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8.

김재원의 계엄법 개정안에 대해 과민반응하지 말자

7월 22일에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 등 10명이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무성에게 형님-꼬봉 세레모니를 한 김재원이 주동인데다가 시국이 시국이며, 다루는 내용이 무시무시한 계엄과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이 자들이?" 하는 의혹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의혹이 떠오르더라도 법과 관계되는 일은 법조문을 따져가며 꼼꼼하게 확인해야지 지레 짐작은 곤란하다.

우선 계엄이란 것 부터 알아보자. 계엄이란 한 마디로 대통령이 전쟁이나 거기에 준하는 상황에서 특정 지역의 행정-사법을 계엄사령관(법에 의해 장성급 중에서 임명)에게 통할시키는 것이다. 박정희때는 북한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핑계하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유신독재를 실시한 바 있고, 대만에서도 장개석이 중국이 쳐들어 온다는 핑계하에(실제로 쳐들어 왔다가 금문도에서 수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한 바 있다) 무려 1988년까지 수십년간 계엄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 헌법은 실제로 정상적인 행정-사법이 어려울 정도의 전쟁에 준하는 상황에서만 계엄을 선포하고, 선포한 뒤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즉시 해제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한 국회에서 일단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해제를 요구할 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전시에 준하는 혼란상태 운운하는 조건도 주관적이라 박양이 두려움을 느끼면 그냥 선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국민들이 가만 있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계엄이 선포되면 집회와 시위가 제한되며, 이 제한을 경찰이 아니라 군인이 담당하기 때문에 촛불집회 등도 거의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김재원 등의 개정안이 계엄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서 오히려 대통령의 계엄선포 남용을 막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제2조 ② 제1항에 따른 계엄의 기간은 6개월 이내로 정하여 선포해야 한다. 다만, 그 기간의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계엄선포 규정을 준용하여 이를 연장할 수 있다" 이 규정을 신설하였다. 

그러고 보면 기존 계엄법에는 계엄의 기간이 적시되어 있지 않고, 국회가 요구할때 해제한다라고만 되어 있다. 그러니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새누리당이 해제를 요구하지 않으면 무제한 계엄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엄 상태에서는 계엄사령관이 행정-사법을 지휘하기 때문에 서울에 계엄을 선포하면 박원순 시장은 완전 무력화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김재원의 개정안에는 "6개월 이내"로 기간이 명시되어 있다. 물론 "이를 연장할 수 있다."라는 다음 문장이 거슬린다. 이는 대통령이 6개월 단위로 계엄을 연장할수 있는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 다수당 소속 대통령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계엄을 유지할수 있던 기존법률보다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또 "제8조②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을 지휘·감독할 때"를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의 장을 통하여 각 기관을 지휘 감독할 때" 로 바꾸었다. 이것도 큰 변화인데, 기존 계엄법에서는 일단 계엄이 떨어지면 계엄사령관이 시장, 도지사 혹은 법원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공무원과 법관들을 지휘 감독할 수 있었는데, 김재원 안에서는 시장, 도지사, 법원장을 통하도록 규정하였다. 물론 사령관이 최고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시장, 도지사 등이 사령관과 협의할 여지는 남겨 둔 것이다.

다음 개정 내용도 흥미롭다. "제9조(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 ① 비상계엄지역에서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체포·구금(拘禁)·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에서 "거주이전, 또는 단체행동에 대하여"를 삭제하였다. 기존 계엄법에서는 계엄이 선포되면 군인들이 집회시위는 물론 거주이전까지 제한할 수 있었고(이사도 못가게 할 수 있음),  "또는 단체행동"이 들어 있어서 사실상 2인 이상이 모이면 무조건 잡아들일수 있었으나(동창회도 잡아갈 수 있음. 전두환 시절에는 실제로 그랬음), 김재원 안에서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유지하였고, "단체행동"의 자유는 유지하여 과도한 억압 요소를 배제하였다.

또 계엄이 선포되면 몇몇 규정된 혐의에 대해서는 민간인도 일반법원이 아니라 군사재판을 받게 되어 있는데, 심지어 계엄이 끝나도 대통령이 군사법원의 재판권을 1개월간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재원의 개정안에서는 이 부분을 삭제하여 계엄이 해제되면 즉시 모든 재판권이 일반법원으로 넘어가게 바뀌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때, 김재원의 개정안은 기존의 계엄법을 상당히 완화시켰고, 인권의 과도한 제한여지를 어느 정도는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완화시켰다고 해도 계엄은 계엄이며, 하필 이 시국에 계엄법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는 김재원의 계엄법 개정안이 계엄을 강화하고 유신을 예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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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9.

