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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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 교사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하지만, 어떤 시대인지, 어떤 뒤떨어짐인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학교를, 어떤 교육을, 어떤 교사를 희망하는지 스스로에게 말 할 수 있습니까?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 그리고 이를 향한 새로운 교육운동의 항로를 찾아보는 저 희망의 항해도를 그리는 모험을 시작하려 합니다.


저의 항해에 동참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이메일: hagi814@gmail.com
트윗: @hagi87
신문 칼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List.html?sc_serial_code=SRN70


(덧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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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주의) 이 블로그에 뜨는 광고는 구글이 임의로 전송하는 것으로, 이 블로그의 필진과는 전혀 관계 없는 내용입니다.

문재인 정부 1년, 학교에 남은 것은 냉소 뿐

문재인 정부가 1년 반 정도 지났다. 중간평가를 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 보나마나 낙제인 영역이 있다. 바로 교육이다. 교육은 처음부터 걱정스러웠던 영역이었다. 흔히 참여정부가 경제와 교육에 약했다고 하지만, 그 중 진짜 약한 구멍은 교육이다. 실제 지표를 통해 살펴보면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교육의 경우는 사교육비 대란, 대학 등록금 대란, 교실 붕괴, 교원평가, 일제고사 등등의 키워드 몇 개만 뽑아봐도 혼돈 그 자체였다. 그 와중에 사립학교법이나 교장승진제도 개혁 같은 것들은 국회 과반을 차지하고서도 해내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촛불의 시발점이 되었던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밥좀 먹자, 잠좀 자자!”라는 절규를 기억한다. ‘촛불 소녀’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때는 이명박이 취임한지 석달도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그렇다면 그들을 절규하게 만든 교육은 이명박 정부가 아니라 참여정부가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최악의 정책은 수능, 내신, 논술 및 본고사의 3:3:3 황금 분할을 만들어버린 이른바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다. 수능, 내신, 논술 전문 사교육이 영역별로 창궐했고, 특기적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초등학생마저 방과후에 학교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지옥문은 이때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사교육비 부담에 학부모들의 입이 나왔다. 그러자 그 책임을 교사에게 떠넘기는 비열한 행동까지 한 것이 참여정부였다.  “공교육이 부실하여 사교육이 창궐하니, 공교육의 수준을 높여 사교육비를 잡겠다.”는 논리를 내세우면서. 이때부터 학교는 학원과 경쟁해야하는 서비스업이 되었고, 학부모는 자녀교육을 책임지는 1차 교육자가 아니라 돈을 내고 교육을 구입하는 고객이 되었다. 참여정부의 교육실패사는 쓰기 시작하면 책 한권이 나올 정도니 여기서 생략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참여정부의 실패를 잘 복기하여 다시는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면서도한편으로는 그 전철을 되밟을까 걱정했다. 그래도 참여정부보다 훨씬 …

교사 소진(번아웃)을 설명하는 모형들과 그 대책

교사 소진(번아웃)은 “교사들이 스트레스에 스스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증상으로 신체적으로 지치고 직무에 대해 무능감과 냉담을 느끼는 것”이다. 소진은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더 심각한 상태, 즉 우울증이나 자살로 넘어가는 과정이자 매개변수다. 스트레스가 번아웃으로 번아웃이 우울증으로 우울증이 자살로 간다고 거칠게 정리할 수 있다. 우울증의 가능성이 큰 교사가 정서적으로 민감한 아동, 청소년에게 노출되는 것은 교사에게나 학생에게나 불행한 일이다.

교사소진에 대한 조작적 정의에는 통상 MBI-ES(educator survey)의 정서적 탈진(emotional exhaustion), 비인간화(depersonalization), 개인적 성취감의 결여(lack of personal accomplishment)라는 세 차원이 사용된다. “선생하기 힘들다"라는 막연한 호소와 불만을 보다 구체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정의한 것이다.

