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013의 게시물 표시

교육에 침투한 극우 세력의 이념갈등 조장을 중단하라

한반도를 절반으로 갈라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남한마저 조각조각 갈라놓고 있는 이념 갈등과 색깔론이라는 산불이 마침내 교육계까지 옮겨 붙었다. 흔히 진보교육감들이 교육을 이념투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고들 비판하는데, 정작 교육계를 이념투쟁의 장으로 만들고 있는 사람들은 바로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 자칭 보수주의자들이다. 진보 교육감은 교총을 몰아내자고 하지 않으나 보수주의자들은 전교조를 해충처럼 박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교육감은 특정한 교과서를 고집하지 않으나, 보수주의자들은 특정 교과서 이외에는 모두 좌파 교과서라고 주장한다.

이들의 이런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좌파들이 가장 정성껏 침투한 곳이 학계와 교육계이며, 이들이 심어 놓은 대못 때문에 좌파가 근절되지 않으므로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교육계의 좌파를 근절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작 좌파와 구별되는 자기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그리고 자기들의 주장이 왜 옳은지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내용이야 뭐가 되었든지 자기들 주장에 반대하면 모두 좌파이며 몰아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마치 “나는 너를 좌파이기 때문에 미워하는데, 네가 좌파인 이유는 내가 미워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맞서는 진보진영의 대응도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 진보진영이 이들의 주장에 맞설 때 두드러지는 태도 중 하나는 적대감과 경멸이다. 이런 비이성적 광기에 또 다른 적대감으로 맞서는 것은 올바르지도 않으며 진보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우리나라를 점점 분열과 갈등으로 몰고 가고 있는, 그리고 이를 교육계에까지 끌고 들어가고 있는 이념갈등은 비이성적인 방향을 향해 치닫고 있다. 우리나라의 진보와 보수는 서로 상대방을 실제 상대의 모습이 아니라 자기들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으로 규정해 버린다. 보수진영은 진보진영을 ‘종북’과 ‘공산주의”를 중심으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진보진영은 보수진영을 ‘친일’과 ‘독재”를 중심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규정에 따라 보수진영은 좌…

오스트랄로 선생님을 떠나 보내는 학생들

오스트랄로 선생님은 최근 우편향 역사교과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그 교과서의 지은이 중 한 사람이다. 본인의 명예를 위해 그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이 별명은 그가 초임교사 시절 역사교과서 제일 처음에 나오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화석과 닮았다고 해서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본인도 그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기에, 그 청년 역사 교사는 학생들에게 오스트랄로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독차지 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역사는 "태정태세문단세"가 상징하듯 그저 연대표나 왕 이름, 사건이름 외우는 과목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랄로 선생님의 역사시간은 달랐다. 그 시간은 이야기가 살아있고, 캐릭터가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탁월한 연기력을 자랑했던 그는 별명 그대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흉내는 물론, 단신으로 독재에 맞서려고 하던 브루투스도 실감나게 연기했으며, 제국주의가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드는 대목에서는 울분을 터뜨렸고, 동학농민운동, 5.4 운동, 그리고 신해혁명처럼 억압받던 민초들이 들고 일어서는 대목에서는 마치 자신이 혁명가라도 된 양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렇게 격정적인 모습 이면에는 고요한 모습도 있었는데, 틈만 나면 정간보 악보를 보며 대금이나 소금을 연주하며 고요한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정간보를 처음 접해 본 학생들은 오스트랄로가 한문책을 보면서 피리를 연주한다며 신기해 했다.
오스트랄로 선생님 수업시간에 가장 압권이었던 장면은 억눌리고 수탈당하던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 외세와 그 앞잡이들을 처단하는 장면이었는데, 실제로 팔과 다리를 휘두르며 한편의 액션영화를 연출하곤 했다. 학생들은 그의 수업을 들으면서 역사라는 것이 단지 창백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의의 가르침이며, 불의에 항거하는 용기의 보고임을 배웠다.
오스트랄로 선생님은 결코 학생들 앞에서만 용감했던 교사가 아니었다. 암울하고 숨막히던 5공화국 시절 그 시대의 숨통을 열어젖힌 용기있는 교사들의 이런 저런 소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통진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석기 구속에 대해 울부짖지 말고 냉정히 대처하라

어제 이석기 의원이 구속되었다. 여기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기록해 둔다. 

