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대통령 지시사항만 반영하고, 교육정상화와 개혁은 반영한 듯 보이고 만 대입제도 개선안


‘학생․학부모 부담 완화와 학교교육 정상화를 위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이 발표되었다. 대부분의 언론사는 이번 시안의 핵심 골자를 수시전형은 학생부와 논술 및 실기, 정시 전형은 학생부와 수능으로 입시를 단순화하고, 국영수에 적용하던 A/B유형을 폐지하고, 한국사를 필수교과로 추가하고, 문과 이과 구별을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 등으로 보도하였다. (관련기사: http://m.media.daum.net/m/media/society/newsview/20130828033505801).

특히 주요 일간지는 문이과 통합문제를 주요 논제로 중요하게 다루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08272357095&code=940401). 

발표 당일만 하더라도 문이과 통합과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오가다가 문이과 구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과, 이과 학생들이 다른 계열 선택과목도 하나를 선택하는 교차선택형쪽으로 결정되지 않겠느냐 하는 예측이 주를 이루었다. 이 교차선택형만 하더라도 수학의 출제범위가 축소되고, 그 대신 과탐이나 사탐 과목을 하나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시에서 수학의 비중이 지나치게 큰 문제를 어느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 이는 그 동안 공교육을 왜곡시키고 사교육이 번창하게 된 근본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라는 말처럼 교육부의 이 시안은 자세히 살펴보면 살펴 볼수록 용두사미임이 밝혀지고 있다. 수시모집을 학생부, 논술, 실기로 단순화 했다면 이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얼른 보면 인문, 자연계는 논술로 승부보고, 예체능계는 실기로 승부를 보는 입시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본문뿐이다. 보도자료 구석에는 작은 글씨로 “실기 위주 전형에는 ‘특기자 전형’ 포함”이라고 주석이 붙어있다.

그런데, 특기자 젼형은 그 동안 전형방법이 모두 몇 개나 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입시를 복잡하게 만든 주범이다. 그런데 이 특기자 전형이 폐지된 것이 아니라 실기전형의 이름 아래 슬그머니 숨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변형된 본고사로 악용되어 온 면접과 적성검사에 대한 대책은 초라하기까지 하다. 그 동안 일부 대학은 면접때 구술시험을 치르는 등 사실상 본고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지탄을 받아왔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대책이 “문제풀이식의 구술형 면접과 적성고사는 자율적으로 지양”이다. 우리나라 대입 역사상 학생들을 줄세울수 있는 방법을 대학이 자율적으로 지양한 사례가 없다는 점에서 이것은 사실상 포기 선언이다. 결국 어차피 수시 합격자들이 특별히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았던 수능 최저기준을 폐지 외에 정시모집에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는 셈이다.

교육 전문가와 언론사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문이과 통합방안도 교육부가 앞장서서 내용 없는 것으로 바꾸고 있다. 당초 보도자료에는 세가지 시안이 나와있는데, 1안은 A/B형 출제를 폐지하는 것과 한국사가 추가되는 것 외에는 현행 방식과 동일하다. 2안은 문이과 학생들이 사탐, 과탐 과목을 계열에 따라 2개, 1개씩 교차 선택하는 것이며, 3안은 문이과 구별 없이 모든 수험생이 국, 영, 수, 사, 과, 한국사 여섯 과목을 같은 문제로 응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세 시안을 놓고 여론을 수렴하여 10월 말에 최종안을 확정짓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1안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고 말았다. 그러면서 문이과 통합을 공론화 한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다(관련 기사: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82713495175788). 결국 문이과 통합, 수능에서 영어/수학 비중 축소와 탐구과목의 확대 등 교육계의 오랜 숙원은 물건너 갔다. 장관이 이렇게 1번안을 우선 검토한다고 밝힌 이상, 문이과 통합이라는 50년만의 변화에 부담을 느끼는 관료들이 2번이나 3번안에 힘을 실어줄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번에 발표된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에서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것이라고는 하나 밖에 남지 않는데, 그건 바로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한 것이다. 오히려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하기 위해 이 거창하지만 결국 바뀐 거 없는 대입전형 간소화 및 대입제도 발전방안 시안을 발표한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마저 가능한 상황이다. 실제로 교육부 관계자들은 한국사를 별도의 과목으로 지정함으로써 한국사 필수교과지정과 여타 사회교과 기득권 유지라는 두 마리 새를 다 잡았다는 안도감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교육부는 대통령 지시사항을 교육적 고려, 100년지 대계보다 우선시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것은 말로 통치권자의 말 한마디에 교육이 우왕좌왕하는 북한 같은 나라에서나 볼수 있는 구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교육부는 한국사 필수교과화가 이번 시안의 주요 목적으로 보이지 않기에 충분한 개혁을 선보여야 한다.

문이과 완전 통합이 어려우면 문이과 모두 과탐이나 사탐과목을 응시하도록 해야 하며, 이를 통해 늘어날 학습 부담은 국영수 교과의 간소화 평이화를 통해 감축해야 한다. 처음부터 사실상 달라질게 없는 1번안을 최우선 고려중이다 같은 말을 더 이상 흘리지 말아야 한다. 또한 온갖 편법의 온상이 되고 있는 특기전형을 실기전형에 감추어 두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폐지해야 하며, 본고사형 구술과 논술을 대학 자율로 지양하도록 맡길 것이 아니라 완전히 금지시켜야 한다. 이 정도쯤 되면 한국사 수능 필수교과화 정도는 대통령 지시사항도 일부 반영한 정도로 보일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교육부로 돌아오고 나서 처음 발표된 큰 정책이다.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부디 이것이 100년지 대계를 생각한 결과이지, 대통령이나 특정 정당의 정치적 의도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교육부 스스로 보여주기 바란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블로그 주인이 쓴 책들 전체 소개
(주의) 이 블로그에 뜨는 광고는 구글이 임의로 전송하는 것으로, 이 블로그의 필진과는 전혀 관계 없는 내용입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