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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망동, 그 배후에는 누가 있을까? 아주 꼼꼼하신 분일지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국정원이 히트를 친다. 음지에서 정치공작 하는 것 조차 불법인 국정원이건만, 이제는 아주 드러 내어 놓고 정치적 견해를 선전하고 있다. 원래 정보기관의 역할을 정보를 수집해서 가감없이 보고하는 것이지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대화 녹취물을 가지고 녹취록을 작성했으면 그냥 그걸로 끝나는 것이지, 이걸 해석해서 영해를 내주는 것이다 아니다 따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FBI나 CIA가 어떤 정치적 사건에 대해 견해를 밝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해석하는 것을 본 적있는가? 그들은 배후에선 무슨 공작질을 할지 몰라도,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조사만 할 뿐이다. 게다가 그 조사가 이번에 드러난 민간인 감청 사건처럼 적절한 범위를 벗어날 경우 의회에서는 당장 권한을 축소하고 제한하는 법률개정안을 논의한다. 급기야 FBI국장이 의원들에게 권한 축소만은 말아달라고 읍소하는 상황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한때 FBI가 단지 조사하는 것을 넘어서 나름의 판단과 해석, 그리고 정치적 개입까지 버젓이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미국인들에게 큰 상처로 남은 매카시즘의 광풍이다. 이 매카시즘의 배후가 매카시가 아니라 당시 FBI국장인 에드거 후버임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심지어 후버는 트루만, 케네디 등등 대통령들의 사생활까지 캐어내어 약점으로 잡고 무려 48년간이나 국장으로 재임하면서 사실상 암흑의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이런 폐단을 겪은 미국은 후버 국장이 사망하자마자 FBI국장의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는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아직도 FBI, CIA, NSA 같은 정보 조사기관의 광범위한 월권행위는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이런 집단은 정치적으로 통제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국정원은 그 대담함에서 FBI조차 한참 넘어서고 있다. 전설적인 에드거 후버 국장조차 은근히 자료를 흘리거나 하면서 정치적인 공작을 했지, 직접 대놓고 나서서 특정 대통령, 정치인을 이적행위를 했다는 식으로 평가하지는 않았다. 후버조차 하지 못한 일을 남재준이 하고 있다. 이건 용감한 것인가 무모한 것인가 아니면 무도한 것인가?

혹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시킨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통상 이런 권력기관들은 대통령의 뜻이 아니라 자기들의 뜻에 의해 움직인다. 그 자체 하나의 이익집단처럼 되어 있고, 나름의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 대통령조차 이들을 활용하려면 명령이 아니라 은근한 공작을 해야 한다. 이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면서 자기 뜻대로 움직이게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걸 갓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이 할 수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으며, 무능하기 짝이 없는 그의 보좌진이 할 수 있다고도 믿어지지 않는다. 국정원 같은 조직을 뜻대로 움직이려면 인적 구성에서부터 꽤나 섬세하고 꼼꼼한 조치가 필요하다. 꼼꼼하신 분, 생각나는 분 없나?

자 이제부터 소설을 써 보자. 이건 다 소설이다. 소설, 허구, 픽션 

지난 몇년 동안 국정원은 박근혜조차 뒤를 캐고 다녔을 가능성이 크다. 2008년 이후 이명박은 국정원의 핵심 인사들을 자기 사람들로 물갈이 했다. 댓글 달고 다닌 직원들은 위에서 시켜서 그렇게 한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 골수 개독 분자들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리고 2011년 까지는 박근혜 조차 이명박의 잠재적인 적으로 분류되었다. 걸핏하면 이명박에게 태클 거는 듯한 모양을 연출해서 점수를 따고 있는 박근혜를 원세훈이 그냥 보고 있었을 턱이 없다. 2012년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것도 박근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이명박을 위해서였다.  

남재준의 잇따른 돌출행동도, 국정원 내외의 어떤 세력이 있고, 이들 중 누군가가 남재준을 부추겨서 돌출행동을 하게 만든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앞뒤 안가리고 남재준이 울컥질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남재준이 울컥질을 할때마다 박근혜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남재준이 울컥하며 대화록 전문을 공개하자 김무성이 부산에서 떠들어댄 말이 그 대화록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결국 김무성은 차기 주자는 커녕 감방갈지 말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몰락했다.  게다가 실제로 노무현의 NLL포기 발언이 없었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역풍만 불었다. 
이번 두번째 울컥질도 마찬가지다. 7월 15일에 여야가 면책특권을 이용하여 국회에서 국가기록원의 대화록 원본을 열람할 예정이다. 새누리당은 이 열람을 계기로 "해석 논쟁"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열람 해 봤더니, 포기했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사실상 NLL포기로 해설될 여지가 크다." 이런식으로 밀고 나갈 것이다. 

그런데 그걸 거의 5일전에 국정원에서 먼저 떠들어 버렸다. 그렇게 되면 새누리당은 15일에 열람하고 나서 "사실상 포기" 발언을 하면 아주 꼴이 웃기게 된다. 국정원의 지시를 받는 꼴, 국정원의 로드맵을 따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은 미리 상대의 전략을 받아들고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는 위치가 된다. 게다가 이것은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자체 개혁안을 마련하라!" 라고 지시를 했건만 "이젠 정치 개입을 공식적으로 하곘어!" 하고 대답한 꼴이 되는 것이다. 이걸 다르게 해석하면 "이게 누구한테 개혁하라 마라 지적질이야?" 이렇게 되는 것이다.

국정원이 요구하는것은 결국 이거다. "국정원을 논란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해 달라. 안 그러면 확!" 이상하게도 국정원에서 한번씩 입을 열때마다 입지가 커지는 사람은 박근혜나 새누리당이 아니라 문재인이다. 처음 원본 깠을때 민주당에서 조신하게 있던 문재인 의원이 중심으로 떠올랐다. 국정원 녹음기론을 폈을때 국정원에게 호통을 쳐셔 깨갱시킨 사람도 문재인이다. 이제 "사실상 NLL 포기" 논쟁에서도 문재인 의원이 맞상대가 될 수 밖에 없다. 

그 와중에 친박 핵심 인물들과 안철수, 김한길의 입지는 크게 좁아졌다. 이건 마치 국정원과 문재인의 싸움처럼 되고 있다. 국정원이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을까? 혹시 일부러 조장하는 것이 아닐까? 대통령들의 약점을 틀어쥐고 철권을 휘둘렀던 후버 국장처럼 "나는 지난 대선에 너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다."라는 묵언의 시위를 통해 박근혜와 그 정권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누가 이것을 지휘하고 있을까? 누군지 몰라도 아주 "꼼꼼하고 영리하신 분"일수 밖에 없다. 물론 가카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쓴 글은 그냥 재미삼아 써 본 순수 100% 음모론이다. 그러니 팩트를 제시하라느니 등의 논쟁은 사양한다. 이런 상상력까지 일어나게 만든 이 세태가 참으로 개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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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