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011의 게시물 표시

요즘 하고 있는 수업

이미지
내 취미이자 특기랄 수 있는 연극 활용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이미 단행본까지 출판하고 논문도 몇편 썼지만, DIE(Drama in Education)은 매번 새롭습니다. 이번 주제는 "국가의 탄생"입니다. 엄청나게 거창하죠? 중학교 3학년 사회과 정치단원에 나오는 사회계약론을 익히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걸 말로만 익히면 추상적인 내용이라 도통 인스톨이 되지 않습니다. 직접 겪어 봐야죠.
학급을 둘로 편성했습니다. 왼쪽 사진에 나오는 학생들은 로크 조입니다. 오른쪽 사진에 나오는 학생들은 홉스조입니다. 이들은 각각 로크와 홉스의 주장에 따라 사회계약에 이은 국가의 설립을 몸으로 표현합니다.
왼쪽 사진은 입법부가 인민의 신탁에 어긋나는 결정을 했기 때문에 인민이 들고 일어나서 혁명을 일으키는 광경입니다. 오른쪽 사진은 그 유명한 만인이 만인에 대한 투쟁 장면을 연습하고 있는 모습니다.
아주 엄격하고 무서운 선생님 반이라 위축되어있던 아이들조차 일단 이 활동이 시작되자 아주 활발해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활동이 가능하려면 학생들이 흉금을 터 놓을 정도로 릴랙스 되어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꽉 막힌 수업을 하고 있다가, 또 꽉 막힌 얼굴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연극하자" 그런다고 해서 학생들이 움직여주지는 않습니다.
이번 학기는 이런식으로 국가의 탄생, 공공이슈 토론, 경제의 역사, 모의 주식시장 등을 연극으로 한번 운영해 보려고 합니다. 2학기에는 몇 가지 사회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탐구하는 과제를 주고 이를 다큐멘터리나 영화로 제작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제일 잘 할 수 있는 수업은 강의식입니다.^^


아무리 싸움판이라도 정서는 좀 다듬어야 하겠기에,괴테, 들장미, 그리고 슈베르트와 브람스

이미지
요즘 선거야 뭐야 해서 다들 신경들이 날카롭습니다. 그럴때일수록 예술의 향기 속에서 삶에 대한 성찰과 사색이 필요하겠죠. 그런 의미에서 괴테, 슈베르트, 그리고 브람스를 선사합니다. 1년 전의 글이지만, 다시 한번 돌려 봅니다.
괴테의 절세의 명시 들장미. 독일어의 압운을 지키면서 읽어보면 더더욱 이 시가 왜 명시인지 알수 있지만, 그 시의 의미에 대해서는 엉뚱한 가십수준의 내용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가십이 어느 목사의 딸을 사랑했다가 결혼하지 못해서 그 죄책감에 "남자들이여 처녀를 함부러 건드리지 마라"라는 뜻에서 이 시를 썼다는 것이리라. 물론 그 죄책감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저런 청교도적인 시를 썼다고 주장하는 것은, 괴테의 유물론적 경향과 범신론적(같은 뜻인가?) 성향을 완전히 망각한 유치함의 극치다.

괴테의 예리한 풍향계는 남자와 처녀의 관계에서 바로 근대성의 특성을 읽었다. 그것은 바로 의식철학, 즉 주체-객체 철학이 가져오는 인간과 자연의 분리, 자연의 대상화, 그리고 그 결과로서 나타나는 근대 자본주의 문명의 핵심인 소외였다. 물론 그는 이를 명료한 이론적 진술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을 이론적 진술로 드러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의식철학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이는 오직 천재적인 직관으로만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게오르크 짐멜이 예리하게 지적했듯이 괴테는 자연과의 일체속에 있기 때문에 주관적인 감상과 객관적인 자연이 구별되지 않는다. 즉, 한 소녀를 아프게 한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것과 자연을 객체화 함으로써 느끼는 분리감과 소외가 구별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보편적인 아픔은 개인적인 감상으로써만 표현될수 있다. 보편적인 아픔을 보편적인 개념으로 진술하려하면 도리어 소외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이제 이 시를 다시 읽을수 있다. 소년은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아름다움을 향유하지 못하고 그것을 소유하려 한다. 왜 그럴까? 그는 자신과 들장미를 포함한 자연이 이미 하나의 전체임을…

