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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원의 계엄법 개정안에 대해 과민반응하지 말자

7월 22일에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 등 10명이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김무성에게 형님-꼬봉 세레모니를 한 김재원이 주동인데다가 시국이 시국이며, 다루는 내용이 무시무시한 계엄과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에 "혹시, 이 자들이?" 하는 의혹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의혹이 떠오르더라도 법과 관계되는 일은 법조문을 따져가며 꼼꼼하게 확인해야지 지레 짐작은 곤란하다.

우선 계엄이란 것 부터 알아보자. 계엄이란 한 마디로 대통령이 전쟁이나 거기에 준하는 상황에서 특정 지역의 행정-사법을 계엄사령관(법에 의해 장성급 중에서 임명)에게 통할시키는 것이다. 박정희때는 북한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핑계하에 느닷없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유신독재를 실시한 바 있고, 대만에서도 장개석이 중국이 쳐들어 온다는 핑계하에(실제로 쳐들어 왔다가 금문도에서 수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퇴각한 바 있다) 무려 1988년까지 수십년간 계엄을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 헌법은 실제로 정상적인 행정-사법이 어려울 정도의 전쟁에 준하는 상황에서만 계엄을 선포하고, 선포한 뒤 국회가 해제를 요구하면 즉시 해제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한 국회에서 일단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면 해제를 요구할 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심스러운 것이 현실이다. 전시에 준하는 혼란상태 운운하는 조건도 주관적이라 박양이 두려움을 느끼면 그냥 선포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국민들이 가만 있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계엄이 선포되면 집회와 시위가 제한되며, 이 제한을 경찰이 아니라 군인이 담당하기 때문에 촛불집회 등도 거의 어려워 질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김재원 등의 개정안이 계엄의 요건을 엄격하게 해서 오히려 대통령의 계엄선포 남용을 막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제2조 ② 제1항에 따른 계엄의 기간은 6개월 이내로 정하여 선포해야 한다. 다만, 그 기간의 연장이 필요한 경우에는 계엄선포 규정을 준용하여 이를 연장할 수 있다" 이 규정을 신설하였다. 

그러고 보면 기존 계엄법에는 계엄의 기간이 적시되어 있지 않고, 국회가 요구할때 해제한다라고만 되어 있다. 그러니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고, 새누리당이 해제를 요구하지 않으면 무제한 계엄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계엄 상태에서는 계엄사령관이 행정-사법을 지휘하기 때문에 서울에 계엄을 선포하면 박원순 시장은 완전 무력화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김재원의 개정안에는 "6개월 이내"로 기간이 명시되어 있다. 물론 "이를 연장할 수 있다."라는 다음 문장이 거슬린다. 이는 대통령이 6개월 단위로 계엄을 연장할수 있는 빌미를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 다수당 소속 대통령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계엄을 유지할수 있던 기존법률보다 조금이나마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또 "제8조② 계엄사령관이 계엄지역의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을 지휘·감독할 때"를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의 장을 통하여 각 기관을 지휘 감독할 때" 로 바꾸었다. 이것도 큰 변화인데, 기존 계엄법에서는 일단 계엄이 떨어지면 계엄사령관이 시장, 도지사 혹은 법원장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공무원과 법관들을 지휘 감독할 수 있었는데, 김재원 안에서는 시장, 도지사, 법원장을 통하도록 규정하였다. 물론 사령관이 최고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적어도 시장, 도지사 등이 사령관과 협의할 여지는 남겨 둔 것이다.

다음 개정 내용도 흥미롭다. "제9조(계엄사령관의 특별조치권) ① 비상계엄지역에서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체포·구금(拘禁)·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에서 "거주이전, 또는 단체행동에 대하여"를 삭제하였다. 기존 계엄법에서는 계엄이 선포되면 군인들이 집회시위는 물론 거주이전까지 제한할 수 있었고(이사도 못가게 할 수 있음),  "또는 단체행동"이 들어 있어서 사실상 2인 이상이 모이면 무조건 잡아들일수 있었으나(동창회도 잡아갈 수 있음. 전두환 시절에는 실제로 그랬음), 김재원 안에서는 "거주이전"의 자유를 유지하였고, "단체행동"의 자유는 유지하여 과도한 억압 요소를 배제하였다.

또 계엄이 선포되면 몇몇 규정된 혐의에 대해서는 민간인도 일반법원이 아니라 군사재판을 받게 되어 있는데, 심지어 계엄이 끝나도 대통령이 군사법원의 재판권을 1개월간 연장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김재원의 개정안에서는 이 부분을 삭제하여 계엄이 해제되면 즉시 모든 재판권이 일반법원으로 넘어가게 바뀌었다.

이런 점들로 미루어 볼때, 김재원의 개정안은 기존의 계엄법을 상당히 완화시켰고, 인권의 과도한 제한여지를 어느 정도는 제거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완화시켰다고 해도 계엄은 계엄이며, 하필 이 시국에 계엄법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사람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는 김재원의 계엄법 개정안이 계엄을 강화하고 유신을 예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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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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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