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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위기 상황에서 고통스럽게 넋두리를 합니다.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문학이 어떻게 가능한가라며 절규했죠. 요즘 저는 부쩍 생산력의 고갈을 느낍니다. 여러 후배들의 절규들이 들립니다. 80년대였다면 그 절규의 방향은 한 방향이었고, 그것들을 모아서 싸우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절규의 방향이 양 방향입니다.

이 상황에서 분열을 극복하고 일단 하나가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이 참에 그 동안 꺼내지 못했던 난제들을 털어낼 계기를 삼아야 할까요? 고민이 깊어갑니다.

저는 한낱 글쟁이이며 연구자에 불과합니다. 곽교육감님 표현을 빌리면 워낙 수줍음이 많아서 사람들 앞에 잘 나서지도 않고, 사람들이 모인곳에 가는 것도 잘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나름의 한계를 가지고도 최선을 다 해 무엇이든 기여하려고 애써왔습니다. 물론 아직도 저더러 "입으로 운동한다."라고 비아냥 거리는 분들이 계십니다만, 다행히 저의 입이 그 분들의 몸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이 될수도 있음을 이해하는 분들이 더 많은 편입니다.

문득 1989년 가을, 이맘때가 생각납니다. 늙은 좌빨의 무용담 같은거로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면 합니다. 그때 저는 이 수줍음 많고 사람들 많은 것 싫어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범대 학생회장 후보로 나서야 했습니다. 힘겹게 원고를 썼고, 며칠 밤을 세워가며 대중 연설을 연습했습니다. 그 당시 정세는 아주 나빴습니다. 노태우는 물태우에서 갑자기 각을 잡으면서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공안정국을 조성했고(그 원인 제공자가 지금 국회의원이죠. 저는 아직도 이를 갈고 있습니다. 그 몰정세적이고 무책임한 돌출행동에 대해), 노동운동의 상승기라고 생각하고 출범했던 전교조는 갑자기 조성된 공안정국의 집중 타격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사범대 학생회장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바로 공안당국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안 그래도 저는 당시 한창 재개발로 시끄럽던 사당동, 신림7동에서 빈민들과 연대해서 철거용역과 치고박고 싸우느라 잔뜩 찍혀 있었고, 구로 공단 노조들과 이른바 노학연대 투쟁을 조직하는 일에도 가담하여 또 찍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마했고, 불행히도 낙선했습니다. 낙선을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안기부(국정원)가 조만간 잡아가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고, 관악경찰서에서는 소환장을 보냈습니다. 수배자 신세가 된 겁니다.

도망을 쳤습니다. 경상북도 경산까지 가서 도피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경북 경산에는 양돈장이 많이 있었는데, 그 양돈장 중 하나에 취직을 했습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서 돼지 밥주고, 돼지 똥치우는게 일이었습니다. 날마다 손수레로 몇개씩 돼지 똥을 삽으로 퍼다 날랐습니다. 그리고 나서 씼고 점심을 먹으면 오후는 대체로 한가한 편이었는데, 양돈장 주인아저씨(형님?)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 댁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양돈장 주인이 알고봤더니 농민운동가였습니다. 말을 더듬었는데, 유신시절 고문 후유증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지역 농민회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타자를 칠 줄 아는 젊은이가 왔다고 다들 좋아했습니다. 당시 태동하던 진보 진영 정당 설립 준비 지역 모임에도 나갔습니다.

그렇게 한달 반 쯤 지났는데, 그 분이 그 더듬거리는 말로 "너, 학생운동하다 도망다니는 거지?" 이렇게 묻는 거였습니다. 물론 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남은 평생 돼지 치면서 농촌생활을 하고, 여기에 투신 할거냐, 아니면 나름의 학문과 전문지식을 활용해서 뭔가 해 볼 생각이냐?"
저는 "교사가 되어 학생들이 진리를 사랑하고 올바름을 가치있게 여기는 그런 사람으로 자라게 할것입니다." 라고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뜻밖에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서울에 가서 자수해라. 그럼 초범이고 자수니까 정상참작도 되고 해서 큰 탈 나지는 않을 거다. 그런데 누구한테 쫓기는 거냐?"
"안기부하고 관악서입니다."
"그럼 관악서에 자수해라. 일단 경찰 유치장에 들어가면 더 이상 안기부 소관이 아니다. 관악서에서는 기껏 집시법 위반이지만, 안기부에서는 무슨 괴물같은 조직사건이 될지 모른다. 잪 판단 해라."

나는 믿는 도끼에 발등찍힌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불만스러운 얼굴로 그분을 보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리석게 굴지 마라. 네가 정말 교사가 되어서 올바른 교육을 하고 싶다면,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을 걸어라. 어차피 농촌에서 농민운동가가 되지 않을 거라면 여기서 하루라도 더 있는 건 낭비다. 도망 다니지 말고 털수 있는 건 빨리 털어라. 교사가 되는 것이 농민 운동가가 되는 것 보다 덜 민중적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그러니 빨리 교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라. 비록 그러기 위해서 조금은 비굴해지고 조금은 나약해질지 몰라도 그건 치루어야 할 비용이다. 네가 적에게 굽히기 싫어서 끝내 출두하지 않고 여기서 버틴다면 결국 네가 들어갈 교단의 한 자리가 아깝게 되는 거다. 세상은 의로운 교사 한 명을 잃어버리는 거다. 내 생각에 그건 이 시골의 농민활동가 한 사람을 얻는 것으로 보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아까운 일이다. 잘 판단하기 바란다. 때로는 타협에 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순간 나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농촌에 완전히 뿌리박고 농민활동가가 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저는 교사가 되어 교육운동을 할 결심을 이미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교사가 되는 길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코스를 밟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교사가 되는 길로 다시 들어서려면 자수를 해야 했고, 저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굴욕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 현실을 민중속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운동가는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학생운동 한답시고 결기를 세웠던 나는 사실은 천지분간 못하던 병정놀이꾼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날로 짐을 쌌습니다. 정들었던 양돈장을 떠나던 날, 그 분이 아주 무거운 짐을 불쑥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민망한지 지금 말고 고속버스 안에서 열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한 모습으로 "돌아보지 마라." 하고는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고속버스가 출발하고 나서야 난 그 무거운 짐의 포장을 열어 보았습니다. 그것은 모두 여섯 권으로 구성된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번역서였습니다. 당시 서울에서 대구까지 고속버스가 4800원이었는데 한 권당 6500원씩 하는 이 책을 여섯권 산다는 것은 학생에게는 엄청난 지출이라 그 동안 침만 삼키고 있었던 바로 그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지금도  내 책장에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록 활자판이라 가독성이 떨어지고, 심지어 한문이 한글보다 더 많아서 쉽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만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질때마다 이 책을 꺼내어서 읽어 봅니다. 이미 외우다시피한 자본론이지만 자본론이 아니라 이 책에 얽힌 스토리를 다시 회상하기 위해서입니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블로그 주인이 쓴 책들 전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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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