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음성을 사용하지 않고 문서로만 피라미드 방식으로 전달됩니다. 대학 투국장은 단과대 투국장에게, 단과대 투국장은 각 학과의 대표들에게, 과대표는 과의 동료, 후배들에게. 매 전달 단계에서 택이 전달완료되면 전달된 문서는 소각합니다.(미션 임파시블 처럼)

이제 각 과대표들은 동료와 후배들을 데리고 17시20분경 종로3가로 갑니다. 여기서 어슬렁어슬렁 하면서 동 뜨는 것을 기다립니다. 경찰들은 어디서 시위를 하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출동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만약 이미 경찰이 깔려있다면 이건 택이 셌다는 뜻(프락치 의심)이기 때문에 그날 투쟁은 나가리 됩니다. 경찰이 깔려있지 않다면 택이 안전하다는 뜻입니다.

17시 30분. 동이 뜹니다. 여기서 동이란 제일 먼저 구호를 외치며 도로를 점거하는 학생을 말합니다.일종의 신호탄입니다. 이렇게 동이 뜨면, 주변에 어슬렁 거리던 학생들이 일제히 도로로 뛰어듭니다. 수가 충분히 많으면 도로 점거가 가능하지만, 적으면 한 두 차선만 점거하는 옹색한 시위가 됩니다. 전투조는 화염병, 쇠파이프 등으로 무장하고 시위대 본대 전방 50-100미터 쯤 앞에 전선을 치고 시위 공간을 확보합니다.

대체로 시위가 시작된 것을 경찰이 알아채고 출동할때까지는 10-15분 정도가 걸립니다. 그 사이에 죽어라 구호 외치고, 준비한 선전물을 주변의 시민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마침내 경찰이 도착합니다. 만약 경찰이 도착해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역시 아무 일이 없습니다. 그냥 계속 구호를 외치고 있겠죠. 하지만 경찰이 절대 그냥 있을리 없습니다. 경고방송 이딴 거 없습니다, 시위장면을 발견하면 즉시 진압과 체포입니다.

당시 시위 진압 경찰은 전투경찰(의경이 아닙니다)과 무술경찰(사복 체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투경찰이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쏘아 심신을 미약하게 만든 뒤 방패를 들고 전진하여 점점 포위망을 죄어들어오고, 충분히 근거리가 확보되면 무술경찰들이 달려와서 마구 구타하고 체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시위대의 폭력은 방패부대(전경)가 포위망을 죄어 오는 것을 저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화염병과 짱돌을 던지면 전경들이 그걸 막느라 걸음을 멈추고 방패를 들어 올릴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화염병과 짱돌을 던지며 10분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화염병과 짱돌은 무한정 공급되지 않지만, 최루탄은 무한정 공급되기 때문에 그 이상 버티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 10분이면 시위대 본대가 미리 약속한 퇴각로를 통해 도망가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화염병과 짱돌이 동이난다 싶으면 사복체포조가  곤봉을 휘두르며 달려오는데, 만약 이때 이미 본대가 도주에 성공했으면 전투조도 모험이나 영웅놀이 하지 않고 죽기살기로 도주합니다. 아직 본대가 다 퇴각하지 못했으면, 쇠파이프를 사용하여 사복체포조를 저지하는데, 이미 이 지경이 되면 망한 싸움이며 아주 많은 연행자와 부상자가 발생합니다. 도주에 성공하여 살아남은 학생들은 약속해 둔 2차 집결 장소를 향해 이동하고. 2차 집결 장소에서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됩니다.

이게 80년대의 폭력시위입니다. 단 10분 구호를 외칠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그리고 단 10분 구호 외쳤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개처럼 얻어맞고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악적으로 행사 했던 폭력 말입니다. 영웅적으로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를 향해 돌격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의 도주시간을 벌고, 동료들이 도주했다 싶으면 즉시 전투를 집어 치우고 본인도 죽어라 도주해야 했던 그 폭력 시위 말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낭만도, 통쾌함도 없습니다. 청와대로 돌격해서 전두환을 처단하는 것은 커녕 종로2가, 종로3가, 을지로 입구 정도에서 단 10분이라도 진실을 외칠 시간과 공간을 얻기 위해 그렇게 치고박고 싸워야 했습니다.

사람이 모이기만 하면 무조건 최루탄을 쏘아 해산시키고 체포하려 했던 1980년대의 상황과 지금은 매우 다릅니다. 광화문이면 어떻고 청와대에서 멀면 어떻습니까? 도심에서 상당히 긴 시간동안 심지어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가 가능합니다. 전두환의 전 자만 말하면 허리춤을 잡힌채 개처럼 끌려갔던 시대와 다릅니다. 이미 요즘은 1980년대에 화염병과 짱돌을 던져가며 간신히 얻었던 말할 자유보다 몇배 더 큰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관절 폭력을 뭐에 쓰겠단 말입니까?

글이 길어집니다. 여러 편으로 나누어야겠습니다. 어쨌든 1980년대에 왜 시위에 폭력이 수반되었는지는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이 전형적인 80년대 시위양상이 뒤집어진 1987년 6월 항쟁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잘 읽으셨으면 아래 링크에서 제 책들도 살펴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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