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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석기 구속에 대해 울부짖지 말고 냉정히 대처하라

어제 이석기 의원이 구속되었다. 여기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을 기록해 둔다. 

1)울부짖는 모습은 자제했어야 했다.

이석기 의원은 "이 도둑놈들아!"라고 외치면서 마치 6월항쟁때 닭장차 끌려가던 김영삼 처럼 온몸을 비틀며 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 지지자들과 통진당 역시 격정적이고 격앙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매우 좋지 않다. 그들은 스스로를 혁명가라고 생각하니, 혁명가의 언어로 점잖게 권고하겠다. "잡혀가는 것도 전술이다." 잡혀갈때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가 이후 지지자들의 사기를 다지고, 또 여론이나 정치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 지도자 정도가 되려면 적에게 잡혀갈때도 최대한 의연하고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다.
그리고 "세상 모두가 우릴 적으로 삼는다!"라는 식으로 외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적이 아닌 세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부끄러움과 온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재판부에 대해 "너희도 한 통속이다!"하고 외치는 것은 아직 재판도 시작하지 않은 상황에서 매우 어리석고 감정적인 반응이다. 이런 격정적이고 격앙된 반응은 이들의 초조함만을 보여주며, 이들이 신뢰할만한 집단이 아니라 일종의 컬트집단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만을 높여줄 뿐이다. 

당사자가 내 블로그를 자주 보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소 부담스럽지만, 곽노현 교육감이 수감될때 모습, 그리고 정봉주 의원의 모습을 참고로 올려 둔다. 이 두 사건은 모두 정치적인 판결로 기록되고 있다. 두 사건 모두 형법상 공범인 강경선교수, 또 박영선, 김현미 의원 등이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실형이 선고되었다는 점은 이 두사람을 억울한 희생자로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정돈되고 의연한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지지자들은 흐느낄지언정 본인들은 흔들리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의 수감을 건수로 삼아 추악한 사진을 확보하려고 하던 조중동에게 어떤 빌미도 내어주지 않았다. 곽교육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미소를 머금고 마치 여행이라도 다녀오는듯한 모습으로 당당하게 걸어들어갔다. 재판부에 대해서도 "여론과 통념의 압력을 넘지 못했다" 정도로 평했지, 무슨 정권의 압력이니, 정치재판이니 이런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정봉주의원은 차분한 모습으로 흐느끼는 지지자들을 위로하는 여유까지 보여주었다. 만약 이들이  "정권의 주구, 재판부는 각성하라!"라고 외치면서 온몸을 비틀며 울부짖는 모습으로 수감되었다면, 저들이 원하는 사진이 무수히 양산되었을 것이다. 그들이라고 마음속에 억하심정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이미 그들의 망가짐이 진보진영의 망가짐이 되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음을 받아들이고, 그런 마음을 억누르고 한치의 헛점도 보여주지 않은 것이다. 

곽노현교육감 수감장면

정봉주의원 유죄확정 장면

이들은 자신들을 혁명의 리더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랬다. 그렇다면 혁명의 지도자 정도 되려면 어때야 했을까? 당사자도 지지자들도 자신들이 어떻게 보이고 비추이는지 생각하고 연출하기 바란다. 진정성은 날것 그대로라는 뜻이 아니다.

2) 구속영장에 과민반응 하며 여론전 하지 말고 재판에 조용히, 그러나 철저히 임하라

일단 구속을 곧 처벌로 보는 생각부터 버리자. 이 생각 때문에 자꾸 본질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다. 구속은 처벌이 아니라 수사와 기소의 방법이다. 영장심리 판사는 피의자의 죄의 유무를 가리지 않는다. 죄의 유무에 대해 나름 판단할수도 있으나 그것이 구속 여부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구속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두가지인데  이 두가지가 모두 해당이 되어야 구속영장이 발부된다.
1) 이 피의자에 대해 검찰이 죄의 유무를 따질만한 상황인가? 
2)수사가 끝날때 까지 이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는가? 이다. 피의자의 신병을 확보해야 할 이유는 이 피의자를 풀어두면 돌아다니면서 증거를 훼손하거나 인멸할 가능성이 있거나, 혹은 아예 도주해 버려 재판에 출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다.

