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30.

교권이 무너져? 뭐가 있기나 했나?

이 글은 2011년 7월 22일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에 한 동안 게시되었던 글입니다. 이제 게시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블로그로 옮겨 옵니다.

우리에게 무너질 교권이 있기나 했는가?


교권이 무너진다며 언론들이 목소리를 높입니다. 학생인권조례, 체벌금지 때문이랍니다. 하지만 교권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교권을 침해해 왔는지 돌아보고 정말 체벌금지 등이 교권 침해의 결정적인 요인인지 차분히 살펴보는 성찰적 목소리는 참으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교권의 법적 근거는 헌법 제31조입니다. 여기 따르면 모든 국민은 의무적으로 공교육을 받아야 하며, 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은 보장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권은 교사가 공동체의 가치와 문화의 대변자로서 존중과 존경을 받을 권리, 그리고 자신의 전문성에 따라 자율적으로 교육적 판단과 조치를 할 권리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체벌 금지 때문에 교권이 무너졌다는 말은 언어도단입니다. 그 동안 우리나라 학교 교실에는 무너질 교권 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없는 교권이 어떻게 무너지겠습니까?
그동안 우리나라 교사들은 국어, 수학, 사회 등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이 아니라 학적, 행사, 시상, 연수 등 각종 행정업무에 따라 편성되고 그것을 자신의 업무로 부여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사회선생님, 2반 선생님이 아니라 교무부 학적계에 불과했습니다. 심지어 수업 때문에 이런 행정업무나 공문서 처리를 지연하면 문책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행정업무, 공문서의 처리가 수업보다 우선시 되는 학교에 교권이 있었겠습니까?

그 동안 우리 나라 교사들은 변변한 연구비도, 연구할 시간도 장소도 없었습니다. 교무실을 한 번 보십시오. 이게 연구할 공간입니까 아니면 행정사무 처리할 공간입니까? 게다가 이런 행정잡무들은 마치 시지포스의 바윗덩이처럼 해도 해도 계속해서 다시 생겨납니다. 교육청과 교장, 교감은 자신들의 실적을 위해 갖가지 사업을 벌리고는 교사들에게 수업 제쳐두고, 교재 연구 제쳐두고 이 일부터 완수하라며 마치 수레 끄는 노새처럼 닥달합니다. 이런 학교에 교권이 있었겠습니까?
전문성은 자유로운 정신에서 피어납니다. 통제와 규율이 가득한 공간에서는 전문성이 아니라 진부한 관행만이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학교는 행정적인 통제와 규율에 의해 갖가지 자질구레한 책무와 교사를 말단 공무원 내지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풍토만 가득했습니다. 이런 학교에 교권이 있었겠습니까?

