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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와 비주류에 대하여(1) 현대음악

최근 페친들을 중심으로 주류/비주류 논란이 있었다.  그 중 한 존경할만한 작곡가가 토로한 현대음악의 수용과 관련한 고민 덕분에 클래식, 재즈,대중음악, 더 나아가서 클래식에서 다시 현대음악 등으로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나는 음악가도 아니고 다만 한 사람의 딜레탕트에 불과하지만 이런 언어적인 혼란이 발생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철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서 뭔가 정리해보고픈 욕구를 느낀다. 그 중 '현대음악'이라는 말의 의미부터 매우 곤혹스럽다.


문자 그대로 뜻을 풀면  현대음악은 '오늘날의 음악'이지만, 이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현대음악가들 중 비교적 젊은(?) 축인 쇼스타코비치 조차 벌써 100년 전 사람이다.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같은 작곡가는 19세기때 성장한 사람들이다. 이 정도면 하이든 시대 사람들이 비발디 바라보는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현대라는 말이 어색하다.  여기에 블루스, 재즈, 록 등을 집어 넣으면 더 복잡해진다. 이러한 것들 역시 오늘날의 음악 아니겠는가? 하지만 재즈, 록 따위를 현대음악이라 부르지는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라는 장르 중 20세기 이후의 음악이라고 불러볼수 있을까?하지만 이렇게 될 경우 '클래식 음악'이 대체 무엇이냐는 고약한 물음에 직면하게 된다. 서양의 진지한 음악이라고 둘러갈수도 있겠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한 슈트라우스, 오펜바흐, 레하르의 음악을 '클래식'이라는 장르에 넣는다(나는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그런 식이면 쇤베르크가 생계를 위해 썼던 수많은 딴따라 음악들도 다 클래식인가?). 

또 라흐마니노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막스 레거, 레스피기, 쇤베르크, 스트라빈스키, 베베른, 바르토크 등이 다 같은 시대 음악가라는 또 다른 곤란한 상황이 발생한다. 뒤의 네사람의 작품을 들려주면 누구나 "현대음악"이라고 말하겠지만, 앞의 네사람의 작품을 들려주면 십중팔구 '로맨틱' 음악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합의 가능한 정의는 조성음악의 지배에서 벗어난 시점을 기준으로 그 이전을 고전주의 음악으로 이후를 현대음악으로 분류하는 거다. 바로크-로코코-빈고전파-낭만주의를 하나로 퉁치는게 무모한 것 같지만 그래도 이들간의 차이점 보다는 이들과 무조음악이 차이점이 훨씬 크다.

 여기서 무조음악이란 조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나름의 조는 있다. 하지만 그 조는 장조, 단조와 무관하다. 기존 음악에는 모두 24의 조가 있지만 아무리 검정 건반을 많이 눌러도 어쨌든 장조, 단조 중 하나다. 현대음악은 바로 이 장조, 단조(장음계, 단음계)에 개의치 않고 자유로이 작곡하거나 아예 새로운 음계(음렬)를 만들어서 작곡하는 일체의 시도를 포괄한다. 이때 장조, 단조를 여러 선택가능한 음렬 중 하나로 보느냐 마느냐를 놓고 프로코피에프와 쇼스타코비치가 논란을 벌리다 죽을때까지 서로 원수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여기서 이른바 현대음악의 난해함의 원인이 나타난다. 사실 현대음악은 난해하지 않다. 다만 듣기에 어려울 뿐이다.  난해하지 않은데 듣기에 어렵다? 이게 무슨 헛소리인가 싶겠지만, 사실 음악에서 하나의 음렬은 일종의 언어에 해당된다. 우리가 어릴때 부터 몸에 익힌 언어로는 꽤 어려운 책도, 심지어 비유와 상징이 가득한 책도 술술 읽지만 난생 처음 보는 언어로 된 책은 '나는 학생입니다. 너는 선생입니까?' 수준의 문장도 어렵다.


우리가 20세기 이전 음악을 보다 편하게 들을수 있는 까닭도 그 음악들이 더 쉬워서가 아니라  장조와 단조라는 두개의 음렬, 즉 두 언어가 이미 충분히 몸과 귀에 익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전음악을 들을때는 음렬의 규칙이 뭔지 알아내는 수고를 들이지 않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선율적 표현과 화성의 변화를 즐기면 된다. 


그런데 장조, 단조를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현대음악은 말하자면 의도적으로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는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무조음악이라고 해서 아무 소리나 닥치는대로 내는게 아니다. 그건 음악이 아니니까. 장음계, 단음계 대신 작곡자가 나름의 음렬을 세운 뒤 이를 기반으로 곡을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청중들 입장에서는 그가 수립한 음렬에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다. 그 음렬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일반인은 물론 음악 전문가들조차 현대음악 작품의 전세계 초연에서 그 음악을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피아노나 악기 공부할때 그 공포의 스케일 연습을 떠올려 보라. 그렇게 수도없이 연습하면서 장조와 단조라는 음렬이 몸에 익어가는 것이다). 