영화 레인에서 슈베르트의 곤돌라 노래

이미지
구 블로그의 음악 포스팅을 살리고 있습니다. 음악을 올리기 어렵게 만든 블로그스팟의 빈틈을 이용해서 계속 음악 부활에 성공한 포스팅을 전면으로 올리겠습니다.

우리는 때로 삶을 너무 경직되게 바라본다. 경직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현재를 종속시키고 왜곡시킨다. 경직된 가치를 품고,매사를 그 가치에 맞춰 평가한다. 심지어 자기 스스로도 그 가치를 배신하고 있음에도 그것은 보지 못하고 타인을 그 가치에 맞추어비난하고 꾸짖는다. 그러면서 우리는 가까운 사람, 가까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어버린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확실히서양인들의 세계관의 변화를 느낄수 있다. 인간의 이성에 의한 구획, 기획, 이를 통한 전체적인 규율과 통제라는 근대적 사고방식이무너지고 있다. 오히려 그런 합리성으로 포착되지 않는 정서적인 것들, 작은 것들, 그리고 그 소소한 차이들의 이해와 공감이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사 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약점을 지니고 있다. 따지고 들자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 없다는 정말 평범한진리... 하지만 이 평범한 진리를 우리는 종종 잊어버린다. 그것은 항상 우리가 뭔가 더 먼것, 더 큰것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아닐까? 그 와중에 서로를 인간으로, 그리고 나와의 관계 자체가 가치있는 그런 동료로서 바라본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으로바라보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평등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여성 정치인은 정작 오랫동안 같이 지낸 가정부를  가사 도우미로만바라보았고 가정에서 소외된 동생의 아픔에 무관심했음이 드러난다. 그 여성정치인과 어릴때부터 같이 자랐던 이민2세 청년은  그녀를다만 다큐멘터리의 피사체로만 또 자신이 겪은 불평등과 부조리의 장본인이라는 분노어린 바라보았기에 그 아픔까지 새기지 못했다.이런 식으로 우리는 관계 그 자체가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을 자꾸 나와 너 사이에 집어 넣으면서 그를, 그녀를 차가운 대상으로만들어 관계의 의미를 가려버린다.



그리고 비가내린다. 비는 마치 관계를 가린 먼지를씻어내기라도 하듯 내리고, 이 비를 피하기 위해 하룻밤을 …

개드립도 이 정도면 예술이다.. 교장들, 그리고 교총

먼저 저작권 운운할까봐 먼저 기사 링크

http://news.nate.com/view/20110321n13834?mid=n0403

이 기사의 팩트는 이렇다.

1)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이 전국 초중고교 교장 1천11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2) 응답자의 67.5%가 교과부와 시도교육청간 정책혼선이 학교 현장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고 답했다.

3) 교과부와 일선 시도교육청간 정책혼선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정치권의 포퓰리즘식 정책이 교육계에 확산된 탓'이란 응답이 50.4%로 과반수를 차지했다. 이어서는 '일부 시도교육청의 편향된 정책 시행'(42.4%), '교과부와 시도교육청간의 정책 주도권 경쟁'(6.4%) 등 순이었다.

4) 교과부의 시도교육청에 대한 정책 조정기능에 대해서도 '미흡하다'는 응답이 87.4%로 대다수였다.

자 , 이제 이걸 하나 하나 살펴보자.

1) 왜 교장에게만 물었을까? 이거부터 정당화 해야 한다. 설마 교총은 일부 진보교육감이 당선되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집단이 교장단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부정부패가 만천하에 알려져서 공분을 일으키고, 그래서 진보교육감이 약진했다. 그러니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지역에서 가장 힘겨운 처지가 된 집단은 교장들일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그런데 그들에게 무엇을 물어본다는 것인가? 한국교총은 교원단체총연합인가, 교장총연합인가?

