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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새정연의 무능을 심판할만큼 유능하지 않다. 이 나라는 교육 없이는 어떤 사회 변혁도 불가능하다.

나를 국개론자로 비난해도 상관없다. 솔직히 나는 국개론자 맞다. 사실 나는 대중을 믿으라, 대중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라, 대중이 무기력한 야권을 심판했다 따위의 말을 하는 운동가들을 혐오한다. 정치가들은 립서비스로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명색이 운동가라면 그런 순진한 환상에 빠지면 안된다.

우리나라 국민들의 평균 수준은 매우 낮다. 타고난 지적능력이야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문해력이 매우 떨어지며, 토론을 통해 합의에 이른다거나 갈등을 관리하는 능력은 전무에 가깝다. 주어진 자료를 냉철하게 분석하여 진위를 가리는 일 따위는 아예 기대도 못한다.

당장 대중예술 수준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대중(!)' 드라마로 분류되는 것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한 지적수준이 요구되는 드라마로 둔갑된다. 영국에선 길거리 양아치도 보고이해할수 있는 닥터후의 서사구조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의 문해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 성인의 절반이다. 이른바 K팝은 또 어떤가? 세계에서 가장 저열한 수준의 가사를 자랑하는 노래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 이상의 함축, 즉 시적 성격을 가진 가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이 정도로 저열한 수준의 문해력을 자랑하는 국민들이 득실거리는 나라는 우리나라 말고는 중국 정도가 있을 것이다. 

저열한 문해력을 가진 사람들은 교묘한 상징조작에 쉽게 넘어간다. 상징조작 중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괴벨스가 말한 "거짓말도 천번하면 진실이 된다."라는 수법이다. 새누리당, 그리고 종편은 이것을 너무 잘 알고 활용하고 있다. 뻔뻔하게 적반하장을 하더라도 한번이 아니라 세번 네번 계속하면 어느새 그들은 별 잘못을 하지 않은 자들로 둔갑해 있는 것이다.

이미 19세기에도 마르크스는 프랑스 2월혁명 이후 프랑스 민중이 루이 보나파르트의 선동정치에 민중들이 홀랑넘어가 도로 황제정이라는 코메디를 만들어낼때  "나폴레옹은 민중들의 주문이고, 군가는 그들의 행진곡이었다."라고 자조한 적이 있다.

못배운 사람들 만명이 모이면 현명해진다는 생각은 버리자. 어느정도 배운 사람들 만명이 모여야 현명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수천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으로서의 훌륭함과 시민으로서의 훌륭함은 별개의 것이라고 역설했던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훌륭함은 타락하지 않도록 본성을 잘 길러주면 될일이지만, 시민으로서의 훌륭함은 의식적으로 가르치고 훈련해야 갖출수 있는 자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런 교육이 있었나?

우리는 항상 공교육이 망가졌다. 입시교육때문에 시민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럼 생각해보자. 이렇게 제대로 되지 못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나이가 스무살 서른살이 되면 갑자기 현명한 시민으로 둔갑이라도 한단 말인가?

결국 답은 야당이 유능해지건 더 투쟁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전반적으로 더 유능해지고 유식해지고 사려깊어지는 것이다. 이는 교육의 문제이다. 비단 초중등 교육이 아니라 평생교육의 문제다.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조금씩 조금씩 눈을 뜨게 만드는 끈질긴 브나르도 운동이 필요하단 뜻이다.  만약 이럴때 전교조가 여전히 "참교육의 상징"으로 남아있었다면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 하지만 진보진영은 전교조를 노동단체의 물주로, 그리고 민주노총의 한낱 집회동원기, 거수기로 소모시키고 말았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87년 6월항쟁은 그 무지한 국민들이 어떻게 일으켰느냐고? 명심하자. 4.19도 87년 6월도 실제 참가한 사람들은 국민의 1/10도 안된다. 87년 6월만 하더라도 대학생과 화이트칼라들이 주도했다. 다만 그 시절에는 대학생, 지식인, 화이트칼라에 대한 어느정도의 권위가 있었다. 즉 못배운 사람들이 배운 사람들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김대중의 '신지식인' 담론과 더불어 수십년 학문을 연구한 학자는 한낱 심형래 나부랭이만도 못한 인물로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배움을 경멸하고 하찮게 여기는 풍토가 만연했으며, 여기에 "빡세게"만 강조하는 경기동부스러운 운동 풍조까지 단단히 안 몫했다. 그 결과 2015년 대한민국의 국민은 1987년의 국민보다 훨씬 더 저열하고 단순한 지적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당장 30년 전에 널리 읽힌 책, 널리 불리운 노래가사만 살펴봐도 답이 나온다.

그러니 관건은 교육이다. 지금 당장 재보선은 이럴지 몰라도 시간은 결코 새누리당 편이 아니다. 새누리당의 지지자는 해마다 30만명씩 자연감소하고 있다. 고령층에 의존하는 정당은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다. 지금의 40대가 50대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보수화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저들이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하려고 하며, 교육예산을 감축하여 전반적인 초중등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려 하는 것이다.  즉 무식한 국민으로 키우려는 것이다. 

자, 그러니 야당에게 유능해져라 투쟁적이되라 요구하지 말자. 무식한 국민에게는 유능함을 입증할 수 없다. 다만 감각적이고 말초적인 광고카피같은 속임수만이 통할 뿐이다. 무식한 국민에게는 투쟁적이 되어봐야 소용없다. 먹고사니즘에 빠지고 연예인에 빠져사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가 다 무엇이고, 국격이 다 무엇이고, 세월호가 다 무엇인가?

그러니 국민이, 사회가 전반적으로 유식해지고 탐구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일은 자연적으로 일어나지 않으며 반드시 교육을 거쳐야 하며, 10대라는 결정적인 시기를 놓치면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니 이 나라에 희망을 찾아야 한다면 그 희망은 유식한 국민을 길러야 할 의롭고 진실한 교육자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에서의 교육을 수행하는 예술가들에게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힘을 싣고 그들이 연대하게 하자.  그리고 그들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자.  만약 여기에 내 힘이 필요하다면, 나는 나의 미력한 힘이나마 기꺼이 보탤것이며, 전교조 위원장을 민주노총 사무실 지키는 호위병으로나 써먹는 그따위 사고방식과 결연히 투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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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