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08의 게시물 표시

포이어바흐 "기독교의 본질"

이미지
대학교때 운동 꺠나 했다던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포이어바흐.

마르크스의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엥겔스의 "포이어바흐와 독일 고전철학의 종말"
로 유명한 포이어바흐

그런데 정작 포이어바흐를 읽은 사람은 없었다. 하긴 그 시절 마르크스도 제대로 안 읽고 운동가 행세했던 사람은 얼마나 또 많았던가? 뭔소린지도 모르면서 대충 아무데다 계급, 혁명 같은 단어나 집어넣으면서 그럴싸하게 폼만 잡으면서...

이런 무식한 집단이 소위 진보진영을 이루었다는게 우리나라의 비극이라면 비극일텐데... 그래서 저 광분하는 개신교의 기세도 꺾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개신교를 반대는 하지만 어떤 지적인 근거도 없이 그냥 정서적 반대만 하고 있으니, 정서라는 분야에 특히 강세를 가진 개신교를 상대할 수 없는 것이다. 하긴 소위 진보진영중 다수가 "정서"에 뻑 가서 북한이나 추종하고 앉았으니....

어쨌든 이런 무식증을 벗어나는데 큰 도움이 되는 책이 이 책, "기독교의 본질"이다. 이 책을 읽으면 왜 마르크스가 모든 근대의 진보사상은 일단 포이어바흐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는지 알 수 있다. 상세한 내용은 앞으로 기회가 대면 차차 써 올리겠다. 어차피 나는 나의 철학을 당분간 개독교와 싸우는데 사용할 생각이니... 이 책만한 무기가 없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헤드가 없는 사람일 것이며,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사회적 실천에 나서지 않는 사람은 하트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다음은 각종 리뷰들이다.


YES24 종교, 특히 기독교의 철학적인 분석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고 있는 포이어바흐의 책이다. 이 책은 종교비판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철학비판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다.

포이어바흐는 이 책에서 기독교 전반에 관한 분석과 비판을 시도한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서서 기독교를 비판하며 신학과 사변적인 종교철학을 포괄적으로 비판한다. 포이어바흐는 종교, 특히 기독교의 본질은 인간심정의 본질에 불과하며 그러므로 신학…

중간놀이 시간

(작년 12월쯤에 썼던 글입니다)

초등학교엔 '중간놀이'라는 시간대가 있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2교시 마치고 20분 동안(보통의 쉬는 시간은 10분) 신체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이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사와 아이들 모두에게 고역인 시간이었다. 말이 '중간놀이'이지 중간 시간대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것이 아니라 미리 짜여진 각본(학교교육과정)에 따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체조(집단체조)' 같은 것을 하곤 했던 것이다.
지금도 일부 학교에서는 이렇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에서는 2005학년도에 내가 생활담당을 할 때 이것을 "중간에 자유롭게 놀이 하는 시간"으로 바꿨다. 교사의 역할은 요일별로 학년당 한 분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어린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정해 직원협의회에 통과 시켰다. 사실 '목자'의 역할도 필요 없지만, 당시에는 관리자가 보기에 교사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노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일종의 타협점으로 제시한 것이었다.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는 학교교육과정 편성에서 '중간놀이'를 없애버렸다. 어떠한 결정단위에서 이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아이들을 위한 배려는 절대 아니다.(이 글과 관련하여 그 진의를 악의적으로? 의심해보건대, 10분을 줄이면 그만큼 아이들을 10분 일찍 집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자기시간이 10분 더 확보되는 것 때문일 지도 모른다. 설령 이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교사들이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아 간다"는 것을 모르는 점에서 그들의 판단을 좋게 볼 수 없다.)

20분의 중간놀이 시간은 아이들에게 꿀맛 같은 시간임에 틀림없다. 2교시 마침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공이나 줄넘기를 들고 쏜살같이 뛰쳐나와 운동장이나 학교 뒷뜰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즐겁게 논다. 얼마나 공을 차고 싶었으면, 며칠간 비가 계속 올 때면 …

노동자의 벗, 위대한 로커 브루스 스프링스틴

이미지
지난 석달을 뜨겁게 달구었던 촛불의 물결에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바로 위대한 로커였다. 안치환, 양희은이 나름 노력했지만, 그 일렁이는 감정과 폭발하는 에너지로 군중들을 이끌 수 있는 로커가 있었더라면 상황이 지금같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20세기 소년"에서도 혁명의 대오에 로커인 켄지가 앞장서지 않았던가?
어떤 로커가 필요했을까? 롤링스톤즈나 비틀즈? 하지만 이들은 소외받은 계급을 달래고 위로해주는 맛이 부족하다. 헤비메탈 계열은 스스로 탐닉하는 경향이 강해서 결코 대중을 이끌수 없다. 그때 문득 떠오른 위대한 로커 Bruce Springsteen! 노동자계급의 벗이라 불렸던 진지하면서도 강렬한 음악을 했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몹시 아쉬웠다.