2) 교과부와 교육청의 정책혼선이 학교현장에 큰 영향을 미치냐고 물으면 당연히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이건 정답이 정해진 설문이다.

3) 포풀리즘식, 편향된 정책 등 설문 문항에 이미 자극적이고 가치편향적인 용어들이 춤을 추고 있다. 게다가 이 용어들은 정치적으로 특정 성향의 집단이 반대성향을 욕할때 즐겨 쓰는 단어들이다. 이런 단어들이 포함된 설문 문항이 어떤 특정 성향의 집단에게 던져지게 되면 응답 빈도는 굳이 세어볼 필요도 없이 뻔하게 나온다.  한 마디로 이…

젊은 교사 예비교사가 움직인다

이미지
꽤 지난 이야기지만 2월 26일에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이라는 단체로부터 교육 불평등에 대한 발제를 부탁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흔히 있는 그런 시민단체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젊은이들이 한 방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이들은 20대~ 30대 젊은 교사들, 그리고 예비교사들이었습니다. 이 중에 전교조 조합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전교조와 큰 관련이 있는 모임 같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작금의 교육 현실에서 문제의식을 느낀 젊은 교사와 예비교사들이 모여서 의견을 교환하면서 점점 커지고 있는 모임이었습니다.

이건 정말 고무적이었습니다. 전교조는 늙어가고 있습니다. 40대 조합원이 어린아이 취급을 받고 있으니, 가히 이촌향도의 농촌 꼴이 되어가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젊은 교사들은 이기적이며, 개인주의적이라는 불평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젊은 교사들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다만 전교조가 그 움직임을 포착하고 받아안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젊은 교사들이 매혹을 느낄 만한 뭔가가 없었을 뿐입니다. 어쩌면 이명박과 공정택이 이들 젊은 교육자들을 각성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30대 교사들이 독서모임을 하겠다면서 마치 전교조 처음 설립할때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뭔가가 느껴집니다. 뜻 있는 교사들의 맥은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 맥이 꼭 전교조일 필요는 없고, 전교조가 그 맥에 동참하고 싶다면 스스로 노력해야 함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저 젊은 교사들의 모임을 링크 해 둡니다.

참교육으로 여는 세상 카페
Published with Blogger-droid v1.6.7

해직교사 복직 소식을 들으며 떠오르는 기억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액션을 취했다는 이유로 어이없이 해직되었던 교사들의 복직이 대법원에서 확정되었다. 이제 교단에 돌아갈 일만 남았겠지. 애초에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에 그 소회는 다른 분들만큼 크지는 않다. 다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몇 자 적어본다.

2008년 처음 그 분들이 해직되었을때, 20대 젊은 분들이 계셔서 특히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블로그를 통해 상담, 혹은 조언,  태클? 비슷한 것을 구해 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했었다.

1) 너무 심려치 마라. 짧으면 2년, 길어도 3년이면 복직 된다. 법리적으로 검토해 봐도 이건 무조건 당신들이 이길 사안이다.

2) 그렇게 되면 그 동안 밀린 임금 왕창 이자까지 받게 될테니 그냥 아주 긴 방학이라고 생각하라. 혹은 교수들에게나 주어진 연구휴식년이라고 생각해라.

3) 그렇다면 문제는 그 2년간의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그 기간을 공부하는 시간으로 잡아라. 그 동안 대학원을 다니는 것도 괜찮고, 여러 학술단체나 학습모임을 하는 것도 괜찮다. 복직했을때 전문인으로서 훨씬 업그레이드 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준비하라.

4) 다만, 해직교사라는 상징성때문에 이리저리 불려 다니게 될 집회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지 마라. 아스팔트에 날린 시간은 그야 말로 매몰비용이다.

