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9.

음악에세이 -테초에 소리가 있었다(3)


 어찌어찌 하다보니 쉽게 쓰겠다던 처음의 약속과는 달리 훨씬 잘난척한 꼴이 되고 말았는데, 결국 말 하고자 하는 요지는 음악의 역사는 날이 갈수록 폴라톤적인 요소와 피타고라스적인 요소가 화학적으로 분해되는 과정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감상자는 플라톤이되고, 제작자는 피타고라스가 되고 만 것이다. 즉 음악듣기를 좋아하는 것과 음악 만들기는 별로 상관이 없는 심지어는 적대적인 관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을 나는 음악의 존재론적인 모순이라고 부른다. 플라톤적인 코레이아, 이른바 넋 나간 열광이 없었더라면 애초에 인간은 음악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이 완전한 이성적 존재였다면 유희라는 것이 필요 없었을 테니. 그러나, 음악이 디지털화(수학화)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음악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을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음악이라는 시스템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마침 주변에 즐거운 소리 잘 내는 친구가 있으면 다행이고, 없다면 하는 수 없이 스스로 나무막대기를 두드리던, 활줄을 튕기든 하면서 스스로 소리를 만들어야 했을 테니까. 마치 우리나라의 다듬이돌 합주처럼.

이 얼마나 기가 막힌 모순인가? 우리가 음악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모순 속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사람들이다. (베토벤의 고뇌는 무엇을 말하는가? 열광을 따르자니 수학이 울고 수학을 따르자니 열광이 우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뒤에 “베토벤의 슬픔”이라는 장에서 다시 다룰 것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애초에 음악적 열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지 뛰어난 수학자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과학적으로 곡을 만드는 법을 착실히 익혀서 그 뛰어난 기술로 곡을 만든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 음악은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같은 것이다. 실제로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만 키보드로 요란하게 두드린 다음 주문한 사람에게 이메일로 전송하는 음악가도 있다. 이미 음악도 하나의 사업인 것이다. 흔히 팝음악이나 영화음악을 상상하겠지만, 실제로 이른바 클래식 음악계라는 곳에서도 이런 현상은 심각하다. 작곡과에서는 음악을 만듦에 있어 필요한 감각과 정서를 키우지 않고, 그런 훈련도 하지 않는다. 그저 디지털화된 악보의 수학적 분석만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예술가가 아니라 작곡 엔지니어의 양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음대 작곡과 졸업생들은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일 보다 남의 악보에 분석식 써 놓는 일을 더 좋아한다.

또한 그 분석식을 적음에 있어서도 대체로 대학 작곡과 출신들을 보면 19세기 이전의 작곡가로는 바하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고, 그 이후의 작곡가로는 라벨이나 스트라빈스키, 혹은 안톤 베베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 이유는? 수학적이니까. 일반인이 들을 때는 따분하거나, 혹은 듣기 거북한 소리이지만 자신들이 바라보는 악보에서는 피타고라스가 우주의 심포니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그런 조화로운 세계가 펼쳐지니까. 소리로는? 그것은 알 바 없다. 피타고라스의 법칙이나, 유클리드 기하학을 한창 공부하고 있는 수학도가 직각삼각형 그림을 보면 단지 썰렁한 도형으로만 보이는가? 마찬가지로 온갖 음악의 수학으로 머리를 무장했는데, 아무리 따분하고 전혀 아름답지 않은 소리라 한들 그렇게 들리겠는가?

그런데, 대중들은 전문가를 동경한다. 음악을 감상하는 자들이 음악을 만드는 자들에게 오염되기 시작한다. 이제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당연히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하고 그런 다음에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음악의 원초적 열광은 어디로 갔는가? 클래식 뿐 아니라 록 음악까지 그렇게 들으려고 한다. 영국의 댄스음악인 테크노를 심각한 표정으로 깊이 감상하는 한국대학생은 흔한 풍경이다.

당연히 내겐 이런 현상이 반갑지 않다. 음악이 소리를 주물럭거려서 만든 공산품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 주가 되는 것은 플라톤적인 열광(코레이아)이며, 피타고라스적인 요소는 단지 그것을 용이하게 하고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음악계는 주객이 전도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갑작스럽게 일기 시작한 바하에 대한 외경의 움직임, 그리고, 그 거룩한 아름다움의 표상이었던 모차르트가 1990년대 이른바 모차르트 재조명 작업(그의 서거 200주년을 맞아 이루어진 집중적인 연구)을 통하여 신산(神算)이라 불릴만한 계산의 대가로 그 이미지가 엄청나게 변모되어 가는 과정 등이.