교육 전문성의 핵심은 평가입니다. 평가와 가르침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평가권마저 침해당하고, 일제고사를 강요받으며, 수업을 일제고사에 맞출 것을 강요받으며, 여기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조차 파면, 해임으로 보답받는 학교에 무슨 교권이 있겠습니까?
그 뿐입니까? 우리 나라의 학교는 어느 교육학 이론에 따르더라도 절대 교육으로 불릴 수 없는 점수 따기 입시교육을 “교육수요자”의 요구라는 이유로 강요해 왔습니다. 여기에 전문직 교사는 없고, 다만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 서비스 판매자만 존재합니다. 환자가 원한다는 이유로 진통제, 항생제 처방을 강요받는 의사가 의사입니까? 그런데 교사더러는 그러라고 합니다. 이런 교사에게 무슨 전문성이 있으며 교권이 있겠습니까?
그 동안 우리 학교는 어느 학부모건 마음대로 들어와서 아무런 절차도 없이 삿대질을 하며 항의해도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저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고성으로 위협하고 심지어 교사에게 폭언을 해도 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교장, 교감 등 관리자는 이런 횡포로부터 교권을 수호하기는커녕 자기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조용히 덮기 일쑤였습니다. 정치적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는커녕 몇몇 목소리 크고 영향력 있는 학부모들이 학교를 좌지우지 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학교에 교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 우리 학교의 모습이었습니다. 즉 지금까지 우리 학교에 교권은 애시당초 있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무수한 교권침해와 무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교권이 무너지고 있다고 입방정을 찧는 분들은 대체 교권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다시금 깊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교권은 모든 교사가 당연히 누리는 그런 권리는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교육의 전문성에 기반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문성에 대해 내세울 것이 없는 교사가 보장받을 교권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교사는 자신의 전문성에 기반한 자율을 누릴 교권을 가지고 있지만, 동시에 그 전문성을 계속 유지하고 갱신해야 할 의무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권이 무너진다는 말을 혹시 듣게 되거든, 교사가 아이들을 마음대로 때릴 수 있느냐 마느냐 등을 볼 것이 아니고, 학생들이 교사에게 복종하느냐 마느냐를 볼 것이 아니고, 전문성에 기반한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각종 부당한 외부의 압력과 통제와 간섭이 있는지, 그리고 교사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청의 각종 전시성 사업을 폐지하고, 교사들을 각종 행정잡무로부터 풀어주게 될 2011년은 교권 추락이 아니라 도리어 교권 회복의 원년이라 불러야 할 것입니다.

2011. 7. 15.

삼손과 데릴라: 교언영색

음악 들어 보겠습니다.

생상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와 2중창입니다.
삼손은 데릴라의 교언영색에 넘어가서 자신의 힘의 근원을 내어주고, 무력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것은 혼자의 비극이 아니라 그에게 큰 기대를 걸던 동포를 배신하고 그들에게 노예의 비참을 선사하는 결과가 됩니다.

그 동안 삼손의 뒤를 이은 얼마나 많은 혁명가들이, 운동가들이, 지도자들이 교언영색 때문에 일을 그르쳤는지 모릅니다. 경계하고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상의 이 음악만큼은 너무도 아름답고 멋집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오페라 중 하나죠^^

두 곡이 연달아 이어지는 곡입니다.


이념 편향 교육감이라고? 지나가던 소가 웃을

요즘 조중동이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이념공세를 뜨겁게 하고 있다. 올 초만 하더라도 빈축성 기사로 공격을 하더니 요즘은 이념공세다. 그건 그만큼 서울시교육청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곽노현 교육감을 김상곤 교육감 수준으로 심각히 보고 있다는 뜻이다. 곽교육감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이념 편향이라고 내 거는 이유가 참으로 한심하다. 이를테면 "4대강 반대운동"을 하던 강경선 교수를 민주시민교육 자문위원장으로 삼았거나 , 전교조 교사들이 TF에 많이 참여하고 있다거나, 아니면 전교조와의 단체교섭에서 많은 타결을 보았다 정도이다. 결국 교육감이 자기 뜻에 맞는 사람을 발탁한다거나 아니면 전교조의 의견을 존중하기 때문에 이념 편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겨우 이 정도로 이념 편향? 여기에 이념 편향의 종결자가 있다.
아마 이 플래카드 기억 나는 사람들 많을 것이다. 전교조의 의견을 존중해서 이념 편향이라면 아예 전교조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뭐라고 해야 할까? 편향의 수준을 한참 넘어선 것이 아닐까? 조중동이 공정택을 이념 편향이라고 비난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니 그 반대도 편향이 아닐까? 적어도 곽노현 교육감이 "전교조에게 맡기지 않으면 교육이 무너집니다" 정도 말할때 까지는 편향이라는 말을 쓸 자격이 그들에게는 없다.

그리고 필자가 당초 교육청의 TF에 참가할때 TF21명 중 전교조 조합원은 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조리 교총이었다. 그런데 6월에는 교총 TF는 스스로 다 사라졌다. 불성실하게 참여했고, 오히려 사업을 방해하려 했으며 회의적인 발언을 했다. 당초 교육감은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그런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것은 그들의 무능력 때문이지 교육감의 편향 때문이 아니다.

