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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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 교사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하지만, 어떤 시대인지, 어떤 뒤떨어짐인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학교를, 어떤 교육을, 어떤 교사를 희망하는지 스스로에게 말 할 수 있습니까?


새로운 시대, 새로운 교육, 그리고 이를 향한 새로운 교육운동의 항로를 찾아보는 저 희망의 항해도를 그리는 모험을 시작하려 합니다.


저의 항해에 동참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이메일: hagi814@gmail.com
트윗: @hagi87
신문 칼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List.html?sc_serial_code=SRN70


(덧글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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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주의) 이 블로그에 뜨는 광고는 구글이 임의로 전송하는 것으로, 이 블로그의 필진과는 전혀 관계 없는 내용입니다.

학교를 무작정 재판하는 사람들을 재판한다

학교제도를 재판한다고?

교사 입장에서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교육에 대해 이런 저런 강의를 한다는 건 매우 부담이 크다. 교사들은 저마다 각기 다른 교육적 상황에 처해있고, 또 그 상황에서 나름의 방법과 노하우로 교육실천을 경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실천과 경험이 어떤 참고가 될수는 있지만, 그것을 근거로 다른 교사들의 실천을 함부로 재단하고 따라오라고 할수는 없다. 그런데 겨울방학 들어 각 시도교육청, 특히 진보와 혁신을 자처하는 교육청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연수에서는 교사들의 실천과 경험을 함부로 구시대의 유물로 재단하며, 각성을 요구하면서 꾸짖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오만한 발언을 하는 강사들이 애용하는 동영상(나는 강의에 유튜브 동영상 보여주는 일을 매우 게으른 행위로 본다) 중에 ‘100년된 학교제도를 재판합니다’라는 것이 있다. 어찌나 자주 틀어주는지 1급정교사 자격연수에 출석중인 어는 젊은 교사는 새해들어 벌써 이 동영상만 다섯번을 봤고, 심지어 꿈에까지 나오더라며 하소연을 했다. 미국의 어느 래퍼가 제작했다는 이 동영상의 개요는 이렇다. 먼저 어항속의 물고기를 보여준다. 그러면서 학교는 이 물고기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채 물고기를 억지로 나무에도 올라가게 하고 풀밭을 달리게도 했다며 비난한다. 물고기는 헤엄을 치고 싶지만, 학교는 물고기에게 나무에 올라갈것을 강요하고 결국 어떻게 해서든 나무에 올라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래퍼는 교사들에게 반문한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학교에게 반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인화된 학교는 결국 교사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이 반문을 듣고 당혹스러워 하는 주체들은 학교건물이 아니라 교사들로 표현된다. “그래서 자랑스럽습니까?”  이 동영상이 비판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하다. 학교가 다양한 개성과 재능을 말살하고 표준화된 교육을 강요함으로써, 학생들을 개별적 특성을 상실한 표준인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어쩌면 모차르트나 아인슈타인이 될수 있었던 학생들을 근대 학교 체제는 모두 그저그…

이른바 숙의민주주의에 대하여(1)

우리나라 진보 운동권들의 고질병이 있다면, 유행을 탄다는 것이다. 뭔가 하나 유행한다 싶으면, 너 나 할 것 없이 그 말을 주문처럼 달고 다닌다. 물론 그 의미를 꼼꼼히 따져보지도 않았고, 관련 문헌을 읽어보지도 않았다. 다만 우리 진영 훌륭한 분들이 사용하는 말이니까 "좋은 말" "선" 가치 판단해버릴 뿐이다. 페미니즘, 생태주의 관련 용어들이 그런식으로 남용되었다. 프레임이라는 사회심리학 용어가 아주 쉬운 의미로 남용되었다. "미국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절규를 전염병처럼 쉽게 퍼뜨린 그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더니 요즘은 숙의민주주의가 유행이다. 그리고 어찌어찌 하다 이게 직접민주주의와 연결이 되더니, 숙의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는 참된 민주주의, 대의제, 다수결은 빈껍데기 민주주의 처럼 폄하되고 있다. 이게 역시 한창 유행했던 집단지성과도 결합되어, 집단지성에 의한 숙의민주주의가 전문가 집단의 독재를 통제한다는 이상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잘 하면 처방전까지 환자들의 '숙의'를 통해 정하게 생겼다. 막상 숙의민주주의가 뭔지, 숙의가 뭔지 따져보지도 않은 채 말이다.

