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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공약 지켜주겠다고 교육대란을 방조하면 진보교육감은 커녕 아예 교육감이 아니다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교육과 지방자치를 한꺼번에 유린하는 중앙 정부 앞에 17명중 13명이나 이른바 진보교육감이 포진한 교육자치가 백기를 들고 투항했다시도교육감협의회가 "우선 활용 가능한 예산의 범위(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의 2-3개월분내에서 어린이집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관련기사). 
우선 이 사태가 일어나게 된 과정을 간단히 살펴보자. 우리나라 법체계상 어린이 집은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회복지 기관이다따라서 관련법령도 교육법이 아니라 영유아보육법이며관할 부처도 교육부가 아니라 보건복지부다이를 시행하는 주체 역시 국가와 시도지사 및 시장군수구청장이지 교육감이 아니다이른바 무상보육 역시 마찬가지다.  영유아보육법 34조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영유아에 대한 보육을 무상으로 하되그 내용 및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라는 한 줄 조항에 불과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국가는 결국 보건복지부이며 지방자치단체는 교육감이 아니라 시도지사와 시군구청장이다그런데 문제는 이 법의 구체적인 내용을 정한 대통령령 23조에서 무상보육에 들어가는 비용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른 보통교부금으로 부담한다.”라고 규정하면서 발생했다. 
여기서 지방재정교부금 중 보통교부금이란 국가가 각 시도 교육청에 할당된 교육예산을 교부하는 것을 말한다이 교부금을 가지고 각 시도는 유초중등 학교를 운영하고교직원의 보수를 지급하고각 시도별 교육사업도 편성 실시한다그런데 여기서 돈을 뚝 떼어서 시도교육청과 전혀 무관한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하라는 것이다. 그것도 교육법도 아닌 보건복지부 관할 시행령을 통해서 말이다.  청와대에서는 무상보육을 교육계와 시민계가 모두 검토하고 찬성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린이 집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에 찬성한 것이지 초중등교육 예산을 뚝 잘라내어 무상보육에 쓰는 것에 찬성한 것이 아니다. 거기에 찬성할 교육계인사, 학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 뭉칫돈의 규모는 경기도의 예를 들면 초··고등학교 운영비와 맞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학교 운영비에 맞먹는 엄청난 예산을 교육감 관할도 아닌 무상보육을 위해 떼어 내라는, 무상보육을 위해 교육파탄을 감수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그러면서 정작 정부는 지방교육재정 교부금을 늘리기는 커녕 10% 가까이 삭감하는 예산안을 편성해 놓았다예산은 줄이면서줄어든 예산에서 관할사업도 아닌 사업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편성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감들이 집단적으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이것은 보수·진보의 문제를 떠나서 교육에 대한 멸시이며 모욕이기 때문이다우리나라 헌법은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그리고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다그런데 대통령 공약사업을 지키자고 교육예산을 뭉터기로 때어 낼 수 있는 시행령을 제정하고,이를 지키라고 교육감들에게 강짜를 놓다니, 이는 교육의 전문성자주성정치적 중립성을 한꺼번에 위반하는 위헌적인 행동인 것이다. 이럴 때 나서라고 교육감이 있는 것이며이럴 때 정부 눈치 보지 말라고 진보교육감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감협의회는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버티던 입장에서 물러나 일단 석달치 무상보육 예산을 편성하기로 하며 백기를 들고 말았다더구나 그 석달치 예산을 지방채를 발행해서즉 빚을 내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석달치를 우선 편성하면 정부가 성의를 봐서 나머지 예산은 국고로 처리할 거라는 기대를 품었던 모양이다그리고 일부 보수교육감의 이탈이 우려되어 그들을 달래기 위해서 한발 물러나기로 했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성의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경제수석의 입을 통해 "무상보육의 경우는 반드시 추진한다고 할 정도로 공약을 여러 차례 한 바 있고법적 의무사항인 만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교육청이 반드시 예산편성을 해야 한다"라며 못을 박았다(관련기사). 즉 국고지원은 한 푼도 없을 것이라는 뜻이며한 발 물러났으니 이제 무릎 꿇으라는 뜻이다.
이제 교육감들 앞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국고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은 동일하지만누리과정 대란을 막아야 한다는 충정에서 의견을 모았다"면서 백기 투항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하지만 그들의 충정은 철저히 무시당했고능멸 당했다교육감들은 마땅히 예산 편성방침을 철회하거나지방채로 충당하는 석 달 이후에는 일체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해야 한다그리고 교육의 자주성을 치졸하게 유린하는 관련 시행령의 폐지를 위한 법적 절차에 들어가는 등 가능한 모든 일을 다 해야 할 것이다그것은 진보’ 교육감이 아니라 일반적인 교육감이라도 마땅히 해야 할 임무다.
일부 보수교육감의 이탈따위는 신경쓰지 말자. 정부에 순종하여 지방교육을 파탄지경에 이르게 한다면, 이거야 말로 보수교육감을 자처하는 자들이 보수도 교육자도 아니며, 다만 기회주의자에 불과함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보육대란을 막겠다고 교육대란을 자초하는 교육감은 더 이상 교육감도 아니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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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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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