적이 두려워서 지휘권도 못 가지겠다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게 무슨 국제 망신인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군이 2015년으로 연장되어 있는 전시작전권반환을 또 연기해 달라고 미국에 애걸했다. 그래서 전투기도 구입해 주고, 방위 분담금도 1조원이나 더 내면서 제발 우리 국군을 지휘해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이 무슨 남사스러운 꼴인가? 게다가 미국에서는 예정대로 2015년에 작전권을 가져 가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는 것이다.

전시작전권이라고 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작전을 수립하는 권리 수준이 아니다. 이 권리는 준전시상황에서부터 발동한다. 즉 전쟁 개시 이전부터 발동하기 때문에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고 수행하는 모든 상황에서 국군의 통제권이 미국에 있다는 뜻이다. 

국방부쪽의 주장은 한결같이 비대칭무기인 핵과 특전병력을 제외하더라도 남북한의 군사력이 80:100으로 열세이기 때문에 모자라는 부분을 미군이 채워 주어야 하기에 작전권을 더 우월한 시스템을 갖춘 미국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북한이 무섭긴 무섭나 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1년 방위비는 무려 34조5천억원이다.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이냐 하면 북한의 1년 GDP보다 많다. 그러니 북한이 전국민을 다 굶어죽이고 돈이란 돈을 몽땅 국방비에만 쏟아 부어도 대한민국의 방위비를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며, 실제 북한은 1년에 약 9조원 내외의 국방비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1/4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도 한두해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1994년 이래 20년 가까이 계속된 현상이다. 

이렇게 엄청난 국방비를 10년 넘게 써 가며 무기를 갖추었기 때문에 신형 무기들의 스펙도 상당하다. (이하 엔트로피님 블로그 참조: http://bos0191.blog.me). 이론적으로는 한 대의 전투기가 전차 600대를 파괴할 수도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북한이 2세대 전차 3000대를 운용할때(총 전차는 4000대이나 박물관에 갈것들은 제외), 대한민국은 3세대 전차를 무려 1600대나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3세대 전차와 2세대 전차의 교전비는 1:10, 즉 1당 10의 성능이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3세대 전차 병력은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다.

서울 불바다 협박의 근거가 되는 자주포, 방사포만 해도 그렇다. 북한의 자주포가 5분에 2발을 발사하며, 수동 조작 시스템으로 인해 사실상 33분에 1발 발사할때, 대한민국의 자주포는 1분에 3발을 발사하며, 버스트모드에서는 15초에 8발까지 발사한다.  

걸프전과 리비아 내전에서 확인된 것 처럼 사실상 승패의 열쇠가 되는 공중병력의 경우는 그 격차가 더욱 크다. 북한의 전투기가 800여대로 대한민국의 400여대보다 두배나 되는 것 같지만 이 중 500대는 베트남 전쟁 혹은 그 이전시기에나 쓰던 기종이며, 현대전투기에 속하는 MIG 29는 40여기에 불과하다. 반면 대한민국은 Mig29 보다 상위 기종인 F16/ F15 만으로도 200대를 운용하고 있다. 비행기가 장착하게 될 무기의 성능까지 감안하면 최강 급인 F15는 빼고, F16만으로도 북한 공군 전체를 궤멸시킬수 있는 수준이다. 

이렇게 압도적인 무기를 갖추고도 스스로 북한의 80% 수준의 방위력이라고 자신을 낮추면서 미국에게 구걸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의 방위력이 북한의 80%에 불과하다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전쟁은 무기만 좋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50% 우세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70%나 점수를 깎아먹은 요인은 바로 장군들의 비겁함일 것이다. 아무리 무기가 우수하고 병참이 튼튼하다고 해도 장군이 겁을 먹고 심지어 부패하기까지 했다면 어떻게 전투를 수행할 것인가? 월등한 무장을 갖추고도 적을 두려워하여 다른 나라에게 대신 지휘해 달라고 구걸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그런 장군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방위력은 북한의 80%가 아니라 50%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장군들이 그런 것이 아니며, 정치적으로 기웃대는 그런 무리들이 아니라 제대로 정신과 능력을 갖춘 참된 장군들이 어딘가에 숨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희망이라도 없다면 불안하고 부끄러워 이런 나라에  세금 내는 것이 몹시 아까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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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7. 15.

한국사 교육 강화 주장에 신중해야 한다. 이는 수구보수가 바라는 것일수도 있다

칼럼 작성을 위한 러프한 글입니다. 다소 난삽함을 양해해 주세요

한때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이른바 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다. 국영수를 줄이고 역사를 더 가르쳐서 민족의식을 갖추게 하자, 서구 학문과 문화의 범람 속에서 민족 정체성을 지키게 하자 등등의 주장들이 그것이다. 특히 이들은 그 동안 우리 나라의 역사교육이 친일파들의 식민사관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싹 걷어내고 민족사관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진보진영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소위 진보진영에서 요구하면 박근혜 정부는 별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 심지어 대입 전형을 뜯어 고쳐서 대입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크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한국사 교육 강화방안에 대해 좌우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박정희를 생각해 보면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박정희가 독립군 잡던 일본군 다가끼 마사오이니 민족주의 교육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970년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외세에 맞선 민족 영웅들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을지문덕, 계백, 강감찬, 이순신, 권율 같은 인물들에 대한 신격화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시대가 유신시대다.

