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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사라지고 이벤트만 난무하는 서울 교육

문용린 교육감이 취임한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문재인을 지지했던 유권자들 중 상당수가 문용린 당시 후보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교사 출신이라고는 하나 사실상 노동운동가정당인에 가까웠던 이수호 후보 대신 교육학자인 그가 교육중심의 정책을 펼칠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서울 교육은 명망 높은 교육학자를 수장으로 선택한 효과를 보기는커녕 외화내빈의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가고 있다.


물론 문용린 교육감이 내세운 진로교육행복교육인성교육의 취지가 바른 방향임은 부정하기 어렵다그러나 문교육감은 교육부 장관을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관료들의 행태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거나 알고도 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대부분의 교육관료들은 교실 수업에서 관심이 떠난 지 적어도 10년 이상 된 사람들이다교실에서 수업을 하던 시절에도 주 관심사는 학생이 아니라 자신들의 수업을 외부에 잘 보여주기 위한 포장술이었다따라서 이들에게 교육정책을 맡기면 이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인 포장술에만 몰두하게 된다.

이 포장술은 우선 각종 사업 계획서 제목에 행복인성진로’ 라는 접두사를 붙이는 것에서 출발한다.관료들이 포장술에 몰두하면 일선 교장들 역시 포장술에 몰두한다이들은 어떻게 해서든 학교에서 행복,인성진로라는 접두사가 붙은 특별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고 선전하고 싶어한다교육학적 고찰이나 평가 따위는 필요 없다이런 접두사가 붙은 프로그램의 숫자가 중요하다.

이런 약팔이 문화 속에서 군사문화의 잔재라 하여 축소되거나 폐지되었던 구태들이 이 접두사들을 붙이고 다시 부활하고 있다이른바 교문지도가 행복한 학생 아침맞이란 이름으로 부활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물론 실제 행복한 맞이 따위는 없다과거와 같은 복장검열이 강화되었을 뿐이다그러다 교육감이나 교육장이 시찰 오는 날에만 관현악단이 나와서 연주를 하고교장교감이 웃는 낯으로 학생을 맞이하기도 한다물론 그 날이 지나면 관현악단도 없고웃는 낯도 없으며단지 복장검열만 남는다.

그 밖에 정규 수업과 별도로 행복인성진로라는 접두사를 붙인 갖가지 프로그램과 특강이 최소한의 교육학적 평가조차 없는 상태에서또 강사들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도 없는 상태에서 학교에 난무하고 있다.그런데 교장교감에게는 밖에서 눈에 띄지 않는 정규수업보다 당장 교육청 눈에 잘 띄는 이런 특별 프로그램과 강좌가 더 중요하다어떤 교감은 수업중인 교사에게 당장 그 특강에 가서 사회를 보라고 호통을 치기까지 했다어차피 정규수업이야 해 봐야 티도 나지 않지만이런 접두사 붙는 특별 프로그램이나 행사야 말로 교육청에 보여줄 포장이기 때문이다어차피 교육관료는 포장만 보며교육감도 보아하니 포장을 열어보지 않는 기색이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서울시민들이 명망 높은 교육학자를 교육감으로 모신 것이 아니다이런 모습들이야 부패하고 경직된 교육 관료들이 교육감을 하면서 갖가지 인사 비리로 추태를 부리던 시절에도 널리 성행했던 모습이다이건 진보보수를 떠나 그냥 구태에 불과하다물론 진로인성행복 교육은 중요하다그러나 바람직한 진로교육은 정규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가치를 익히는 것이지별도의 진로 이벤트행사특강 따위가 아니며행복교육은 학생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정규 수업시간에 행복감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지별도의 행복 관련 이벤트행사특강 따위를 벌이는 것이 아니다인성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교육관료들이나 교장들은 학생들이 학교에서의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정규 수업 시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적다이들은 수업을 훌륭하게 하려고 애썼던 사람들도 아니고또 그런 교사들 앞에서 교육 전문성으로서 어떤 권위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니다

이들은 대체로 수업을 하고 교육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 벗어나고팠던 사람들이다그러니 교육관료들은 각종 이벤트행사 따위를 기획하고 그 실적을 보고하라고 학교에 공문을 내리며교장들은 만사를 제쳐 놓고 각종 이벤트행사의 횟수와 연인원을 늘리기에 분주하다이 와중에 학교 현장은 각종 행사로 몸살을 앓고예산은 헛되이 낭비되며교사와 직원은 늘어난 가욋일에 허덕이며결국 정규 수업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마침 문용린 교육감은 국정감사에서 혁신학교에 대해 그 동안 잘못 생각했으며이제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은 듯이 말했다그렇다면 기왕 고쳐 먹은 마음혁신학교 뿐 아니라 일반 학교에서도 구태를 일소하고 학교를 혁신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바란다그 첫 걸음은 관료들의 보고서나 행사 사진 따위가 아니라 교실을 삶의 터로 생각하고 살아온 교사들의 목소리를 허심탄회하게 듣고모든 정책을 교실의 관점에서 구상하는 발상의 전환이라야 한다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교육학자나 부패관료나 어차피 그게 그거라는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한 채 임기를 마치고 말 것이다

안 그래도 전교조가 위기를 맞이하면서 보수를 가장한 교육계의 구태세력들이 준동할 가능성이 크다. 구태 교육감으로 남을 것인지, 보수교육감으로 남을 것인지 선택의 기로가 기다리고 있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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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