그랬더니 그 분은  가르치는 방법, 내용 같은 것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위 아스팔트 일, 그러니까 운동권 용어로 실천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중요한 공부가 아니겠는가 하는 답변을 했다. 그리고는 별 교류가 없었다. 그리고 들리는 소식으로는 곳곳에 다니면서 아스팔트의 전사가 되시고, 투쟁의 상징이 되신 것 같다. 그리고 끝나면 어김없는 술자리도.....결국 4)로 일관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그 분들 모두 복직을 하게되었다. 그런데 그 분들 중 어느 분이 트위터로 "2년 8개월의 경력 중 2년 3개월이 해직기간인 선생이 온다니 교장이 바들바들...&q…

상당히 짜증나는 원자력 발전소 사고 보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도하는 우리 언론의 태도가 좀 이상하다. 어떤 면에서는 호떡집에 불난 한국 언론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오히려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큰 일이 일어난 것 같다. 게다가 여기에 과학자나 공학자까지 데려다가 인터뷰 형식으로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렇게 불안을 증폭시키는 이유가 뭔지, 혹 뭔 음모라도 있는게 아닌지 의심이 갈 지경이다. 그러는 와중에 스리슬쩍 최시중은 넘어가고 장자연은 잠복하고.....

한국식 원전 보도를 가상으로 재구성 해 봤다.

기자(아주 격앙된 목소리로): 지금 일본인들은 공황상태.... 방사선 수치가 기준치의 3000배, 5000배... 이대로 가면 체르노빌 대 참사.... 폭발을 향해 가고 있는거 아니냐..... (이러면서 마구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앵커(긴박한 목소리로): 현지 외국인들이 탈출이 시작되었다면서요?....

(이런식의 이야기가 오간다. 이렇게 오가는 뉴스를 하루에 몇번씩 일주일째 봐야 한다. 돌아버리겠다는 생각이 들때쯤 전문가를 모신다)

앵커: 박사님 모셨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단도직입적으로)원자로가 폭발할까요?
박사:(황당~~~ 과학자들은 이렇게 극단적인 질문에 익숙하지 않다) 지금으로선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고, 아직 내부 데이터가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확답을 드릴수는 없습니다만, 직접적인 핵폭발까지 갈 가능성은 적지 않나(전형적인 과학자의 답변... 확률적 대답... 그러나 앵커는 이것을 이용한다)
앵커: 아, 그러니까 폭발할 가능성도 있단 말씀이시죠?
박사: (과학자 스럽게) 여러가지 변인들을 고려해 봐야겟지만,,,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도 완전히 닫아둘수는 없습니다.
앵커: (이미 폭발의 확률이 적어도 있다는 답을 들었으니 바로 들이대는 말투로) 만약 폭발이 일어나면 어떻게 되죠?
박사: (여기서는 확신을 가지고 대답.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조건이 주어진 상태에서의 현상을 물어 본 것이니) 원자로가 폭발했을 경우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
앵커: 나와주셔서 감…

조선일보 개드립 좀 작작해라

조선일보가 개드립 하는거야 이제 다시 언급할 필요조차 없지만, 이번 드립은 정말 극치를 달린다. 저들의 연일 계속되는 혁신학교 까기의 일환일 것이다. 조중동 연합이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 중 김상곤, 곽노현이 포함되는 모양이다. 그 중요성을 진보라는 진영은 모르는 것 같다.

링크를 걸긴 했지지만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3/17/2011031700085.html


조선일보 트래픽 올려주지 않도록 일부 발췌한다.
이 기사의 핵심은 이거다.

1) 서울시 교육감이 문예체 활성화 프로그램을 실시한다(이건 깔 수 없다)
2) 여기에 외부 전문가 단체가  학생 교육을 지원한다(이것도 깔 수 없다)
3) 그런데 이 단체 중 좌파단체가 있다 (오호, 이건 딱 걸렸다)
4) 그 단체는 4대강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용산참사 진혼극을 한 단체다(그런데 이게 왜 좌파지?)
5) 공교육에 이렇게 정치적인 편향을 가진 단체가 참여하면 안된다.(이건 웬 궤변)
6) 이건 너무 비교육적인 처사다. 교육감의 개인 철학으로 학생과 교사를 실험하려 한다(중앙대 이성호 교수의 발언)

결국 이 중 시비를 건 것은 3) ~6)번이니 이 주옥같은 개드립들을 하나씩 다루어 보자.