박정희가 일제 강점기를 미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오산이다. 유신시대 국사교육은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억압을 오히려 더 과장했다.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무자비한 수탈과 학대에 고통받던 조선인의 이미지는 거의 전적으로 유신시대때 정부가 직접 편찬한 국사교과서에서 심어진 것이다. 여기에 맞선 항일투사들의 이야기도 무수히 변주되어 학생들의 머리속에 심어졌다. 남산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헌납되고, 예산의 윤봉길 의사 생가가 성역화 되고, 유관순 열사 생가와 교회 일대가 성역화된 것이 모두 1972-1977년의 일이다.

문제는 박정희가 이렇게 민족주의 교육을 강조한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민족주의가 강조되는 상황은 결코 민주주의에 우호적이지 않다. 역사적으로 민족사를 강조한 정권은 한결같이 민족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외래사상으로 몰아서 부정하고, 적대적인 나라를 상정하여 국민들에게 전시상황의 공포를 심어주며, 강력한 국가와 민족에 대한 헌신을 동원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열망을 봉쇄하였다. 20세기 초 독일과 일본이 민주주의로의 경로에서 이탈하여 전체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첫 걸음도 민족사, 민족혼에 대한 유별난 강조였다.

유신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신시대 내내 학생들은 민족자주, 민족주체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 민족주체성의 강조는 자유민주주의를 서구식 민주주의라고 부르게 만들면서 유신헌법을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정당화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서유럽의 산물이니 우리 민족에게 맞지 않으며, 토착적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변했던 것이다.

휴전선 이북의 북한 동포들이 아직 광복을 맞이하지 못하고, 소련과 그 앞잡이인 김일성 부자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들을 해방시킬 때 까지 우리는 긴장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식의 논리도 쉽게 받아들였다. 일본의 자리에 소련이 들어가고 친일파 앞잡이의 자리에 북한 공산당이 들어간 것이다. 북한정권은 단지 공산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줏대없이 소련식 공산주의를 따라하는 앞잡이이기 때문에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한 서술은 소련과 그 앞잡이들의 만행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를 통해 나라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셈이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동원, 총력전의 이데올로기가 성립되었다. 국민동원, 총력전의 이데올로기 앞에서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것은 참으로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나라 잃은 설움’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묵살되었다. 행주대첩이 조선군의 다양한 화약무기로 일본군을 격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군인 뿐 아니라 아녀자들까지 가담하여 투석전으로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식으로 왜곡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문제는 한국사 교육의 위상이 아니라 그 목표와 내용이다. 사실 한국사 교육은 언제나 강조되어 왔으며 양적으로나 또 그 위상으로나 부족한적이 없었다. 오히려 과잉이라고 해야 할 상황이 더 많았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지금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사실 우리에게 부족했던 교육은 한국사교육이 아니었다. 가람배치 양식이 어쩌구, 신라 양식이 어쩌구, 고려 양식이 어쩌구, 무슨 단체, 무슨 당파가 어쩌구 하는 내용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고 시험에도 더 많이 반영된다는 것을 반길 학생은 거의 없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가야 할 민주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지 못하는 한 한국사 교육은 현실과 무관한 내용을 억지로 외우는 과목 아니면 전체주의의 도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교육과정 전체의 목표는 민주시민성의 함양이지, 민족의식, 국가의식의 고취가 아니다. 한국사라고 특권을 가질수는 없다. 한국사는 먼저 군국주의, 유신시대의 흔적부터 완전히 털어내고 민주시민성 교육이라는 새로운 목표아래 완전히 재진술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근현대사’의 내용이 ‘한국 민주주의사’를 중심으로 재진술되는 것은 그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조건하에서 한국사교육의 강화나 필수교과화가 논의되어야 한다.

그 동안 한국사 교육은 어떤 타자와 맞서 싸운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된 유신시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이민족의 침략에 항쟁한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역사,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피눈물 흘렸던 일제강점기의 역사, 해방 후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소련과 그 앞잡이의 적화야욕에 맞서싸운 반공항전의 역사, 혹은 100년전쟁에서 보여주듯 아직도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일제 앞잡이와의 싸움의 역사 등 진영을 불문하고 역사를 보는 관점은 대동소이했다. 이제는 이런 한국사교육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사교육 강화는 오히려 수구 보수진영의 구호가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정서의 만연이 될 것이다.



2013. 7. 11.