이런 한심한 상황을 그냥 둘수 없어서, '국민 사회교사'인 내가 나선다. 세계 어느나라나 중학교 2학년 중 똑똑한 학생의 지적 이해능력이 성인 평균보다 조금 높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 수준에 맞춰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숙의민주주의라는 말은 참 어색하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숙의라는 말 부터 도통 감을 잡을 수 없다.  조선 후궁 직급도 아니고. 한자를 억지로 붙놓은 단어인데, 뜻을 풀면 깊게 논의한다라는 말이다. 그래서 비슷한 의미의 한자 조합으로 심의민주주의라는 말도 많이 쓰고, 적어도 내가 정치학 공부할때는 심의민주주의라고 했다. 이때 심의 역시 "영상물 등급 심의위원회" 의 심의가 아니라 깊은 논의라는 뜻의 심의다. 

영어로는 deliberative democ…

전교조를 망친 사람들은 강경 투쟁파가 아니다.

고전을 인용하면서 주장하는 글 쓰는걸 싫어하지만 이 말 만큼은 인용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맹자의 진심하편 37장의 내용이다. 


만장이 맹자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집 문 앞을 지나가면서 내 집안에 들어오지 아니할 지라도, 내가 유감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사람은, 그 오직 향원鄕原뿐이다。 이 향원鄕原은 덕德을 해친다' 라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을 향원鄕原이라고 이를 수 있습니까?"맹자가 대답했다. "....말이 행동을 돌보지 않고 행동이 말을 돌보지 않으면서도 '옛 사람이여, 옛 사람이여!' 를 뇌인다. '하는 짓이 어째서 그다지 쌀쌀하고 친근할 수 없는가? 세상에 났으면 이 세상에 맞게 살면 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만 하면 되는 것을' 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속생각을 숨기고 세상에 아첨하는 자가 바로 향원鄕原이다."만장이 말했다. "한 고을 사람이 모두 품성좋은 사람(원인原人)이라 일컬으면 좋은 사람이 아닐 수 없거늘, 공자께서 '덕의 적'이라 하심은 어째서입니까?"맹자가 대답했다. "비난하려 해도 꼬집어 지적할 만한 것이 없고, 공격하려 해도 공격할 것이 없다. 흐름에 동조하고 더러운 세상과 합류하며, 거함에 충신忠信한 듯하며, 행함이 청렴결백한듯하여 뭇 사람들이 좋아하고 자기 스스로도 옳다고 여기는데, 이런 사람과 요순堯舜의 도道에 함께 들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덕의 적'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한 마디로 호박같이 둥근 세상 좋은 말만 하며 두루두루 잘 사는 사람이 오히려 악인보다 더 나쁘다는 것이다. 악인은 그 악을 들어 비판하고 끌어내릴 수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딱히 비판할 거리도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렇다고 뭔가 뚜렷하게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입으로는 온갖 폼나는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진심으로 올바름을 위해 나서는 사람을 갈등이나 일으키는 나쁜 사람처럼 보이…

학종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학종 다음의 셀프학종

나는 학종에 대해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학종에 대해 우려가 있다.  여기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대학 입학을 위한 학종이 아니다. 학종은 대학 입학 이후에도 계속된다. 이미 우리 사회가 특정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대단한 프리미엄이 생기지 않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대학 졸업한 다음 취업을 하려 할 때 , 공무원 시험을 제외하면 결국 대부분 괜찮은 기업의 신입사원 선발방식은 학종과 매우 비슷하다. 어쩌면 기업이 먼저 하고, 이게 학종으로 내려온 것일수도 있다. 어쨌든 대입과 신입사원 선발방식은 동기화될 수 밖에 없다. 80년대의 신입사원 선발방식 역시 학력고사 방식의 일제고사였다.

