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교육 강화 주장에 신중해야 한다. 이는 수구보수가 바라는 것일수도 있다

칼럼 작성을 위한 러프한 글입니다. 다소 난삽함을 양해해 주세요

한때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자는 주장은 이른바 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다. 국영수를 줄이고 역사를 더 가르쳐서 민족의식을 갖추게 하자, 서구 학문과 문화의 범람 속에서 민족 정체성을 지키게 하자 등등의 주장들이 그것이다. 특히 이들은 그 동안 우리 나라의 역사교육이 친일파들의 식민사관에 기초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싹 걷어내고 민족사관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한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진보진영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소위 진보진영에서 요구하면 박근혜 정부는 별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일 것이다. 심지어 대입 전형을 뜯어 고쳐서 대입 필수과목으로 지정할 가능성도 크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한국사 교육 강화방안에 대해 좌우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는것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 박정희를 생각해 보면 이는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박정희가 독립군 잡던 일본군 다가끼 마사오이니 민족주의 교육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1970년대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외세에 맞선 민족 영웅들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랐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을지문덕, 계백, 강감찬, 이순신, 권율 같은 인물들에 대한 신격화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시대가 유신시대다.

박정희가 일제 강점기를 미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오산이다. 유신시대 국사교육은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억압을 오히려 더 과장했다. 나라를 잃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무자비한 수탈과 학대에 고통받던 조선인의 이미지는 거의 전적으로 유신시대때 정부가 직접 편찬한 국사교과서에서 심어진 것이다. 여기에 맞선 항일투사들의 이야기도 무수히 변주되어 학생들의 머리속에 심어졌다. 남산에 안중근 의사 동상이 헌납되고, 예산의 윤봉길 의사 생가가 성역화 되고, 유관순 열사 생가와 교회 일대가 성역화된 것이 모두 1972-1977년의 일이다.

문제는 박정희가 이렇게 민족주의 교육을 강조한 것이 다 이유가 있었다는 점이다. 민족주의가 강조되는 상황은 결코 민주주의에 우호적이지 않다. 역사적으로 민족사를 강조한 정권은 한결같이 민족주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외래사상으로 몰아서 부정하고, 적대적인 나라를 상정하여 국민들에게 전시상황의 공포를 심어주며, 강력한 국가와 민족에 대한 헌신을 동원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열망을 봉쇄하였다. 20세기 초 독일과 일본이 민주주의로의 경로에서 이탈하여 전체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첫 걸음도 민족사, 민족혼에 대한 유별난 강조였다.

유신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유신시대 내내 학생들은 민족자주, 민족주체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았다. 이 민족주체성의 강조는 자유민주주의를 서구식 민주주의라고 부르게 만들면서 유신헌법을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을 정당화했다. 자유민주주의는 서유럽의 산물이니 우리 민족에게 맞지 않으며, 토착적 민주주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변했던 것이다.

휴전선 이북의 북한 동포들이 아직 광복을 맞이하지 못하고, 소련과 그 앞잡이인 김일성 부자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들을 해방시킬 때 까지 우리는 긴장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식의 논리도 쉽게 받아들였다. 일본의 자리에 소련이 들어가고 친일파 앞잡이의 자리에 북한 공산당이 들어간 것이다. 북한정권은 단지 공산당이기 때문이 아니라 줏대없이 소련식 공산주의를 따라하는 앞잡이이기 때문에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한 서술은 소련과 그 앞잡이들의 만행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를 통해 나라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셈이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국민동원, 총력전의 이데올로기가 성립되었다. 국민동원, 총력전의 이데올로기 앞에서 자유니 인권이니 하는 것은 참으로 한가한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다. ‘나라 잃은 설움’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묵살되었다. 행주대첩이 조선군의 다양한 화약무기로 일본군을 격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군인 뿐 아니라 아녀자들까지 가담하여 투석전으로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식으로 왜곡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니 문제는 한국사 교육의 위상이 아니라 그 목표와 내용이다. 사실 한국사 교육은 언제나 강조되어 왔으며 양적으로나 또 그 위상으로나 부족한적이 없었다. 오히려 과잉이라고 해야 할 상황이 더 많았다. 강화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지금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 사실 우리에게 부족했던 교육은 한국사교육이 아니었다. 가람배치 양식이 어쩌구, 신라 양식이 어쩌구, 고려 양식이 어쩌구, 무슨 단체, 무슨 당파가 어쩌구 하는 내용이 지금보다 더 많아지고 시험에도 더 많이 반영된다는 것을 반길 학생은 거의 없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혹은 살아가야 할 민주주의와 연결되는 지점을 찾지 못하는 한 한국사 교육은 현실과 무관한 내용을 억지로 외우는 과목 아니면 전체주의의 도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교육과정 전체의 목표는 민주시민성의 함양이지, 민족의식, 국가의식의 고취가 아니다. 한국사라고 특권을 가질수는 없다. 한국사는 먼저 군국주의, 유신시대의 흔적부터 완전히 털어내고 민주시민성 교육이라는 새로운 목표아래 완전히 재진술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한국 근현대사’의 내용이 ‘한국 민주주의사’를 중심으로 재진술되는 것은 그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조건하에서 한국사교육의 강화나 필수교과화가 논의되어야 한다.

그 동안 한국사 교육은 어떤 타자와 맞서 싸운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된 유신시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이민족의 침략에 항쟁한 임진왜란 이전까지의 역사,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피눈물 흘렸던 일제강점기의 역사, 해방 후 호시탐탐 한반도를 노리는 소련과 그 앞잡이의 적화야욕에 맞서싸운 반공항전의 역사, 혹은 100년전쟁에서 보여주듯 아직도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일제 앞잡이와의 싸움의 역사 등 진영을 불문하고 역사를 보는 관점은 대동소이했다. 이제는 이런 한국사교육의 틀을 벗어나야 한다. 이러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한국사교육 강화는 오히려 수구 보수진영의 구호가 될 것이며, 그 결과는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정서의 만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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