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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원은 과연 중형을 선고 받을까? 생각보다 허술한 선박 관련 법망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 상황이 계속되어, 원고료 받고 쓰는 글이 늦어지는 것을 감수하고 땡전 한 푼 안 나오는 포스팅을 자꾸 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사회선생 하는 게 너무 어렵다. 원래 사회과학은 descriptive인데 우리나라의 사회과는 워너비를 가르치는 교과가 되었다. 하긴 유신, 5공 시절에도 '한국적 민주주의' 를 가르쳐야 했던 선배들도 있었구나.

오해가 없기 바란다. 나는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을 옹호할 생각이 없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은 직업윤리상 혹은 인륜상 도덕적 질타를 받을 일이지, 중형에 처할 범법 행위를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직무수행의 의무의 존재를 확정함이 없이 직무유기죄의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라는 판례를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천인공노할 행위를 했음에도 위법사항이 없다면, 법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선원들을 최고 무기징역까지 구형할수 있는 혐의로 구속 기소한 검찰은 그 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그리 곱게 보이지는 않는다. 아무리 국민들의 법감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혹은 대통령이 진노했다 하더라도 법은 마구 휘두르는 칼이 아니다. 이렇게 이 법 저 법 끌어다 엄벌에 처하는게 관행이 되면 정작 뜯어고쳐야 할 선박법, 선원법, 수난구호법은 구멍 숭숭난 채로 계속 유지될 것이며, 제2, 제3의 세월호 참사가 또 일어날 것이다.

PPSS에서 선박의 승무원은 항공기 승무원과 달리 승객의 안전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글(원문링크)을 보았을 때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번 참사때 선장과 해원들은 도덕적으로 비난은 받을지언정 범법행위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근거로 이들을 구속하고 무기징역까지 운운하고 있는 것일까?

교사의 책무가 초중등교육법, 교육공무원법에 규정되어 있듯이, 선원의 책무는 선박법, 선원법, 수난구호법 등에 규정되어 있다. 우리는 흔히 비행기 승무원을 생각하면서 여객선 승무원에게 똑 같은 수준의 행동윤리를 요구하는데, 비행기 승무원은 행동윤리가 아니라 관련 법에 의해 그렇게 행동하도록 강제되는 측면이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우선 선원의 정의부터 우리 상식과 다르다. 선원은 특별한 책무와 권한, 그리고 자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저 선박에 고용된 노동자다.

(선원법 2조:"선원"이란 이 법이 적용되는 선박에서 근로를 제공하기 위하여 고용된 사람을 말한다.)

계속 가 보자. 

선원은 선장과 해원으로 구별된다. 이때 해원은 선박의 운항과 관리를 담당하는 항해사ㆍ기관장ㆍ기관사ㆍ통신장ㆍ통신사ㆍ운항장 및 운항사등의 선박직, 그리고 각종 선박 노동자, 어로장, 사무장, 의사등의 부원으로 나뉜다(선원법 시행령 3조). 그런데 통상 선박직은 항해사, 운항사, 기관사, 통신사 국가 면허를 소지한 자만이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해기사'라는 용어로도 지칭된다.

이 중 가장 큰 권한과 책무를 가진 사람은 선장이다. 선장의 의무는 출항전 검사, 항해, 직접 지휘(휴식시간 제외), 재선(배를 떠나지 않을 의무), 선박 위험시 필요한 조치, 선박 충돌시 필요한 조치, 조난당한 다른 선박 구조 등이다(선원법 6조~13조). 이 중 선박 위험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선원법 161조, 5년이하), 선박 충돌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거나(선원법 162조, 5년이하), 다른 조난 선박을 구조하지 않았을 경우(선원법 163조, 3년이하)는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세월호 조난 신고가 났을때 근처의 화물선, 유조선 등등이 구조하러 몰려온 까닭이 반드시 측은지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단 관제소에서 근처 선박에게 구조요청을 보냈기 때문에 응하지 않으면 처벌 받는다. 심지어 특가법 적용될 수도 있다.

