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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도덕적 압박감, 그리고 순직. 진보여 제발 교사를 그냥 두라

세월호에서 순직한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난다. 전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살아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인솔교사 14명 중 2명이 구조되었다고 한다. 필시 10개반 담임 교사들은 모두 순직했을 것이다. 그 분들이 특별히 의로운 교사, 소명감이 투철한 교사라서가 아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고, 내 옆자리 선생님도 그랬을 것이고, 두 시간 전에 같이 세미나하고 뒷풀이했던 선생님들도 다 그랬을 것이다. 그게 그 자리가 주는 압박감의 위력이다.

이른바 진보적 관점에서 보면 간섭으로 보이고 통제로 보일지 몰라도 교사가 특히 담임이 학급 학생에 대해 가지는 도덕적 압박감과 정서적 애착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같은 교사라도 비담임 1년만 하면 생소하게 느껴질 정도다. 많은 교사들이 담임반 학생에 대해 혈육과 같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매우 드물고, 대개의 경우는 정도 차이다. 혈육과 같은 애착이 없으면 그 고달픈 담임 업무를 도저히 해내지 못한다. 내 새끼다 생각하니까 날마다 쏟아지는 잡무와 아이들로부터 받는 마음의 상처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219일 사고만 치던 녀석이라도 종업식날 하루만 대견한 모습을 보이면 그걸로 모든 걸 다 퉁칠수 있는게 담임의 마음이다. 이건 학생도 마찬가지다. 싸이코패쓰가 아닌 다음에야 사고치는 녀석들은 단지 걸렸다, 재수없다는 생각 뿐 아니라 담임에 대한 미안한 감정을 느낀다. 심지어 자기 부모보다 담임에게 더 미안해 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자기 부모보다 담임에게 더 애착을 느끼는 녀석들 젖 떼고 졸업시키는 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억지로 젖 떼는 과정에서 교사도 정서적으로 많이 다친다. 

문제상황이나 위급한 상황에선 그 압박이 더 커진다. 문제 상황이 발생하면 60개의 눈이 일제히 담임만 쳐다본다. 그 압박은 정말 무섭다. 60개의 눈이 뭔가 해결책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쳐다보는데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 더 무섭다. 그 문제 상황이 배가 가라앉는다거나 기차가 뒤집어졌다거나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무섭다. 그 무서움을 견디느니 차라리 죽는게 나을 정도다. 설사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빈자리가 숭숭난 그런 교실을 한 두번 보면 거의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10개 학급을 인솔해서 출발했는데 겨우 두 개 반 정도의 아이들만 남아있는 모습을 본 단원고 교감의 죽음은 거의 예고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를 격리하지 않고 풀어둔 관계당국은 사실상 살인을 저지른 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교감의 격리에 신경쓰지 않은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교사의 도덕적 압박감, 학생에 대한 애착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소위 선진국에서는 이런 떼죽음이 아니라 학생 한 두명이 목숨을 잃어도 즉시 교사들에게 심리치료가 들어간다.

그러니 사회에 호소한다. 교사를 가볍게 보지 말라. 보수쪽에서는 교사들을 잠재적 좌빨로 몰아 국정교과서로 통제하려 든다. 반면에 진보쪽에서는 교사들이 생각없는 로보트나 기르는 체제의 도구, 인권이나 유린하는 변태로 몰아붙인다. 보수쪽에서 흔드는 건 그냥 웃어버리면 그만이다. 너는 짖어라, 우린 우리식으로 가르친다 하면서. 하지만 진보쪽에서 흔드는 건 참으로 아프고,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데 "교육 불가능성의 시대"를 선언하는가 하면, 매일 교실에서 삶의 힘을 얻어가지고 내려오는데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고 한다.

