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논란을 보며: 교육 문제에 비전문가는 제발 좀 빠져라. 특히 정치 세력은

우리나라는 전문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뭔 일만 생기면 너도 나도 달려들어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이러다 보면 전문성이 높은 사람의 주장이 아니라 목소리 큰 사람, 즉 깽판치고 꼬장부리는 사람의 주장이 진실로 둔갑한다.

의료, 경제, 그리고 교육이 그렇다. 작금의 국정교과서 논란도 바로 이런 비전문가들의 깽판의 하일라이트다.

우선 교과서라는 말 부터 틀렸다. 정식 명칭은 교과용 도서다. 다만 오랫동안 교과서라는 말을 써왔으니 그냥 그렇게 쓰도록 하자. 그런데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교과서라는 절대적인 교본, 교사가 거기서 한 글자라도 벗어나면 문제가 되는 그런 교과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교과서는 교과용 도서에 불과하며, 교사는 교육과정의 목표 달성을 위해 교과서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지리 영역은 교과서를 많이 활용하지만, 정치, 경제 영역은 중학생이 교과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보충자료를 제작해서 수업에 활용한다.

따라서 수업하는 입장에서는 교과서가 국정이건 검인정이건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교육과정이지 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가 아니라 초국정교과서라 하더라도 교육과정상의 성취수준과 내용요소 안에서 기술되어야지 그것을 벗어나면 안되며, 만약 벗어났다면 교사 수준에서 수업시간에 배제되어도 할 말이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 교육과정은 다양한 "성취수준"들로 구성된 역량중심교육과정이다. 즉 "이런저런 내용을 가르쳐라"라고 가르칠 내용을 하나하나 규정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능력을 갖추게 하라." 성취수준의 집합이며, 가르칠 내용(내용요소)들은 그 능력을 갖추게 하는데 활용될 재료에 불과하게 되어 있다. 즉 교사는 내용요소들을 적절히 취사선택하여 그 교과가 목표로 하는 성취수준을 달성하는데 가장 효과적이게끔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의무(!)를 갖게 된다(물론 이렇게 안하고 교과서대로 따라가는 게으른 교사가 많은게 함정).

따라서 중요한 것은 교과서를 누가 썼느냐, 국정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교육과정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느냐다. 그리고 나는 우리나라 교육과정이 5.16, 유신을 미화하고 5.18을 비하할 정도로 퇴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국정교과서라 할지라도 5.16은 쿠데타로 기술하던가 아니면 아예 언급을 얼버무리지, 5.16을 구국의 결단 어쩌구 따위로 쓰지 못하고,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치된 상황이니 인권이나 자유를 제한해도 된다 따위의 헛소리는 쓸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썼다면 교육과정 위반이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무시 당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과정이 종북 좌파 교육과정이라고?  안타깝게도 현재 교과서에 기반이 되는 교육과정은 노무현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때 교육과정이다.  우리나라 자칭 보수세력은 "전 정권" 탓 좀 그만하고, 또 전 정권이 노무현 정권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 새누리당 정권이라는 것도 좀 상기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왜 그따위 좌파 종북 교육과정을 승인했을까?
 이승만 독재, 5.16 쿠데타, 유신 독재, 4.19. 5.18, 6.10 민주화 운동, 이건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이나 모두 동의할 수 밖에 없는 즉 우리 사회가 합의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틈날때 마다 자신이 "유신독재에 항거해서 싸워봐서 아는데" 라고 자랑했던 것을 생각해 보라. 이명박조차 유신에 맞서 싸웠던 것을 자랑하지 반성하지 않았다. 이재오, 김문수 등등 새누리당에 즐비한 반유신 투사 출신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오해해서 감히 맞섰습니다. 반성합니다."라고 하는 거 본적 있는가? 

게다가 교과서는 "교과서적"이다. 교과서를 집필할때는 어디에서도 태클 걸리지 않는 무난한 내용만 집어넣는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내용은 절대 교과서에 수록될수 없다. 따라서 현재 중고등학교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는 모두 이명박 정부가 고시한 교육과정에 따른 내용을 가장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방식으로 수록한 것들이다.

그런데 한국사 교과서가 왜  논란이 되었냐고? 누가 논란을 걸었나 보라. 논란을 건 사람들 중 역사학 전공자, 특히 근현대사 전공자가 있나 보라. 없다. 즉 학계에서는 이미 합의가 끝난 확정적 사실을 일부 우익 정파세력들이 "비전문적 이념"에 사로잡혀서 따지고 든 것이다. 이 사회에서 합의된 사실들을 한 줌의 이념집단이 자신들의 이념의 잣대로 평가하여 멋대로 "종북"딱지를 붙인 것이다. 

애초에  교육당국이 "헌법에서 보장된 교육의 전문성,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의 권리"를 내세워 이런 이념적인 교육침해를 단호하게 막았다면 이정도로 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흔들리면서 이 논란이 커지고 말았다. "아버지의 책임을 딸이 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당신의 아버지는 틀림없는 독재자다."라고 말할 기개도 없고, 반대로  차마 "박정희는 사실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이다. 그를 비난하는 자들은 모두 빨갱이다."라고 말할 염치도 없어서 눈치만 보던 교육부 장관(당시 서남수)이 한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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