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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벨과 이종인 대표 실패 논란에 대한 생각

세월호 때문에 원고료 받는 글 젖혀두고 포스팅을 또 하고 있다.

이종인 알파공사 대표가 다이빙벨을 들고 철수했다고 해서 한바탕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조중동이 "다이빙 벨 실패!"라고 떠드는건 당연하다. 그래야 자기들을 왜소하게 만든 JTBC를 공격할 수 있으니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느닷없이 튀어나와서 "거 봐라 내가 뭐라 그랬느냐?" "다이빙 광신도들아"이러면서 소금뿌리는 행동들이다. 만약 다이빙 벨에 대한 광신이 문제가 될것 같았으면 JTBC의 인터뷰 이후 관심이 고조되었을때 나서서 그 열기를 중화시키던가 했어야지, 철수한다고 하니 튀어나와서 "거봐라"그러는건 비겁한 행위다. 불행히도 진보진영 지식인들 중에는 이런 비겁한 분들이 상당히 많다.

일단, 철수 결정을 한 이종인 대표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논리적으로 일관성이 없는것이 한 마디로 "말 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차피 이종인이나 다른 잠수사들이나 이리저리 따지면 UDT, SSU 선후배간이고 하니 본의 아니게 서로 얼굴 붉히게 되는 상황, 그리고 본의 아니게 이종인 VS 해경,언딘 의 싸움으로 비화되는 것을 거북스러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싸움은 분명 일부 언론과 진보진영에서 붙인거 맞다. 이 부분은 반드시 비판이 있어야 할 부분이다.

문제는 이종인이 실패했느냐, 그리고 거봐라 내가 뭐랬냐 하는 부분이다.

우리는 "실패"를 정의할때 어떤 기준을 정해 두어야 한다. 본인이 "실패"라고 해서 실패는 아니다. 예컨대 작가가 실패작으로 간주하여 불태워버리라고 유언한 작품이 출판되어 걸작으로 남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다면 이종인의 실패를 판정하려면 그가 직접 한 말(각종 언론의 전언이 아니라)을 통해 그가 한 말이 실제 이루어졌느냐 아니냐만 가지고 따져야 할 것이다. 그가 하겠다고 한 말을 넘어선 기대를 뒤집어 씌운다음 그 기대에 못 미쳤다고 실패, 사기 등등의 용어를 쓸수는 없고, 그가 하겠다고 한 말에 미치지 못했는데도 성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의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자. 그는 JTBC뿐 아니라 정봉주의 전국구, 김어준의 KFC에도 나와서 말했는데, 그 내용은 모두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그 인터뷰 내용에서 정작 다이빙 벨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다만 신기하다보니 자주 부각되었을 뿐이다. 그의 인터뷰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다.

1. 이런 해난 사고에서는 이른바 민간 잠수사가 군, 경 잠수사보다 더 경험이 많고 노련하기 때문에 이들을 존중해야 한다. 민간 잠수사는 아마튜어가 아니라 UDT, SSU등을 마치고 난 뒤 계속 현업에 종사한 프로들이다.

2. 물속에 들어가면 조류와 싸우는게 힘들기 때문에 실제 입수해서 작업하는 시간은 15분 내외에 불과하다. 따라서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투입해야 하며, 잠수 회사에서 일한 베테랑들을 활용해야 한다.

3. 자신이 만든 다이빙 벨은 물 속에 휴게소를 설치한 효과가 있어서 잠수사가 조류를 피해 쉬어가며 교대 작업을 할 수 있어 입수후 작업시간을 크게 늘려준다. (이종인은 이 부분에서 다이빙 벨이 무슨 대단한게 아니라 쇳덩이 큰거 엎어 놓아서 조류를 피해 잠수사가 쉬게 해주는 것이지 뭐 라고 누차 말하고 있다. 무슨 특수 구조기계라고 말한 적도 없고, 감압챔버 같은 거라고 말한적도 없다.).

잠수사는 조류를 피해 정조시간에 입수하는데, 잠수사 몸만 입수하면 15분 작업하고 나면 휴식을 위해 나오는 수 밖에 없고, 일단 나오면 다음 정조시간까지 여섯시간을 기다렸다 들어가지만 다이빙벨을 타고 들어가면 조류가 있는 상태에서도 교대로 휴식을 취하며 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 또 입수하고 출수할때, 특히 출수할때 감압을 위해 천천히 올라와야 하는데, 이걸 벨 안에 가만 앉아있는 상태에서 천천히 끌어올리면 되니 다이버가 상당히 편안하게 쉴수 있다.