국정원의 망동, 그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 아주 꼼꼼하신 분일지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국정원이 히트를 친다. 음지에서 정치공작 하는 것 조차 불법인 국정원이건만, 이제는 아주 드러 내어 놓고 정치적 견해를 선전하고 있다. 원래 정보기관의 역할을 정보를 수집해서 가감없이 보고하는 것이지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대화 녹취물을 가지고 녹취록을 작성했으면 그냥 그걸로 끝나는 것이지, 이걸 해석해서 영해를 내주는 것이다 아니다 따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FBI나 CIA가 어떤 정치적 사건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을 본 적있는가? 그들은 배후에선 무슨 공작질을 할지 몰라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조사만 할 뿐이다. 게다가 그 조사가 이번에 드러난 민간인 감청 사건처럼 적절한 범위를 벗어날 경우 의회에서는 당장 권한을 축소하고 제한하는 법률개정안을 논의한다. 급기야 FBI국장이 의원들에게 권한 축소만은 말아달라고 읍소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한때 FBI가 단지 조사하는 것을 넘어서 나름의 판단과 해석, 그리고 정치적 개입까지 버젓이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국인들에게 큰 상처로 남은 매카시즘의 광풍이다. 이 매카시즘의 배후가 매카시가 아니라 당시 FBI국장인 에드거 후버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심지어 후버는 트루만, 케네디 등등 대통령들의 사생활까지 캐어내어 약점으로 잡고 무려 48년간이나 국장으로 재임하면서 사실상 암흑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이런 폐단을 겪은 미국은 후버 국장이 사망하자마자 FBI국장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아직도 FBI, CIA, NSA 같은 정보 조사기관의 광범위한 월권행위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이런 집단은 정치적으로 통제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정원은 그 대담함에서 FBI조차 한참 넘어서고 있다. 전설적인 에드거 후버 국장조차 은근히 자료를 흘리거나 하면서 정치적인 공작을 했지, 직접 대놓고 나서서 특정 대통령, 정치인을 이적행위를 했다는 식으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후버조차 하지 못한 일을 남재준이 하고 있다. 이건 용감한 것인가 무모한 것인가 아니면 무도한 것인가?

혹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시킨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통상 이런 권력기관들은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 자기들의 뜻에 의해 움직인다. 그 자체 하나의 이익집단처럼 되어 있고, 나름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대통령조차 이들을 활용하려면 명령이 아니라 은근한 공작을 해야 한다. 이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걸 갓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이 할 수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으며, 무능하기 짝이 없는 그의 보좌진이 할 수 있다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국정원 같은 조직을 뜻대로 움직이려면 인적 구성에서부터 꽤나 섬세하고 꼼꼼한 조치가 필요하다. 꼼꼼하신 분, 생각나는 분 없나?

자 이제부터 소설을 써 보자. 이건 다 소설이다. 소설, 허구, 픽션 

지난 몇년 동안 국정원은 박근혜조차 뒤를 캐고 다녔을 가능성이 크다. 2008년 이후 이명박은 국정원의 핵심 인사들을 자기 사람들로 물갈이 했다. 댓글 달고 다닌 직원들은 위에서 시켜서 그렇게 한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골수 개독 분자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2011년 까지는 박근혜 조차 이명박의 잠재적인 적으로 분류되었다. 걸핏하면 이명박에게 태클 거는 듯한 모양을 연출해서 점수를 따고 있는 박근혜를 원세훈이 그냥 보고 있었을 턱이 없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것도 박근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을 위해서였다.  

남재준의 잇따른 돌출행동도, 국정원 내외의 어떤 세력이 있고, 이들 중 누군가가 남재준을 부추겨서 돌출행동을 하게 만든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앞뒤 안가리고 남재준이 울컥질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남재준이 울컥질을 할때마다 박근혜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남재준이 울컥하며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자 김무성이 부산에서 떠들어댄 말이 그 대화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결국 김무성은 차기 주자는 커녕 감방갈지 말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몰락했다.  게다가 실제로 노무현의 NLL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역풍만 불었다. 
이번 두번째 울컥질도 마찬가지다. 7월 15일에 여야가 면책특권을 이용하여 국회에서 국가기록원의 대화록 원본을 열람할 예정이다. 새누리당은 이 열람을 계기로 "해석 논쟁"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열람 해 봤더니, 포기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사실상 NLL포기로 해설될 여지가 크다." 이런식으로 밀고 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걸 거의 5일전에 국정원에서 먼저 떠들어 버렸다. 그렇게 되면 새누리당은 15일에 열람하고 나서 "사실상 포기" 발언을 하면 아주 꼴이 웃기게 된다. 국정원의 지시를 받는 꼴, 국정원의 로드맵을 따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은 미리 상대의 전략을 받아들고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 게다가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자체 개혁안을 마련하라!" 라고 지시를 했건만 "이젠 정치 개입을 공식적으로 하곘어!" 하고 대답한 꼴이 되는 것이다. 이걸 다르게 해석하면 "이게 누구한테 개혁하라 마라 지적질이야?" 이렇게 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요구하는것은 결국 이거다. "국정원을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해 달라. 안 그러면 확!" 이상하게도 국정원에서 한번씩 입을 열때마다 입지가 커지는 사람은 박근혜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문재인이다. 처음 원본 깠을때 민주당에서 조신하게 있던 문재인 의원이 중심으로 떠올랐다. 국정원 녹음기론을 폈을때 국정원에게 호통을 쳐셔 깨갱시킨 사람도 문재인이다. 이제 "사실상 NLL 포기" 논쟁에서도 문재인 의원이 맞상대가 될 수 밖에 없다. 