그의 음악은 마냥 거칠지도 않다. 오히려 서정시에 가깝다. 힘있는 밥딜런이라 할까? 특히 관념적인 운동권 가사 흉내나 내는 노찾사, 안치환 등과 달리 삶의 구석구석에서 소외와 불의의 흔적을 찾아내서 조분조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로써 고통받은 이는 위로를, 그렇지 않은 이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레이거노믹스가 불러온 미친 자본주의의 고통을 음악으로 승화시켜 민중들이 희망을 잃지 않도록 끈질기게 노래해온 브루스 스프링스틴.... 지금도 버락 오바마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

그의 노래들 중 하나....(가사는..뭐, 그냥 음악의 분위기르 느끼세요... 그래도 필요하면... 첨부: 무책임) Thunder Road.txt

기능직이나 보내줄 것이지....

"이런, 기능직이나 더 보내주지..."
이 대사는 어느 학교 교감이 한 말이다.
사연인즉슨, 이 학교 학급수가 늘어서 복수교감 학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학기부터 교감이 한 명 더 배치된다고 하자, 원래 있던 교감이 "교감은 뭐하러?" 하면서 한 말이다.

바로 이 말이 학교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실제 학교는 교감보다는 기능직 직원 한명이, 행정직원 한명이 더 간절히 필요하다. 아니면 교감이 기능직이 하는 일, 행정직이 하는일을 도맡아서 하던가....

초중등교육법상 교사는 법이 규정한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하도록 되어있다. 그 외의 어떤 일도 교사의 일로 규정된 일은 없다. 생활기록부 등 학생관련 서류와 기록의 작성및 관리 담당자는 교육법상 교장,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교감으로 되어있다. 즉, 현행법은 수업과 학생지도를 제외한 모든 문서작업을 교장, 교감, 그리고 행정직원의 일로 사실상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각종 교무를 통할하도록 되어 있는 자리는 교장인 것이다.

이는 제법 꼴을 갖춘 거의 모든 나라의 공통된 현상이다. 오죽하면 일본에서는 너무 일이 많아 고되다고 도로 교사가 되겠다고 신청하는 교장이 늘어날까? 미국에서도 교장, 교감, 그리고 행정직원 네명이 학교의 모든 행정사무를 처리한다. 그래서 교장 교감은 3D로 통한다. 정작 교사는 수업이 끝나면 연구실로 들어가며, 일단 연구실에 들어간 교사는 학부모나 학생도 방해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시간이 남아 터져 난초에 물질이나 하는 교장, 고개 쳐박고 인터넷 쇼핑이나 하다, 수업하느라 바쁜 교사가 시간을 쪼개어 쪼개어 작성한 각종 행정문서에 빨간줄이나 그어서 다시 써오라는 가학놀이을 즐기는 교감들이 득실거린다. 심지어 그 부족한 행정직원조차 그 중 한명이 기껏 주사나 주사보에 불과한데도 행정실장입네 하며 마치 기관장이나 된양 일 안하고 건들거리며 어른 행세를 한다.

이러니 학생 가르치고 연구하기에도 빠듯한 교사들이 엉뚱하게 남이 해…

뇌물 부르는 근무평정. 대책없는 교장제도(펌 기사)

이미지
[ 2008-08-26 08:42:49 ]CBS사회부 고영규 기자

[relNews][relNewsPaging] 교감 승진 대상자에게 근무평점을 빌미로 금품을 수수한 초등학교 교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경 기도 화성동부경찰서는 교감 승진대상자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오산 모 초등학교 교장 A(57) 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금품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로 같은 학교 여교사 B(47)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8월1일 교감 승진후보인 B 씨로부터 "근평을 잘 받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만원을 받는 등 올 초까지 8차례에 걸쳐 220만원을 받은 혐의다.

