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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취임식 직전에 썼던글, 보존 차원에서 옮겨 옮

2010년 6월에 쓴 글입니다. 곽노현 교육감 취임 직전 태스크포스의 명단을 보고 나름 절규한 글입니다. 곽교육감은 이 글을 보지 못했으나 어쨌든 이 글에세 비판하는 사람들의 한계를 결국 간파하신것으로 판단됩니다만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전교조 등 소위 진보단체의 원로님! 들입니다. 제발 잘 합시다. 또 이러면 먼저 내부에서부터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아니 내부에서 먼저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하 퍼 온 글)

곽노현 교육감 당선자(곧 교육감이 되겠네요)의 태스크포스팀의 구성 가지고 조중동이 게거품을 물고 있습니다. 전교조 출신들이 너무 많이 포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총에서는 파견하지 않겠다면서 성깔을 부립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면서 통쾌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시 흥분과 설레임을 가라 앉히고 조금 생각해 봅시다. 전교조 출신들이 교육감 당선자의 태스크포스 팀에 참가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요? 정답은 "Never!"입니다. 전교조는 잘못하고 있습니다. 당장 태스크포스팀에 참가한 전교조 인사들을 모두 탈퇴시켜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아무리 곽노현 교육감이 진보진영 인사라 할지라도 교육감은 어디까지나 사용자입니다. 만약 노조가 사용자에게 좋은 건의를 할 것이 있으면 그것은 정식 교섭 절차를 통해서 하면 될 일입니다. 도대체 노동조합에서 사용자의 정책실에 인원을 파견한다는 것은 무슨 발상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전교조와 곽노현은 서로 많은 부분 협조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교총도 그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체 교섭이나 정책협의회라는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책팀이나 태스크포스팀에 개인자격, 현장교사 자격을 빙자한 전교조 간부들의 진출은 아무리 곱게 보아도 노조답지 못한 행동입니다.

둘째, 그나마 TFT에 들어간 전교조 인사들의 면면이 구태의연합니다. 물론 전교조 측에서는 각자 개인 자격으로 들어간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면면을 보면 전현직 전교조 고위 간부들입니다. 그리고 좀더 솔까말 하면 전교조의 주요 정파활동가들입니다. 공교롭게도 태스크포스팀에는 교찾사, 참실련 양대 정파의 핵심 활동가들이 고루고루 포진되어 있습니다. 또 이 활동가들 중에는 노조 간부 생활로 학교 현장을 너무도 오래 떠나 있어서 정작 학교에서의 무능함 때문에 원성을 들었던 분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습니다.이 분들 머리에서 현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참신하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기대하기란 대단히 어렵겠구나 하는 분들도 당당히 이름을 내밀고 있습니다. 물론 조중동도 이걸 놓치지 않고 계속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 선배님들은 얼른 그 자리에서 물러서거나, 6월 30일 이후에는 더 이상 관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인맥을 통해 협조 연락이 왔을테지만 굳이 거기 응하고자 했다면, 평소 학교에서 눈여겨 보았던 젊은 선생님들을 많이 추천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덥썩 그 자리에 꿰차고 앉아서 낡은 라디오 소리같은 말씀을 하시고 있는 모습은 마치 내부형 교장 공모 시작되면 거기 어떻게 한 자리 꿰차려고 사욕을 부리는 모습으로 오해받기 십상입니다.

첫삽이 중요합니다. 진보교육감의 첫걸음은 교장, 교감, 장학사의 격렬한 저항을 뚫으면서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며, 동시에 학교 현장에 뭔가 왕창 변하고 있구나 하는 임팩트를 줄수있는 아주 예리하고 통렬한 혁신안을 던져야 합니다.
이 두가지 모두 조합활동가로 학교 밖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신 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학교 내부에서 그 동안 교장, 교감들의 온갖 더러운 백태를 세밀하게 보아왔던 분들의 분노, 그리고 학교 현장에서 온갖가지 실험적인 교육을 어려운 여건에서 피눈물나게 실현하려고 했던 분들의 꿈과 비전을 글어 모아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정녕 전교조가 진보교육을 꿈꾸고 진보교육감의 성공을 꿈꾼다면 당장 교육감 당선자 주위를 맴돌고 있는 원로 활동가분들에게 학교로 돌아가라고 설득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 교육감에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그런 창의적이고 젊은 현장교사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야 합니다. 정히 정책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면 훌륭한 정책협의안과 단체교섭안을 준비하면 됩니다. 물론 그 안의 준비과정도 조합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창발적인 안을 모집해야 합니다.

제발 곽노현은 노무현 꼴 만들지 맙시다.

(글을 보고 난 소감)

쩝입니다. 왜냐하면 이 글을 쓴 당사자인 제가 결국 곽교육감의 정책 TF로 1년간 일했기 때문입니다.모순되는 행동이며 자가당착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런 비판이 있다면 당연히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곽교육감이 언제 직을 상실할지 모르는 위기 상황이었고, 취임 무렵 거들먹거리며 주위를 맴돌던 진보인사(!)들이 그 곁을 하나 둘 떠나던 시기였기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변명을 해 봅니다.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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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