선장 이외의 해원들의 의무는 선장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해원은 선장에게 대들거나 쟁의를 조장한 경우(선원법 165조 3년이하), 선장의 허가 없이 배를 떠나거나 위기시 선장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경우(선원법 166조 1년 이하)  처벌이다.  해원들은 선장이 나가라 하면 나가고 있으라 하면 있을 뿐이다. 선박법, 선원법, 수난구호법을 아무리 뒤져봐도 선장이 아닌 해원들이 승객들이 대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만약 선장이 나가라 해서 나갔다고 한다면 적어도 선박, 선원법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이 경우 법이 잘못된 것이다. 법에 의무로 규정되지 않은 일을 하지 않았다 해서 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자, 그래도 이들을 백주대로를 활보하게 했다가는 국민 여론에 불이 붙을테니 잡아 넣어야 한다. 어떻게든 죄를 한번 물어보자.

일단 선장은 그럭저럭 처벌할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우선 선원법 161조인 선박 위험시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은 죄가 가능하다. 그런데 필요한 조치를 다 하지 않았다는 부분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모호하다. 선장은 분명히 해경에 조난신고를 했고, 관제소에 연락했고, 해경과 교신했고, 선실 대기명령을 내렸다. 그게 더 안전할 거라고 믿어서 그랬다고 주장한다면 업무상 과실치사 정도인데, 치사라고 해서 살인죄 같이 느껴지겠지만 형량은 징역 2년 이하에 불과하다.

게다가 선장은 한사코 자기는 퇴선 명령을 했다 주장한다. 그럼 조난 신호를 했고, 퇴선 명령을 내렸기 때문에 선원법상 선장이 할 일은 다 한 게 된다. 이탈리아에서 선장이 징역 2800년인가 받았던 사례를 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이탈리아법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선장이 제일 나중에 하선해야 한다고 명기되어 있는 몇 안되는 나라다.  수난구호법에서도 선장에게는 수난 발생시 신고할 의무(15조), 그리고 다른 선박의 수난을 도우러 갈 의무(18조)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세월호 선장은 수난 발생시 신고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이 법을 위반한 적이 없다. 그러니 선원법을 적용하면 세월호 선장은 최고 5년까지밖에 구형할 수 없다. 

그럼 다른 선원들은? 선장이 퇴선명령을 했으면 혐의가 없고, 퇴선명령을 안했으면 선장말 안듣고 하선한 것이니 1년 이하 징역이다. 그럼 이들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선장이 퇴선명령을 내렸다고 할 것이고, 선장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럼 결국 선장만 업무상과실치사로 징역 2년 구형하고, 선원들은 징역 1년 혹은 불기소 처분하게 되는데  이래서야 "살인과도 같은 행위"라고 대갈일성한 대통령 눈치가 보여서 좌불안석이다. 그래서 검찰은 형량이 적은 '뱃사람 관련법'을 적용하지 않고 일반 형법상의 유기치사죄특정범죄 가중처벌법의 도주선박의 선장과 선원 부분을 적용해서 영장을 쳤다. 이렇게 하면 구형을 최고 무기징역까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기치사죄: 도움이 필요한 자를 보호할 법률 또는 계약상 의무가 있는자가 그 자를 유기하여 사망에 이르게 하면 3년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 275조)

(도주선박의 선장과 선원 처벌규정: 선박의 교통으로 인하여 사람을 사상케한 중과실 선박의  선장 또는 승무원이 피해자를 구호하는 등의 조치를 하지 아니하고 도주하고 그 겨로가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5조의 12).

승객들이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이것을 알고도 먼저 탈출했다면 유기치사가 적용될수 있다. 실제로 만취한 손님을 영하의 날씨에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가게 밖으로 내보내서 결국 얼어죽게 만든 술집 주인에게 이 죄가 적용된 판례가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선장이 아닌 다른 해원들까지 적용가능한지는 모호하다. 선장, 항해사, 객실 승무원이아닌 기관사, 조기사 등이 승객을 구호할 법적 계약상 의무가 있는지 모호하다. 또 선장의 경우에도 "이젠 살겠지?" 한 경우와 "승객들이 죽더라도 난 살아야지" 한 경우가 다르다. 또 배가 이상을 보이자 마자 기울자마자 선원들끼리 구명벌을 전개하여 도주했다면 유기치사가 완벽히 성립되지만 해경과 충분히 통화하고 해경 구조선과 헬리콥터 등이 도착한 것을 확인한 다음이라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유기치사는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에 3년보다 더 무거운 형벌을 적용하기 어렵다.

