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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교육 없어서 학생들이 이리 되었나? 인성교육법 같은 옥상옥 좀 그만 짓

여야의원 50명으로 이루어진 국회인성교육 포럼에서 초·중학교의 인성교육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성교육법을 내년4월 중에 통과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법에는 인성교육 교과의 시수를 법으로 정하고, 각 시도 교육감은 인성교육 계획을 수립하고, 각급 학교는 인성교육에 예산의 일정 부분을 반드시 할당하도록 되어 있다.(기사원문보기).

이 법안을 입법예고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의 인성에서 많은 위험요인들이 발견되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학교폭력만 해도 거의 30년간 큰 변화가 없다가 1997년에서 2000년까지 3년 만에 거의 10배 가까이 폭증했고,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학생에 의한 교권침해도 거의 10배 이상 폭증했다.

문제는 이것이 과연 인성교육 시간을 늘리거나 강화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인성교육 부족이 문제였다면 교과수업 이외에 특별한 인성교육이나 수련 혹은 체험 프로그램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1980년대는 지금보다 훨씬 학생 인성이 황폐했어야 했다. 그러나 데이터는 정 반대의 사실을 보여준다. 인성교육 시간이 늘어난 2000년대 학생들의 각종 인성 지표가 인성교육이 전무했던 80년대 학생들보다 훨씬 황폐하다. 이는 학생들의 인성을 황폐화 시킨 원인은 인성교육의 부족이 아니라 다른 것이며, 인성교육이 여기에 따라 계속 강화되어왔지만 이를 막기에 역부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학생들의 인성을 이토록 빠르게 황폐화 시켰고, 인성교육을 언발의 오줌누기로 전락시킨 것일까? 사실 그 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며, 누구나 직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갈수록 치열해진 입시경쟁교육,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불안해지는 진로다. 1980년대만 해도 입시지옥은 고등학생이나 되어야 경험하는 것이었다. 또 대학에 진학하면 삶의 경로가 비교적 튼튼해졌기 때문에 도전할만한 가치도 있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입시지옥은 중학교를 거쳐 초등학교, 심지어 미취학 시기까지 내려갔다. 게다가 선행학습으로 남보다 앞서 나가려는 욕심이 지나친 나머지 초등학생이 고등학교 수학을 배워야 할 정도로 강도가 높아졌다. 이는 높은 청년 실업률이 보여주듯 대학이 아니라 소수 명문대학에 진학해야만 할 정도로 경쟁 강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가정의 인성교육 기능도 무너졌다. 1980년대만 부모는 입시경쟁으로 지친 학생들을 지원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부모는 젖떼기가 무섭게 순간부터 아이를 입시경쟁의 아레나에 밀어 넣어 싸움을 독려하고 있다. 부모가 입시지옥의 완화제가 아니라 원인제공자가 되었고, 가정이 쉼터가 아니라 막사가 되었다.

이렇게 자신을 싸움터로 내모는 부모 아래에서 겨우 말이나 배웠을 나이부터 경쟁에 시달린 아이들이 사춘기 연령에 도달했을 때 어떤 인성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상처받고 외로운 짐승들이 사나워지듯, 상처받고 외로운 청소년들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외로운 손을 잡아 줄 곳이 없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따뜻한 분위기와 안정된 포근함을 느낄 곳이 없다. 그런데 세상은 이들에게 인성이 글러먹었다며 인성교육을 받으라고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성교육 강화가 과연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오히려 학교에서 받아야 할 교육의 종류만 하나 더 생긴 아이들이 짜증이나 낼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교육 정책을 결정할 때는 신중해야 하고, 문제가 되는 현상만 보지 않고 교육 전체를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인성이 문제가 되면 인성교육을 강화하고, 역사관이 문제가 되면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식의 대증요법은 그 순간 순간 여론의 바람막이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적인 해결은커녕 부작용만 불러올 수 있다.

인성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동어반복이며 옥상옥이다. 근대 교육학의 아버지 헤르바르트가 언명했듯, 교육학의 목표는 도덕의 인식과 실천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다. 지식교육은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함이며, 덕성교육은 일단 무엇이 옳은지 가려내었으면 실천하는 성향을 길러 주기 위함이며,체육교육은 그러한 실천의 바탕이 되는 건전한 신체를 가꾸기 위함이다. 모든 교과가 바로 인성교육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서로 조화를 이루며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공교육의 목표가 인성교육인 것이다. 인성이란 지성과 덕성과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역대 교육과정 중 인성교육을 목표로 삼지 않았던 교육과정은 하나도 없다.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원인은 법이 없어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

우리 학생들의 인성이 황폐해지고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은 교육과정이 잘못 되었다거나 인성교육을 경시했다기 보다는 인성교육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는 교육과정이 파행적으로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교육과정을 파행으로 내몰았는지는 전 국민이 다 알고 있다. 교육과정이 무시되면서 파행적인 입시교육이 실시되었고, 교육과정을 교란하면서 각종 선행학습이 횡횡하였고,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교육과정을 엿가락처럼 이리저리 주무르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사 총체적인 인성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교육과정이 갖춰져 있다 할지라도 무슨 소용이 있었겠는가?

요즘 아이들의 인성이 걱정되면 해법은 간단하다. 입시교육을 중단하고, 교육과정을 왜곡시키는 사교육을 규제하고, 불안에 들떠 아이들을 아레나로 몰아넣고 있는 학부모에게 쓴소리를 하라. 이 어려운 길이 두려워 외면하고서 내어 놓는 어떤 정책도 문제의 핵심에는 다가가지도 못할 것이며, 공연한 예산 낭비와 학교 업무의 증가라는 부작용만 낳을 것이다. 다시 강조하건데 학생들의 인성이 황폐해진 원인은 인성교육의 부족이 아니며, 청년 실업의 원인은 진로교육의 부족이 아니다. 이것이 하루가 멀다하고 학교에 인성교육,로교육 공문을 내려보내는 교육 당국이 깨달아야 할 불편한 진실이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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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