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 권재원, 노안까지 오다니...

나는 군대에 가지 않았다. 신의 아들 뭐 그런건 아니고, 양안시력 불일치로 병역면제인(민방위가 아니라) 6급 판정을 받았다. 양안시 불일치로 신체검사 6급이라면 간단히 말해 한쪽 눈의 시력이 거의 없는 장애인, 즉 애꾸눈이란 뜻이다. 흔히 눈을 장식으로 달고 다니느냐 이런 말들을 하는데, 나의 왼쪽 눈에 관한한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것이 맞다. 안경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피곤을 덜어주는 정도지 선명하게 보는 것 까지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원근감이 많이 부족해서 계단이나 내리막에서는 엉금엉금 거려야 하고, 가끔 어이없는 헛발질로 넘어지거나 휘청거린다. 한때 활발하게 활동하는 산악인이기도 했는데, 등반과 종주에는 아주 강했지만 하강때는 상당히 버벅거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거의 평생을 오른쪽 눈만 혹사시키면서 살았다. 그래서 남들보다 훨씬 쉽게 눈이 피곤해지고, 3D영화를 봐도 훨씬 실감을 덜 느끼거나 아니면 자막 글씨가 두겹으로 포개져 보이던가 했다. 내가 곽노현 교육감과 뭔가 유대감을 느꼈던 부분중 하나도 이것이다. 애꾸눈 주제에 눈 두개 쓰는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읽고, 많이 보는 습관을 가졌다는 점.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왔다보다. 그 동안 외롭게 나의 창문 역할을 하던 오른쪽 눈(시력이 1.0으로 정상이다.)이 다른 정상적인 중년 남성의 눈과 마찬가지로 노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제는 책을 보면 글씨가 어른거려 도통 볼수가 없다. 그런데 불행중 다행으로 근시+원시=0 의 공식인지 왼쪽눈의 근시가 조금 회복되어 그나마 이걸로 책을 볼수 있다. 물론 정상적인 눈으로 책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지만. 참 우스운 협업이다. 먼거리는 오른쪽 눈으로 보고, 책은 왼쪽 눈으로 보고.

하지만 시력 자체가 미약한 왼쪽눈으로 책을 보는 일은 너무 신체적으로 힘들다. 이 고통을 참으면서 1년간 수십권의 책을 읽었다. 나 보고 책 좀 읽었다고 잘난척 한다, 거만하다 어쩌구 드립치는 사람들은 내가 책 읽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들 몇배의 책을 읽은 정신의 소유자로서 오히려 얼마나 그대들 앞에서 겸손했는지 헤아리기 바란다. 내가 언제 한번이라도 책 읽는 일이 고통스럽다고 티라도 낸 적 있는가?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견딜수 없다. 그리하여 마침내, 돋보기 안경을 맞추었다. 왼쪽은 평면이고, 오른쪽만 돋보기인 참 해괴한 안경이다. 그래도 이걸 쓰고 책을 보니 책이 나를 향해 돌격이라도 해 온 것 처럼 가깝게 보인다. 이제 어쩔수 없이 인정하고 받아들인 노안이다. 늙은 만큼 더 현명해 졌기를 희망해 본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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