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오페라 시리즈 (1) 바스티엥과 바스티엔느

그 동안 미디어 오늘 칼럼 쓰느라 블로그를 등한시했다. 이제 칼럼도 끝나고 다시 블로그를 손볼까 했는데, 교육 관련 포스팅은 이미 나 말고도 훌륭한 분들이 많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영원한 밑천인 오페라 이야기나 할까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나는 클래식 오타쿠(오덕후)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33년 전에는 그랬던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때는 내 방 벽지가 수많은 작곡가 연주자 지휘자의 이름과 계보도로 새까맣게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해 부턴가 그런게 참으로 위선적이고 의미없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듣는다. 몇악장 알레그로 몰토 어쩌구 그러는것도 굳이 알려하지 않고 그냥 작곡가와 작품이름만 기억한다. 연주자, 성악가, 지휘자들도 그냥 80년대때 즐겨 듣던 분들 음반 그냥 듣는다. 특별히 불만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음악을 그렇게 많이 들었으면서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고 또 신기해 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면 음악듣고 뭔가 말로 길게 하는 사람들이다. 청량한 바람이 흐르는듯 하다가 거대한 절벽이 앞을 막아선 듯한 위압감이 느껴지는 연주 어쩌구 하는 그런 말들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말 많이 하는 사람들을 살짝 경멸하기도 한다.

그런 말 많이 하는 사람들이 하이든이나 모차르트를 매우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아마 그런식의 멋들어지고 폼나는 말할 건대기가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중들이 쉽게 듣는 음악을 싫어하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음악이 좋다. 그냥 듣고 좋은게 좋다. 그래서 클래식은 모차르트, 락은 롤링 스톤즈다. 그냥 듣고 좋으면 되니까. 거기에 주절주절 말 붙이는거, 그리고 붙여놓은 말들을 확인해가며 들어야 되는 음악은 질색이다. 그놈의 분석은 음악 말고도 할거 많다. 내가 왜 음악까지 과학적으로 들어야 하나?

여하튼 그런 까닭에 내가 앞으로 쓰는 음악 포스팅은 클래식 덕후님의 그런계통 포스팅과는 매우 다를 것이다. 그냥 소박한 감상 이상을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또 나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악을 클래식이라는 이유로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주로 모티브는 얼마 안되는데 연주시간은 긴 작품을 매우 싫어한다. 베토벤과 브람스는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을 통과했다), 다루게 되는 음악도 매우 한정적일 것이다.

일단 첫번째 시리즈는 모차르트 오페라로 가기로 했다.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음원과 영상중 가장 많은게 모차르트 오페라이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는 없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모차르트 오페라를 관람하기가 쉽지 않다. 자주 안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 오페라는 캐스팅도 어렵고 다른 오페라보다 연습기간도 더 길게 잡아야 하는데, 연주하기 어려운데 비해 막상 듣는 사람들에게는 어렵게 들리지 않아서 (예컨대 테너가 하이 C로 질러대거나 하는 등의) 힘들게 연습한 보람도 없다. 게다가 그의 전성기 오페라들은 아리아 보다는 중창위주로 진행되기 때문에 스타마케팅도 쉽지 않다. (코지 판 투테 같은 오페라를 예로 들면 거의 모든 장면에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다 나오면서 오페라 전체가 사실상 중창으로 이루어지다시피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오페라를 주제로 포스팅하기로 한 까닭은 그는 평생토록 오페라 를 썼고(12세~35세), 자신의 철학, 사상을 오페라를 통해 일관성있게 구현하려 했으며, 그렇게 평생 구현하고자 했던 사상이 보편적인 위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깊은뜻이? 영화 '아마데우스'를 본 사람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영화 속의 모차르트는 타고난 재능 때문에 음악이 술술나오는 하지만 그 외에는 경박하고 이기적인 그런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에는 독일어, 이탈리아어, 영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를 자유로이 구사하고,  어려서부터 루소 사상에 심취했던 진지한 지식인으로서의 모차르트의 모습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의 클래식 덕들은 모차르트를 진지한 고찰 대상으로 거의 여기지 않는다. 덕이 아닌 사람들도 졸지않고 쉽게 들으니 그거 고찰해 봐야 별로 거룩해보이지 않아서일 가능성이 크지만, 모차르트를 '사과를 가지고 노는 어린아이'라고 폄하했던 바그너의 영향도 크다. 덕후들은 바그너를 은근히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한줌의 동기를 가지고 네시간동안 울려대고서는 '유도 동기' , '화성의 혁신'이라고 둘러대는 바그너의 허풍보다는 그 허풍을 재빨리 간파한 니체에게 더 감탄한다. 참고로 히틀러가 좋아했다고 해서 바그너의 음악이 파시즘이란 말이냐 그러는데, 내 귀에는 히틀러가 바그너를 좋아한 것은 우연이 아니며, 히틀러가 소시적에 바그너에 심취하지 않았으면 아마 좀 다른 인물이 되었을 것으로 들린다.