3) 이 단체들 중 좌파 단체가 있다.
조선일보 탁기자도 인정했듯이 이 단체들 중에는 대한 축구협회 같은 소위 정상적인 단체들도 있다. 대개는 소위 정상적인 단체들이다. 그런데 탁기자는 이 중 좌파성향의 단체가 하나 끼었다고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전의 공정택 사기꾼이 실시했던 한국 근현대사 특강의 강사들은 어떠했는가? 그들 중 상당수가 우파성향 단체에서 상당히 물의를 일으키며 활동했던 인사들이었다. 내가 하면 역사 바로잡기이고 남이 하면 편향인가?
오히려 문예체 외부지원단체는 일종의 쇼핑몰 같아야 한다. 좌파적인 단체도 있고, 우파적인 단체도 있고 골고루 있는 것이며, 이게 일선 학교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도대체 중립적인 단체가 어디 있나? 모든 사…

커피 원가가 123원? 정신나간 기사 (1) 경제학적 측면에서

TV에서 아메리카도 한 잔의 원가가 123원인데 3500원에 팔고 있어서 커피 애호가들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갔다.

엠비시 원문 기사

원두 가격이 10g당 123원이라고 했으면 될 것을,  기자는 아주 선명하게 "원가는 고작 123원"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 커피전문점, 카페 점주들은 30배의 폭리를 거두는 악덕 상인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뭐라고 반박하면 순식간에 "이 된장년" 운운하는 마초들의 반격이 가세한다. 이 마초들이 촛불 세력과 꽤 중첩되는 것도 참으로 슬픈 일이다.

어쨌든 커피 원가 운운하는 기사의 부당성을 한 번은 경제적 측면에서 한 번은 문화적 측면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나 역시 일년에 커피를 400잔 이상 마시는 입장이라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다.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소위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이렇게 결정되는 가격은 공급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가격이다. 즉 독점기업이 아닌 다음에야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과 다른 가격표를 붙일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지금 커피전문점에 뛰어 들었는데, 아메리카노 한잔 가격이 3500원이라면 내 멋대로 4500원을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설사 3500원에 팔면 적자가 날지라도. 그럴 경우는 시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반면에 2000원에 팔아도 충분한데 3500원에 형성되어 있다면 경쟁업체를 고사시키기 위한 전략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2000원에 팔 이유가 없다. 이미 시장에서 형성된 3500원에 팔고 과욋돈, 즉 특별잉여가치를 챙기면 그만이다. 이걸 폭리라 부를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없체보다 훨씬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것이 거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 만큼 더 좋은 기술을 가졌거나, 더 좋은 원료구입처를 개척하거나 한 수고 없이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는가? 따라서 그건 특별한 수고에 대한 특별이윤이지 폭리가 아니다.

만약 커피전문점이 하나 혹은 소수에 불과해서 이들이  담합하거나 해서 커피 값을 올린다면, 이것이 비난받…

술에 취한 나라....