불과 10년 전만 해도 모차르트의 41번 교향곡을 말할 때 “태양과 같은 광채에 휩싸여 있고, 범접하기 힘든 장엄한 위엄에 가득 찬 제왕과 같은 기품....”운운 하는 것이 주조를 이루었었는데, 최근 5년 전 부터는 “모차르트가 아니고서는 누가 감히 무려 6개나되는 모티브를 푸가로 엮을 시도를 하였겠는가? 기껏 1주제, 2주제에 발전부 주제까지 쳐서 2-3개의 주제만을 사용하고도 쓰기 어려운 소나타 형식을 무려 5개나되는 주제를 가지고 엮어내는 절묘한 테크닉...”운운하는 식으로 바뀐 것이다. 물론 그것도 음악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이긴 하지만, 모차르트의 41번 교향곡을 주제가 5개라서 즐겨듣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 곡을 즐겨 듣던 사람들 중에 모티브를 일일이 따져가며 그 수를 세어가며 왼쪽 뇌를 맹렬히 혹사시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딴 얘기는 악보 상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른바 5개나 되는 주제를 사용해서 엮어낸 소리, 그 소리 자체인 것이지, 주제의 개수와 그것을 엮는 테크닉이 아닌 것이다.

베토벤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현상이 나타난다. 베토벤 탄생 200주년을 계기로 활발히 이루어진 연구의 결과 “열정의 작곡가”는 “오묘한 기법과 지극히 까다로운 기법의 작곡가”로 변신되었다. 최근 나타나는 베토벤과 관계되는 글은 거의 대부분 아주 단순한 동기를 끊임없이 발전시켜나가는 이른바 “아주 평범한 벽돌들을 쌓아서 굉장한 건축물로 만드는” 그의 수학적 능력에 집중되어있다.

아! 이제 음악은 종말을 향하여 치닫고 있다. 그 존재론적인 모순으로 인하여 기껏해야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 아니면, 소수의 지배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암호체계로 변해가고 있다. 음악을 듣는 자는 아직도 플라톤적인 열광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음악을 만드는 자는 더 이상 열광에 의지하지 않는다. 음악은 수학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수학 같은 음악에서 열광을 느낄 수 없다고 불평하는 청중들에게 그것은 너희들의 무식 탓이라고 우긴다. 이제 청중들도 수학을 공부한다. 그럼 작곡가는 더 어려운 수학을 만든다. 그리고 또 청중들을 꾸짖는다. 때로는 청중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예를 들면 펑크록 같은. 그러나, 그 반란은 이내 진압된다. 펑크는 쉬운, 그러나 열광적인 음악의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U2를 통하여 록음악을 더 어렵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말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결국 무엇이 남을까? 전문가는 곡을 만들겠지만, 듣는 자는 다른 곳에서 열광을 구한다. 음악이 아닌 스타의 표상에서, 아니면 과거의 음악에서. 그렇게 음악은 사라져 간다.

실제로, 오늘날 음악의 영향력은 형편없이 약해져 가고 있다. 클래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진영은 거의 고사상태이다. 오늘날 더 이상 모차르트 같은 인기 클래식 작곡가는 없다. 죽은지 200년이 지난 사람의 음악이 아직도 가장 많은 발매 부수를 자랑한다는, 그래서 오늘날 살아있다면 저작권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라는 그 위대한 생명력을 찬양하기 보다, 그럼 도대체 오늘날 작곡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200년 전의 음악보다도 관심을 끌지 못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클래식 뿐만이 아니다. 소위 대중음악의 분야에서도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늘날 왕년의 비틀즈나 롤링스톤즈 같은, 아니 하다못해 레드제플린이나 딥퍼플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소위 대중 음악가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대중음악에서도 진지한(!)음악을 한다는 사람들과 풀빵 음악이 분화 되어버렸기 때문이고, 그 진지한(!)그룹은 악기만 전기기타 등등일 뿐이지 알아먹기 힘든 어려운 음악으로 대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는 오늘날 클래식 음악가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평론가가 생기고, 그 평론을 또다시 논쟁거리로 만드는 학자가 생기면서, 이젠 더 이상 록도 왕년에 보여주었던 플라톤적인 열광의 힘을 잃어버렸다. 그렇다고 풀빵 음악이 뭐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이른바 스타 시스템의 현대판 집단매춘(결국 모든 스타 시스템은 성 상품화다)이나, 영화 사운드트랙의 형태로 기생할 뿐이다. (벌거벗은 모습에 기생하던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는 이제, 그녀의 나이가 들고 성상품화가 힘들어지자 영화에 기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나 한국에서나 이른바 영계에 대한 남자들의 성욕을 노골적으로 상품화하는 풀빵 음악이 만들어진다. 한국의 S.E.S 나 미국의 Jewl이나 마찬가지다. 99년 트렌드의 특징. 미소녀 밴드. 본인은 극구 부인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구자가 된 앨라니스 모리셋. 그녀의 성공이 풀빵 장수들에게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주었으니까.)