약간의 여담: 쇼팽은 임종시에 자기 곡을 연주해주는 제자들에게 그것 말고 더 좋은 걸로 연주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모차르트 연주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한때 바그너 전도사 역할을 했던 지휘자 구스타프 말러는 말년에 바그너로부터 점점 거리가 멀어졌으며, 임종시 '모차르트'라고 절규하다 눈을 감았다. 그의 제자인 브루노 발터, 다시 발터의 제자인 카를 뵘이 불세출의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말러 교향곡이 뒤로 갈수록 나팔들의 난리굿질에서 목관악기의 속삭임으로 바뀌어 간것도 우연이 아니다.

결론. 모차르트는 무엇을 표현할 것인가를 매우 심각하게 고민한 진지한 예술가였다. 다만 그것을 누구도 쉽게 다가갈수 있는 그 시대의 음악 언어로 표현하려 했다(그는 파격적 화성이나 형식파괴를 좋아하지 않았다) . 그의 이런 기질은 그가 쓴 편지들을 보아도 확인된다. 그는 매우 편안하고 단순한 문장으로 편지를 썼는데, 정작 그 내용과 주제는 심각한 경우가 많았다. 예컨대 누나에게 아버지를 버리고 가출해서 같이 활동하자는 내용의 편지 같은 경우.  하지만 어디에도 사치, 향락, 허풍, 경박함 등이 느껴지는 내용은 없다. 심지어 천재 예술가들이 흔히 저지르곤 하는 화려한 여성편력조차 없다.

그는 다만 작곡기능만을 가지고 있었던 장인이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일단 희가극이란 타이틀을 달고는 있으나 결코 웃을수만은 없는 그의 오페라 부파들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수 없다. 작가가 쓴 리브레토(대본)에 곡을 붙인 것 뿐이라고? 프랑스 혁명을 몇 해 앞두고 종놈들이 단합해서 백작을 골탕먹이고 조롱하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황실 극장에서 공연하자는 생각을 까르르 거리는 경박한 장인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더 나아가 귀족을 떄려 잡자고 농노들이 무장하고 봉기하는(비록 실패하지만) 장면과 스토리와 아무 상관없이 모든 등장인물들이 장엄하게 '자유 만세'라는 합창을 불러대는 '돈 지오반니'는? 당시 황제가 계몽군주를 자처하던 요제프 황제여서 망정이지, 그 황제가 붕어하자 대본을 썼던 다 폰테는 그야말로 '자유의 땅' 미국으로 망명을 가야 했다.

그가 오페라에 그토록 천착했던 이유도 바로 스토리가 있는 장르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귀족들이 좋아하던 고대 그리스-로마 이야기를 멜로드라마화 한 정가극(오페라 세리아: 진지해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도 통속적인)도 아니고, 평민들이 좋아하던 부자나 늙은이를 약올리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희가극(오페라 부파: 그야말로 웃고 마는)도 아닌, 그 시대의 삶과 아픔과 목소리가 담긴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십대 초반부터 눈을 감기 직전까지 그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 '타락한 사회를 극복하는 자연의 힘, 그리고 그 단초가 되는 초월적이고 자기회생적인사랑' 을 설파하는 이야기.

이는 그의 첫번째 오페라인 '바스티엥과 바스티엔느'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그가 13살때 작곡한 이 작은 오페라는 오늘날 전문 극단에 의해 공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각종 아마츄어, 실험무대 등에서는 아직도 매우 활발하게 공연되는 작품이다. 다만 13세 소년이 썼기 때문에 신기한 맛에 듣고 보는 그런 작품이 아닌 것이다.

이 작품의 내용은 일종의  알레고리다.  자연의 아들 바스티엥이 도시의 문명에 이끌려 떠나갔다가 다시 자연을 상징하는 바스티엔느에게로 돌아오는 내용이다. 이것을 바스티엥이 화려한 도시 여자에게 유혹되어 떠나가고 시골처냐 바스티엔느가 탄식하고 마법사 콜라가 이들을 다시 재결합시키는 간단한 스토리로 표현하고 있다.

동화적인 내용이지만 가벼운 주제는 아니며, 음악도 얼핏 들으면 동요처럼 들리지만 결코 부르기 쉽지 않다. 아래 링크된 동영상은 큰 무대 나가기 전의 성악가들의 무대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퀸시티 실내 오페라단의 공연실황이다. 뮤지컬로 치면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 해당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악가들의 기량은 대단함이 느껴진다. 다만 오케스트라의 꺽꺽거리는 소리와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다만 코믹한 소품이나 동작에만 큰소리로 웃어대는 몇몇 관중들의 소음이 거슬린다.

공연 동영상 보기

자연의 아들 운운할때 이미 느낄수 있지만 이 작품은 장 자크 루소의 오페라  '마을의 점장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 루소의 음원도 링크해 둔다. 혹시 그 루소 아니냐고? 그 루소 맞다. 그런데 이걸 들어보면 루소가 어째서 작곡가가 아니라 철학자가 되었는지 알수 있다. 루소가 음악가로 실패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프랑스 혁명 대신 형편없는 오페라 몇 개를 더 얻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냥 시간 아주 많을떄 들어보기 바란다. 어쨌든 이렇게 모차르트는 어린 나이에 루소의 텍스트를 만났고, 이후 루소 사상에 깊이 빠져들었다. 사실 그의 아버지도 루소 예찬자였다.
장자크루소 마을의 점장이
1700년대 후반에 루소에 심취했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아마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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