솔직히 우리나라 교사들이 탐구열이 넘치고 자기계발에 열성적이라고는 말하지 않겠다. 학생들을 잘 이해하고 늘 그들 편에 서려고 애쓴다고도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교사집단이 밖에서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허술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은 해야 하겠다. 그들은 소신이 있고 자존심이 있고 강한 도덕적 책무감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보수보다 진보가 집권하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보수는 단지 그들을 귀찮게 하지만 진보는 그들의 소신을 틀렸다고 하고, 그들의 자존심을 버리라 하고, 그들은 도덕적으로 잘못이라고 낙인찍기 때문이다.   

물론 무사안일에 나태하고 무책임한 교사가 없는 건 아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20년 전, 끔찍했던 수학여행의 기억이 떠오른다. 나는 막 서른에 들어선 젊은 선생이었다. 그때 우리학교 3학년은 19반 까지 있었고, 한 반에 40명이 넘었다. 40*19= 760명! 이들이 열차 10량을 통째로 세내어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교의 1,2,3학년 전체보다 더 많다).  당시 내가 '가르치던' 학교는 지금은 재개발로 중산층 지역이 되었지만, 당시만해도 서울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중 하나였다. '아이들'의 가정형편상 여행비용 절감이 거의 최우선되는 분위기라 열차 한 량에 두 반씩, 그러니까 80명씩 탑승 시켰다. 그때가 IMF 무렵이라 학교도 출장비를 아끼느라 그랬는지, 담임교사 외에는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

760명의 학생이 두줄로 경주 시내를 걸어가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었다. 19반이 이제 첨성대를 지나갈때 1반은 이미 안압지에 도착했고, 그 사이는 우리 학생들로 인간 사슬을 이루고 있었다. 1반 담임과 19반 담임도 서로 무전기로나 의사소통이 가능했다.(휴대전화가 아니라 삐삐 시절) 방심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

그런데 힘겨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면 그때부터 진정한 헬게이트가 열렸다. . 40명을 네 조로 나누어 각 객실에 밀어 넣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19개 반, 무려 72개 객실을 4개층에 걸쳐 채워 넣어야 했다. 당시 3학년 담임교사 19명 중 나를 포함하여 9명이 남자, 10명이 여자였다. 남교사 한 명이 남학생 객실 4개씩 나누어 케어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이드도 도우미도 없이 이 모든 일을 담임교사들이 다 해야 했다. 방을 왜 관리하고 통제하려 하느냐 따위의 인권빙자 발언 따위는 하지도 말라.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방털이' 사건까지 나왔다.

일단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는 당연히 다른 교사들도 나와서 돌아 볼 것이라 생각했지만, 막상 나와보니 나 혼자였다. 다들 어디 갔느냐 하면 고스톱 판, 술 판을 벌리고 있었다. 나한테도 끼라고 했지만 거부하고 학생들의 숙소가 있는 복도에 의자 하나를 가져가서 당번을 섰다. 여교사 방에서는 이미 순번을 정해 놓고 두시간 간격으로 두 명씩 교대로 나왔지만, 화투소리, 술자리 소리가 요란한 남교사 방에서는 끝내, 그 밤이 다 새도록 아무도 나와서 교대해 주지 않았다. 그 무책임한 선생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그들의 공통점은 40대 이상, 남자였다.

이제는 내가 그들 나이가 되었다. 다행히 나는 그들처럼 늙지는 않았다. 도리어 젊은 선생님더러 들어가 쉬라고 하고 내가 한 시간이라도 더 하는 그런 노땅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담임을 맡는 교사들 세대에서 그때 그 늙은 남교사들같은 나태하고 무책임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느 진보 문필가가 "그냥 있어라"란 글을 써서 무비판적이고 권위에 순응하는 학생을 기른 학교를 질타한 모양이다. 그 말을 진보 명망가들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 제발 "그냥 있어라." 물론 교육에 비판이 필요하고 진보가 필요한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일을 해낼 교사들은 결코 모자라지 않다.

(잘 읽었으면,  이 블로그 필자가 쓴 책이라도 뭐가 있는지 알아봄이 어떨지요?: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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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