이건 음악에만 있는 독특한 현상이다.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걸작이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 보다 대중적으로 더 유명하다고는 단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렘브란트는 몰라도 피카소는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포르노그라피나 만화를 보지만, 그래도 이른바 순수미술의 영향력은 아직은 상당하다. 예술 중 가장 빨리 죽어 가는 음악. 이제 나는 여기에 음악을 위한 묘비명을 새기려고 한다. 내가 사랑했던 음악들에 대한 비망록과 함께.

2008. 10. 23.

음악에세이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2)

소리의 조작을 통한 감정의 조작, 이것이 음악의 기원이다. 이는 수십만년에 걸쳐 아주 서서히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것이 전쟁용이건 유희용이건 종교용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애초에 인간의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근대사회에서는 이른바 문화영역의 자율적 합리화 경향으로 인해 최근까지 무시되어 왔다. 그리하여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분야 안에서의 일련의 합리적 법칙만 추구하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되었지, 이 분야가 사회에서 인간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러한 사실을 갑작스레 되살린 사람들은 이른바 음악치료요법이란 것을 들고 나온 일단의 유사과학자(자신들은 뉴에이지 과학이라고 하지만) 들이다.

어쨌든 여기에 관한 한 근대 이전의 인류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대 고전문화가 발흥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리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그 법칙을 알아내면 보다 편하게 감정을 조작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서양에서 공히 일어났다. 특히 동양에서는 음악의 감정 조작적 속성을 수천 년 전 부터 주목했다. 주목만 했던 것이 아니라 소리들을 체계적으로 유형화 하였고, 이렇게 유형화된 소리를 다시 체계적으로 유형화된 감정들과 조합시켰다. 이리하여 관혼상제를 비롯한 각종 애경사에 사용할 소리들의 체계가 일목요연하게 기록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경로를 취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권세가 당당한 집안에서 초상을 당하면 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슬픈 소리 잘 내는 사람 -곡소리 잘 내는-을 고용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그리 자주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 사람이 초상 때를 맞추어 마침 집 근처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을 슬프게 하는 소리의 법칙을 알아낸다면 어떨까? 아주 경제적이지 않을까? 굳이 수 천리 밖의 곡 잘하는 사람을 찾으러 수소문할 필요 없이, 그 소리 내는 방법을 상징체계를 이용해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며 필요할 때마다 그 기록을 보고 거기에 기록된 대로 따라서 재생하면 되는 것이다. 유가족이 음치만 아니라면 적힌 대로 재생만 하면 그 뿐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채었겠지만 이것이 바로 악보이며, 체계적인 악곡이다. 그런데 이 악보라고 하는 것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소리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동일한 악보를 가지고 동일한 소리를 낼 수가 있다. 따라서 악보의 기록과 표준화된 악기의 탄생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관계에 있다. 이런 표준화된 악기는 재료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고, 표준화된 소리를 만들기 쉽도록 쉽게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똑 같은 소재로 같은 규격대로 만들기만 하면 동일한 소리를 보장하는 악기, 바로 현악기는 여기에 가장 적합한 악기다. 이 현악기의 탄생이야말로 음악을 수 십 단계 워프 하게 만든 대 발견이다. 동양권이나 서양권이나 가릴 것 없이 음정과 가락이 있는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현악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아주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평균율 악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피아노도 따지고 보면 현악기다. 이러한 현악기의 탄생은 음을 디지털 부호로 바꿀 수 있게 만들었다. 만약 현악기가 없엇다면 피타고라스가 무슨 재주로 음악을 대상으로 수학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현악기가 있었기에 간단히 각 음정간의 관계를 으뜸음을 기준으로 한 일정한 정수비로 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음악의 디지털화 과정을 예화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예컨대 과거에 어떤 사람이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가락을 잘 불렀다고 하자.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고 하자. 그럼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그 사람을 불러서 직접 듣고, 수백 번 들어서 그것을 머리 속에 완전히 기억하는 것은 물론 그 소리를 내는 도구들도 일일이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표준화가 된 악기(꼭 현악기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악기가 가장 표준화하기가 쉽다. 1차원적인 길이만으로 가능하니까. 3차원적인 체적까지 소리의 변수가 되는 관악기는 우리 조상들의 기술로는 다루기 힘들었다. 실제로 관악기는 상당한 기간 동안 단지 진군나팔과 같은 효과음으로만 사용되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단지 장식음의 역할만을 했다. 관악기가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만하임 악파가 처음이며, 모차르트, 하이든에 이르러서야 제 자리를 찾게 되었다)가 있다면, 기억해야 할 사실이 훨씬 줄어든다. 왼쪽에서 몇 번째 현을 심장 두 번 뛰는 길이만큼 튕긴 뒤 오른쪽으로 세 번째, 네 번째 현을 연달아 튀기되, 그 길이는 같고, 그 길이의 합이 첫 번째 소리의 길이와 같게 하고 하는 등등, 소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문자로 기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이 만드는 우연적인 소리들은 동질적인, 그러나 단지 양적으로만 다른 소리들로 구성된 체계를 이루게 되고, 이 체계에 포괄되는 모든 소리는 음악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제 음악은 제멋대로의 소리가 아니라 같은 종류의 악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같은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인 체계가 되었다.

