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오래된 음반들의 참상. 그리고 정보화 시대!


나의 오래된 음반들. 월급받아 판 사서 나 까먹는다는 힐난을 무시하며 주억주억 사다보니 집이야 방이야 온통 CD와 DVD로 발 디딜 틈이 없고, 요즘에는 책까지 가세하여 아수라장.


제일 위에 있는 사진은 록음악, 재즈, 블루스 등의 음반들이 무더기 져 있는 모습. 사진에 보이지 않는 아래 부분에는 가로로 마구 포개어져 있어서 뭐 하나 찾아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략 롤링스톤즈, 비틀즈, 레드제플린, 딥퍼플, 레인보우, 메탈리카는 모든 앨범을 구비하고 있는데, 요즘 통 꺼내 듣지 않다보니 먼지만 쌓이고 있다.

아래 왼쪽과 오른쪽은 분류없이 마구잡이로 쌓여있는 음반들.
대략 보니 중세, 르네상스 음악들과 우리나라 대중음악이 계통없이 섞여 있는 모양새다. 프레스코발디 작품 전집이 눈에 띄고, 북스테후데 전집은 실종되어 집안에 어딘가 있긴 하겠지만 찾을 길이 없다.

 

오른쪽에 있는 사진은 오페라 관련 음반들과 브릴리안트에서 나온 베토벤, 모차르트 작품 전집(100장 이상의 CD를 작은 공간에 몰아 넣는 좋은 방법), 쇼팽 전집, 슈베르트 전집이 자리하고 있다. 하이든 작품 전집은 어딘가에 있는데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오페라는 CD가 아니라 DVD로 주로 사기 때문에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는 않아 다행이다.


아래의 사진들은 모차르트 컬렉션과 베토벤 컬렉션이다. 180장짜리 모차르트 전집이 있고, 100장짜리 베토벤 전집이 있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같은 곡을 여러 연주자별로 자꾸 모으다 보니 이 모양이 되었다. 왼쪽이 모차르트, 오른쪽이 베토벤, 가운데는 19세기 음악들을 분류없이 마구 꽂아 놓은 공간이다. 가운데 사진 아랫부분에 거대한 빈 공간은 독일 근현대 작곡가들의 CD가 있던 곳인데, 엠피3 파일로 바꾸기 위해 꺼냈다가 컴퓨터 방에 무더기로 방치되어 있다.





이 무더기들은 왼쪽부터 차례로, 헨델 컬렉션,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작곡가들 닥치는대로 꽂은 공간, 그리고 바하, 비발디 등 바로크 음악 닥치는 대로 꽂은 공간이다. 여기서 원하는 CD하나 찾으려면 전쟁을 치루어야 할 판이지만, 그래도 그냥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일전에 진보를 빙자한 어느 인사가 나를 고 클래식 따위에서 주워들은 말로 얄팍하게 말만하는 자로 비하하며 "너 따위가 무슨 애호가 축에나 드느냐?"라는 막말을 한 적이 있는데, 글쎄, 이 정도면 전문가는 아니라도 애호가는 충분한 것 같은데... 사실 일반인의 상식에는 살짝 정신 나간 정도일수도.

그런데, 저 CD 들이 저렇게 지저분하게 방치되어 있는 이유는? 저 많은 CD들이 여기에 다 들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러고도 공간이 넉넉하게 남는다. 이걸 몽땅 아이튠스에 목록화 하는 작업이 장난이 아니라 엄두를 못내고 있지만, 현재 64G분량의 음원은 목록화 했고, 이제 그만큼만 더 하면 된다.

누군가가 이 외장하드 꽂아서 복사하면 한 정신나간 애호가가 수십년 고르고 고르고 돈 퍼 지른 컬렉션을 하루만에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아이폰에 음악 동기화 하다가 갑자기 그 동안 CD 사 무지느라 들인 시간과 돈이 허무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음원으로는 분명히 존재하는데 CD가 물리적으로는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 것들이 수십장이라 이걸 찾느라 한바탕 집을 뒤집어 놓은 다음이라 더 허무하다.

이제 음악은 어디로 갈까?

권재원의 저서 소개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권재원의 저서 소개<대안 경제 교과서들> 
블로그 주인이 쓴 책들 전체 소개
(주의) 이 블로그에 뜨는 광고는 구글이 임의로 전송하는 것으로, 이 블로그의 필진과는 전혀 관계 없는 내용입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