A 씨는 또 지난해 8월 1박2일로 국내 여행을 하면서 B 씨에게 여행경비로 240만원을 대신 지불하도록 하는가 하면 용품 등을 제공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A 씨는 지난해 100만원과 일부 용품은 받았으나 나머지 혐의는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A 씨의 금품수수 의혹은 이 학교 전·현직 교사와 학부모가 연명, 화성교육청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드러났다.

천국의 아이들

알리는 오늘도 지각을 했다. 오전반인 여동생과 운동화를  교대로 신고 학교에 와야 했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호랑이 교장선생님!"알리! 오늘도 지각을 했구나!" 이런 저런 변명을 해야 하는 알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사실대로 말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집안 사정...
엄한 교장 선생님은 여러번 지각을 하는 게으른 학생은 학교를 다닐 자격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한다.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교장의 오지랍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교장이 지각생까지 지도하다니...우리 상식에는...적어도 우리가 학교에서 보는 광경으로는 우리네 교장들이 체신없이 할 일은 아니다.지각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거나 모두 담임 몫이다.
교장은 학교에서 무엇을 하나?학생들은 교장을 잘 모른다. 아주 높은 곳에서 가끔 방송 조회를 통해 훈화를 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쯤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매우 넓고 쾌적한 직무실에서 고요하게 앉아 무엇을 할까?
이렇게 지위는 있으나 역할을 잘 수행하지 않거나 역할조차 알 수 없는 그 자리가 편해서인지 교장 되려는 사람이 많다. 적어도 승진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최종 목표는 '교장'이다.  더러는 존경 받는 교장도 있다. 그러나 난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어느새 다섯 번째 학교에 6~7명의 교장을 만나보았으나 그 가운데는 없었다.
교장이 되려는 사람들 얘기를 간 혹 전해 듣다 보면 말도 믿을 수 없는 사례들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가장 최근에 들은 얘기다.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려면 근무성적을 1등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1등을 받으려면 학교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으로 인정 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때로는 무언의 약속을 하고 서로 돌려가며 점수를 주고 받는단다. 어느 야심찬 부장 교사가 당시 교감에게 1등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교감이 총애하는 부장은 따로 있었고, 요청한…

전교조 비판의 이유

이 공간에서는 전교조에 대한 비판을 별도의 독립적인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 이 공간에서 전교조 비판을 중요시 하는 것은 뉴라이트 등등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육을 망치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교육을 망치는 쪽은 교장, 교감, 교장단회의, 교육청, 그리고 그들과 검은 커넥션을 이루고 있는 교육관료와 사교육업체들이지 결코 전교조가 아닙니다. 전교조가 비판 받아야 하는 이유는 교육을 망쳤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이 망가지는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며, 교육을 더 좋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더 잘하지 못했다고 비판받는 것이 너무 부당할수도 있지만, 그것은 애초에 전교조가 약속하고, 그 약속 덕분에 한때 수많은 시민들의 정신적, 물질적 후원을 받았기에, 더 잘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사실 이 비판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 역시 여러 차례 분회장을 지냈고, 심지어 본부 간부까지 지낸, 소위 전교조 활동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만큼 더 많이 비판받아야 하고, 그 만큼 더 많은 대안을 생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이 공간을 채워 나가려 합니다.

비단 저 뿐 아니라 전교조에 대하여 따끔한 말이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이 공간을 채우는 공동 필진에 가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장님, 실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스스로를 모욕하는 교사들

학교에는 보직교사가 있다. 보직교수가 교수보다 전혀 상급자가 아니라 단지 그 직무를 맡은 것에 불과하듯, 보직교사 역시 단지 그 직무를 맡은 것에 불과한 교사다. 그런데 보직교사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보직교수들과 자뭇 다르다.

보직교수들은 서로를 부를때 "이 처장", "박 실장"보다는 "이 교수", "박 교수" 혹은 "이 선생", "박 선생"을 선호한다. 차라리 공식적으로 "학생처장"이라고 부를지언정 "이 처장" 혹은 "이 ** 처장님"이라는 칭호는 듣기 어렵다.