2008. 10. 13.

용기에 대하여(아리스토텔레스)

용기란 두려움과 태연함의 중용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을 물론이고, 또 무서워하는 것들은 온갖 악을 포함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불명예, 빈곤, 질병, 친구가 없는 것, 죽음 등을 포함한 모든 악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용기 있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할 만한 것만을 두려워 한다. 예를 들어 불명예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고 고귀한 일이고, 반대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비천한 일이다.

  ...빈곤이나 질병처럼 악덕에서 나온 것이 아니거나, 자기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닌 것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그러면 용감한 사람과 관계 있는 무서운 일은 무엇인가?

  용감한 사람은 사람가운데서 가장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는 두려움에 부딪혀도 떳떳하고 순리에 따라 명예롭게 행동한다. 이것이야 말로 용기의 목적이다.

  모든 활동의 목적은 그 활동의 성격을 보여준다. 용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용기는 고귀하기 때문에 그 목적도 고귀하다. 용감한 사람이 무서운 것을 참고 견디며 용기있는 행위를 하는 것은 고귀한 목적 때문이다.

  한편, 정말 무서운 일에 대해서 지나치게 태연한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며, 허풍선이라고도 한다. 어떻게 보면 그는 용감한 척 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용감한 사람은 무서운 일에 대해서 정말 용감하지만, 무모한 사람은 용감한 것처럼 보이려고 용감한 사람을 최대한 흉내 낼 뿐이다. 그래서 대개 무모함과 비겁함이 섞여 있다. 그들은 그들은 가능한 한 태연해보이려고 하지만, 정말 무서운 일은 견디지 못한다.

무서워하는 일에서 또 다른 방향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사람은 겁쟁이다. ...이는 고통스런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겁쟁이는 비관적인데, 모든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용기란 두려움과 태연함의 중용이다. 어떤 일을 선택하거나 견디는 이유는 그렇게 하는 것이 고귀한 일이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비천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난, 사랑, 그 밖에 무엇이든지 고통스러운 것을 피하기 위하여 죽는 것은 용감한 사람이 하는 행동이 아니고, 오히려 겁쟁이가 하는 행동이다. 골치 아픈 일을 피하는 것을 피하는 것은 마음이 약한 탓이고, 이런 사람이 죽음을 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고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2008. 10. 7.

굴드 음반의 복제, 그리고 구제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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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만 쓰면, 웬지 근사해 보인다고 생각하고, 자기 본령인 영화에 대해서는 별 깊이도 없는 어느 얼치기 평론가가 마구 외국 이론가 이름을 들이대다가 저지른 코메디가 "그러니까, 월터 벤자민에 따르자면...", 물론 그의 영어 코메디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마이클 푸콜트, 개스턴 배이츨러 에서 압권을 이루었다. 아, 여기서 하려는 주제는 이게 아니고, 문득 그 웃기는 평론가의 기억이 되살려 놓은 발터 벤야민의 사유다.

최근에 최성민씨의 열정적인 노력으로 벤야민의 사방으로 반짝이는 사유의 편린들이 연거푸 번역이 되고 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역사철학 테제, 폭력에 대하여 등은 물론 저 엄청난 페이지의 "아케이드 (파사쥬)프로젝트"까지 완역 된 마당에 이제 벤야민의 중요한 글은 다 옮겨졌다고 볼수 있다.

아래 포스팅에서 글렌 굴드의 바흐 연주를 컴퓨터로 재현한 음반에 대한 각종 논란을 보다가 문득 떠오른 이름이기도 하다. 클래식 연주자는 20세기 이후 예술가들 중 거의 마지막 신화적 존재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그너에서 이미 조짐이 보엿지만, 20세기 들어 작곡이라는 과업은 이미 고도의 전문적인 영역으로, 나름의 학적 체계와 기술, 그리고 정교한 계산의 영역이 되어버렸지만, 그리하여 작곡가의 작품은 단지 오선지의 부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저 천재적인 연주자들의 휘황찬란한 영감에 가득찬 연주의 순간이야 말로 진정 신화가 되었던 것이다.

