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조롱하고 행정을 숭상하는 부장교사 보직을 정상화 하고, 담당계라는 분장을 폐지하라

실제 있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가상 상황이다. 어느 중학교에 학생들을 매우 사랑하고 또 학생들도 잘 따르고 존경하는 노교사가 한 분 있다. 경력이 33년이 넘은 그는 학생들 한 명 한 명을 헌신적으로 챙기며 젊은 교사 못지않게 열정적인 수업을 한다. 그런데 젊은 교사들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 심지어 젊은 교사들끼리 모였을 때는 단골 안주로 전락하기까지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를 알아 보니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의 컴퓨터 실력은 OA는 커녕 독수리 타법 겨우 면한 수준이다.

이건 학교 밖에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교사는 사무원이 아니라 교육자 아닌가? 그렇다면 수업 잘 하고, 학생들의 존경을 받는 교사가 젊은 교사의 존경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컴퓨터에 어눌하기 때문에 빈축을 사다니? 그러나 교사라면, 특히 경험 많은 교사라면 이 상황의 원인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원인은 학교를 왜곡시키고 있는 부장교사 제도다.

일반인들에게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관공서, 회사는 물론 시민단체에도 부장이니 실장이니 하는 간부가 있다. 학교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지 않을까? 부장교사가 뭐가 문제란 말인가? 물론 원론적으로는 옳다. 교육적 권위와 경험을 인정받는 고경력 교사가 부장교사 등의 호칭과 함께 일정한 권한을 가지는 체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부장교사 제도는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부장교사는 고경력 교사의 교육경험과 권위를 존중해서 설치한 간부직이 아니라 단지 행정일을 시키기 위해 설치한 보직에 불과하다. 원래 교사의 법정 업무는 당연히 ‘교육’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저런 교무(校務)를 담당할 충분한 직원을 채용하는 대신 교사들 중 일부에게 교무를 분담시킬 근거를, 즉 일종의 뒷문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부장교사인 것이다. ( 초중등교육법 19조 3항). 그런데 독재 정권 통치하에 우리나라 학교에는 교육보다 행정을 우대하는 풍토가 만연했고, 그 결과 행정업무를 분담하는 부장교사가 교육을 전담하는 교사보다 더 상급자라는 그릇된 인식이 정착하였다. 게다가 우리나라 학교에는 오랜 세월 교육에 전념한 교사를 우대하고 예우하는 제도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부장교사 보직을 고경력 교사를 예우하는 자리로 사용하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즉 행정업무 분담 보직인 부장교사를 고경력 교사에 대한 예우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하나는 수업시수의 문제다. 행정 업무를 분담하려면 교육에 투입되는 시간, 즉 수업 시수를 줄여야 한다. 그런데 교육 당국은 이를 전혀 감안하지 않고 교사 정원을 책정한다. 따라서 부장교사가 행정업무를 담당하려면 다른 교사들에게 그 만큼의 수업 시수를 전가해야만 한다. 물론 독한 부장교사는 평교사보다 훨씬 적은 수업을 하겠다고 우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부장교사 역시 상당시간의 수업을 담당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생겨난 또 다른 악습이 이른바 ‘계원’이다. 부장교사가 수업 다 해 가면서 행정업무를 전적으로 분담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에 모든 교사들이 ‘보직’ 없이 행정업무를 분담하게 되었다. 교사들은 이렇게 분담한 행정업무의 이름을 따서 ‘~계원’으로 불리면서 해당 부장교사의 부하직원처럼 배치된다. 이게 수십 년 째 바뀌지 않고 내려온 우리나라 학교의 교사 조직이다. 여기에는 사회교사, 국어교사, 수학교사가 없다. 각종 업무 담당계원과 소관 부장이 있을 뿐이다. 교사는 교육이 아니라 행정업무에 따라 담당계원으로 조직 편성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큰 문제가 발생했다. 행정전산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주로 고경력자들인 부장교사들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늘어난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산화와 함께 학교의 각종 행정업무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늘어났다. 그 결과 컴퓨터에 능한 30대 교사들에게 각종 행정업무가 집중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이들 30대 교사들은 수업시수 경감, 학급담임 면제라는 부장교사의 혜택도 누리지 못한다. 수업 할 것 다 하고, 담임까지 맡으면서 행정 업무도 대폭 늘어난 셈이다. 부장교사들이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도 컴퓨터 장벽을 넘지 못하여 큰 도움이 되지 못하며, 때로는 안 도와주는 게 돕는 거라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럴 거라면 차라리 이들 30대 교사들을 부장교사로 보임하여 행정업무를 분담케 하는 것이 합리적이겠지만, 아직도 학교에서는 부장교사가 행정담당 보직이라는 인식보다는 상급자라는 인식이 남아있어서 젊은 교사들을 부장에 보임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그 결과 오랜 경륜과 교육적 성취를 통해 존경을 받아야 할 고경력 교사들조차 젊은 교사들 눈에는 컴퓨터 제대로 못 다루어자기들에게 업무 폭탄 전가하는 마땅치 않은 존재 취급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는 학교의 교육공동체간의 단절을 가져온다. 젊은 교사들과 고경력 교사들간의 소통과 교류가 거의 단절되어 있는 것이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이다. 교육이 아니라 행정업무 때문에 훌륭한 노교사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학교는 그 자체로 비교육적이다.

이런 비교육적인 일은 ‘교사의 업무는 교육’이라는 너무도 간명한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보직을 부여하면 행정업무를 분담할 수 있다’라는 작은 뒷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작은 뒷문이 점점 크게 열리면서 이제는 교육공동체 전체를 분열과 불신으로 몰고 가고 있는 것이다.

뒷문에서 비롯된 문제는 우선 원칙을 공고히 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교사는 교육에 전념해야 한다. 교육 이외의 업무는 교사가 아니라 행정직인 교장, 교감, 그리고 직원이 담당해야 하며 업무가 지나치게 많으면 이들을 증원하여 해결해야 한다. 물론 고경력 교사를 예우할 수 있는 부장교사 등의 직책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행정업무 분담을 위한 보직이 아니라 교육적 권위를 가지는 직책이라야 한다. 따라서 학년부장, 각 교과부장을 제외한 모든 부장교사를 폐지하고, 행정업무를 교사가 분담하는 소위 ‘담당계’, 특히 교사인지 행정주사인지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는 소위 ‘기획계’를 폐지하는 조치가 시급하다. 이는 결코 학교혁신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학교정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명색이 신뢰와 원칙을 강조하는 정부에서 학교가 교육의 장소이고, 교사는 교육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 이거 하나 지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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