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적이 두려워서 지휘권도 못 가지겠다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게 무슨 국제 망신인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군이 2015년으로 연장되어 있는 전시작전권반환을 또 연기해 달라고 미국에 애걸했다. 그래서 전투기도 구입해 주고, 방위 분담금도 1조원이나 더 내면서 제발 우리 국군을 지휘해 달라고 읍소하고 있다. 이 무슨 남사스러운 꼴인가? 게다가 미국에서는 예정대로 2015년에 작전권을 가져 가라고 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는 것이다.

전시작전권이라고 하는 것은 전쟁이 일어날 경우 작전을 수립하는 권리 수준이 아니다. 이 권리는 준전시상황에서부터 발동한다. 즉 전쟁 개시 이전부터 발동하기 때문에 전쟁을 시작하고 끝내고 수행하는 모든 상황에서 국군의 통제권이 미국에 있다는 뜻이다. 

국방부쪽의 주장은 한결같이 비대칭무기인 핵과 특전병력을 제외하더라도 남북한의 군사력이 80:100으로 열세이기 때문에 모자라는 부분을 미군이 채워 주어야 하기에 작전권을 더 우월한 시스템을 갖춘 미국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북한이 무섭긴 무섭나 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1년 방위비는 무려 34조5천억원이다.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돈이냐 하면 북한의 1년 GDP보다 많다. 그러니 북한이 전국민을 다 굶어죽이고 돈이란 돈을 몽땅 국방비에만 쏟아 부어도 대한민국의 방위비를 따라가지 못한다. 물론 그것은 불가능하며, 실제 북한은 1년에 약 9조원 내외의 국방비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의 1/4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도 한두해 나타난 현상이 아니라 1994년 이래 20년 가까이 계속된 현상이다. 

이렇게 엄청난 국방비를 10년 넘게 써 가며 무기를 갖추었기 때문에 신형 무기들의 스펙도 상당하다. (이하 엔트로피님 블로그 참조: http://bos0191.blog.me). 이론적으로는 한 대의 전투기가 전차 600대를 파괴할 수도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북한이 2세대 전차 3000대를 운용할때(총 전차는 4000대이나 박물관에 갈것들은 제외), 대한민국은 3세대 전차를 무려 1600대나 운용하고 있다고 한다. 3세대 전차와 2세대 전차의 교전비는 1:10, 즉 1당 10의 성능이다. 심지어 대한민국의 3세대 전차 병력은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다.

서울 불바다 협박의 근거가 되는 자주포, 방사포만 해도 그렇다. 북한의 자주포가 5분에 2발을 발사하며, 수동 조작 시스템으로 인해 사실상 33분에 1발 발사할때, 대한민국의 자주포는 1분에 3발을 발사하며, 버스트모드에서는 15초에 8발까지 발사한다.  

걸프전과 리비아 내전에서 확인된 것 처럼 사실상 승패의 열쇠가 되는 공중병력의 경우는 그 격차가 더욱 크다. 북한의 전투기가 800여대로 대한민국의 400여대보다 두배나 되는 것 같지만 이 중 500대는 베트남 전쟁 혹은 그 이전시기에나 쓰던 기종이며, 현대전투기에 속하는 MIG 29는 40여기에 불과하다. 반면 대한민국은 Mig29 보다 상위 기종인 F16/ F15 만으로도 200대를 운용하고 있다. 비행기가 장착하게 될 무기의 성능까지 감안하면 최강 급인 F15는 빼고, F16만으로도 북한 공군 전체를 궤멸시킬수 있는 수준이다. 

이렇게 압도적인 무기를 갖추고도 스스로 북한의 80% 수준의 방위력이라고 자신을 낮추면서 미국에게 구걸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의 방위력이 북한의 80%에 불과하다는 그 말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전쟁은 무기만 좋다고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50% 우세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70%나 점수를 깎아먹은 요인은 바로 장군들의 비겁함일 것이다. 아무리 무기가 우수하고 병참이 튼튼하다고 해도 장군이 겁을 먹고 심지어 부패하기까지 했다면 어떻게 전투를 수행할 것인가? 월등한 무장을 갖추고도 적을 두려워하여 다른 나라에게 대신 지휘해 달라고 구걸하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그런 장군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방위력은 북한의 80%가 아니라 50%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장군들이 그런 것이 아니며, 정치적으로 기웃대는 그런 무리들이 아니라 제대로 정신과 능력을 갖춘 참된 장군들이 어딘가에 숨어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희망이라도 없다면 불안하고 부끄러워 이런 나라에  세금 내는 것이 몹시 아까울 것이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블로그 주인이 쓴 책들 전체 소개
(주의) 이 블로그에 뜨는 광고는 구글이 임의로 전송하는 것으로, 이 블로그의 필진과는 전혀 관계 없는 내용입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