4. 다만 설치하는 과정에서, 특히 이미 앵커 내린 바지선과 다른 작업자가 있을 경우 위험의 가능성이 있다.(이종인은 이걸 인정하며, 따라서 다이빙 벨을 실은 바지선의 접안을 거부하는 해경 입장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다)... 물론 위험하다. 물론 방해 된다.

이 때 이종인의 가장 핵심 메시지는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자가 있을 수 있는데, 이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것 아니냐"다. 위험할수 있기는 하지만 당장 하루 이틀에 앵커줄이 끊어지는 것도 아니고, 사람 목숨이 달렸는데?


자, 그렇다면 실제 결과를 보자.

1과 2. 민간잠수사의 노련함은 입증되었다. 다이빙 벨의 성능보다 인상적인 것은 다이빙 벨을 투하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설치하는 알파팀 잠수사들의 노련함이었다. 배가 침몰한 다음이라 구조 초기에 비해 이미 수십미터 아래인데도 몇시간만에 선미 출구를 확보했고, 하루만에 선내에 진입했다. 만약 초기에 이런 민간잠수사(이 말이 어폐가 있다. 직업 잠수사)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3. 실제로 우여곡절 끝에 바다 속에 자리잡은 다이빙 벨은 잠수사들의 휴식처 역할을 제대로 했다. 1차 입수(산소 케이블 터져서 도중에 나왔을 때)때도 28분(이걸 연합뉴스는 20여분이라고 묘한 느낌 나게 보도. 약 30분이 아니라)간, 2차 입수때는 무려 2시간 가까이 작업했다(실제 작업시간은 50분이라고 하는건 타고 들어간 잠수사가 2명 뿐이라 그런거다. 4명이었으면 교대, 교대 하며 2시간 모두 실제 작업시간이었을 것이다). 맨몸 다이버가 최대 20분임을 생각하면, 또 다이빙벨을 타면 입수 출수때 힘을 비축함을 생각하면 상당한 효과다.

단 한구의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으니 실패라는 말은 언어도단이다. 애초에 작업장소 배정받을때 희생자들이 몰려있을 가능성이 적은 곳에 배정받아서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

문제는 4번이다.

해경과 언딘에게 방해가 된건 사실이다. 만약 생존자가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방해가 되더라도 긴 시간 작업할 수 있는 다이빙벨을 밀어 넣어야겠지만, 이미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0%인 상황에서 구태여 자비를 계속 지출해가며, 이래저래 다 아는 동료들과 얼굴 붉혀가며 있을 이유가 없다. 이종인은 프로기 때문에 세월호 하나 뛰고 말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동종업계에서 계속 살아야 할 사람이다. 장비가 2시간이나 물속에서 계속 머무르게 해 준거 보여 주었으면, 빠져 주는게 도리다.

그는 자기가 말 한 바는 다 보여 주었다. 그는 산 사람이 있을까봐 사비를 들여가며 팽목항 까지 달려갔을 뿐이다. 하지만 생존자가 없을것이 확실시되는 순간에 투입요청을 받았고(이건 거부하고 가도 그만이었다. 그랬어도 아무도 욕 안했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런데 10여명은 될 줄 알았던 잠수사가 두명 뿐이다. 다이빙 벨은 바다속 휴게소에 불과하다. 아무리 든든한 휴게소를 설치해도 이용자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공연히 바지선 임대료 내가며 성능 테스트 할 일 있나? 바지선 하루 임대료가 모르긴 몰라도 인터넷 트잉여들 한달 수입보다 많다.

그런데 들어갈때는 열광적인 지지자 눈치보며 입 꾹닫고 있다가, 나오니까 낚였네, 실드칠수 없는 인간이네 하고 툭툭 튀어나오며 양식있고 균형잡힌 진보 행세하는  사람들은 그냥 계속 입 꾹닫고 있었으면 좋겠다. 마찬가지로 당사자가 한 말의 범위를 넘어서 온갖 과대선전을 확대재생산했던 사람들도 남의 말 자꾸 하는 버릇은 버리는 것이 좋겠다.

내가 이종인 실드(?) 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이종인의 인터뷰를 들어보았고, 그의 인터뷰가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전문성이 느껴지면서도 매우 겸허하고 진실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팽목항에 간 목적(생존학생 구조)이 완전히 상실된 상황에서도 결국 냉정히 돌아서지 못하고 온갖 구박과 냉대를 무릅쓰고 딱 자기가 말한 정도 보여주었다. 그러니 그 이상의 찬사도, 그 이하의 비난도 온당하지 않다.

(잘 읽었으면,  이 블로그 필자가 쓴 책이라도 뭐가 있는지 알아봄이 어떨지요?: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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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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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