유기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부조의무를 위반(해태)한다는 의식이 있음을 요한다."는 판례도 있다. 이게 참 어려운데, "내가 도망가면 안되는데"하며 하선했느냐, "내가 할 바는 다 했으니 이제 해경에게 맡기고 내려가자."라고 생각하며 하선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인데, 이는 정황적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다. 아직 배가 침몰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경이 출동했는데 세시간 동안 속수무책으로 배 껍질만 구경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어렵지 않느냐, 해경이 왔길래 상황 다 된걸로 판단해서 하선했다라고 하면, 그렇게 중형을 때리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쨌든 선장과 선원 모두 처벌이 가능은 하다.

하지만 이 정도, 기껏 3~5년(유기 치사로 그 이상의 판결이 나온 사례는 매우 드물다)으로는(신고의무를 충분히 했고, 해경이 출동한 다음에 나왔기 때문에 이 정도 형량 나오기도 과연 쉬울까?) 진노한 국민 혹은 대통령의 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마침내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특가법)까지 동원된 것이다. 

특가법 5조의 12을 적용하면 일단 선장뿐 아니라 선원도 걸려들고 도주한 경우에도 해당되니 웬지 맞아들어갈 것 같고, 형량도 무기징역 혹은 5년이상의 징역이니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이 복잡한 법조문을 요약하면, 운항이나 통신 등의 과실로 인해 어떤 배를 아작냈으면 가해 선박의 선장과 승무원은 피해 선박의 구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며. 그러지 않고 도주하면 선장과 선원을 무기징역까지 때리겠다는 뜻이다. 자, 이게 무엇에 관한 법이냐 하면 "해상 뺑소니"를 처벌하는 법이지, 조난 당한 선박의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세월호 선장과 선원이 괘씸하고 비난받아 마땅한 건 사실이지만, 법을 이렇게까지 적용할 수 있을까? 나는 법률가가 아니지만, 법률가의 가족으로서 또 중고생 수준이나마 법을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너무 넓게 법을 적용한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특히나 형법은 아무나 때려잡는 눈먼 칼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넓게 적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분명히 배웠다.

심지어 형법상의 선박전복죄(187조)까지 적용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테러리스트에게 해당되는 법이다. 세월호 승무원들이 아무리 무책임해도 배를 뒤집어 엎은 범인은 아니지 않은까?

이번 참사에서 선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비난받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버스 운전기사에게 교통사고시 승객 구호 의무가 있는가? 물론 도의적 책무는 있다. 선박도 마찬가지다. 현행 선박관련법 어디에도 선박직 선원이 승객을 책임지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배의 항로를 잡고, 엔진을 관리하고, 통신을 하고 키를 조타할 뿐이다. 그리고 승객과 직접 접촉하는 객실승무원은 선원법상 '선박직원'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들 객실승무원들은 최선을 다해 승객을 돕다 목숨을 잃었다.

나는 이번 참사때 비겁하게 행동한 선원들을 용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이 법 저 법 끼워맞춰 중형에 처하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그 보다는, 승객을 버리고 도주한 선원을 "선원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법체계에 대한 국가적인 논의를 원한다. 이번에 이런식으로 보복성 형벌을 내리면 우리는 또 잊어버릴 것이며, 저 어이없는 구멍숭숭 선원법과 수난구조법 사이로 또 다시 참사가 터져나올 것이다.

물론 나는 법률가가 아니니, 나의 해석이 옳다고는 강변하지 않겠다. 하지만 대통령이 살인을 운운하고 검찰이 선장과 선원을 줄줄이 중형으로 다스리겠다고 나설때, 과연 적용된 혐의가 타당한지에 대해 짚어보는 목소리가 없었다는 점에 우리나라 법률가들에게 무척 실망한 상황이라 참지 못하고 몇 글자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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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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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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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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