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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적 대중 동원을 원하는 BH, 그러나 현실은 코메디

요즘  새누리당 진영에서 파시즘 동원을 시도하고 있다는 기운이 확 온다.  그러나 그게 잘 되지 않고 오히려 코메디가 되고 있다.

파시즘이 융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재료가 될 무차별적 대중이 필요하다. 이들은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의 썩은 부산물"들이며, 이 보다 완화된 아렌트 표현에 따르면 "계급에조차 소속되지 못한 고립된 사람들"이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어서 노동조합조차 들어가지 못하고, 가족도 무너지고 시민사회도 없는 나라에서 이들이 소속감을 느낄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바로 "나의 조국"이다. 가진것 하나 없는 이들의 마지막 존엄은 "~ 나라 국민"이라는 사실 하나 뿐이다.
이 존엄이 유지되려면 반드시 필요한 것이 경멸과 증오의 대상이 되는 다른 나라나 민족이다. 즉 저 쓰레기 같은 ",,,나라"놈들과 달리 나는 위대한 "~나라 국민"인 것이다.  물론 이들은 대체로 무식한 계층이기 때문에 위대한 나라 국민이라는 자부심은 간단하고 감성적인 상징을 통해 이루어진다. 국가 상징에 대한 숭배, 과장된 역사책, 그리고 적에 대한 증오심을 복돋는 선동물 등이 그 도구로 사용된다.
그 다음 타겟은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감히 위대한 나의 조국을 객관성이라는 미명하에 깎아 내리려 들고, 위대한 나의 조국의 거룩한 지도자를 민주주의니 뭐니 하는 미명하에 비판하려 들기 때문이다. 어떤 파시즘 운동도 지식인에 대한 대중의 광범위한 분노를 조직하지 않은 경우가 없다. 이렇게 지식인들을 갈아버리면 그 사회에는 지도자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외에 다른 목소리는 남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시 작년부터 부쩍 국가 상징에 대한 강조가 늘어났다는 점, 그리고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북한이라는 전통적인 정서적인 적대세력에 대한 대립각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점에서 파시즘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최근 국정교과서 사태에서 새누리당 지지자들이 보여주는 "학자의 90%가 좌파"라서 궁정화 해야한다는 발상이 조만간 "교사의 90%", "지식인의 90%"가 좌파라는 주장으로 확대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 다음 수순은 그 좌파 지식인을 처단하자는 쪽으로 발전할 것이다.
갑자기 무서워진다. 그런데 그 무서운 파시즘 운동이 우리나라에서는 코메디가 되고 있다. 왜 그럴까? 파시즘적 운동에 동원되는 빈곤하고 무식하며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국민이 대부분 '노인들'이기 때문이다. 원래 파시즘은 무지하면서 인정받지 못한 청년들의 분노를 자극할때 가장 무섭다. 

이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반감과 자신들보다 성공한 사람들, 특히 지식계층과 외국인으로서 성공한(돈을 벌었거나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열등감을 분노로 폭발시킨다. 이들에게는 힘이 있기 때문에 거대한 숫자로 동원된 분노한 무산 청년들은 순식간에 기존 사회 질서를 뒤집어 버린다.  나치 돌격대, 검은 셔츠단, 그리고 중국의 홍위병이 모두 비슷한 수순을 밟아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빈곤, 고립, 그리고 무식이라는 세 키워드가 공교롭게도 연령대와 강한 상관관계를 가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빈곤한 계층은 노인이며, 가장 고립된 계층도 노인이며, 가장 무식한 계층도 노인이다. 이들이야 말로 "이 나라가 어떤 나란데?" 왜에는 존엄을 증명할 길이 사라진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파시즘적 동원에 가장 열렬하게 참석한다. 
하지만 문제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것이다. 파시즘의 생명은 다중의 힘으로 공포를 심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파시즘적으로 동원된 노인들은 극렬하고 무모하기는 하지만 무섭다기 보다는 우습다. 나치돌격대나 홍위병을 보면 광기의 공포가 느껴지지만 우리의 파시스트들의 격렬한 투쟁을 보면 그냥 주책바가지다.

입시교육 덕을 톡톡히 보고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파시즘적으로 동원되기에는 너무 먹물을 많이 먹었다. 젊은이의 80%가 대학물을 먹은 나라다. 앗, 그래서 학제 개편해서 학교 다니는 기간 줄이려고 하는건가? 앗, 그래서 교육재정을 자꾸 축소시키는 건가?


잘 읽으셨고, 제가 계속 글을 쓰는게 쓸모있다 여긴다면, 다음 링크를 클릭해서 저의 저서들을 살펴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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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