1)울부짖는 모습은 자제했어야 했다.

이석기 의원은 "이 도둑놈들아!"라고 외치면서 마치 6월항쟁때 닭장차 끌려가던 김영삼 처럼 온몸을 비틀며 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 지지자들과 통진당 역시 격정적이고 격앙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매우 좋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를 혁명가라고 생각하니, 혁명가의 언어로 점잖게 권고하겠다. "잡혀가는 것도 전술이다." 잡혀갈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가 이후 지지자들의 사기를 다지고, 또 여론이나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 지도자 정도가 되려면 적에게 잡혀갈때도 최대한 의연하고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우릴 적으로 삼는다!"라는 식으로 외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적이 아닌 세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부끄러움과 온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재판부에 대해 "너희도 한 통속이다!"하고 외치는 것은 아직 재판도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어리석고 감정적인 반응이다. 이런 격정적이고 격앙된 반응은 이들의 초조함만을 보여주며, 이들이 신뢰할만한 집단이 아니라 일종의 컬트집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을 높여줄 뿐이다. 

당사자가 내 블로그를 자주 보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럽지만, 곽노현 교육감이 수감될때 모습, 그리고 정봉주 의원의 모습을 참고로 올려 둔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정치적인 판결로 기록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형법상 공범인 강경선교수, 또 박영선, 김현미 의원 등이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실형이 선고되었다는 점은 이 두사람을 억울한 희생자로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정돈되고 의연한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지지자들은 흐느낄지언정 본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의 수감을 건수로 삼아 추악한 사진을 확보하려고 하던 조중동에게 어떤 빌미도 내어주지 않았다. 곽교육…

교육을 조롱하고 행정을 숭상하는 부장교사 보직을 정상화 하고, 담당계라는 분장을 폐지하라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상황이다. 어느 중학교에 학생들을 매우 사랑하고 또 학생들도 잘 따르고 존경하는 노교사가 한 분 있다. 경력이 33년이 넘은 그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헌신적으로 챙기며 젊은 교사 못지않게 열정적인 수업을 한다. 그런데 젊은 교사들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젊은 교사들끼리 모였을 때는 단골 안주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를 알아 보니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의 컴퓨터 실력은 OA는 커녕 독수리 타법 겨우 면한 수준이다.

이건 학교 밖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사는 사무원이 아니라 교육자 아닌가? 그렇다면 수업 잘 하고,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교사가 젊은 교사의 존경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컴퓨터에 어눌하기 때문에 빈축을 사다니? 그러나 교사라면, 특히 경험 많은 교사라면 이 상황의 원인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원인은 학교를 왜곡시키고 있는 부장교사 제도다.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관공서, 회사는 물론 시민단체에도 부장이니 실장이니 하는 간부가 있다. 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지 않을까? 부장교사가 뭐가 문제란 말인가? 물론 원론적으로는 옳다. 교육적 권위와 경험을 인정받는 고경력 교사가 부장교사 등의 호칭과 함께 일정한 권한을 가지는 체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부장교사 제도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장교사는 고경력 교사의 교육경험과 권위를 존중해서 설치한 간부직이 아니라 단지 행정일을 시키기 위해 설치한 보직에 불과하다. 원래 교사의 법정 업무는 당연히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저런 교무(校務)를 담당할 충분한 직원을 채용하는 대신 교사들 중 일부에게 교무를 분담시킬 근거를, 즉 일종의 뒷문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부장교사인 것이다. ( 초중등교육법 19조 3항). 그런데 독재 정권 통치하에 우리나라 학교에는 교육보다 행정을 우대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