반면 보직교사들은 한사코 "선생"칭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한아무 선생님"이라고 후배 교사가 부르면 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성을 내기도 한다. 그야말로 속물 근성의 발로가 아닐수 없다. 그 속내에는 "선생님"을 매우 낮은 말단관리 쯤으로 생각하는 자학 근성이 숨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6급 행정 주사에 불과한 학교 행정실장을 마치 상관처럼 생각하는 한심한 교사도 있다. "부장님"이라고 불림으로써 그 6급 행정주사와 동급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놈의 부장님, 실장님 소리가 교무실을 뒤흔들때면, 여기가 학교인지 아니면 관공서나 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런데, 상호 다른 직렬의 공무원을 특별채용할 경우의 대우 기준으로 사용되는 "공무원임용시험령 별표 9"에 보면 "선생님"은 결코 미관 말직이 아니다. 교사는 직급이 없기때문에 호봉을 기준으로 삼는데, 신임교사가 9호봉을 지급받고, 중간에 1급 자격증을 따면 1호봉 승급함을 감안하면 신규교사는 7급에 준하며(초등학교의 경우 7급이 행정실장을 함/ 주사보), 4년차가 되면 6급에 준하고(중학교 행정실장/ 주사), 7년차가 되면 5급(고등학교 행정실장/ 사무관), 15…

지네트 느뵈

이미지
1919년에 태어나 1949년, 딱 30년을 살다 간 바이올린의 천재, 지네트 느뵈... 공교롭게도 디누 리파티와 비슷한 시기를 살다가 비슷하게 애석함만 남기고 하늘로 갔다.

16살에 비에냐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어린 나이에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는 신동들이야 이후로도 종종 나타났던 바(이를테면 한국계나 일본계의 유니스 리, 이또 미도리 같이...), 정작 지네트의 경이로움은 풍성한 인생의 맛을 알아야 제대로 할 수 있는 깊이있는 곡을 약관의 나이에 놀라운 표현력으로 연주해 냈다는 것이다.

특히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기교적으로 현란한 곡이 아니라서 풍부한 표현력이 없으면 매우 지루하고 평범하게 들리는 곡인데, 지네트는 이를 한 50살 먹은 거장이나 보여줄법한 원훅하고 깊이있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비록 워낙 옛날 판이라 음질은 엉망이지만, 바이올린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느낄 것이다. 25살의 아가씨가 이런 연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건지...

그래서 시샘한걸까? 16세에 명연주자로 데뷔하고, 25세때 50대의 경지를 보여주고, 30세에 인생을 마감했으니, 이 모든 게 2를 곱해야 정상이 되지 않는가? 남들의 두배를 표출하고 절반만 살다간 지네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2악장을 올려본다....

교감 삐치다

우리학교 교감은 잘 삐진다. 일단 삐지면 각종 결재 등에서 반드시 복수를 한다. 사소한 트집을 잡아 반려를 한다던지, 아니면 남들 있는 앞에서 호통을 친다던지 하면서. 그런데 절대 전교조 활동가, 부유층이나 권력층 남편을 둔 교사, 그리고 힘이 세보이는 남교사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항상 애꿎은 기간제 교사나, 비교적 젊은 여교사가 그 대상이 된다.

1학년 어느 반에선가 전교1등이 나왔다. 그 학생의 학부모가 감사드린다면서 별안간 보쌈을 학교에 보냈다. 담임교사는 과학교사들의 양해를 얻어, 과학실에 보쌈을 펼쳐놓고, 전체 교사들에게 쪽지를 돌려 작은 파티에 초대를 했다.

그런데, 교감이 삐졌다. 다들 한 점씩 먹으러 가는데, 꼼짝도 않고 꿍하면서 자리에 앉아있다. 몇몇 여교사들이 가서 달래주자, 겨우 비적비적 일어나서 "진작 그럴 것이지"하는 모습으로 과학실로 갔다.

그는 대체 왜 삐쳤던 것일까? 나중에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이랬다.

1. 과학실을 교과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관리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는 점.
2. 교사들에게 과학실로 오라고 초대 쪽지를 보내기 전에 먼저 "교감"을 모시지 않았다는 점. 한 마디로 뭍 교사들과 동등하게 취급했다는 점

그 사정을 알게 되자, 나는 화가난다기 보다는 매우 코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관리자"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높다는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아파트 관리실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럼 학교는 "관리자"와 "교육자"로 구성될터, 그럼 어느쪽이 더 근사해 들리는가?