20세기 들어 천재의 칭송을 받는 존재가 작곡가에게서 연주자로 넘어간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웬지 체계적 훈련과 거리가 멀고 오직 신적 영감의 내림굿이라도 받은듯한 지휘자에게로 넘어간 것도 벤야민의 용어를 빌리자면 작곡가의 아우라가 소멸되었기 때문이리라. 체계적인 화성학과 대위법은 작곡을 기술의 영역으로 밀어넣어, 아우라를 제거하고 합리화(!)했다.

그런데 웬걸? 레코드가 등장했다. 대량복제의 시대가 된 것이다. 콘서트 홀이라는 신전에서 경건하게 영접했던 저 피아노의 신, 바이올린의 신이 내집 안방, 거실, 심지어 워크맨의 탄생 이후 어디에서나 만날수 있게 되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콘서트 홀에서조차 수십년 전에 죽은 연주자의 연주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연주자의 아우라도 사라져가고 있다. 아니, 이미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아우라는 어디까지나 접근 불가능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의 주인장인 디누 리파티 역시 열악한 음질의 음반 몇장만 남겨놓았기에 아우라가 형성된 것이다. 만약 그의 연주스타일을 그대로 복제해서 피아노에 입력해서 재생시킨다면 그 아우라도 사라질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런 탈신화의 현상을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벤야민은 또 다른 측면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했다. 탈신화화된 대상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이 현재의 실천과 연관되면서 재구성되고 재의미화된다. 파괴된 신화는 새로운 의미의 구성이다. 신화는 파괴되지만 동시에 지배계급의 특권 운운하는 또 다른 낙인도 함께 파괴된다.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은 악마성이라는 모호한 신화로 포장된 보들레르를 파괴하고, 그와 동시에 부르주아적 퇴폐라는 다른 낙인도 그에게서 제거할수 있게 되엇다. 이로써 보들레르는 현재의 시간속에 재구성된다. 이를 파괴와 구제로서의 비평이라고 불렀다.

어쩌면 컴퓨터로 굴드를 복제하려는 시도 역시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소니는 굴드를 복제함으로써 돈을 벌려 하겟지만, 복제가 성공할수록 굴드의 신화는 무너지며, 소니는 자신의 상업적 동기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대신 우리는 굴드의 신화가 아니라 굴드의 실체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며, 어떤 아우라 없이 굴드의 연주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 파괴는 곧 구제인 것이다.

역설적인 것은, 글렌 굴드 자신이 콘서트 홀의 카리스마 운운하며 피아니스트가 신화화 되는 것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굴드는 죽은 뒤 자신이 신화화 된 것을 슬퍼했을 것이며, 자신의 신화를 이용하여 장사하려는 소니에게 분노했을 것이지만, 그 결과 자신의 신화가 깨어지는 것을 반길지도 모른다. 굴드의 평소 소신대로라면 "당신의 연주의 신비의 근원은 무엇인가요?" 라는 질문에 "단지 피아노를 치는 것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08. 10. 5.

음악의발생학 -태초에 소리가 있었다(2)

아래 포스팅에서 음악의 시작은 원시시대 우리 조상들이 터득한 소리의 조작을 통한 감정의 조작에서 시작되었음을 살펴보았다.그것이 전쟁용이건 유희용이건 종교용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애초에 인간의 감정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근대사회에서는 이른바 문화영역의 자율적 합리화 경향으로 인해 최근까지 무시되어 왔다. 그리하여 음악이라는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분야 안에서의 일련의 합리적 법칙만 추구하는 영혼 없는 전문가가 되었지, 이 분야가 사회에서 인간의 삶속에서 차지하는 위치나 역할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러한 사실을 갑작스레 되살린 사람들은 이른바 음악치료요법이란 것을 들고 나온 일단의 유사과학자(자신들은 뉴에이지 과학이라고 하지만) 들이다.

어쨌든 여기에 관한 한 근대 이전의 인류들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고대 고전문화가 발흥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어떤 특정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소리에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그 법칙을 알아내면 보다 편하게 감정을 조작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동·서양에서 공히 일어났다. 특히 동양에서는 음악의 감정 조작적 속성을 수천 년 전 부터 주목했다. 주목만 했던 것이 아니라 소리들을 체계적으로 유형화 하였고, 이렇게 유형화된 소리를 다시 체계적으로 유형화된 감정들과 조합시켰다. 이리하여 관혼상제를 비롯한 각종 애경사에 사용할 소리들의 체계가 일목요연하게 기록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음악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는 아마 다음과 같은 경로를 취했을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권세가 당당한 집안에서 초상을 당하면 그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 슬픈 소리 잘 내는 사람 -곡소리 잘 내는-을 고용했다고 하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그리 자주 있는 것은 아니고, 또 그 사람이 초상 때를 맞추어 마침 집 근처에 있으리란 보장도 없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사람을 슬프게 하는 소리의 법칙을 알아낸다면 어떨까? 아주 경제적이지 않을까? 굳이 수 천리 밖의 곡 잘하는 사람을 찾으러 수소문할 필요 없이, 그 소리 내는 방법을 상징체계를 이용해서 기록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며 필요할 때마다 그 기록을 보고 거기에 기록된 대로 따라서 재생하면 되는 것이다. 유가족이 음치만 아니라면 적힌 대로 재생만 하면 그 뿐이다.

