼"하며 쩔쩔 매는 모습까지. 청문회에서 증인들을 교묘하게 몰아세우던 노무현의 달변이 김정일을 상대로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발휘되고 있습니다. 

수꼴들이 노무현이 북한 변호사 노릇했다며 흥분하는 대목도 요약하면 "내가 미국이랑 국제사회 앞에서 네 변호 얼마나 해주었는줄 알아? 그러니까 너도 미국하고 마냥 그러지 말고 좀 부드럽게 굴어." 이며, 김정일 앞에서 미국 욕했다는 대목도, "그래 네 말대로 미국 나빠. 나쁘긴 한데 일짱이야. 어쩌겠어? 그러니 마냥 니편 들어줄수는 없다고." 이러면서 개방과 개혁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고립을 자초하는 자주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러니 문 열고 나오라고." 라는 훈계까지 하고 있죠. 

허어, 김정일은 노무현의 적수가 전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최고존엄 조롱이라며 흥분하고 있습니다. 누가 조롱한 것일까요? 노무현입니다. 노무현에게 우롱당한 최고존엄의 모습이 노출된 것입니다.

그래서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2002년 박근혜는 김정일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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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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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