교감들이 이렇게 사소한 일에 시비를 걸고 자기를 어떻게든 드러내려고 애쓰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할일이 없어서!"

만약 교원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면, 교사들 보다는 이런 "관리자"들에 대한 평가가 먼저 엄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근본주의와 프로테스탄트는 동의어다.

근본주의적인 프로테스탄트, 유연한 프로테스탄트를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 있다. 애초에 종교개혁의 발단이 근본주의적이었으니.
흔히 알려진것처럼 루터나 칼뱅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정치화나 독재, 혹은 부패에 반대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면죄부에 반대한 것도, "돈을 받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후천적 노력"에 의한 구원을 정당화하기에 반대한 것이다.

그들은 기실 부패와 정치화가 아니라 토마스주의 및 스콜라 철학과 싸웠다. 즉 신앙을 점점 이성 아래에 넣으려는 시도에 반발한 것이며, 신의 존재, 신의 뜻을 인간의 이성과 추론으로 찾아내고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반발한 것이다. 토마스 주의의 극단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존재와 정당성의 근거를 갖게되는 신이었으니... 그 무수한 신존재증명들을 보라.

루터는 이러한 후천적 노력와 이성적 파악에 반대하여, "성서속의 진리"와 "오로지 신앙"을 강조한 것이다. 즉 성서의 내용은 이성적 추론의 대상이 될수 없는 무조건적인 진리이며, 구원에의 길은 인간의 특별한 노력이 아니라, 오직 신의 의지소관인 바, 오직 복종하고 뜻에 맡기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북부유럽의 가부장적 군주정과 잘 결합하는 논리였다.

이로써 프로테스탄트적 인간형이 등장한다. 그는 사회, 인류에 대해 관심이 없다. 오직 성서 안의 말씀과, 맡은 바의 작은 일만 개미처럼 성실하게 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없이 살면서 자신의 구원을 오직 신의 뜻에 위탁하는 자, 그게 프로테스탄트적 인간이다. 그러니 이들이 자본의 초기 축적에 지대한 역할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종교개혁의 정신이 왜곡되어 기독교가 근본주의화 된 것이 아니다. 종교개혁 그 자체가 이미 수백년 전에 일어난 기독교의 복음주의, 근본주의화 운동이었던 것이다.

교장 및 현행 교원승진제도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한겨레 펌 기사)

이미지
교감 되려면 ‘영덕대게’ 뇌물?경기 초교 교장, 승진 명분 수백만원·물품 ‘꿀꺽’ 김기성 기자고추, 검은 콩, 양념 불고기, 영덕 대게, 게살 파먹는 도구…. 일부 초등학교 교사들이 자신의 인사평가를 책임지는 교장에게 수백만원의 돈과 함께 바친 ‘뇌물 목록’이다. 교장에게 돈과 뇌물을 준 한 여성 교사(47)는 “교장이 교감 승진을 앞둔 나 대신 ‘다른 후배 교사를 키워주겠다’라고 공공연히 말했다”며 “아무리 스스로 인사 관리를 해도 교장에게 잘못 보이면 모두 허사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경찰에서 털어놨다.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장(57)이 함께 근무하는 교사들한테서 상습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받아오다 경찰에 적발됐다. 이 교장은 2007년 6월부터 지난 2월까지 승진을 앞둔 이 여성 교사에게 8차례에 걸쳐 서울 자신의 아파트와 학교 근처 식당 등에서 10만원권 수표 등 모두 22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26일 이 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그는 또 같은 해 8월 중순께는 다른 교사에게 “1박2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뒤 여행 경비와 선물 대금 등으로 250만원을 내게 한 사실도 경찰조사에서 밝혀졌다. 또 교장 비위를 진정한 한 교사는 “어느 교사는 교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오는 교장을 날마다 마중 나가 승용차로 학교까지 출근시키기도 했다”고 전했다.이밖에도 이 교장은 학교 배드민턴부 인원을 부풀려 밥값 50만원을 챙기기도 했으며, 자신이 미리 정한 수련회장으로 학생들을 보내기 위해 다른 수련회 장소에 대해서는 답사조차 하지 않고 낮은 점수의 심사결과표를 만들도록 지시한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도 받고 있다. 경찰은 교장의 가족에 대한 계좌 추적 과정에서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교장 부인(54)도 지난 해 10월 학부모들한테서 180만원을 받은 것을 확인해 해당 교육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화성동부경찰서 김영배 지능범죄수사팀장은 “교감 승진 과정에 교장이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어 이런 부조리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

