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08의 게시물 표시

음악에세이 -테초에 소리가 있었다(3)

어찌어찌 하다보니 쉽게 쓰겠다던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훨씬 잘난척한 꼴이 되고 말았는데, 결국 말 하고자 하는 요지는 음악의 역사는 날이 갈수록 폴라톤적인 요소와 피타고라스적인 요소가 화학적으로 분해되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감상자는 플라톤이되고, 제작자는 피타고라스가 되고 만 것이다. 즉 음악듣기를 좋아하는 것과 음악 만들기는 별로 상관이 없는 심지어는 적대적인 관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이것을 나는 음악의 존재론적인 모순이라고 부른다. 플라톤적인 코레이아, 이른바 넋 나간 열광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인간은 음악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완전한 이성적 존재였다면 유희라는 것이 필요 없었을 테니. 그러나, 음악이 디지털화(수학화)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음악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음악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마침 주변에 즐거운 소리 잘 내는 친구가 있으면 다행이고, 없다면 하는 수 없이 스스로 나무막대기를 두드리던, 활줄을 튕기든 하면서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 마치 우리나라의 다듬이돌 합주처럼.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모순인가? 우리가 음악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모순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사람들이다. (베토벤의 고뇌는 무엇을 말하는가? 열광을 따르자니 수학이 울고 수학을 따르자니 열광이 우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베토벤의 슬픔”이라는 장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물론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애초에 음악적 열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지 뛰어난 수학자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과학적으로 곡을 만드는 법을 착실히 익혀서 그 뛰어난 기술로 곡을 만든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음악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같은 것이다. 실제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만 키보드로 요란하게 두드린 다음 주문한 사람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는 음악가도 있다. 이미 음악도 하나의 사업인 것이다. 흔히 팝음악이나 영화음악을 상상하겠지만, 실제로 이른바 클래식 음악…

음악에세이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2)

소리의 조작을 통한 감정의 조작, 이것이 음악의 기원이다. 이는 수십만년에 걸쳐 아주 서서히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전쟁용이건 유희용이건 종교용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애초에 인간의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근대사회에서는 이른바 문화영역의 자율적 합리화 경향으로 인해 최근까지 무시되어 왔다. 그리하여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분야 안에서의 일련의 합리적 법칙만 추구하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되었지, 이 분야가 사회에서 인간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러한 사실을 갑작스레 되살린 사람들은 이른바 음악치료요법이란 것을 들고 나온 일단의 유사과학자(자신들은 뉴에이지 과학이라고 하지만) 들이다.어쨌든 여기에 관한 한 근대 이전의 인류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대 고전문화가 발흥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리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그 법칙을 알아내면 보다 편하게 감정을 조작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서양에서 공히 일어났다. 특히 동양에서는 음악의 감정 조작적 속성을 수천 년 전 부터 주목했다. 주목만 했던 것이 아니라 소리들을 체계적으로 유형화 하였고, 이렇게 유형화된 소리를 다시 체계적으로 유형화된 감정들과 조합시켰다. 이리하여 관혼상제를 비롯한 각종 애경사에 사용할 소리들의 체계가 일목요연하게 기록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경로를 취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권세가 당당한 집안에서 초상을 당하면 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슬픈 소리 잘 내는 사람 -곡소리 잘 내는-을 고용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그리 자주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 사람이 초상 때를 맞추어 마침 집 근처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을 슬프게 하는 소리의 법칙을 알아낸다면 어떨까? 아주 경제적이지 않을까? 굳이 수 …

용기에 대하여(아리스토텔레스)

용기란 두려움과 태연함의 중용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물론이고, 또 무서워하는 것들은 온갖 악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불명예, 빈곤, 질병, 친구가 없는 것, 죽음 등을 포함한 모든 악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용기 있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할 만한 것만을 두려워 한다. 예를 들어 불명예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고 고귀한 일이고, 반대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비천한 일이다. ...빈곤이나 질병처럼 악덕에서 나온 것이 아니거나, 자기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용감한 사람과 관계 있는 무서운 일은 무엇인가? 용감한 사람은 사람가운데서 가장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두려움에 부딪혀도 떳떳하고 순리에 따라 명예롭게 행동한다. 이것이야 말로 용기의 목적이다. 모든 활동의 목적은 그 활동의 성격을 보여준다. 용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용기는 고귀하기 때문에 그 목적도 고귀하다. 용감한 사람이 무서운 것을 참고 견디며 용기있는 행위를 하는 것은 고귀한 목적 때문이다. 한편, 정말 무서운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태연한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며, 허풍선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보면 그는 용감한 척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용감한 사람은 무서운 일에 대해서 정말 용감하지만, 무모한 사람은 용감한 것처럼 보이려고 용감한 사람을 최대한 흉내 낼 뿐이다. 그래서 대개 무모함과 비겁함이 섞여 있다. 그들은 그들은 가능한 한 태연해보이려고 하지만, 정말 무서운 일은 견디지 못한다. 무서워하는 일에서 또 다른 방향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사람은 겁쟁이다. ...이는 고통스런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겁쟁이는 비관적인데, 모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용기란 두려움과 태연함의 중용이다.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견디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고귀한 일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비천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 사랑, 그 밖에 무엇이든지 고통스러운 것을 피하기 위하여 죽…

굴드 음반의 복제, 그리고 구제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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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 쓰면, 웬지 근사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자기 본령인 영화에 대해서는 별 깊이도 없는 어느 얼치기 평론가가 마구 외국 이론가 이름을 들이대다가 저지른 코메디가 "그러니까, 월터 벤자민에 따르자면...", 물론 그의 영어 코메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마이클 푸콜트, 개스턴 배이츨러 에서 압권을 이루었다. 아, 여기서 하려는 주제는 이게 아니고, 문득 그 웃기는 평론가의 기억이 되살려 놓은 발터 벤야민의 사유다.

