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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베레스트' 감상기 버전 1: 등반가의 관점에서

영화 '에베레스트'는 전형적인 산악영화가 아니다. 산악영화라는 장르의 특징인 불굴의 인간의지 혹은 재난 속에서 꽃피는 인간애 따위는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 영화는 공포영화에 가깝다. 그럼 그 공포의 주인공은? 바로 에베레스트 산이며, 자연이다. 그리고 이 잔혹한 살인마는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공포스러운 아름다움.

고산에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이제 하나의 관행이 되어버렸다. 물론 근대 등반의 개척자인 조지 말로리는 그런 질문이 짜증나서 퉁명스럽게 "산이 거기 있어서"라고 대답했고,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자인 에드먼드 힐러리(미국 정치가와 아무 상관 없음)는 "그런거 질문하는 사람들을 피하려고"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등반가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

이 영화에서 비극의 씨앗이 된 인물은 "그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는데 가서 보지 않으면 죄악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하면서 일행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생환한 한 등반가는(이름을 말하면 스포일이 되니) "산에 오르지 않으면 치유되지 않는 어두움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둘을 합치면 뭐가 될까? 그것은 바로 중독이다. 아름다움에 중독된 것이다. 치명적인 아름다움.

이미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이 가진 치명적인 중독성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세이렌(사이렌)신화로 표현하였다. 세이렌이 선원들을 유혹하여 끝내 목숨까지 버리게 만드는 힘은 다름아닌 노래다. 여러 미술작품에서는 세이렌을 미모의 인어나 요정으로 표현하지만, 실제 신화에서 세이렌의 외모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선원들은 욕정에 이끌리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에의 유혹에 이끌리면서 파멸한다. 프로이트의 용어를 빌리면 아름다움에의 추구, 즉 에로스는 자기보존의 원리, 경제원리마저 초월한다. 그리고 아도르노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예술만이 철저한 자기보존 원리의 지배하에 있는 자본주의를 벗어날 단초라고 주장하였다. 

참, 어려운 질문이다. 단 한순간이라도 이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죽는 것과, 이 아름다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오직 자기보존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 이 중 어느 것이 더 행복한 삶일까? 물론 사람들은 말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죽는게 더 멋지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고, 그 길을 선택할 경우 결국 시간의 문제일뿐 자기 파괴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자기파멸의 과정을 어떤 동정심도 감동도 없이 냉정하게 보여준다.  키가 8848미터나 되는 거대한 세이렌은 참으로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취하려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응징을 가한다. 이 응징 앞에서 사람들은 참으로 무력하고 미약하며 철저하게 파괴되며, 이 영화는 그 과정을 너무도 냉정하게 재현하여 보는 사람을 공포에 질리게 만든다.

그 파괴는 목숨을 잃는 것 정도가 아니다. 살아남은 사람 역시 파괴된다.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은 결국 인간성, 인간애가 파괴되는 경험을 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산악영화 장르에서 나타나는 위대한 인간승리,  고결한 인간애 이딴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른바 데드존이라 불리는 해발 8천미터 이상 구간에서(경우에 따라 7500미터 이상도) 는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는 동료는 산채로 버려지는 수 밖에 없다. 그를 구하려 했다가는 결국 자신의 생명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잔인한 역설이다. 자기보존 원리에 철저했다면 애초에 그곳에 오르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일단 오르게 되면 지상보다 몇곱절 더 철저한 자기보존 원리에 따라 행동하며, 그 과정에서 이기성의 극한까지 발휘하는 곳이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이 세이렌의 아름다움은 두번 보여지면서 이른바 수미쌍괄 형식을 취한다. 첫번째는 원정대가 베이스켐프를 향해 가는 트레킹 구간(영화에서는 트레킹을 훈련이라고 번역해서 아주 뜻이 이상해졌다. 하긴 아이스폴을 빙벽이라고 번역한 것도. 차라리 빙하폭포라고 하던가)에서 바라볼때 초원 너머로 나타난다. 초원 너머로 보이는 하얀 봉우리들은 과연 신들이 살것 같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두번째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요한 모습으로 세상을 굽어보는 마지막 장면에서 나타난다. 이때 그 아름다움은 공포 그 자체다. 그런 잔혹한 파멸이 있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기에 더욱 공포스럽다. 게다가 나 역시 산에 미쳤던 리즈시절이 있었기에 더욱 소름끼친다.

그 시절 나는  통 속의 물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인 영하 24도의 추위 속에 뺨을 두드리는 눈알갱이에 맞아가며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걸어가는 일을 즐겼다.  그런 추위 속에서 눈밭을 다지고 몸 하나 겨우 들어갈 작은 텐트속에서 침낭하나 의지하고(아무런 난방도구 없음) 밤을 지새우기도 일쑤였다(잠을 잔다기 보단 그야말로 밤을 지새운다). 

그러나 그렇게 밤을 보내고 맞이하는 아침 태양의 그 찬란함, 그리고 온통 하얗게 반짝이는 능선과 봉우리들이 펼치는 아름다움은 주기적으로 주입하지 않으면 금단현상에 몸부림을 치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았다.  그 추위속에서 웅크리고 밤을 지새느라 온통 굳어버린 관절들이 하나하나 녹아내리고 세포 하나하나까지 햇빛을 받아 깨어나는 듯한 느낌은 이런 글줄로는 절대 전달할 수 없다. 

즉 산에서 극한의 경험을 하려는 사람들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것이 아니다. 자연 속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것이다. 살아있고 깨어있다는 기쁨을 즐기려는 것이다. 그것은 지루한 반복만을 계속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는 절대 느낄수 없는 것이다.(베르그손에 따르면 반복=죽음이다).

문제는 그 아름다움은 중독성이 강해서 점점 더 강한 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과 경험이 늘어날수록 과거에는 극한의 경험을 주었던 산이 편안한 하이킹 코스로 바뀌게 된다. 즉 반복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향상되고 경험이 늘어나도 절대 쉬워지지 않는 곳, 절대로 익숙해진 기술과 경험의 반복이 통하지 않는 곳이 바로 해발 8000미터 이상의 이른바 죽음의 지대다. 이는 산소가 지상의 30% 밖에 안되는 그 구역에서는 특별히 위험한 일을 겪지 않더라도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해도 사흘이면 죽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아도 소용없다.  

그런 곳을 자꾸 찾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불을 찾아드는 불나방? 그런데 80년대때 대학생들은 자신들을 불나방에 비유했다. 고문과 투옥, 심지어 의문사까지 흔하던 시절, 그 위험을 무릅쓰고 민주화운동에 투신한다는 것은 자기보존 원리 따위는 무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는 민주주의라는 혹은 민중이라는 대의와 가치를 위해 불나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은 실존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올바른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짜릿함과 이를 통한 살아있음에의 자각, 그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을까?

자꾸 생각이 길어져서 안되겠다. 여기까지만 쓰고 급 마무리 한다.
결론: 에베레스트는 호러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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