철학의 도피

일찍이 로마제국 말기에 신플라톤주의 철학자 보에티우스는 인생의 가장 참혹한 순간에 "철학의 위안"을 썼다. 참으로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진 그 책은 문자 그대로 철학이 의인화 되어 작가에게 위안을 주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그 책을 처음 비웃었다. 아름답기는 하지만 철학과는 너무 멀다고 생각했다. 세계를 해석만 할 것이 아니라 변혁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경구가 여전히 영향력을 갖고 있을때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런데 근래 다시 그 책을 집어 들었다.
하긴 요즘 철학책을 무척 많이 읽는다. 얼마 전에는 스피노자의 "에티카", 칸트의 "윤리형이상학 정초"를 그냥 워드질로 옮겨놓기까지 했다. 이제는 "정신현상학"을 읽을 참이다. 그 정밀하고 두뇌를 혹사시키는 문장들 속에서 씨름을 하다보면 삼매지경에 빠진다. 어쩌면 내가 철학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삼매지경을 위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쇼펜하우어가 예술에서 찾던 것을, 나는 철학에서 찾는것인지도....

그냥 만사를 잊고싶다. 윌리엄 제임스는 "정신현상학"을 읽고 철학이 골방이 아니라 세계와 사회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나는 도리어 정신현상학을 읽으면서 세상으로부터 퇴각해서 골방속의 삼매경에 빠지려 하고 있다. 비겁하고 비겁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슬픈 시절이다.

그럼, 교감은 또 워 하는 자리일까?

학교장의 권한이 막강함을 지난 번에 살펴 보았다. 그리고 그 막강한 권한이 승진의 욕구가 되는 것이지 결코 교육과는 무관함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교장과 함께 학교에 설치된 교감은 또 뭐하는 자리일까?

법조문을 살펴보면 교감이라는 자리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자리임을 알 수 있다. 교감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서는 역시 초중등 교육법 제 2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그 중 2항이 바로 교감에 대한 몫이다.
초중등교육법 제 20조 ②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 다만, 교감을 두지 아니하는 학교의 경우에는 교장이 미리 지명한 교사가 그 직무를 대행한다.이 조문을 따르면 교감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 교장을 보좌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교장을 보좌하고, 교무를 관리하며 학생을 교육한다"가 아니라 "교장을 보좌하여~"라는 것이다.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는 것은 교장이 하는 것이다. 심지어 동 법 동 조 3항의 "교사는 법이 정한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조문과 비추어 보면 교감의 권한은 교사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이 정한 바에 따라" 교육한다는 것은 과거 "교장의 명을 받아"를 민주적으로 개정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학교교육과정의 최종 편성권자가 학교장인 이상, 결국 학생 교육의 주체는 교장이다. 다만 학교교육과정위원회, 성적관리위원회 등의 자문기구를 거칠 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교장이 전권을 가질 수 있다.

만약 교장이 전권을 휘두르며, 이를 교감과 공유하거나 일부를 할양할 의사가 전혀 없을 경우, 혹은 교장에게 부득이한 사유가 생기지 않는 경우 교감은 "할일이 없고, 권한도 없는"자리인 것이다.

사실 교감이 이런 자리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교감들이 더 잘 …

기독교에 대하여

나는 천주교 신자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냉담자다.
지난번 정의구현 사제단의 시국미사때 울컥하기도 했다.
그러나 금번 주교단 회의에서 사제단에게 징계성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그 울컥을 회수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 같지만, 난 아무리 봐도 그 기대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천주교도 기독교는 기독교인 것이다. 모든 종류의 기독교는 유일신이자 인격신,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지고 있는 원죄, 그리고 예수에 의한 속죄와 희생을 믿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리고 바로 이 공통의 신앙 요소들이 결국 사회정의에는 걸림돌이 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이 신앙 패키지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자신의 절대권력에 이용하기 좋은 요소들만 편집해서 니케아 공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반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절대권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원시기독교의 요소들, 특히 영지주의와 관련한 요소들은 모두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결국 바울의 기독교만 남게 되었다. 바울은 로마의 시민권자로 애초부터 로마에 선교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며, 로마인들에게 용납되기 쉽도록 기독교 교리를 재편하였다는 혐의를 벗기 어렵다.