최근에 최성민씨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벤야민의 사방으로 반짝이는 사유의 편린들이 연거푸 번역이 되고 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역사철학 테제, 폭력에 대하여 등은 물론 저 엄청난 페이지의 "아케이드 (파사쥬)프로젝트"까지 완역 된 마당에 이제 벤야민의 중요한 글은 다 옮겨졌다고 볼수 있다.

아래 포스팅에서 글렌 굴드의 바흐 연주를 컴퓨터로 재현한 음반에 대한 각종 논란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이름이기도 하다. 클래식 연주자는 20세기 이후 예술가들 중 거의 마지막 신화적 존재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그너에서 이미 조짐이 보엿지만, 20세기 들어 작곡이라는 과업은 이미 고도의 전문적인 영역으로, 나름의 학적 체계와 기술, 그리고 정교한 계산의 영역이 되어버렸지만, 그리하여 작곡가의 작품은 단지 오선지의 부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 천재적인 연주자들의 휘황찬란한 영감에 가득찬 연주의 순간이야 말로 진정 신화가 되었던 것이다.

20세기 들어 천재의 칭송을 받는 존재가 작곡가에게서 연주자로 넘어간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웬지 체계적 훈련과 거리가 멀고 오직 신적 영감의 내림굿이라도 받은듯한 지휘자에게로 넘어간 것도 벤야민의 용어를 빌리자면 작곡가의 아우라가 소멸되었기 때문이리라. 체계적인 화성학과 대위법은 작곡을 기술의 영역으로 밀어넣어, 아우라를 제거하고 합리화(!)했다.

그런데 웬걸? 레코드가 등장했다. 대량복제의 시대가 된 것이다. 콘서트 홀이라는 신전에서 경건하게 영접했던 저 피아노의 신, 바이올린의 신…

음악의발생학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2)

아래 포스팅에서 음악의 시작은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이 터득한 소리의 조작을 통한 감정의 조작에서 시작되었음을 살펴보았다.그것이 전쟁용이건 유희용이건 종교용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애초에 인간의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근대사회에서는 이른바 문화영역의 자율적 합리화 경향으로 인해 최근까지 무시되어 왔다. 그리하여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분야 안에서의 일련의 합리적 법칙만 추구하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되었지, 이 분야가 사회에서 인간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러한 사실을 갑작스레 되살린 사람들은 이른바 음악치료요법이란 것을 들고 나온 일단의 유사과학자(자신들은 뉴에이지 과학이라고 하지만) 들이다.어쨌든 여기에 관한 한 근대 이전의 인류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대 고전문화가 발흥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리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그 법칙을 알아내면 보다 편하게 감정을 조작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서양에서 공히 일어났다. 특히 동양에서는 음악의 감정 조작적 속성을 수천 년 전 부터 주목했다. 주목만 했던 것이 아니라 소리들을 체계적으로 유형화 하였고, 이렇게 유형화된 소리를 다시 체계적으로 유형화된 감정들과 조합시켰다. 이리하여 관혼상제를 비롯한 각종 애경사에 사용할 소리들의 체계가 일목요연하게 기록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경로를 취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권세가 당당한 집안에서 초상을 당하면 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슬픈 소리 잘 내는 사람 -곡소리 잘 내는-을 고용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그리 자주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 사람이 초상 때를 맞추어 마침 집 근처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을 슬프게 하는 소리의 법칙을 알아낸다면 어떨까? 아주 경제적이지 않을까? 굳…

이렇게 살면 행복할까(1) 세네카의 경우

요즘 자꾸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글을 찾아 보기도 한다. 그런데 행복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 점점 행복이 너무 어렵다는 생각에 불행해진다. 이렇게 살면 행복할까? 세네카는 이렇게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디 들어보자......

행복해지고 싶다 -이 말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만, 이처럼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은 말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그 행복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천 명에 한 사람도 어디에서 행복이 오는지 모르고 있다.그런데 우주는 암중모색하듯 무작정 행복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둘러 잘못된 길로 발을 들여 놓음으로써 갈수록 당초의 목표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둘째 “어느 길로 가면 가장 빠른가”를 살펴야 한다.바른 길을 가면 우리는 하루하루 나아지지만 반대로 곁길로 접어들면, 즉 바른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그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면, 곧 미궁에 빠져 언제까지나 방황과 착오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능한 길잡이를 갖는 것이다.보통 여행의 길이라면 부근에 사는 사람이 바른길을 가르쳐 줄 수도 있고, 또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대체로 정해져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행복에의 길은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밟고 간 발자취가 위태롭기 짝이 없으며,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 바른 길을 가르쳐주기는커녕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헤매게 한다.그러므로 우리는 야수들이 떼를 지어가듯 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보다는 이지에 의해 자기 자신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패배의 연속으로, 한 사람이 쓰러지면 다음 사람이 그 위에 넘어지고 그 다음 사람이 그 위에 또 쓰러진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다.이러한 잘못은 곧 “군중이 진리와 정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군중으로부터 떠나야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