눈치 빠른 사람은 알아채었겠지만 이것이 바로 악보이며, 체계적인 악곡이다. 그런데 이 악보라고 하는 것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소리의 표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동일한 악보를 가지고 동일한 소리를 낼 수가 있다. 따라서 악보의 기록과 표준화된 악기의 탄생은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하는 관계에 있다. 이런 표준화된 악기는 재료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라야 하고, 표준화된 소리를 만들기 쉽도록 쉽게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똑 같은 소재로 같은 규격대로 만들기만 하면 동일한 소리를 보장하는 악기, 바로 현악기는 여기에 가장 적합한 악기다. 이 현악기의 탄생이야말로 음악을 수 십 단계 워프 하게 만든 대 발견이다. 동양권이나 서양권이나 가릴 것 없이 음정과 가락이 있는 음악이라면 무엇이든 현악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은 아주 의미하는 바가 크다. 오늘날 평균율 악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피아노도 따지고 보면 현악기다. 이러한 현악기의 탄생은 음을 디지털 부호로 바꿀 수 있게 만들었다. 만약 현악기가 없었다면 피타고라스가 무슨 재주로 음악을 대상으로 수학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현악기가 있었기에 간단히 각 음정간의 관계를 으뜸음을 기준으로 한 일정한 비율로 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음악의 디지털화 과정을 예화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예컨대 과거에 어떤 사람이 마음을 즐겁게 만드는 가락을 잘 불렀다고 하자.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고 하자. 그럼 방법은 무엇일까? 당연히 그 사람을 불러서 직접 듣고, 수백 번 들어서 그것을 머리 속에 완전히 기억하는 것은 물론 그 소리를 내는 도구들도 일일이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나, 표준화가 된 악기(꼭 현악기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악기가 가장 표준화하기가 쉽다. 1차원적인 길이만으로 가능하니까. 3차원적인 체적까지 소리의 변수가 되는 관악기는 우리 조상들의 기술로는 다루기 힘들었다. 실제로 관악기는 상당한 기간 동안 단지 진군나팔과 같은 효과음으로만 사용되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상당한 기간 동안 단지 장식음의 역할만을 했다. 관악기가 오케스트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은 만하임 악파가 처음이며, 모차르트, 하이든에 이르러서야 제 자리를 찾게 되었다)가 있다면, 기억해야 할 사실이 훨씬 줄어든다. 왼쪽에서 몇 번째 현을 심장 두 번 뛰는 길이만큼 튕긴 뒤 오른쪽으로 세 번째, 네 번째 현을 연달아 튀기되, 그 길이는 같고, 그 길이의 합이 첫 번째 소리의 길이와 같게 하고 하는 등등, 소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문자로 기록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이 만드는 우연적인 소리들은 동질적인, 그러나 단지 양적으로만 다른 소리들로 구성된 체계를 이루게 되고, 이 체계에 포괄되는 모든 소리는 음악이라고 불리게 된다. 이제 음악은 제멋대로의 소리가 아니라 같은 종류의 악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같은 소리를 재생할 수 있는 그런 보편적인 체계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 것 마저 귀찮고 번거로워지면서 서양에서는 그것만을 위한 독특한 상징체계를 새로이 만들었고, 중국이나 한국 쪽에서는 특정한 문자를 이용하여 소리만의 상징체계로 사용하게 되었다. 즉, 소리를 디지털 부호화 하였다. 소리에 이어서 소리를 내는 도구들도 디지털화 되었다. 최초의 음율 악기를 기준으로 존재하는 모든 악기들이 같은 비율로 조정되었다. 예컨대 어떤 피리의 세 번째 구멍을 막고 내는 소리와 이 현악기의 왼쪽에서 다섯 번째 현을 튀기는 소리와, 지름이 22센티 두께가 1밀리인 청동소재의 종의 소리는 같다 등등의 식으로. 마치 화폐라고 하는 표준을 중심으로 모든 상품의 가치가 매겨지는 것과 같다.