천주교든, 개신교든 모두 바울에서 콘스탄티누스로 이어지는 이 흐름의 여러 곁가지에 불과하며, 이 흐름은 하늘이 두쪽나도 기존의 권력을 위해 봉사할 수 밖에 없다.

혹자는 예수의 전복적인 삶과 저항적 시도들을 일컬어 예수는 혁명가였다고 하면서 추종한다. 진보적 기독교인들이 거의 그렇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예수는 존경할만한 과거의 전범이자 위인이 되지 신이 되지는 못한다. 예수의 저항적 삶을 따라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신앙"에 의해 "수동적인 구원"을 기다리는 자세가 바로 모든 기독교의 공통요소인 것이다. 기독교 어디를 뒤져 보아도 "능동적 구원과 해방"의 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전통적인 구복신앙과 결합된 세속적인 한국 기독교야 오죽하랴? 천주교 역시 신자들의 SES가 높아서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을 뿐,…

너무 안 알려진 한국의 교장

이 블로그의 개설 취지는 원래 교장의 실상을 알리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학교장들 말이죠. 의외로 많은 일반인들이 한국의 교장들이, 그리고 그 교장제도가 얼마나 부조리한 것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정말 경험많고 연륜있는 교육자가 교장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적어도 일반 교사들 보다는 좀 더 나은 사람일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리부터 결론을 내리자면 결코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교육경험 없고,일반교사만도 못한 사람들이 교장이 됩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많은 야심있고 나름 능력있었던 교사들이 서로서로 못난 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을 합니다. 그 승자가 교장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도 언론의 보도는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어떤 학교에서 뭔가 자랑할 만한 일이 생기면 그 인터뷰는 막상 그 일을 한 교사가 아니라 교장이 합니다. 예컨대 몽몽중학교(학교장 아무개) 이런 식으로 소개가 되는 것이죠. 그런데 어떤 학교에서 뭔가 나쁜 일이 생기면 결코 교장의 이름이 노출되지 않습니다. 몽몽 중학교 부정변 교사가 학생을 어찌했다 이런식으로 보도된단 말입니다. 이게 교묘한 언론술입니다.

실상 학교의 모든 훌륭한 일은 이름없이 노력한 교사들의 몫이고, 학교의 거의 모든 나쁜일은 교장이 주도했거나, 교장을 꿈꾸는 이들이 저지른 일입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전교조를 저주하고, 저 도독놈 같은 인간을 교육감으로 만들려고 발악하는 교장들의 저의를 알 수 있습니다. 교장들이 전교조를 저주하는 것은 교육적 이유가 아니라 자기들이 해먹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교장은 절대 교육자가 아니라는 것을....

뭘 근거로 단정하냐고요? 두고 보십시오. 이 블로그에 그걸 증명하는 사례들이 차곡차곡 누적될 것입니다.

샤인 어 라이트 Shine a light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롤링 스톤즈 공연 실황을 가지고 만든 영화 제목이 "샤인 어 라이트"...
이 제목은 롤링 스톤즈의 최고 걸작 앨범으로 일컬어지는 "Exile on Main Stream"에 수록된 곡이다. 앨범 제목부터 특이하다. "주류로의 탈출" 주류로 가는 것이 탈출이라? 참으로 깜찍하고 전복적인 제목이다. 어려운 영어가 아니니 번역은 생략(사실은 귀찮아서) 사실 속어, 비속한 표현이 많아서 어려운 단어는 없는데도, 참 무슨 뜻인지 알아먹기가 거시기 하다. 롤링 스톤즈에게 가사는 의미 없다. 어차피 다 섹스, 사랑, 즐기자, 그까짓 규칙 등등이니까.  닥치고 그냥 곡만 듣고, 흥이 나면 흔들어라! 이게 롤링 스콘즈 감상법이다.

