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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야구와 프로야구, 그리고 학교

프로야구 시즌이 한창 막바지다. 리그가 출범 35년째를 맞이한 우리나라 프로야구 수준은 엄청나게 향상되었다. 초창기에는  일본리그의 퇴물선수가 휩쓸 정도의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메이저리그 유명선수들이 즐비한 나라들을 격파하고 세계 정상권을 두드려볼 정도까지 올라왔다. 

이렇게 우리나라 프로야구 수준이 몇단계 올라서게된 결정적인 공로자 중 한 사람으로 이광환 전 LG감독을 꼽는다. 그가 도입한 분업야구가 우리나라 야구를 주먹구구 동네야구에서 진정한 프로야구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당시 그가 도입한 분업야구라는 것은 요즘 관점에서 보면 별 대단한 것이 아니다. 선발투수의 5일 간격 로테이션, 선발투수, 중간계투(승리조, 추격조), 마무리 투수의 역할분담이 바로 그것이다. 요즘에야 상식이지만 당시로선 파격이었다. 다음경기 선발투수가 마무리로 등판하고, 6회나 7회부터 마무리 투수가 나와서 3-4회씩 던지고, 에이스 투수는 선발, 계투,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등판하는 일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이렇게 주먹구구로 팀을 운영하다 보니 선수들의 생명도 짧았다.

 요즘에는 서른살 정도는 되어야 베테랑 선수 대접을 받지만, 김시진, 최동원, 이상윤, 이상군 등 80년대 명투수들은 하나같이 서른살이 되면서 사실상 선수 경력을 끝내고 말았다. 

그러나 분업야구가 도입되면서  적어도 프로야구에서는 에이스급 투수는 1선발 혹은 마무리 중 하나만 담당하고, 나머지 상황에서는 성에 안차더라도 다른 투수들이 나름의 특기를 살려가며 적절히 등판하는 것이 기본이 되었다. 에이스급 선수가 팀의 거의 모든 투구를 책임지는 그런 야구는 이제 고교야구에서조차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30년이 지나면서 야구도 발전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달라진게 없는 곳이 바로 학교다. 학교라는 경기장에는 교과수업과 학급지도를  담당하는 교사,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직원, 그리고 학교 전체의 업무를 관리하고 관장하는 교장, 교감이라는 선수들이 있다. 그런데 아직도 학교에서 교사들은 수업과 학급지도에만 전념할수 없다. 행정사무를 맡아서 담당하기도 하고, 학급이나 교과의 범위를 넘어서는 학교 관리업무를 당당하여 수행하기도 한다. 야구에 비유하자면 투수가 선발, 마무리 가리지 않고 던지는 것은 물론 유니폼 빨래, 장비관리 및 구입, 경기장 확보, 경기일정 관리 등의 일까지 모두 도맡아서 하는 수준이다. 

과거 주먹구구로 운영되던 야구팀에서는 이런 잡무를 주로 신참선수나 경력이 짧은 선수들이 도맡아서 했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 역시 이런 교육 외적인 업무들을 신규 교사나 저경력 교사에게 전가하고 있다. 가장 프로페셔널해야 할 공교육기관이 마치 동네야구처럼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 교육을 20세기 교실에서 19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식으로 비하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나라 학교의 시설은 미국이나 유럽을 능가하는 최첨단 수준이다. 교사 역시 미국이나 유럽이 따라오기 어려울 정도로 우수한 인재들이 모여있다. 문제는 학교나 교사가 아니라 학교 운영방식인 것이다. 21세기 교실에, 21세기 교사들을 모아놓고 19세기 방식으로 운영한다면 당연히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다. 

최고의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더라도, 팀 운영이 동네야구 방식이면 경기력은 물론 선수 생명도 짧아지는 것고 마찬가지다. 최고의 학생들과 최고의 교사들이 모아놓고 역할분담마저 제대로 안된 주먹구구로 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니 학생은 불행하고 교사는 교직을 선택한 것을 후회할수 밖에 없다.

교육 혁신. 별거 없다. 학교 구성원들이 먼저 자기 본연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자. 교사가 교육에만 집중할 경우 교장, 교감, 직원의 행정부담이 늘어난다면 직원을 더 채용하거나 업무를 줄여야 한다. 선수들의 역할분담이 정착된 다음에야 이런저런 전략과 전술이 빛을 발하듯, 학교 구성원들의 역할분담이 정착된 다음에야 이런 저런 교육개혁도 빛을 발할수 있을 것이다.

잘 읽으셨고, 제가 계속 글을 쓰는게 쓸모있다 여긴다면, 다음 링크를 클릭해서 저의 저서들을 살펴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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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