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판 4대강 디지털 교과서.. 문제는 종이냐 디지털이냐가 아니다.


당초 2014학년도부터 사용하기로 했던 디지털 교과서가 초중학교 중 450교를 선정하여 사회/과학 두 교과에 우선 적용하고, 전면화 여부는 그 성과에 따라 2015년 이후에 결정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디지털 교과서란 기존의 종이책으로 된 교과서를 태블릿 PC에 장착하고, 인터넷 등과 연동하여 학습자료 검색, 형성평가 등도 가능하게 한 일종의 프로그램이다. 이와 가장 유사한 형태로는 종이책에서 태블릿 용 앱북으로 전환된 각종 여행 가이드북을 들 수 있다.

이렇게 디지털 교과서 전면화가 늦어지자 기본 예산만 2조 2천억원이 투입된 정책이 자칫 좌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이 정책이 모든 학생에게 태블릿을 보급하는 등 수조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교육판 4대강 사업으로 부르면서 시범 사업이 아니라 아예 전면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경향신문 사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152149325&code=990101).

반면 디지털 교과서의 장점을 들고, 또 스마트 교육이 시대의 화두라는 점을 들어 이 사업이 축소되거나 시행이 연기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무거운 교과서들을 전자화 하여 태블릿 하나에 모두 장착하면 학생들의 가방도 가벼워지고, 종이 소비도 줄일수 있으며, 교과서의 수시 개정도 용이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디지털 교과서와 관련한 이들 주장들은 모두 교육 전체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교육 사업은 함부로 진행되거나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교육 전체에 대한 심도있는 고민과 논의 끝에 해서는 안된다고 결론이 나면 몇조가 이미 투입되었더라도 중단해야 하며, 계속 해야 한다고 결론이 나면 앞으로 몇조가 더 투이되어야 할지라도 그리고 반대여론이 높더라도 계속되어야 한다. 문제는 교육적 정당화지 여론이나 예산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디지털 교과서의 실용적인 효용 혹은 종이책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이 시대에 어떤 새로운 교육이 필요하고, 어떤 새로운 학습과정이 필요하며, 여기에 어떤 새로운 도구가 필요한가를 면밀하게 검토한 뒤, 디지털 교과서가 과연 필요한가, 그리고 어떤 형태라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즉, 교육목표와 교육과정 전체의 관점에서 디지털 교과서를 논의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공교육 개혁에 대한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그 동안 압축성장에 기여해 온 20세기 교육패러다임을 극복해야 한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논의 참가자가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고 동의하고 있다. 20세기 교육패러다임은 주어진 시간에 가능하면 많은 지식과 정부를 전수, 암기시키고, 이를 답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시험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시험문제의 답을 알아 낸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되는 것이다. 지식을 획득하고 답을 찾는 과정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오히려 답을 구하는 과정이 짧으면 짧을수록 그것은 효율적인 것이며 더욱 좋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디지털 교과서 사업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동안 검인정 교과서가 많은 비판을 받았던 까닭은 그것이 종이로 되었다거나 무거워서가 아니라 학습의 과정을 지나치게 세밀하게 통제하고, 이미 정해진 답을 기계적으로 강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과서가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의 창의성과 문제의식을 억압하고 말살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교과서의 이런 중앙집중적인 권위를 분산시키고, 학생들이 다양한 배움의 원천 속에서 다양한 앎의 경로를 찾아가도록 하자는 것이 바로 핀란드 등에서 시도하고 있는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교과서 대신 각종 통신기기를 이용하여 곳곳에 산재된 배움의 원천에 접속하고 같은 배움에 참여하는 학생들끼리도 긴밀하게 연결하여 광범위한 학습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바로 스마트 교육이다. 스마트 교육이란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는 교육이 아니라 과거에는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던 학생들이 스마트하게 교육을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위치에 선다는 의미다.

그런데 스마트 교육의 이름을 달고 그 동안 추진되어 온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종이 교과서의 내용을 전자화 하여 스마트 기기에 장착하고, 학습자료를 정리한 중앙집중식 서버에 저장하여 접속하도록 하고, 평가 문항을 풀고, 정답도 확인하고 점수도 매기는 등 학습의 전 과정을 포괄하고 있다. 이는 20세기의 낡은 교육 패러다임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으며, 스마트 교육과는 전혀 거리가 먼 퇴행적인 방향이다.

디지털 교과서는 답을 구하는 과정을 최소화 시키거나 사실상 제거해 버렸다는 점에서 이런 왜곡된 공부관의 극치다. 디지털 교과서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답을 그것도 시대 변화에 따라 업데이트 해 가면서 학생들에게 주입할 수 있는 최적의 도구다. 하지만 클릭만 하면 답이 즉각 나오는 디지털 교과서, 지식을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과정을 모조리 컴퓨터에게 맡겨버리고 빨리빨리 답만 찾아가는 디지털 교과서가 향상시켰다는 학습효과가 학생의 정신적, 신체적 위해까지 감수하면서 얻을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부란 어떤 문제에 대한 답을 많이 아는 것이 아니다. 공부는 문제를 발견하는 것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그 문제 해결력은 모니터를 주시하는 고독한 학습에서 얻어지지 않으며, 동료, 교사와의 협력, 토의, 상호비판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다. 이 과정 속에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 갈등을 조정하는 것 까지가 문제 해결력이며 공부다. 모니터만 주시하고 가끔가다 메신저로나 생각을 주고받는 교실에서는 이런 경험을 기대할 수 없으며, 어떤 학부모도 이런 교실에 자녀를 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러다이트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디지털 교과서에 대해 종이 교과서에 대한 고정관념에 입각해서 저항하는 것은 퇴행적이다. 그러나 정보통신 기술이 모든 학습과 공부를 획일적으로 포괄하고 퇴행적 교육을 오히려 강화한다면 여기에 대해서는 반대해야 한다. 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반발 때문에 표류하는 것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고도 그것이 새로운 교육관에 입각해 있지 않기 때문에 표류하는 것이다. 마틴 셀리그만은 고대 그리스인이 우리보다 더 뛰어난 지식과 지혜를 가졌다고 단언했다. 정보기술의 홍수 속에 사는 현대인이 기껏 석판이나 도자기에 글자를 새긴 고대인보다 더 지혜롭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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