이렇게 소리를 디지털화 할 수 있게 되었으면 그 다음에 해야 할 일은? 당연히 존재하는 모든 음악을 모아서 그것을 디지털 부호로 변환시키는 과정, 즉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이다. 서양에서는 크리스트교에 사용되던 소리들부터 데이터베이스화 되었다. 이른바 그레고리안 찬트라고 불리는 방대한 소리들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던 이 소리들이 네우마 악보라고 불리우던 네 줄 짜리 악보로 기록되었다. 동양에서는 공자와 그의 학파가 제사를 지낼 때 사용되던 소리들을 문자를 이용하여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후세에 “詩經”과 “樂記”로 불리워졌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악기는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단지 그런 것을 만들었다는 기록만이 전해진다. 여기에서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은 악보의 탄생이 음악의 탄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보라는 체계가 있기 전에 이미 표준적인 음율로 조율될 수 있는 악기가 그 상징체계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의 정수비를 고집하지 않고 평균율으 ㄹ채택함으로써, 소리는 가장 낮은 소리에서부터 가장 높은 소리까지 똑 같은 옥타브의 무한 반복으로 표현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음악이라는 상징체계가 완성되었다. 즉 소리를 완전히 대상화하여 인간의 도구적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소리를 이렇게 표준화된 체계로 포섭하여 조작가능하게 바꾸는 것을 “음악화”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동양이나 서양이나 모두 종교와 관계된 소리들이 제일 먼저 수집되어 음악화 되었다. 종교적인 지배자들이 왜 음악에 집착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한 견해는 종교의 거룩하고 숭고한 내용 -사실은 피지배자들을 마취시키는-을, 문맹자들이 대부분인 피지배계급에게 전달하려면 소리라는 매체를 통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음악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즉, 음악은 효과적인 메세지 전달 매체다. 다른 하나는 음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마취적이고, 감정조작적인 특성 때문이라는 견해다.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음악운동가들이 메시지 중심의 운동가요인가, 음악중심의 운동가요인가를 놓고 신창남씨(이 사람 요새 무슨일 하는지 몰라. 문화평론가란게 일종의 유행이 되었는데, 정작 그 선구자는 보이지 않으니)와 이강숙(예술의 전당에서 엄청 높은 감투를 쓰고 있다지?)씨가 격론을 벌인 적이 있었는데, 이 두사람의 견해도 결국 위의 두 이견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견해의 대립은 음악적 세계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문제인데, 이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은 헤묵은 논쟁거리가 되고있다.

그런데, 그런 것 말고 또 다른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애초에 이렇게 소리의 음악화, 음악의 디지털화를 꾀한 사람들의 최종적인 목표는 단 하나의 음악, 플라톤의 표현을 빌면 음악의 이데아를 만드는 것에 있었다. 예컨대 그들은 인간을 기쁘게 만드는 음악이라면, 그 법칙을 이미 수학화된 음악을 통해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은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더 이상 기쁜 음악을 새로이 만들어 내려고 애쓸 필요 없이, 마침내 만들어진 완전 100%표준 기쁜 음악 하나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슬픈 음악도, 숭고한 음악도 모두 마찬가지이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이런 모든 종류를 통괄하는 그야말로 음악의 음악, 즉 메타-음악(아, 이 메타에의 지향은 상징체계가 만들어지는 순간 저주와 같이 달라붙는다. 모든 상징체계의 저주받은 운명, 이데아를 향한 행진)도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어떤 새로운 음악도 필요 없게 된다. 그리하여 끝내는 음악의 이데아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작곡이 이루어지고, 계속해서 작곡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아직 아무도 그 이데아의 경지에까지 아무도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게 가능하다면야 플라톤이 무엇 때문에 시인을 음악가를 구제불능의 추방대상으로 여겼겠는가? 플라톤이 생각하기에 음악은 절대로 메타화 될 수 없는 존재로 수학이나 기하학과는 비교조차 될 수 없는 천한 대상이었다. 안타깝게도 플라톤 시절에는 악보가 없었으니 말이다. 만약 악보만 있었더라면 플라톤도 당장 음악의 이데아를 만들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원통과 삼각형과 직각사각형으로 환원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즉 누군가가 그 음악의 이데아를 악보로 구현하는 순간, 그 순간이 안타깝게도 나머지 음악과 음악가는 최고선의 음악 한 곡만을 남겨놓고, 모조리 폐기처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불완전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준화, 즉 계몽의 길에 나선 인간에게 불완전함이란 곧 결함이며, 이는 곧 악이다.

바로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우리는 스트라빈스키가 말한 “모든 음악은 바흐로 돌아가야 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게 된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모든 음악은 이데아만 찾을 수 있다면 다 그것을 모방해야 한다.”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스트라빈스키는 바흐의 음악이야 말로 순수하게 상징화된 음악의 이데아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상징이 되어버리면 그것은 그만큼 실체와는 멀어진다는 슬픈 현실이다.

2008. 10. 1.

