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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랄로 선생님을 떠나 보내는 학생들

오스트랄로 선생님은 최근 우편향 역사교과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그 교과서의 지은이 중 한 사람이다. 본인의 명예를 위해 그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이 별명은 그가 초임교사 시절 역사교과서 제일 처음에 나오는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화석과 닮았다고 해서 학생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본인도 그 별명을 싫어하지 않았기에, 그 청년 역사 교사는 학생들에게 오스트랄로 선생님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독차지 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역사는 "태정태세문단세"가 상징하듯 그저 연대표나 왕 이름, 사건이름 외우는 과목이었다. 그러나 오스트랄로 선생님의 역사시간은 달랐다. 그 시간은 이야기가 살아있고, 캐릭터가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탁월한 연기력을 자랑했던 그는 별명 그대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 흉내는 물론, 단신으로 독재에 맞서려고 하던 브루투스도 실감나게 연기했으며, 제국주의가 아시아 여러 나라들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만드는 대목에서는 울분을 터뜨렸고, 동학농민운동, 5.4 운동, 그리고 신해혁명처럼 억압받던 민초들이 들고 일어서는 대목에서는 마치 자신이 혁명가라도 된 양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렇게 격정적인 모습 이면에는 고요한 모습도 있었는데, 틈만 나면 정간보 악보를 보며 대금이나 소금을 연주하며 고요한 상념에 빠져들곤 했다. 정간보를 처음 접해 본 학생들은 오스트랄로가 한문책을 보면서 피리를 연주한다며 신기해 했다.

오스트랄로 선생님 수업시간에 가장 압권이었던 장면은 억눌리고 수탈당하던 민초들이 들고 일어나 외세와 그 앞잡이들을 처단하는 장면이었는데, 실제로 팔과 다리를 휘두르며 한편의 액션영화를 연출하곤 했다. 학생들은 그의 수업을 들으면서 역사라는 것이 단지 창백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살아있는 정의의 가르침이며, 불의에 항거하는 용기의 보고임을 배웠다.

오스트랄로 선생님은 결코 학생들 앞에서만 용감했던 교사가 아니었다. 암울하고 숨막히던 5공화국 시절 그 시대의 숨통을 열어젖힌 용기있는 교사들의 이런 저런 소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들은 함께 모여서 우리나라의 모순의 근원을 탐구하고, 독재정권을 정당화 하는 왜곡된 교육을 바로잡을 전망을 고민하였다. 이런 학교 안팎에서 보여주었던 의로운 모습 덕분에 오스트랄로 선생님을 학생들의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학생들은 집에 가면 부모 형제 앞에서 역사시간에 배웠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자랑하느라  바빴다. 그 덕분에 좌경의식화 교사라면서 학교에 항의전화도 꽤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러나 적어도 1980년대 내내 그는 자신의 길을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역사 수업을 듣고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거나 진보적인 성향을 갖게 된 학생들도 부지기수였다. 

1989년 전교조가 설립되면서 1500명의 교사들이 대량으로 해직될 때 오스트랄로 선생님 덕분에 의식을 깨우쳤다고 생각하던 학생들은 전교조 해직교사 명단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거기에 오스트랄로 선생님의 이름은 없었다. 이때 학생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실망했다고 해야 할지 몰라서 몹시 당황했다. 그러나 그때 전교조 투쟁을 했던 교사들이 모두 해직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을 뿐이다.

그러던 격동의 1989년 가을에 오스트랄로 선생님의 제자 하나가 우연히 서울대학교에서 그를 발견했다. 그 학생은 너무 반가운 마음에 한 달음에 달려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학생 운동에 투신하여 민주화 운동, 민중 운동에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지를 마치 칭찬을 바라는 중학생 마냥 자랑했다. 그러면서 거짓 뿐인 세상에서 진실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의 역사 수업을 잊을 수 없다, 선생님 덕분에 의식을 깨우쳤다는 찬사도 빼놓지 않았다. 그런데 오스트랄로 선생님의 표정이 미묘했다. 마지못해 '그래.투쟁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라.' 라고 덕담을 던져주긴 했지만 뭔가 민망해 하고 멋적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날 이후 오스트랄로의 학생들은 선생님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 선생님이 있을 만한 단체, 있을 만한 장소마다 관심을 가지고 찾아 보았지만 선생님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학생들도 어른이 되고 생활인이 되면서 20년의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러던 중 학생들은 오스트랄로 선생님의 이름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학생들이 반가워 할 수 없는 곳에서 그 이름을 찾았다. 교학사 역사교과서에서 그 이름을 찾은 것이다. 

그 교과서가 어떤 교과서인가? 일제 강점기와 이승만, 유신 독재를 미화하고 항일투쟁과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는 우편향 교과서다.  아니 그 보다는 한 페이지 넘길때 마다 오류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틀린 교과서다. 그 어느 경우에도 오스트랄로 선생님이 이름을 올릴 교과서가 아니다. 제국주의의 침탈사를 가르치며 울분을 토하고, 민중들의 저항을 가르치며 감격했던 오스트랄로 선생님이다. 정확하고 꼼꼼한 역사지식, 한문으로 된 사료를 한글처럼 읽으며 연구했던 실력파가 오스트랄로 선생님이다. 

학생들은 동명이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교과서에 소개된 저자약력을 보니 틀림없는 오스트랄로 선생님이다. 학생들은 멘붕에 빠졌다. 오스트랄로 선생님의 역사 수업을 듣고 의식을 깨우쳤다 생각하고 그렇게 마흔이 넘도록 살아왔던 학생들이다. 그런데 그 선생님이 반민주, 반민중, 반민족, 반지식 교과서에 떡하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때 학생들에게 했던 말, 혹은 지금 이 함량 미달의 교과서로 퍼부어 대고 있는 말 둘 중 하나는 거짓이란 뜻이다.

 이 교과서에서 하고 있는 말이 거짓이라면 오스트랄로 선생님은 젊은 시절 간직했던 진실을 배반한 것이다. 젊은 시절 학생들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거짓이라면 오스트랄로 선생님은 학생들을 상대로 거짓 선동을 했던 것이다. 그 어느 경우라도 귀결은 하나다. 오스트랄로 선생님은 거짓말쟁이다. 학생들은 슬펐지만 그를 떠나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오스트랄로 선생님 왜 거기 계셔요?"라고 묻지 않기로 했다. 그 대신 교사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큰 형벌인, 제자들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지워지는 벌을 가하기로 했다. 그가 그 벌을 아직 아파할 줄 알기를 마지막으로 바라며.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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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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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