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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교육감 후보가 난립해서 이겼다고 하기전에 왜 그들이 난립했는지 살펴보자.

지난 6월 4일 지방선거 결과 진보교육감이 대거 등장하게 되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6:10이었던 진보 : 보수 교육감의 구도가 13:4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여기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기대를 표시하였지만, 일부 수구 언론들은 이념교육이 걱정된다는 등의 논조를 펼치고 있다. 한편 선거 전문가들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라는 속설과 달리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가 분열로 망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말들은 모두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우선 이념교육 운운하는 논조부터 보자. 조선일보는 ‘여도 야도 아닌 전교조의 승리’라는 기사를 1면에 배치하면서 진보교육감 약진의 의미를 퇴행적 색깔론으로 덧칠하려했다. 그러면서 편향된 이념교육에 대한 우려를 운운하고 있다. 그러나 교학사 역사교과서 사태에서 보여주듯, 우리 사회는 이미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이 편향된 이념집단인지에 대해 판단이 끝난 상태다. 교육에 이념을 끌고 들어와 혼탁하게 만든 쪽은 항상 자칭 보수 쪽이었지 진보가 아니었다.

보수 후보가 난립하여 진보교육감이 약진했다는 말도 살펴보자. 실제로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는 후보들이 난립하여 일찌감치 단일화에 성공한 진보 후보들이 어부지리를 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10년에도 단일화를 하지 못해 패배했던 이른바 보수 후보들이 똑 같은 실수를 왜 반복했는지에 대해서 주요 언론에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이른바 진 교육감 선거에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적인 잣대를 억지로 끼워 맞추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잣대를 들이대었으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을 뿐이다.

진보는 현재 상태를 큰 문제 상황으로 규정하여 전면적이거나 큰 폭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경향, 보수는 오랫동안 내려온 윤리, 전통, 문화유산의 가치를 존중하고 강조하는 경향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따라 이른바 진보, 보수 양 진영 교육감 후보들의 주장을 살펴보자. 그럼 이 사실이 분명해진다. 이번 선거에는 진보 교육감도 보수 교육감도 없었다.

먼저 진보로 분류된 후보들의 공약을 보자. 교원의 업무를 행정이 아니라 교육으로 정상화, 배움 공동체로서의 학교 복원, 각종 인사와 행정의 투명한 집행, 교육청의 학교 지원기관화, 단위 학교 수준에서부터 학생, 학부모, 교사에 의한 교육 자치 구현, 소수가 다니는 자사고, 특목고 보다 다수가 다니는 일반 학교의 강화 등이다. 이것은 한 마디로 학교와 공교육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진보라고 부를만한 내용이 없다. 유럽이라면 오히려 보수적이라는 말을 들을 내용들이다. 이런 것들은 큰 폭의 개혁이 아니라 공교육이라면 당연히 전제하고 있어야 할 출발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 중 누구도 기존 교육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 교육이기 때문에 혁파해야 한다는 따위의 주장을 하지 않았다. 이른바 진보교육감으로 분류되고 있는 교육감들은 엄밀히 말해 진보교육감이 아니라 '정상교육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반면 보수로 분류된 후보들을 보자. 한 쪽에서는 학교에서 전교조를 몰아내자, 좌파 교육 몰아내자 따위의 편협한 극우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다른 쪽에서는 교육계의 적폐를 통해 이득을 누려왔던 기득권 집단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보수’라는 깃발을 내걸었지만, 이들 중 그 누구도 보수주의의 핵심인 전통윤리, 전통문화, 전통가치, 혹은 인류의 오래된 지혜를 설파하지 않았고, 이들 중 그 누구도 보수주의자의 미덕인 품위, 겸허함, 신중하고 사려 깊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들은 편협한 우익 이념집단 아니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시정잡배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그나마 보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던 문용린 전 교육감은 고승덕 후보와의 이전투구에 뛰어듦으로써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한마디로 이번 선거에서 보수 교육감 후보는 단 한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들은 보수가 아니라 무엇이었을까? 편향된 극우 집단과 교피아 기득권 집단에 불과했다. 깃발만 보수일 뿐 실제로는 우익이념집단과 기득권 집단들이었기 때문에 이들 사이에는 단일화를 할 어떤 공통분모도 없었다. 심지어 기득권 집단들이 난립한 경우도 있었다. 이들이 연대할 유일한 이유는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할 전교조를 몰아내고자 하는 욕망뿐이지만, 그렇다고 전교조 축출을 위해 아무 대가없이 쿨하게 양보할 수는 없다. 지켜야 할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차기 출마를 보장한다거나, 각종 이익사업을 약속해 준다거나 하는 등의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 한 소위 보수 단일 교육감 후보는 성립될 수 없다. 더구나 당선은 불가능하더라도 15% 이상 득표하여 선거비용을 보전 받을 수 있는 후보가 10억이 넘는 돈을 선뜻 포기하기란 더더욱 어렵다. 이익을 지키기 위해 나왔으니 본전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이번 교육감 선거 결과는 진보교육감의 약진이 아니다. 교육정상화 세력이 즉 교육감 후보가 이념감, 정치감, 이익감 후보들의 분열을 틈타 약진한 것이다. 이 선거에서 보이지 않았던 것은 오직 하나, 보수교육감 후보뿐이다. 이제 보수진영에게 보수교육감 후보를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사실 교육은 진보와 보수의 속성이 모두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보수교육감도 꼭 필요하다. 오랜 경륜에서 우러나온 지혜와 품위를 갖춘 진정한 의미의 보수교육감 후보를 다음 선거에서는 꼭 보고 싶다.

잘 읽으셨으면, 제가 쓴 책들도..

민주주의의 미래로 자녀를 키우기 위해 필요한 책들: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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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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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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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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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