이렇게 살면 행복할까(1) 세네카의 경우

요즘 자꾸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행복에 대한 글을 찾아 보기도 한다. 그런데 행복에 대한 글들을 읽으면 점점 행복이 너무 어렵다는 생각에 불행해진다. 이렇게 살면 행복할까? 세네카는 이렇게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디 들어보자......


행복해지고 싶다 -이 말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지만, 이처럼 분명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은 말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누구나 행복을 원하고 그 행복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천 명에 한 사람도 어디에서 행복이 오는지 모르고 있다.

그런데 우주는 암중모색하듯 무작정 행복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다. 그리하여 서둘러 잘못된 길로 발을 들여 놓음으로써 갈수록 당초의 목표에서 멀어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첫째, “우리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둘째 “어느 길로 가면 가장 빠른가”를 살펴야 한다.

바른 길을 가면 우리는 하루하루 나아지지만 반대로 곁길로 접어들면, 즉 바른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그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면, 곧 미궁에 빠져 언제까지나 방황과 착오의 나날을 보낼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능한 길잡이를 갖는 것이다.

보통 여행의 길이라면 부근에 사는 사람이 바른길을 가르쳐 줄 수도 있고, 또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대체로 정해져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행복에의 길은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밟고 간 발자취가 위태롭기 짝이 없으며,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 바른 길을 가르쳐주기는커녕 터무니없는 방향으로 헤매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수들이 떼를 지어가듯 하는 것이 아니라, 전례보다는 이지에 의해 자기 자신을 이끌어 나가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면 패배의 연속으로, 한 사람이 쓰러지면 다음 사람이 그 위에 넘어지고 그 다음 사람이 그 위에 또 쓰러진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인다.

이러한 잘못은 곧 “군중이 진리와 정의에 어긋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군중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행복한 생활은 결코 투표에 의해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사람들은 관습에 대해 비판하기보다는 맹신하기 쉬우며 결코 좋고 나쁜 것을 검토해보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군중은 반드시 비속한 사람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위층도 포함하는 말이다. 나는 군중이라는 말을 눈에 보이는 외관이 아니라 사물을 올바로 판단하는 마음을 기준으로 삼아 사용하고 있다.

세속의 영달은 사람의 머리를 혼미하게 하여 한동안은 관심을 끌지만, 누구나 조용히 마음속으로 자문해 보면 반드시 다음과 같이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즉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일만 골라서 했다”고 말하거나 “간구한 것 보다 오히려 두려워 멀리한 편이 훨씬 더 나은 일이었다”고 말이다.

진정한 행복은 번뇌를 벗어나 신과 인간에 대한 우리 의무를 깨닫는데 있다. 장래의 일은 전혀 걱정하지 말고 현재를 즐길 일이다. 즉 희망이나 걱정에 사로잡혀 기뻐하거나 두려워할 것 없이 현재 자기가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할 일이다.

인류에게 참으로 위대한 축복은 우리 가운데, 즉 눈이 닿는 범위 내에 있다. 그런데 인간은 눈을 감고 어둠 속을 헤매다가 보기 흉하게 넘어져 뒹굴고 있는 것이다. 행복 자체에 넘어져 뒹굴면서도 그것이 자기가 열심히 찾고있는 행복인줄 모르고 있다.

정밀은 마음의 평형된 상태로서 행운과 불운에 의해 흥분하거나 의기소침해지는 일도 없다면 이러한 평형은 인간 완성의 상태이므로 무엇으로도 깨뜨릴 수 없고 인간의 능력이 최고 정점에 도달하여 각자 자기 스스로 설 수 있게 된 상태다. 자기 이외의 것으로 자기를 뒷받침하면 넘어지는 수가 있지만,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지하면 넘어지지 않는다. 올바르게 판단하고 그 판단에 의지하는 사람은 완전한 평안을 즐길수 있고 삼라만산을 올바로 관망한다. 그리고 그 행위에 질서와 절도가 있어 예의바르고 그 본성에 자애가 넘치면 이지에 의해 삶을 바르게 꾸려나간다.

확고불변한 판단력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은 뜬구름에 지나지 않으며 한 가지 일에 시종일관하는 것 역시 옳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환영과 두려움으로 미혹하는 바를 극복했을 때에는 반드시 가슴에 자유와 평안이 깃들기 마련이며, 이때야말로 저 물거품 같은 향락에의 욕구(최선의 방법으로 즐겨봤자 결국 공허하고 유해하다) 대신에 영원한 평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합당한 즐거움을 올바르게 즐기는 것에 대해서, 당연히 바랄수 있는 사교적인 우아한 취향에 대해서까지 트집잡을 생각은 없다.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언제나 즐겁고 -물론 이 즐거움은 본인의 영혼 속에서 생기고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우러난 것이라야 하지만-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