SHINE A LIGHT
(M. Jagger/K. Richards)Saw you stretched out in Room Ten O Nine
With a smile on your face and a tear right in your eye.
Oh, couldn't see to get a line on you, my sweet honey lover
Berber jewelry jangling down the street,
Making bloodshot eyes at every woman that you meet.
Could not seem to get a high on you, my sweet honey love.May the good Lord shine a light on you,
Make every song your favorite tune.
May the good Lord shine a light on you,
Warm like the evening sun.When you're drunk in the alley, baby, with your clothes all torn
And your late night friends leave you in the cold gray dawn.
Ju…

아도르노 '음악사회학' 중 청취자 유형 (펌글)

이미지
아도르노가 분류한 음악청취유형  


▲ 프랑크푸르트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에는 빈에서 음악에 종사하였으나, 1931년 모교의 철학강사로 취임하였다. 1934년 나치스에 의해 추방되어 미국으로 망명하였다가, 1949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다시 독일로 귀국, 호르크하이머와 함께 사회조사연구소(社會調査硏究所)를 개설하였다. 1950년에 프랑크푸르트대학 철학교수로 취임하는 한편, 파시즘 연구를 주제로 한 《권위주의적 인간(權威主義的人間)》을 간행하는 등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그의 사상은 체계성을 거부하고, 각 이데올로기 영역에 내포된 정신의 변질적 경향을 날카롭게 분석해내는 데 특색이 있으며, 근대문명에 대하여 독자적인 비판을 제시하였다. 또 그는 현대음악의 성격에 대해서도 뛰어난 업적을 남긴 바 있다. 주요저서로는 위에 기술한 것 이외에 《현대음악의 철학》(1949), 《Soziologica》(1962), 《부정적 변증법(否定的辨證法)》(1966) 등이 있다.
1. 18세기의 음악비평가 로흐리츠는 음악회에 참여하는 관중의 청취유형을 넷으로 구분했다. 첫째, 허영과 유행으로 음악을 듣는 그룹, 둘째 음악을 오직 귀로써만 듣는 그룹, 셋째 음악을 오직 이해력으로 듣는 그룹, 넷째 음악을 모든 영혼으로 청취하는 그룹.

2. 베셀러에 따르면 음악작품이 탄생한 시대에 따라 청취유형이 달라진다. 그는 시대적 음악양식과 청취유형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음을 주장하며, 르네상스 음악은 '알아듣는 청취', 바로크음악은 '연관시키는 청취', 고전음악은 '능동적 청취', 낭만음악은 '수동적 청취'를 하게된다고 주장했다.

3. 아도르노는 음악청취 유형을 8가지로 구분하며 이를 사회적 개념으로 정리하고 심리상태와 연관짓는다. 이들 유형은, 구조적 청취유형, 유능한 청취유형, 교양 청취자유형, 감성적 청취유형, 질투 청취유형, 재즈 청취유형, 오락 청취유형, 무관심적이며 비음악적이고 반음악적인 청취유형.

첫째, 구…

진보가 우파를 비판할 때

체계의 외부에서 행하는 비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진정한 비판은 그 체계의 내부에서, 그 체계의 논리를 이용하면서 그 모순을 첨예화시킴으로써 가능하다.

사실 체계의 외부에서 아무리 비판해 보아야, 그 체계 내의 사람들은 이미 비판자와 공유하는 배경, 선이해가 다르기 때문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즉 외국어로 들리는 것이다. 조선일보만을 세계의 창으로 알아왔던 사람에게 마르크스의 개념틀에서 이야기해 본들 그것은 고함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그동안 좌파들은, 진보들은 이런일을 해 온것이 아닐까? 민중들이 혹은 시민들이 갖고 있는 기존의 세계상, 이해의 지평을 이해하고, 그들의 개념과 그들의 세계상 속에서 비판할 필요가 있다. 조선일보 등 우파 꼴통틀의 비판도 그들 앞에서 고함을 칠것이 아니라 그들의 개념과 그들의 언어를 이용해서 스스로를 아이러니로 몰고가야 한다. 왜 그런 친절을 하냐고? 꼴통들은 자기들의 지평에서만 사유하며, 자신들의 지평도 명시하지 못하지만, 진보는 자신의 지평뿐 아니라 타인의 지평도 훤히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파의 세계상의 배경을 꿰뚫어 보고, 그들의 논리와 개념들을 이용하여 아이러니를 만들어낼 수 있을때 비로소 비판은 가능하며, 그들에게 감염된 민중들을 끌어올 수 있으며, 진보끼리의 비판적 자위행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파들조차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공통의 영역, 즉 고전, 공식적 지식의 영역에 해박하고 탁월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진보적 관점을 가질때 그런 영역에서도 더욱 탁월할수 밖에 없다고 확신한다. 참 지식은 반성에서 비롯되며, 반성은 이미 비판적 입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