1)의 기준에 해당되면 "범죄가 소명이 된다."라고 판결한다. 이건 유죄란 뜻이 아니라, 현재 밝혀진 사실과 정황으로 보아 이 피의자가 범행을 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2)의 기준에 해당되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 "도주의 우려가 있다."라고 판결한다.

그렇다면 이석기 사건의 경우는? 담당 판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안이 중대하고 범죄행위 소명된다"며 1)의 조건을 인정한다. 이건 이들이 모여서 한 이야기가 '농담'이라 할지라도 워낙 엄중한 사안이기 때문에 실제 이 농담을 실행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 좀 캐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지, 내란죄를 인정한 것이 아니다. 

만약 이들이 모여서 한 농담이 "기름값 비싸서 못살겠으니 주유소를 습격하자" 정도였으면 범죄행위가 소명된다고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농담이 "전쟁이 일어나면 북한을 어떻게 도울지 계획을 세워보자." 수준이라면 이게 진짜 하려고 한건지 농담인지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은 절대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1)의 기준이 충족되었으니, 이제 2)의 기준을 따져야 한다. 그런데 이석기는 이미 이 기준에서 의심받을 행위를 많이 한 상태다. 만약 의원실 압수수색 들어왔을때 의연하게 그 자리에 임해서 영장을 확인하고 영장에 적시된 것들만 압수수색하는지 차분하게 체크하고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이석기는 종적을 감추었고, 의원실 직원들은 압수수색 팀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문서 파쇄기는 미친듯이 돌아가고있었다. 자, 생각해 보자. 이게 김하영의 '셀프감금'과 무엇이 다른가? 문을 열어주지 않은 김하영은 열심히 댓글을 지우고 있었다. 문을 열어주지 않은 의원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건 합리적 의심의 대상이 충분히 된다. 게다가 통진당 대변인은 "압수수색을 했음에도 더 이상 증거도 없다!"라고 외치고 있다. 게다가 이상규, 김재연, 김미희가 저마다 다른 말을 하고, 이정희는 입을 열때마다 말이 바뀌고 급기야 "농담"이라고 까지 했다. 이런 사건에서 관련자들의 '증언'은 중요한 증거인데, 영향력 있는 의원이 마음대로 활동할 경우 관련자의 '증언'이 언제든 바뀔수 있다는 개연성을 스스로 보여준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라고 판결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애초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이 검찰의 오버일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서 일단 청구된 영장을 기각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유감스럽지만 영장 기각을 어렵게 만든 조건은 통진당이 스스로 만든 부분이 많다.

그러니 통진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제 겨우 구속영장 단계에서 벌써부터 격정을 터뜨리면 분노를 증폭시켜 싸움을 벌려 이 일을 수습할 생각을 하지 말라. 지금 시대는 그렇게 맞짱을 떠서 이기는 시대가 아니다. 치밀한 법리와 사실 외에는 답이 없다. 그들에게는 남조선의 법이 법으로 안보일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오히려 그렇게 여론을 불러 일으켜서 이길 생각이라면 그런 여론이 불러 일으켜지지도 않을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 이 재판을 "정치재판"으로 만들어서 "정치적 판결"을 내리라는 압력만 가중시킨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심지어 정의당까지 모두 체포동의안을 찬성했다. 이 재판이 법리와 사실이 아니라 여론전으로 흘러 정치적 판결을 할 압력이 가중된다면 판사들이 어느 편을 들게 될지는 벌써 답이 뻔히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통진당과 그 지지자들은 이제 이 사건을 법정으로 가져가서 법리와 사실로 싸우라. 가능하면 드러나지 않고, 조용하게. 공연히 이 사건을 들고 거리로 나와 촛불에 호소하여 여론을 일으키려 한다면, 여론도 일어나지 않고 촛불에 확실하게 물을 끼얹는 효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부디 자중하기 바란다.

일베, 국정원 못지 않은 통진당, 특히 경기동부의 엄청난 악플이 예상되지만 내가 언제 그런거 두려워한 사람인가? 그냥 올린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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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