그 와중에 친박 핵심 인물들과 안철수, 김한길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이건 마치 국정원과 문재인의 싸움처럼 되고 있다. 국정원이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혹시 일부러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들의 약점을 틀어쥐고 철권을 휘둘렀던 후버 국장처럼 "나는 지난 대선에 너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다."라는 묵언의 시위를 통해 박근혜와 그 정권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누가 이것을 지휘하고 있을까? 누군지 몰라도 아주 "꼼꼼하고 영리하신 분"일수 밖에 없다. 물론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쓴 글은 그냥 재미삼아 써 본 순수 100% 음모론이다. 그러니 팩트를 제시하라느니 등의 논쟁은 사양한다. 이런 상상력까지 일어나게 만든 이 세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2013. 7. 10.

제가 출제한 이번 중3 기말고사 문제입니다. 여러분의 실력은?


서술형 문제)  다음의 사건과 관련 법률을 보고 다음의 순서에 따라 답을 작성하시오(15)


【사건】

피고 스파크는 2435. 12. 12. 22:00경 소형 우주선을 운행하던 중 커크 선장의 우주선과 충돌을 일으켰다. 이에 커크 선장과 옥신각신 하던 중 경찰관이 출동하였다.

경찰관은 스파크의 음주운전을 의심하여 음주측정을 위해서 스타플릿 본부로의 동행을 요구하였으나, 스파크는은 ‘술을 마시지 않았고 사고도 내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경찰관들은 그에게 페이저 건을 쏘아 기절시킨 뒤 강제로 본부로 데려갔다.

스파크는 연행된 후 경찰관들로부터 음주측정에 불응할 경우 클링온 행성으로 추방된다는 말을 듣고 여기에 응하였고 그 결과 혈중 알콜 농도가 0,21%가 나왔다. 그러나 스파크는 그 결과에 대해 불응하면서 인근 병원에서 혈액 검사 할 것을 요청했고, 이에 경찰관들은 그와 함께 인근 본즈 병원에서 채혈검사를 실시하여 0.20%의 결과를 얻었다.


【주장】

1) 검사: 비록 연행 당시에 형사소송법 제200조의 5에 정한 절차가 이행되지 않았고, 강제 연행되었으나, 이후 피고인이 자발적으로 실시한 병원 채혈검사에서 유죄에 해당되는 혈중 알콜 농도가 나왔으므로 피고는 유죄이며,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한다.

2) 변호사: 경찰관이 피고를 본부로 데려간 과정은 위법한 체포에 해당되며, 위법한 체포 이후의 모든 조사는 불법수사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 증거는 모두 무효이므로 피고는 무죄다.

【관련 법규】

우주교통법

제44조 ①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우주선을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

148조의2(벌칙)

② 제44조제1항을 위반한 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라 처벌한다.

1. 혈중 알콜농도 0.2퍼센트 이상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

형사소송법

제200조의5(체포와 피의사실 등의 고지) 피의자를 체포하는 경우에는 피의사실의 요지, 체포의 이유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음을 말하고 변명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제308조의2(위법수집증거의 배제)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

헌법

제12조 ①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

⑤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의 이유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고지받지 아니하고는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하지 아니한다.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자의 가족 등 법률이 정하는 자에게는 그 이유와 일시·장소가 지체 없이 통지되어야 한다.



1) 이 사건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2) 이 사건에서의 가장 결정적인 쟁점이 되므로 법을 적용하여 판단을 구해야 하는 부분은 이것이다.





3) 나는 이 사건에 대해 ( 유죄/무죄 )로 판결하며,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자, 어떠셨나요? 이 문제 답을 작성하실수 있었나요?

중3 학생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푸냐고요? 놀랍게도 1/3 이상이 이 문제를 잘 풀었습니다. 사법과 관련한 내용을 정리해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주는 전통적인 교수법으로는 불가능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프로젝트+연극이 결합된 수업을 2주간에 걸쳐서 실시한 뒤 학생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법적 마인드의 싹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진정 진보적인 교육자는 수업 내용에 진보적인 내용을 집어 넣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사람입니다.