얼마 전 한국 성인의 1인당 연간 알콜 섭취량이 14.6 리터라는 놀라운 보도가 있었다. 술을 14.6리터를 마신다는 것이 아니라 알콜이 그렇다는 거다. 그러니 소주로 환산하면 여기에 5를 곱해서 성인 1인당 연간 소주 73리터를 마신다는 뜻이 된다. 소주 한 병이 0.36리터니 연간 소주 200병을 마신다는 것이니, 정말 어마어마한 술 소비량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세계 최강은 아닌데, 상위권에는 헝가리, 러시아, 우크라이나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반면 일본은 우리의 2/3 수준을 마시고, 중국은 1/3 수준을 마시는 것으로 나왔다. 중국 본토보다 술을 더 안마시는 홍콩이나 대만은 우리의 1/4 수준에 머물 것이다. 그런데 술 마시는데 드는 돈,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각종 의료비, 대리 운전 등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는 가히 술 경제권이 따로 하나 설정되어야 할 것 같다. 문제는 이런것도 고스란히 GDP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술을 집에서 먹지 않고 주로 술집에서 마시기 때문에 소주 200병에 3000원을 곱하면 60만원이다. 여기에 적어도 술값만큼은 안주발을 세운다고 치면 술+안주값으로 1인당 120만원을 소비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건 소주로만 환산한 것이니 그야말로 최소한이다. 그리고 안주 값도 지나치게 작게 잡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술이 파생시키는 각종 용역도 만만치 않다. 한국적 현상이라고 할만한 대리운전이(이건 한국의 과다 자동차와 과다 음주 문화의 기묘한 결합이다) 실로 엄청난 고용을 창출하고 있는 실태를 보라. 게다가 택시도 탈 것이고 하니 이런 식으로 술 자리 때문에 추가로 사용할 교통비도 1년에 일인당 20만원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또 술집이 창출하는 고용 역시 엄청날 것이다. 그래서 술이 창출하는 용역을 교통비 포함 1인당 30만원을 잡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 외에 술 때문에 파생되는 각종 의약품 비용도 1인당 5만원 정도를 잡아 볼 수 있다. 그 외에 이런 저런 잡경비를 계산하면 두루두루 해서 한 …

손봉호 교수님에 대한 추억

얼마 전 손봉호 교수님이 한국 개신교회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한국 개신교회는 사상최악으로 타락했다는 것이다. 사실 손봉호 교수(이하 존칭 생략) 나의 은사님이다. 나의 석사 논문 지도교수이셨으며, 박사과정때도 네번의 코스를 빠짐없이 수강했었다.

그 분은 정년퇴임하기 직전까지도 총명함을 잃지 않은 대단한 지성인이셨으며, 그 명망과 지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는 상당히 격의 없이 지내셨다. 나는 아직까지도 교수님 댁 마당에서 "구제역이 유행이라는데 돼지고기나 실컫 구워 먹세" 하신 말씀에 따라 바베큐 파티를 벌였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때 지금 경인교대 교수인 설 아무개 선생은 교수님 마당에 있는 나무에 올라가서 과일을 따기도 했다.)

애덤 스미스는 노인은 미덕인 현명함, 무게있고 신중함에 약간의 젊은이 스러운 장난기와 가벼움이 가미되었을때 가장 훌륭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체로 진중하고 근엄하시지만 때때로 가벼운 농담과 장난도 즐길줄 아셨던 손봉호 교수는 참으로 훌륭한 노인이며, 이 나라 노인의 귀감이라 할만했다. 이 사회가 그분에게 보냈던 신뢰는 2003년 이른바 네이스 파동때 교육부와 전교조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도 입증되었다. 이 사회에 참으로 원로라 부를만한 몇 안되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 분에 대한 내 신뢰는 매우 깊어서 지난 몇년 별안간 뉴라이트의 앞잡이(!)가 되어 나타났을때도 뉴라이트의 내막을 잘 모르고 저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경석이란 인물이 그 분의 눈을 흐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은 뉴라이트 앞잡이 명단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떡하니 나타난 것이 한국 개신교를 맹비난하고, 그걸로 모자라서 한기총 해체운동을 하겠다는 폭탄 선언이었다.

평소에 손교수는 "나는 살아서는 검사의 미움을 받고, 죽어서는 목사의 미움을 받는다."고 했는데, 정말 연세가 아주 지긋해 지시자 하신 말씀을 책임 지려고 나서는게 아닐까 싶다. 목사의 미움은 이제 확실해 졌으니.