장조와 단조에만 치우친 음악교육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릴때 부터 장조, 단조에 완전히 몸과 귀가 굳어지게 만들어서 다양한 음악을 수용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든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물론 장조 단조 외의  다른 음렬들도 충실히 익힐만한 가치가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하지만 어떤 음렬? 예를 들면 쇤베르크 악파와 그 후예들은 장조와 단조를 넘어선  쇤베르크 조 따위를 만든게 아니다.  막말로 작곡가가 100명이면 100개의 음렬이 나올수도 있다. 100명의 시인이 100개국 언어로 시를 읊어대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음렬을 이용해 작곡하는 교육은 오히려 쉽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름의 음렬을 가지고 작곡한 작품을 듣고 이해하는 건 훨씬 어렵다. 나야 내가 만든 음렬을 잘 알지만, 남이 만든 음렬을 음계 연주도 아니고, 마구 뒤섞여 만들어진 작품을 들으면서 그 속에서 찾아내기란 매우 어렵다. 하물며 장,단조처럼 익숙해지기란 더욱 그렇다. 


쇤베르크는 의외로 고전적인 사람이라 이런 개같은 상황은 전혀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작곡기법은 장조와 단조의 3화음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 즉 모티브가 매우 괴랄하게 만들어질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고전적이다. 즉 언어는 "애뱌2게쳐ㅐ"라는 난생 처음 듣는 나라 말일지라도, 그 언어를 구성하는 방식만큼은 체계적이고 구조적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귀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니 귀보다는 악보를 보는 쪽이 더 빠르다. 악보를 보면 아, 이 사람이 이렇게 4음, 4음, 4음 선택했구나. 아 이 사람은 이걸 나름 3화음에 해당되는 하음으로 설정하고, 여기서 전위도 시키구 그러는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그렇게 파고 들어가면 이른바 현대음악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동기를 발전시키고 구성하는 과정을 하이든과 베베른을 비교해 보라. 당연히 하이든히 백배 더 복잡하다. 하지만 그게 귀에 들리려면? 게다가 그렇게 간신히 그 음렬을 이해하고 들을수 있게 되어도, 그게 과연 "좋으냐"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물론 바르토크니 프로코피에프가 사망한지도 반세기가 넘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러나 반 세기 정도는 하나의 괴랄한 언어가 익숙해지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다. 게다가 장조, 단조라는 기존의 음렬은(음계라는 용어대신 음렬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는 것은 상대화를 위해서다) 누군가가 그냥 만든게 아니라 인간에게 가장 잘 먹히는 음렬들이 치열한 생존경쟁 끝에 살아남은 진화의 결과물이다. 익숙한 언어를 버리고 작가마다 다를 수도 있는 인위적인 언어를 통해서만 작품을 감상하라는 요구가  다만 작가 자신의 창조의 욕구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청중들은  "넌 그렇게 마음대로 쓰삼. 난 안들음"이렇게 되어버리기 쉽다. 심지어 오늘날의 작곡가들은 12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미분음까지 포함한 음렬을 세우려고 한다. 혹은 (이건 내 생각이지만) 음의 높낮이뿐 아니라 음색이나 음의 강약까지를 포괄한 하나의 단위를 수립하고 이 단위들의 배열을 새로운 음렬로 삼을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경우에나 기존의 언어 대신 새로운 언어를 사용한다면 1)왜 이 언어를 사용하는지의 정당성 2) 이 언어에 익숙해지기 위한 충분한 시간과 연습 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1)은 치열한 토론과 논란 속에서 획득하는 것이고, 2)는 그 논란에서 승리한 작품들이 서서히 퍼져나가면서 획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른바 현대음악을 작곡하는 분들은 텅 빈 청중석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현대음악은 기본적으로 1)을 획득하기 위해 콘서트 홀이 아니라 강의실 혹은 강의실과 같은 분위기에서 연주되는 음악이다. 그렇다고 너무 낙담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강의실에서 들려진(혹은 악보로 보여진: 이게 더 빠르다) 음악의 영향이 돌고 돌고 돌아서 은연중에 대중과 직접 만나는 음악에 어떻게든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는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대중이 쉽게 볼수 있는 책을 쓰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미친듯이 어려운 책을 쓰는 학자도 있다. 아인슈타인은  "당신 책을 세계에서 몇명이나 이해하겠느냐?"는 질문에 "한 세명 쯤?"이라고 대답했고, 그러자 질문자가 "나 말고 다른 하나가 누구지?"라고 반문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하지만 단 세명만이 이해하더라도 그 세명이 누군가에게 그들 수준으로 말하고, 또 그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그들 수준으로 말하다 보면 여섯 다리만 건너도 전체 인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다 써 놓고 나니 그냥 개소리다. 어쨌든 다음 주제는 '주류 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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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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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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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