그 구체적인 수업 방법은....

조만간에 모두 정리해서 책으로 내겠습니다. ^^ (티저 광고)

2013. 7. 8.

송전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밀양 어르신이 아니라 밀양 시민이다.

우리나라는 존칭의 인플레이션이 심한 나라다. 객관적으로 부를 수 있는 호칭마저 비하하는 것으로 인식하여 그것보다 더 높임 말을 만들어야만 한다. 노인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이제는 노인을 노인이라고 부르면 마치 비하하는 것 처럼 여긴다. 노인이 아니라 어르신이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의미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이다. 노인은 다만 나이가 일정 기준 이상이 되는 사람을 뜻한다. 여기에는 어떤 상하질서의 개념도 들어 있지 않다.

노인에는 노년으로 인한 여러가지 불편을 감안하여 사회적으로 배려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젊은이가 노인들을 배려하는 까닭은 정철의 시조에서 말하는 것 처럼 "나는 젊었거는 돌인들 무거우랴" 정신이지 "웃사람"이라서가 아니다. 가벼운 짐도 무겁게 느낄수 있는 약한 입장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노인과 마찬가지로 배려받을 권리가 있다.

반면 어르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그 즉시 상하와 장유의 질서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어르신에는 단지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더 성숙하고, 더 지위가 높다는 의미도 포함되는 것이다. 실제로 어르신이라는 말은 반세기 전 만 하더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위가 높은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 들어서는 노인들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 속에는 어떻게든 나이에 따른 상하질서를 유지하고 싶은 사회일각의 의도가 숨어 있을수도 있다고 보면 지나친 억측일까? 

어쩃든 노인을 어르신으로 부르는 사회적 분위기가 수구 우익세력에게 더 유리한것만은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우익단체 노인들의 행태는 열다섯살 먹은 양아치들보다도 더 저질이지만, 어르신으로서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닐 수 있다. 어르신은 상하의 개념이기 때문에 아랫것들에게는 신경쓰지 않는다. 어르신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랫것들이 잘못이다.

이런 점에서 밀양 송전탑 문제와 관련하여 일부 진보인사들이 '어르신'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불쾌하다. 그들이 송전탑 때문에 분노하는 것은 어르신이 아니라 밀양 시민이기 때문이며, 분노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도 어르신이라서가 아니라 시민이기 때문이다. 또 밀양 송전탑 공사를 강행하는 과정에서 공권력의 강압이 폭거인 이유도 그 상대가 어르신이라서가 아니라 시민이기 때문이다. 

굳이 밀양 어르신들이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 나이를 방패 삼아 공권력이 조금이라도 움찔하기를 바란다면, 혹은 저쪽 집단에게 뭔가 부담감을 주고 여론 전에서 유리하기를 바란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가 바라는 정부는 시민의 반대가 심할 경우 내려놓고 대화하는 정부이지 어르신을 공경하여 행정집행을 중단하는 정부가 아니다. 그런 정부는 가스통 할배들을 법대로 엄정히 처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밀양 어르신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밀양 시민이라는 말을 사용하자. 삼척동자부터 99세 노인까지 우리는 모두 시민으로서 평등한 것이며, 그것을 당당하게 일상 용어에서부터 구현할때 비로소 공화주의자이며 민주주의자인 것이다. 노인들이 살아온 인생을 존중받고, 또 여러 불리한 점에 대해 배려 받는 것은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우리가 계속 밀양 어르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가스통 어르신, 어버이연합 어르신이라는 말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이 우리반 학생만큼도 어른이 아님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2013. 7. 5.

국정원에게 모든 공무원의 컴퓨터를 들여다 보게 하는 프로그램이라니




공무원이라면 누구나 이 화면이 무엇인지 알 것이다. 모든 공공기관과 학교의 업무용 컴퓨터에 설치되어 있는 내 PC지키미다. 모든 공공기관과 학교는 한달에 한번씩 이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보안점검을 받아,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컴퓨터의 비밀번호, 설치된 프로그램 등 모든 정보를 낱낱이 스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단순한 체크 기능만 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도 있다. 정말 한달에 한번만 실행하면 되는 것일까? 한달의 나머지 29일은 그냥 휴면하고 있는 그런 프로그램일까?

이런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은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결과를 관리하는 주체가 "국가정보원"이기 때문이다. 왜 정보통신부가 아니고 국정원인가? 왜 행안부가 아니고 국정원인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국정원이 그 동안 해온 일들을 미루어 볼때 이 프로그램이 곱게 공공기관 컴퓨터의 보안상태만 점검했다고는 믿기 어렵다. 어쩌면 다른 상태도 이른바 공직사회의 종북 색출이라는 명목하에 점검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특히 교사들)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감청과 사찰을 감행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이 프로그램에 저렇게 국정원 마크가 찍혀있는한 그렇게 의심하는 것은 결코 무리한 비약이 아니다.