지금은 학종의 시대. 일자리를 얻으려면 좋건 싫건 학종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 문제는 대학교는 생활기록부도 없고, 담임 선생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취업을 하기 위한 스펙 관리와 자신을 드러내 보일 각종 자료와 기록은 본인들이 알아서 챙겨야 한다. 셀프 학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이 이런 방식으로 사원을 뽑는 까닭은 시험과 실력의 상관관계를 이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은 오래된 관행, 오래된 믿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선생님이 없는 이 셀프 학종에서 학생들은 비로소 가정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얼마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지 실감한다. 자소서 한번 쓰기 위해, 면접 대비하기 위해, 그리고 각종 스펙 디자인 하기 위해 거액의 컨설팅을 받고 레슨을 받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이다. 그걸 뒷받침할만한 경제력이 안되는 가정의 학생은 결국 이 땅에 남아있는 마지막 학력고사 모델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신림동 고시촌과 노량진 고시촌의 그 엄청난 차이.....물론 기업은 기업대로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고 싶지, 부모의 서포트 능력을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경제력으로 치장된 후광을 벗기기 위한 갖가지 압박면접 기법 등을 개발하지만, 썩 성공적인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공무원 중에서 유독 교사는 학종 방…

민주시민은 책을 읽는다

민주주의는 단지 국민 다수의 통치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많이 쓰이는 말이 또 있을까? 좌우보혁을 떠나 저마다 민주주의를 말하며, 심지어 북한조차 자신을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지칭하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막연하게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정치”, 혹은 “다수에 의한 정치” 정도로 말할 뿐이다. 물론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조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뒤져보면 수천 년 전 카이사르에서부터 나폴레옹, 무솔리니, 히틀러, 최근의 두데르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독재자들은 국민 다수의 지지를 기반으로 독재자가 되었다. 이들의 정치를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의 지지, 국민 다수의 지지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 다수의 국민이 어떤 국민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생각이 튼튼한 앎과 충분한 성찰에 기반하고 있다면 다수의 지지가 곧 민주주의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순간적인 감정이나 기호에 의한 것이라면 그것은 다만 폭민정치, 우민정치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머리수가 아니라 생각하는 머리수에 의해 이루어지는 정치다.
민주주의는 훌륭한 시민을 기반으로 한다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2500년 전 페리클레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민주주의를 자랑하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나랏일에 대해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나랏일을 결정하기 위해 토론을 하며, 충분한 토론 없이 성급하게 결정하지 않는다” 라고 했다. 토크빌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명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교육 수준이 낮은 농민이나 노동자조차 지역사회의 쟁점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있다는 사실에 받은 깊은 감명을 기록해 두었다. 고대 아테네나 건국 시기 미국은 모두 ‘훌륭한’ 시민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주의는 그저 국민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 …

1987년 6월 항쟁 (1) 1980년대의 전형적인 가두시위와 폭력 시위가 발생한 원인

이제 나도 어쩔수 없이 젊은이들로부터 "옛날 얘기 해주세요" 소리를 듣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그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1987년 6월 항쟁과 2016년 11.12를 비교하는 기사들을 보고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거나 어린이였던 분들이 많이 궁금해 하시니, 그 시절로 돌아가서 최대한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시위가 폭력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11.12일에 일부 과격분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모여서 폭력으로 저지선을 뚫고 행진하는 그런 폭력이 아니었습니다. 1987년 당시 시위대의 폭력은 매우 처량한 폭력이었습니다.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시위를 하기 위한 10여분의 시간을 벌기 위한 폭력이었으니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당시의 가두시위(가투)의 양상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시대에는 집회신고 이딴거 없었습니다. 시위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였으며, 당연히 도심의 시위는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시위는 불법시위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의 가두투쟁은 철저히 "비선"을 통해 조직되었습니다. 이런 식입니다. 난 NL이 아니라 PD였으니, 조직 단위의 이름은 PD기준으로(1987년에는 CA) 씁니다.

각 대학의 투쟁국(대체로 각 단과대학에서 제일 과격한 자가 단과대학 투쟁국장이 되고, 이들이 모여서 각 대학 투쟁국을 구성합니다. 그리고 각 대학 투쟁국장들이 모여서 전체적인 전술을 세웁니다.)장들이 모여서에서  '택"(택틱, 즉 전술의 준말)을 짭니다.

주로 택은 "오후 17시 30분 종로3가 사거리에서 집결하여 시위하고 경찰이 뜨면 일단 종로통 쪽으로 도망가서 해산 했다가 19시에 남대문 로터리에서 재집결 한다. 이때 퇴로는 남대문 시장이며 회현역을 통해 귀가한다. 17시30분의 동은 아무개 학형, 19시 동은 아무개 학형이며, 전투조는 이리저런 방식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이런 식으로 짜는데, 도청을 우려하여 철저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