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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학종 다음의 셀프학종


나는 학종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학종에 대해 우려가 있다.  여기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대학 입학을 위한 학종이 아니다. 학종은 대학 입학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미 우리 사회가 특정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대단한 프리미엄이 생기지 않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학 졸업한 다음 취업을 하려 할 때 , 공무원 시험을 제외하면 결국 대부분 괜찮은 기업의 신입사원 선발방식은 학종과 매우 비슷하다. 어쩌면 기업이 먼저 하고, 이게 학종으로 내려온 것일수도 있다. 어쨌든 대입과 신입사원 선발방식은 동기화될 수 밖에 없다. 80년대의 신입사원 선발방식 역시 학력고사 방식의 일제고사였다.

지금은 학종의 시대. 일자리를 얻으려면 좋건 싫건 학종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문제는 대학교는 생활기록부도 없고, 담임 선생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취업을 하기 위한 스펙 관리와 자신을 드러내 보일 각종 자료와 기록은 본인들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 셀프 학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사원을 뽑는 까닭은 시험과 실력의 상관관계를 이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오래된 관행, 오래된 믿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없는 이 셀프 학종에서 학생들은 비로소 가정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실감한다. 자소서 한번 쓰기 위해, 면접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각종 스펙 디자인 하기 위해 거액의 컨설팅을 받고 레슨을 받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그걸 뒷받침할만한 경제력이 안되는 가정의 학생은 결국 이 땅에 남아있는 마지막 학력고사 모델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고시촌의 그 엄청난 차이.....물론 기업은 기업대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고 싶지, 부모의 서포트 능력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경제력으로 치장된 후광을 벗기기 위한 갖가지 압박면접 기법 등을 개발하지만, 썩 성공적인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공무원 중에서 유독 교사는 학종 방식으로, 아니 수능정시+학종 방식으로 선발한다. 교사가 되기 위한 길은 실로 장대하다. 중학교때 부터 진로를 세워 두고 대학 졸업할때 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또 대학교 가서도 사교육까지 받지 않으면(이게 또 엄청 비싸다), 교사 되기 어렵다. 공무원 시험하고는 아예 그 출발부터 다르다. 대학교 졸업할 무렴, "그래, 난 교사가 되겠어" 이렇게 결심하고 머리 싸매고 공부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결국 저 기나긴 코스에 필요한 정보를 많이 얻고, 그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집안의 자녀들은 교사라는 일자리를 차지하고, 안되는 집안의 자녀들은 기간제 교사를 전전하는 장수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학교의 정규교원/비정규교원의 문제가 자칫 잘못하면 계급문제와 중첩될 위험까지 있다.

좋지 않다. 삼성전자 직원이야 출신계층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일만 잘하면 되니까. 하지만 교사는 다르다. 교사는 공화국을 대변하는 존재이며, 세속의 성직자다. 그러니 교사 집단 자체가 그 사회를 대변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특정 계층, 그것도 상류 계층에 치우친 교사집단을 가진 나라는 국회 대신 귀족원을 가진 나라만큼이나 위태롭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느새 그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더군다나 명색이 국립인 교대는 일반 대학보다 각종 기회균등 계통 선발 비율이 결코 높지 않다.

교사는 참여정부 시절에는 공공의 적 취급을 받았고, 정부의 실정을 가리기 위해 화살을 돌리던 동네 북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3-4년 전부터 그런 목소리가 쑥 들어갔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주요 언론이 교사 디스에 앞장 섰는데, 요즘에는 마이너 언론이나 댓글 찌질이들이 주로 교사 디스에 앞장선다.

주요언론과 정부고위직, 그리고 여론주도층들이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서일까? 교사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서일까? 그럴리가 없다. 다만 그들 중 귀여운 자신들의 아들 딸을 교사로 만들었거나 만들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즉 교사는 어느새 여론주도층이 자기 자녀들을 위해 챙겨주어야 할 희소 자원이 되어버렸다.

한 마디로 "여기는 내 새끼 자리다."

이게 내가 걱정하는 부분이다. 어쩌면 이미 잔인한 진실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이 문제에 대해 연구를 해 보고 싶은데, 여력도 돈도 시간도 없다. 이건 다만 가설일 뿐이다)


<잘 읽으셨으면 아래 링크에서 제 책들도 살펴 봐 주세요>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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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의 민주화는 과연 실패했는가?

홍기빈의 "민주화는 실패했다."라는 글이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얼핏 보면 훌륭한 글이다. 하지만 디테일을 보면 상당히 문제가 많은 글이라 한 마디 안 할수가 없다. 더구나 학교에서 정치, 경제를 가르치는 사회교사로서 이런 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냉소글은 반드시 눌러 놓아야 한다.
(원문: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610212041045)
이 글의 얼개는 그 동안 1987년의 성과를 냉소하는 민주화 냉소글의 표준적인 논리를 따라가고 있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가 남아 있는 한 민주주의는 불완전하다." 라는 논리다. 이 글에서는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 자본의 지배 등의 말로 슬쩍 바뀌었을 뿐이다. 즉 정치권력을 아무리 교체해 본들 자본권력, 시장권력의 지배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민주주의는 완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런 식의 냉소글은 1987년의 성과를 폄하하기 위해  "형식적 민주주의" 라는 말을 주로 사용했다. 이들이 말하는 형식적 민주주의란 3권분립, 보통선거, 복수정당제와 언론의 자유를 통한 권력의 감시로 대표되는 그런 정치제도다. 한 마디로 우리가 민주정치라고 부르는 바로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5년마다 한번씩 왕을 교체하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5년마다 한 번 왕을 교체하는 것 말고, 속살까지 민주화 되어야 민주주의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살까지의 민주화는 결국 자본의 지배, 시장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삼성공화국론의 또 다른 변주다.  그런데 다당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의 의미를 형식적 민주주의로 폄하하는 논리의 뿌리는 1980년대때 이 논리를 펴는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학습했던 러시아 혁명론의 연장선상에 닿아 있다. 1차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2차혁명은 볼셰비키 혁명 이런 식의. 그러니까 지금 이 글은 이제 1987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성과는 한계에…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