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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3국의 명문대학 분포도

PISA 2012의 뜻밖의 결과 때문에 세계 교육계하 흉흉하다. 그 동안 교육자, 특히 진보적 교육자들을 위로해왔던 사실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부 빡세게 시키는 모델이 성적은 올릴지 몰라도 학생들의 멘탈을 무너뜨리는 부작용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공부는 잘하지만 불행한 동아시아 학생들. 이게 거의 클리셰처럼 들릴 정도였다.

그런데 PISA 2012 결과 싱가포르와 대만이 학업 성취도는 물론 학생의 학교 행복지수에서도 최고를 기록했고, 홍콩, 일본 역시 학업 성취도와 행복지수 모두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이제는 공부도 잘하고 행복하기도 한 아시아 학생? 유럽과 미국에서 "거 봐라. 빡 세게 시키는 아시아 방식이 좋다."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예외. 바로 대한민국. 오직 대한민국만은 여전히 "공부는 잘하는데 학생들은 불행한" 전통적인 동아시아 교육의 상황을 고수하고 있다.

일본과 아시아 4룡(대한민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은 모두 어려운 교육과정, 많은 학습시간, 치열한 경쟁, 입시위주 수업, 자율이라고 쓰고 강제라고 읽는 방과후 학습과정, 입시사교육(한국 일본은 학원, 대만 홍콩은 보습소)이라는 판박이 교육 체제다. 심지어 일본은 중학교부터 입시가 있고, 대만, 홍콩, 싱가포르 역시 고등학교 입시가 빡센 편이다. 그렇다면 이들 동아시아 국가들에게는 공통되는데 우리나라만 아닌 것,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눈에 확 띄는 자료가 있다. 세계 여러나라의 명문대학들을 조사하다 보니, 유독 우리나라만 다른 나라에 비해 이른바 명문대학이 수도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나라나 수도에 명문대학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정도가 우리와는 자뭇 다르다.

먼저 일본의 이른바 일류대학의 분포도다. 4년제 대학만 700개가 넘는 일본이기 때문에 그 중12개라고 하면 일류 중 초 일류 대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절반인 6개가 도쿄에 자리잡고 있는 대학이라 편중률이 50%로 높은 편이다. 그러나 동북지역, 중부지역, 관서지역, 규슈 지역에 각각 초 일류 대학이 자리잡고 있어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 특히 관서지방의 교토대학, 오사카 대학, 동북지역의 도후쿠 대학은 도쿄대학을 제외하면 도쿄의 어느 대학에도 꿀리지 않는 명문대학들이다. 교토대학은 심지어 도쿄대학과 맞먹는다고도 한다. 오사카 근방에서 태어난 학생이라면 공부를 아주 잘하더라도 구태여 도쿄까지 가서 대학을 다닐 이유가 없는 셈이다. 이는 센다이나 후쿠오카 나고야 등에서도 마찬가지다.  또 와세대 대학, 게이오 대학을 제외하면 모조리 국공립대학이라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다음은 대만이다.  대만은 인구가 대한민국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10개 대학 정도면 명문대 리스트가 가득 찬다. 이 중 국립 타이완 대학의 위상이 압도적이며, 그 외에 10개 이내의 명문대학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연고대에 해당되는 교통대, 칭화대, 성공대가 지방대학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 외에 각 지역별로 일류대학이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일본보다 타이페이 편중현상이 훨씬 덜한 것이다.  남부지방 학생이 공부 아주 잘하면 성공대학 가면 되고, 타이완 대학 갈 게 아니라면 구태여 서울로, 서울로 할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명문대학이 몽땅! 국립대학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우리나라.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대학 순위를 매긴 리스트 등이 없다. 하지만 고등학생들이 명문대학 이니셜만 따서 구전가요처럼 부르는 리스트가 있다. 서연고서성한이중경외시동건홍숙. 여기에 이공계 명문인 카이스트와 포항공대를 넣으면 대략 다음과 같은 지도가 완성된다.
서양인들에게는 다 같이 동아시아 문화권이지만 일본, 대만과 비교해 볼때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대학이랄 것이 거의 없이 싹 전멸해 버린 모습이 몹시 안타깝다. 한 세대 전만 해도 호서의 서울대라 불리던 공주대학, 영남의 명문 부산대학과 경북대학이 건재했었다. 그런데 그 위세가 영 예전같지 않다.
엄청난 수도 편중현상과 더불어 우리나라 대학이 일본, 대만과 매우 다른 또 다른 점은 압도적인 사립대학 비율이다. 간단히 서울대학과 서울 시립대학, 그리고 교육부 소속이 아니라 애매한 카이스트를 제외하면 모조리 사립대학이다.  도에의 편중, 이른바 명문대학의 사립대학 쏠림현상. 이는 확실히 우리나라와 다른 동아시아 선진국들의 확연한 차이점이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 학생들의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준 것인지, 이 차이가 우리나라가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과 동떨어진 교육으로 내달리는 상황에 어떤 원인이 될지는 모르겠다. 일단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확연하게 다른 점이 느껴져서 일단 한번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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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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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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