민주당과 야당은 차제에 국정원에게 모든 공공기관 컴퓨터에 대한 감찰권을 준 것이나 다름없는 이 PC지킴이 관할을 행안부나 다른 부서로 옮길 것을 요구해야 한다. 나는 내 업무 컴퓨터를 국정원에게 보여주고싶지 않다.


2013. 7. 2.

애꾸눈 권재원, 노안까지 오다니...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 신의 아들 뭐 그런건 아니고, 양안시력 불일치로 병역면제인(민방위가 아니라) 6급 판정을 받았다. 양안시 불일치로 신체검사 6급이라면 간단히 말해 한쪽 눈의 시력이 거의 없는 장애인, 즉 애꾸눈이란 뜻이다. 흔히 눈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느냐 이런 말들을 하는데, 나의 왼쪽 눈에 관한한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맞다. 안경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피곤을 덜어주는 정도지 선명하게 보는 것 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원근감이 많이 부족해서 계단이나 내리막에서는 엉금엉금 거려야 하고, 가끔 어이없는 헛발질로 넘어지거나 휘청거린다. 한때 활발하게 활동하는 산악인이기도 했는데, 등반과 종주에는 아주 강했지만 하강때는 상당히 버벅거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거의 평생을 오른쪽 눈만 혹사시키면서 살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쉽게 눈이 피곤해지고, 3D영화를 봐도 훨씬 실감을 덜 느끼거나 아니면 자막 글씨가 두겹으로 포개져 보이던가 했다. 내가 곽노현 교육감과 뭔가 유대감을 느꼈던 부분중 하나도 이것이다. 애꾸눈 주제에 눈 두개 쓰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읽고, 많이 보는 습관을 가졌다는 점.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왔다보다. 그 동안 외롭게 나의 창문 역할을 하던 오른쪽 눈(시력이 1.0으로 정상이다.)이 다른 정상적인 중년 남성의 눈과 마찬가지로 노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제는 책을 보면 글씨가 어른거려 도통 볼수가 없다. 그런데 불행중 다행으로 근시+원시=0 의 공식인지 왼쪽눈의 근시가 조금 회복되어 그나마 이걸로 책을 볼수 있다. 물론 정상적인 눈으로 책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참 우스운 협업이다. 먼거리는 오른쪽 눈으로 보고, 책은 왼쪽 눈으로 보고.

하지만 시력 자체가 미약한 왼쪽눈으로 책을 보는 일은 너무 신체적으로 힘들다. 이 고통을 참으면서 1년간 수십권의 책을 읽었다. 나 보고 책 좀 읽었다고 잘난척 한다, 거만하다 어쩌구 드립치는 사람들은 내가 책 읽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 몇배의 책을 읽은 정신의 소유자로서 오히려 얼마나 그대들 앞에서 겸손했는지 헤아리기 바란다. 내가 언제 한번이라도 책 읽는 일이 고통스럽다고 티라도 낸 적 있는가?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견딜수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돋보기 안경을 맞추었다. 왼쪽은 평면이고, 오른쪽만 돋보기인 참 해괴한 안경이다. 그래도 이걸 쓰고 책을 보니 책이 나를 향해 돌격이라도 해 온 것 처럼 가깝게 보인다. 이제 어쩔수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인 노안이다. 늙은 만큼 더 현명해 졌기를 희망해 본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블로그 주인이 쓴 책들 전체 소개




국정원 선거부정 사태가 주는 교훈: 사람중심 철학의 파탄

작금의 국정원 사태는 이른바 민주정부 10년동안 우리나라에 민주적 제도와 장치가 얼마나  허약했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실 이명박이 처음 취임할때만 해도 큰 우려는 없었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자신감이 너무 설익은 것임을 증명하는데는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민주정부 10년동안 쌓아 놓았다고 자부했던 보루들, 시민의 참여와 견제, 언론의 자유, 투명하고 공정한 행정 같은 것들이 단 2년만에 거의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때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불이었던 대한민국은 단 2년만에 언론 자유 수준이 중국이나 아프리카 빈국 수준인 나라가 되어버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980년대를 풍미했고, 운동권의 주류사상으로 자리잡은 이른바 ‘사람중심 철학’때문에 소중한 10년을 허송세월했기 때문이다. 주체사상으로 잘못알려진 이 사상은 황장엽이 주창하고 김영환(강철)이 보급한 것으로서, ‘모든 것은 사람의 문제다’라는 명제로 복잡한 세상을 단칼에 정리해버린 사상이다. 그 출발이야 황장엽이었을지 몰라도, 어쨌든 이것은 은연중에 한국의 진보진영의 머리속에서 자가발전해온 사상이다.

