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10.

대통령 공약 지켜주겠다고 교육대란을 방조하면 진보교육감은 커녕 아예 교육감이 아니다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교육과 지방자치를 한꺼번에 유린하는 중앙 정부 앞에 17명중 13명이나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포진한 교육자치가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시도교육감협의회가 "우선 활용 가능한 예산의 범위(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2-3개월분내에서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우선 이 사태가 일어나게 된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리나라 법체계상 어린이 집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회복지 기관이다따라서 관련법령도 교육법이 아니라 영유아보육법이며관할 부처도 교육부가 아니라 보건복지부다이를 시행하는 주체 역시 국가와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구청장이지 교육감이 아니다이른바 무상보육 역시 마찬가지다.  영유아보육법 34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에 대한 보육을 무상으로 하되그 내용 및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는 한 줄 조항에 불과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결국 보건복지부이며 지방자치단체는 교육감이 아니라 시도지사와 시군구청장이다그런데 문제는 이 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한 대통령령 23조에서 무상보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보통교부금으로 부담한다.”라고 규정하면서 발생했다. 
여기서 지방재정교부금 중 보통교부금이란 국가가 각 시도 교육청에 할당된 교육예산을 교부하는 것을 말한다이 교부금을 가지고 각 시도는 유초중등 학교를 운영하고교직원의 보수를 지급하고각 시도별 교육사업도 편성 실시한다그런데 여기서 돈을 뚝 떼어서 시도교육청과 전혀 무관한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교육법도 아닌 보건복지부 관할 시행령을 통해서 말이다.  청와대에서는 무상보육을 교육계와 시민계가 모두 검토하고 찬성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린이 집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에 찬성한 것이지 초중등교육 예산을 뚝 잘라내어 무상보육에 쓰는 것에 찬성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찬성할 교육계인사, 학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 뭉칫돈의 규모는 경기도의 예를 들면 초··고등학교 운영비와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학교 운영비에 맞먹는 엄청난 예산을 교육감 관할도 아닌 무상보육을 위해 떼어 내라는, 무상보육을 위해 교육파탄을 감수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면서 정작 정부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늘리기는 커녕 10% 가까이 삭감하는 예산안을 편성해 놓았다예산은 줄이면서줄어든 예산에서 관할사업도 아닌 사업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감들이 집단적으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것은 보수·진보의 문제를 떠나서 교육에 대한 멸시이며 모욕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 헌법은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그런데 대통령 공약사업을 지키자고 교육예산을 뭉터기로 때어 낼 수 있는 시행령을 제정하고,이를 지키라고 교육감들에게 강짜를 놓다니, 이는 교육의 전문성자주성정치적 중립성을 한꺼번에 위반하는 위헌적인 행동인 것이다. 이럴 때 나서라고 교육감이 있는 것이며이럴 때 정부 눈치 보지 말라고 진보교육감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감협의회는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버티던 입장에서 물러나 일단 석달치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하기로 하며 백기를 들고 말았다더구나 그 석달치 예산을 지방채를 발행해서즉 빚을 내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석달치를 우선 편성하면 정부가 성의를 봐서 나머지 예산은 국고로 처리할 거라는 기대를 품었던 모양이다그리고 일부 보수교육감의 이탈이 우려되어 그들을 달래기 위해서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성의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경제수석의 입을 통해 "무상보육의 경우는 반드시 추진한다고 할 정도로 공약을 여러 차례 한 바 있고법적 의무사항인 만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이 반드시 예산편성을 해야 한다"라며 못을 박았다(관련기사). 즉 국고지원은 한 푼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며한 발 물러났으니 이제 무릎 꿇으라는 뜻이다.
이제 교육감들 앞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국고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은 동일하지만누리과정 대란을 막아야 한다는 충정에서 의견을 모았다"면서 백기 투항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하지만 그들의 충정은 철저히 무시당했고능멸 당했다교육감들은 마땅히 예산 편성방침을 철회하거나지방채로 충당하는 석 달 이후에는 일체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그리고 교육의 자주성을 치졸하게 유린하는 관련 시행령의 폐지를 위한 법적 절차에 들어가는 등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해야 할 것이다그것은 진보’ 교육감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육감이라도 마땅히 해야 할 임무다.
일부 보수교육감의 이탈따위는 신경쓰지 말자. 정부에 순종하여 지방교육을 파탄지경에 이르게 한다면, 이거야 말로 보수교육감을 자처하는 자들이 보수도 교육자도 아니며, 다만 기회주의자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보육대란을 막겠다고 교육대란을 자초하는 교육감은 더 이상 교육감도 아니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