하지만 …

B급좌파 까기(2) -김규항 2

김규항 이야기는 오늘로 마치려고 한다. 사실 이번에 하고자 하는 말은 김규항에 대한 것이 아니라 김규항이 구사하는 개념과 용어들에 대한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규항의 인격은 다소 편협하지만 그래도 배울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구사하는 '진보'개념이 사람들을 호도한다는 것이다. 개념을 논쟁적인 의미를 담고 사용하지 않고 판단의 준거로 사용해 버리면, 결국 자신이 내린 그 개념의 정의 안에 감금당하고 마는 셈이다. 사실 이 개념은 김규항 뿐 아니라 모든 B급 좌파들이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문사회 고전들 중 '진보'라는 단어가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책은 무엇일까? 마르크스의 자본론? 천만에. 직접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 원리" 아니면 알프레드 마셜의 "경제학 원리'일 것이다. 특히 마셜의 책은 '진보'로 시작해서 '진보'로 끝난다. 즉 B급좌파식으로 말하자면 이 진보라는 말은 원래 좌파의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사도들"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좌파가 진보라는 말을 쓰지 말라는 건 아니다.

좌파든 우파든 간에 "인류의 상태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을 믿고 있다면" 누구나 진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우파는 지금보다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생산과 분배가 이루어져서 보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진다면 그걸 진보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좌파의 진보도 그닥 다르지 않다. 아니 사실상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다만 자본가의 이윤이 정당한 몫이냐 아니면 단지 착취에 불과하거나 잘 봐줘야 일종의 필요악이냐를 놓고 의견이 갈릴 뿐이다.

혹은 인류의 욕망 자체가 물질적인 욕망을 넘어서 보다 정신적이고 미적인 수준으로 고양되어 지금처럼 경제적 분배를 놓고 다투는 경지를 넘어서는 것을 진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존 메이너드 케인즈다.

그러니 한 마…

이런....

B급 좌파 까기 (1) 김규항 -1

요즘 이명박 정권은 바야흐로 공포물에서 코메디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 덕분에 이 정권에 대한 비판의욕이 그만 사라졌다. 이미 스스로 웃음거리가 되어가고 있는데 거기에 말 보태봐야 예능감 모자라는 내가 할 일은 없으리라.


그런데 요즘 나를 열받게 만드는 집단은 저들이 아니라 소위 진보진영의 지식인(무슨 지식을 갖췄는지는 모르겠지만)들이다. 이명박 정권이 스스로 무너져 내릴때 기회를 잡기는 커녕 스스로의 꼴통성을 폭로하면서 진보진영 전체를 좌꼴로 전락시키는 몇몇 수구 좌파들 말이다. 그래서 이들 몇몇을 골라서 좀 치려고 한다. 그 중 1번 타자는 김규항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아무 감정이 없다. 일면식도 없을 뿐 아니라 이 사람이 쓴 책을 사 본적도 없고, 이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도 잘 모른다. 다만 간혹 여기 저기 굴러다니는 잡문들을 보다가 하도 기가 막혀서 반쯤 읽다가 던져버린 기억 뿐이다. 왜 집어던지냐고? 김규항. 이 사람은 소위 좌파라고 자처하는 집단에서 꼰대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기독교 방송 보면 볼수 있는 목사들 있다. 신도들에게 한바탕 호통을 치면서 "당신들이 주님을 위해 뭘 했소? 주님이 당신들께 너희들은 나를 외면하고 .... " 이렇게 말하는 목사들... 그럼 신자들은 흐느끼며 깊이 반성한다. 그런데 김규항의 화법이 딱 그렇다. 여기서 주님을 빼고 "근본적인 변혁"만 집어넣으면 된다. "너희들은 근본적인 변혁을 주장하지 않았다. 고로 너희들은 좌파 아니거나 기회주의자다." 여기서 다시 깊숙한 한 마디, " 나같이 고결한 사람도 B급 좌파 밖에 안되는데, 너희들이 무슨 좌파며 진보냐? 썩 물렀거라."


이런 식으로 김규항에 의해 진보로부터 축출된 사이비들의 목록은 이렇다.


1) 학문이나 예술의 영역에 정진하는 지식인들
2) 소수자 운동, 여성 운동 등 신사회운동들
3) 환경 생태 운동
4) 진중권 등 개인의 자유를 숭상하는 무리들
5) 조국 등 범민주 연대를 주장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