이 세 차원은 교사소진의 양태이며, 교사소진의 원인에는 요구-통제모형(DCM; Demand-Control Model), 노력-보상 불균형 모형(ERIM; Effort-Reward Imbalance Model), 직무요구자원(JD-R: Job Demands-Resources)모형 등이 설명력을 가지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직무자원모형(JD-R)은 교사가 전문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교사소진을 설명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도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특히 교사가 소진의 수동적인 대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어진 업무의 강도를 줄이고, 본인의 자원을 높여 업무를 의미 있는 활동으로 바꾸는 잡크래프팅(Job crafting)을 통한 교사소진 대책 마련에도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교사소진을 설명하는 기존의 모형들은 모두 비례적이라는 한계를 가진다. 가령 교사에 대한 요구에 비해 너무 적게 주어지는 통제권, 교사가 투입하는 노력에 비해 너무 적게 주어지는 보상, 그리고 교사가 수행해야 하는 직무에 …

학교를 무작정 재판하는 사람들을 재판한다

학교제도를 재판한다고?


교사 입장에서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교육에 대해 이런 저런 강의를 한다는 건 매우 부담이 크다. 교사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교육적 상황에 처해있고, 또 그 상황에서 나름의 방법과 노하우로 교육실천을 경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실천과 경험이 어떤 참고가 될수는 있지만, 그것을 근거로 다른 교사들의 실천을 함부로 재단하고 따라오라고 할수는 없다. 그런데 겨울방학 들어 각 시도교육청, 특히 진보와 혁신을 자처하는 교육청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연수에서는 교사들의 실천과 경험을 함부로 구시대의 유물로 재단하며, 각성을 요구하면서 꾸짖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오만한 발언을 하는 강사들이 애용하는 동영상(나는 강의에 유튜브 동영상 보여주는 일을 매우 게으른 행위로 본다) 중에 ‘100년된 학교제도를 재판합니다’라는 것이 있다. 어찌나 자주 틀어주는지 1급정교사 자격연수에 출석중인 어는 젊은 교사는 새해들어 벌써 이 동영상만 다섯번을 봤고, 심지어 꿈에까지 나오더라며 하소연을 했다. 미국의 어느 래퍼가 제작했다는 이 동영상의 개요는 이렇다. 먼저 어항속의 물고기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학교는 이 물고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채 물고기를 억지로 나무에도 올라가게 하고 풀밭을 달리게도 했다며 비난한다. 물고기는 헤엄을 치고 싶지만, 학교는 물고기에게 나무에 올라갈것을 강요하고 결국 어떻게 해서든 나무에 올라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래퍼는 교사들에게 반문한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학교에게 반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인화된 학교는 결국 교사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 반문을 듣고 당혹스러워 하는 주체들은 학교건물이 아니라 교사들로 표현된다. “그래서 자랑스럽습니까?”  이 동영상이 비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학교가 다양한 개성과 재능을 말살하고 표준화된 교육을 강요함으로써, 학생들을 개별적 특성을 상실한 표준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쩌면 모차르트나 아인슈타인이 될수 있었던 학생들을 근대 학교 체제는 모두 그저그…

이른바 숙의민주주의에 대하여(1)

우리나라 진보 운동권들의 고질병이 있다면, 유행을 탄다는 것이다. 뭔가 하나 유행한다 싶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그 말을 주문처럼 달고 다닌다. 물론 그 의미를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았고, 관련 문헌을 읽어보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 진영 훌륭한 분들이 사용하는 말이니까 "좋은 말" "선" 가치 판단해버릴 뿐이다. 페미니즘, 생태주의 관련 용어들이 그런식으로 남용되었다. 프레임이라는 사회심리학 용어가 아주 쉬운 의미로 남용되었다. "미국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절규를 전염병처럼 쉽게 퍼뜨린 그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더니 요즘은 숙의민주주의가 유행이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 이게 직접민주주의와 연결이 되더니, 숙의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는 참된 민주주의, 대의제, 다수결은 빈껍데기 민주주의 처럼 폄하되고 있다. 이게 역시 한창 유행했던 집단지성과도 결합되어, 집단지성에 의한 숙의민주주의가 전문가 집단의 독재를 통제한다는 이상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잘 하면 처방전까지 환자들의 '숙의'를 통해 정하게 생겼다. 막상 숙의민주주의가 뭔지, 숙의가 뭔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이런 한심한 상황을 그냥 둘수 없어서, '국민 사회교사'인 내가 나선다. 세계 어느나라나 중학교 2학년 중 똑똑한 학생의 지적 이해능력이 성인 평균보다 조금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 수준에 맞춰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숙의민주주의라는 말은 참 어색하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숙의라는 말 부터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조선 후궁 직급도 아니고. 한자를 억지로 붙놓은 단어인데, 뜻을 풀면 깊게 논의한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비슷한 의미의 한자 조합으로 심의민주주의라는 말도 많이 쓰고, 적어도 내가 정치학 공부할때는 심의민주주의라고 했다. 이때 심의 역시 "영상물 등급 심의위원회" 의 심의가 아니라 깊은 논의라는 뜻의 심의다. 

