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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혁신, 멀지 않다. 교무실만 폐지해도 이미 절반은 혁신학교다.

학교를 바꾼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반대로 학교를 바꾼다는 것은 거창한 것에서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학교를 바꾸는 열쇠는 뜻밖에 가까이에 있는 평범한 것들이다. 학교를 바꾸려면 그 동안 학교에서 너무도 익숙해져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을 달리보고 낯설게 보고문제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그 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던 학교 공간인 교무실, 엄밀히 말하면 혁신의 사각지대인 중학교 교무실이다.
초등학교의 경우는 교사들이 주로 교실에서 생활하고, 고등학교는 여러 사무실에 분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유독 중학교만큼은 수십년 전 부터 지금까지 내려온 교무실 풍경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 심지어 혁신학교나 진보성향의 공모교장이 있는 학교조차 교무실이라는 공간을 바꾸려는 시도나 문제의식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대도시 중학교 대부분의 교무실은 소속 교사들의 절반이 넘는 수십명의 교사들을 교감을 가운데 두고 교사들이 교육이 아니라 행정업무에 따라 편성된 부서의 말단 직원처럼 배치되어 있는 수십년전 모습 그대로다. 교사가 교실에서 제 아무리 세상을 바꾸는 열변을 토하는 고귀한 지식인이라도 일단 교무실에 돌아오면 시덥지 않은 행정업무의 한 조각을 담당하는 말단 공무원으로 전락하는 곳이 교무실이다.

게다가 이 교무실이란 공간은 수십명이 몰려 있고수십개의 사무기구들이 배치되어 있다보니 잠시도 조용한 순간이 없다. 여기에서는 수업을 위한 연구도 휴식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좌석배치도 전문직이라는사에게는 모욕적이다. 교감은 모든 교사들을 둘러볼수 있는데교사들은 자기 업무용 컴퓨터만 볼수 있다이 보다 감시에 더 좋은 구조는 없다이렇게 감시받는 공간에서는 생들의 민감한 사연이나 신상문제를 다루어야 하는 생활지도나 상담이 불가능하다. 중학교 담임교사는 학생들과 상담할 공간이 절대적으로족하다. 교실에서는 다른 학생들이 지켜보고교무실에서는 교감과 부장들이 등뒤에서 지켜본다궁여지책으로 조종례시간에 복도에 내담자만 데리고 나와서 상담을 하거나학교밖 커피숍 등에서 자기돈을 써가며 상담을 해야한다.
교무실의 폐단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교무실은 학생과 교사의 관계를 훼손한다. 이상적인 학교란 학생들이 교사를 리더로 하는 배움의 공동체를 이루는 학교지만, 교사가 교실에서 근무하는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에서는 이런 관계 형성이 매우 어렵다. 교사들이 학생과 함께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끼리 밀집하여 모여있는 교무실에서 시간을 보내기 때문이다. 중학교 교사들은 수업시간에만 교실에 들렀다가 다시 교무실로 돌아온다. 공동체는 학생들끼리 형성되며, 교사는 수업시간에만 시간표 따라타났다가 다시 교무실로 돌아가는 존재다. 그래서 중학교 교사들의 일상적인 인간관계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교무실은 수업을 위한 연구도휴식도학생지도도 상담도 할수 없는 공간이다그런데 이율배반적으로 교무실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에서는 가르치는 업무를  처리하는 방이다평가학생기록의 작성학생 상담과 생활지도수업 준비를 위한 연구 등의 일을 하는 방이란 뜻이다그런데 실제로 교무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불가능하거나아니면 상당한 인내심을 발휘해야 겨우 할수 있다그래도 교사들은 수업연구를 해야하고 학생 상담과 지도를 해야하기에 교무실에서 억지로 이 일들을 한다그러니 교무실은 가르치는 업무를 위한 방이 아니라 가르치는 업무를 해야만 하는 방인 것이다. 실제로 교무실이라는 공간은 교육을 준비하는 전문적이고 창의적인 일 보다는 집중력이나 심사숙고없이 처리해도 되는 각종 행정 잡무그리고 교감이나 부장에 의한 교사 동태 파악이다그러니 교무실이란 이름은 당치도 않으며, 잡무실 혹은 감시실이라 불러야 마땅한 그런 공간인 셈이다.
게다가 교무실에 해당되는 교무(가르칠 교)  라는 용어 자체도 법에 없는 말이다혹자는 학교의 업무가 교무/행정으로 2원화 되어 있으며 교무실 책임자 교감과 행정실장이 독립된 일을 하는 것이라 주장한다그러나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교무(학교 교)란 학교 업무 전체를 말하는 것이며 그 아래 교육과 행정이 있다학교의 업무를 교무/행정이라고 부르는 것과 교육/행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천지차이다전자의 경우 일반행정 업무가 아닌것은 모두 교무가 되며후자일 경우 교육이 잘 이루어지도록 각종 지원을 하는 것이 행정이 되기 때문이다결국 법에도 없는 교무실이란 용어가 관행적으로 사용되면서 행정이 교육을 휘두르는 학교 구조가 고착화 된 셈이다.
이렇게 교육에 방해가 되고 법적 근거도 없는 교무실은 당연히 폐지되거나 대폭 그 기능이 변경되어야 교감과 일부 보직교사와 교무지원사가 교육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교무실의 폐지야 말로 학교개혁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개혁은 새로운 무엇을 추가하는 것 보다 먼저 학교가 교육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잘 발휘하도록 하고 그 저해요소를 혁파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학교의 모든 체계가 교육즉 수업과 생활지도가 가장 잘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학교의 여러 체계가 작동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가르치는 스승이라는 뜻의 교사 역시 어른이 아니라 학생과 주로 생활해야 한다. 이건 매우 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의 업무 공간 역시 교감과 행정업무를 보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하는 교실에 설치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교사들간의 교육적 협의를 위한 공간인 학년교사실교과교사실을 따로 두는 것이 사리에 맞다모든 교사를 한 공간에 몰아 넣고교육이 아니라 행정잡무 위주의 부서에 따라 위계적으로 배치해 놓은 교무실이라는 공간은 교사의 주요 업무가 각종 행정잡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단적으로 생각해 보자수십명씩 몰아넣은 1층에 있는 교무실에서 행정잡무를 강요받고 있는 담임교사에게4층 귀퉁이에 있는 자기반 교실을 챙기라고 요구한다면 이게 말이 되는가? 교육개혁, 다른 것 필요없다. 교사들을 교실로 보내자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책무를 묻자교사들을 연구실로 보내자그리고 전문성에 대한 책무를 묻자교사들에게 행정잡무에 대한 책무를 묻지 않을 것이라면 교무실은 폐지하고 교과협의실과 학년협의실로 대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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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