그 결과 한국의 진보진영은 권력기구가 어떤 성격과 기능을 가진 것인가를 치열하게 분석하고 무력화하거나 견제하는 방안을 마련하기 보다는 그 자리를 이른바 우리편이 많이 차지하도록 하는 쪽을 중요시하였다. 이른바 관점이 좋은 사람을 권력기구에 앉히는 것이 개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김대중-노무현 10년 정권을 거치면서 급기야 저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라고 암투를 벌이는 지경으로까지 타락하였다. 이는 결국 누가 앉아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허무주의와, 이명박 정부에서 그쪽 사람으로 수장을 교체하기가 무섭게 한국 사회가 빠르게 권위주의 정권 시절로 회귀하게 된 근본 원인이다.

국정원과 공영 방송의 작금의 상황은 그 극명한 사례다. 국정원과 공영방송은 원래 민주주의를 위해 복무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민주적 원리에 의해 작동하도록 개조하거나 파괴했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진보 10 동안 그런 제도적 개혁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만 사람만 바꾸었다. 오히려 거꾸로 바꾼 사람들이 기존의 억압기구를 이용해 진보를 강요하는 ‘진보 독재’를 구현하려 한 면도 있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때 국정원에 호남인맥이 대거 등용되었다. 남북관계를 전향적으로 풀어가는데 이들이 나름 활약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그렇게 활약하려 했다면, 국정원을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관으로 재구성한 다음에 했어야 했다. 국정원이 군사정권 시절해 행하던 짓거리를 꿈도 꾸지 못하게끔 완전히 해체 재구성 한 다음에 했어야 했다. 

당연히 이들은 저항할 것이다. 따라서 10년동안 그 억압기구들을 완전히 일소하고 새로 만든다는 각오를 가지고 치밀한 로드맵을 구성해서 차근차근 법부터 개정해 나갔어야 했다. 국정원의 구성과 업무가 법률로 철저하게 규정되어 있다면, 국정원의 내국인 수사 및 조사 기능이 완전히 폐지되었다면, 국정원이 철저하게 시민 통제하에 대외 정보만 담당하게 규정되었다면 오늘과 같은 일이 있었을까?  MBC나 KBS의 데스크가 민주적으로 운영되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면, 방송통신위원회의 권력이 적절히 시민통제를 받도록 분산되어 있었다면, 혹은 다양한 독립 언론이 기존 방송 못지않게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되었다면 과연 지금과 같은 언론 참극이 일어났을까? 

독재 50년 독재의 잔재를 각종 기구의 수장과 일꾼, 즉 사람을 바꾸어서 일소하려고 했으니, 겨우 10년의 흔적 정도야 이명박이 임명한 기관장들에게는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1987년 이후 20년간 일궈왔다고 생각했던 민주주의는 한 순간에 소멸되었다. 이렇게 소멸되고 나니 그 20년간 남은 것은 일부 진보 인사들이 꽤 높은 자리를 한 자리씩 했다는 것, 배가 불러서 야성을 상실했다는 것 뿐, 법과 제도는 여전히 심지어는 일제시대의 법을 답습한채 남아있었고, 그것이 진보진영을 향해 날카로운 반격의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토마스 제퍼슨과 제임스 애덤스는 미국 헌법을 기초할 때 인간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여 제도를 구성하였다.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그 자리에 앉더라도 권력의 독점과 전횡이 불가능하게끔 헌법을 못 박아 버린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좋은 정치 나쁜 정치를 따지기 전에 권력의 독점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무조건 나쁜 정치로 보는 것이 민주주의의 출발점이다. 북한 체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어떤 사람이냐는 것과 무관하다. 그렇지 않다면 영국인들은 명예혁명을 통해 구태여 왕권을 박탈할 필요가 없었다. 그 결과 세종대왕 같은 왕을 모실 기회는 사라졌지만, 연산군 같은 왕이 앉을 위험도 사라졌다.

이제 대한민국의 진보진영도 사람중심의 철학을 버리고, 제도중심의 정교한 접근을 취해야 한다. 인정에 기초하기 보다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충실한 공화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인간관계와 리더쉽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의해 움직이는 그런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입만 열면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는 정부’를 외쳤지만, 대통령 혼자 그 시스템을 만들기는 역부족이었고, 측근들은 여전히 ‘사람 중심 철학’에 매몰되어 있었다. 심지어 노무현이 스킨쉽이 부족하니, 인간미가 없니, 자기편을 안 챙기느니 하는 말만 나왔다. 이제 그런 실패를 두번 해서는 안된다. 진보가 집권하는가 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권하기 전에 그런 시스템의 구상이 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시스템을 차례로 구현할 입법 로드맵이 갖추어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