영어로는 deliberative democ…

전교조를 망친 사람들은 강경 투쟁파가 아니다.

고전을 인용하면서 주장하는 글 쓰는걸 싫어하지만 이 말 만큼은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맹자의 진심하편 37장의 내용이다. 


만장이 맹자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 내 집안에 들어오지 아니할 지라도,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그 오직 향원鄕原뿐이다。 이 향원鄕原은 덕德을 해친다' 라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을 향원鄕原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까?"맹자가 대답했다. "....말이 행동을 돌보지 않고 행동이 말을 돌보지 않으면서도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 를 뇌인다. '하는 짓이 어째서 그다지 쌀쌀하고 친근할 수 없는가? 세상에 났으면 이 세상에 맞게 살면 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만 하면 되는 것을' 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속생각을 숨기고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바로 향원鄕原이다."만장이 말했다. "한 고을 사람이 모두 품성좋은 사람(원인原人)이라 일컬으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없거늘, 공자께서 '덕의 적'이라 하심은 어째서입니까?"맹자가 대답했다. "비난하려 해도 꼬집어 지적할 만한 것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것이 없다. 흐름에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합류하며, 거함에 충신忠信한 듯하며, 행함이 청렴결백한듯하여 뭇 사람들이 좋아하고 자기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는데, 이런 사람과 요순堯舜의 도道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덕의 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호박같이 둥근 세상 좋은 말만 하며 두루두루 잘 사는 사람이 오히려 악인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악인은 그 악을 들어 비판하고 끌어내릴 수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딱히 비판할 거리도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렇다고 뭔가 뚜렷하게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입으로는 온갖 폼나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진심으로 올바름을 위해 나서는 사람을 갈등이나 일으키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

학종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학종 다음의 셀프학종

나는 학종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학종에 대해 우려가 있다.  여기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대학 입학을 위한 학종이 아니다. 학종은 대학 입학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미 우리 사회가 특정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대단한 프리미엄이 생기지 않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학 졸업한 다음 취업을 하려 할 때 , 공무원 시험을 제외하면 결국 대부분 괜찮은 기업의 신입사원 선발방식은 학종과 매우 비슷하다. 어쩌면 기업이 먼저 하고, 이게 학종으로 내려온 것일수도 있다. 어쨌든 대입과 신입사원 선발방식은 동기화될 수 밖에 없다. 80년대의 신입사원 선발방식 역시 학력고사 방식의 일제고사였다.

지금은 학종의 시대. 일자리를 얻으려면 좋건 싫건 학종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문제는 대학교는 생활기록부도 없고, 담임 선생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취업을 하기 위한 스펙 관리와 자신을 드러내 보일 각종 자료와 기록은 본인들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 셀프 학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사원을 뽑는 까닭은 시험과 실력의 상관관계를 이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오래된 관행, 오래된 믿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없는 이 셀프 학종에서 학생들은 비로소 가정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실감한다. 자소서 한번 쓰기 위해, 면접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각종 스펙 디자인 하기 위해 거액의 컨설팅을 받고 레슨을 받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그걸 뒷받침할만한 경제력이 안되는 가정의 학생은 결국 이 땅에 남아있는 마지막 학력고사 모델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고시촌의 그 엄청난 차이.....물론 기업은 기업대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고 싶지, 부모의 서포트 능력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경제력으로 치장된 후광을 벗기기 위한 갖가지 압박면접 기법 등을 개발하지만, 썩 성공적인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공무원 중에서 유독 교사는 학종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