교육청 인사위원회에 교직단체 추천인사를 반드시 포함토록 한 것도 그렇다. 교직단체가 어디 전교조 뿐인가? 교육감은 항상 교총과 전교조에 똑 같은 인원의 TF나 자문위원 추천을 의뢰했다. 그런데 전교조에서는 유능한 사람이 가고, 교총에서는 게으르고 회의적인 사람이 오는 걸 어쩌겠는가? 그나마 회의에 참석도 잘 안하고, 자료도 안 만들어 오니 당연히 배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체 협약...문제가 되고 있다는 단체협약의 표지다. 여기에 어떤 단체들이 서명했는지 보라. 뉴라이트들이 만든 서울자유교원조합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 보고 전교조 안이라고 우겨붙이는 것은 사실을 호도하거나 아니면 자기들 동지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일 것이다. 전교조가 다수라서 어쩔수 없다고? 라이트들은 그렇게 무능한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19명의 교총이 2명의 전교조에게 제압당하기도 했는데, 그 반대는 왜 못하는가? 어차피 기회는 다 주어진 것 아닌가? 정 마음에 안들면 소수 노조라도 서명 못하겠다고 철야 농성도 하고 단식투쟁도 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정도 깡 없으면 말을 붙이지 말아야 한다. 전교조의 발언권이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김정일이 내려 주었는게 아니다. 그렇게 헌신하고 희생하고 싸워가면서 얻어낸 것이다.
그러니 현재 이 상황이 불만스러운 보수, 우익 교육계 인사들에게 고한다. 좌편향 운운하며 비겁하게 조중동 뒤에 숨어서 깐죽대거나, 기밀 문서를 조중동한테 흘리는 짓거리 하지말고, 89년부터 지금까지 전교조가 그래왔듯이 그대들도 해직을 각오하고 투쟁하라. 아마 어려울 것이다. 우리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좌를 선택한 게 아니지만, 그대들은 일신의 영달을 위해 우를 선택했을테니. 어디 그대들의 진정성을 확인해 보겠다.








파견교사가 아니라 장학관을 줄여라

서울시교육청의 파견교사에 대해 공격이 개시된 모양이다. 특히 문예체 사업 지원단의 파견교사에 대한 공격이 집요한데, 그 중 가장 많이 제기되는 문제가 1) 왜 혁신학교 지원 파견교사는 두명인데 문예체는 여섯명으로 많으냐, 그리고 2) 작년에 교육연구정보원에 파견나온 교사들을 죄다 복귀시켰으면서 어째서 파견교사를 다시 늘리느냐 하는 것이다.

1)번 문제제기에 대해

필요한 사람의 수는 해야하는 사업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는 상식선에서 바로 답이 나온다. 혁신학교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그 동력이 학교 교사들의 자발성에서 나온다. 따라서 교육청에서는 주로 고충과 애로사항을 처리하고 혁신학교를 빙자한 기만 사례가 없는지 심사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교육계 안의 일이며, 특수한 전문성이 필요한 일은 아니다. 다만 장학관, 장학사들이 혁신적인 마인드도 지식도 또 교수학습에 대한 전문성도 없기 때문에 한시적으로 파견교사가 나와 있을 뿐이다.

반면 문예체 지원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여기에는 학교 안과 학교 밖이 함께 작용한다. 그리고이 두 영역은 서로를 잘 모른다. 우선 학교 안의 교장, 교감, 그리고 교사들은 예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또 이 영역에서 학생들의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을 이끌었던 경험도 없다. 또 수업시간에 문예체를 접목해 본 경험도 거의 없다. 이런 경험들은 주로 학교밖 단체들에게 누적되어 있다. 각종 문화예술 전문가 단체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문제는 학교 안을 모른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전문 예술인이며, 설사 청소년을 지도한 경우가 있다 해도 학교 안이 아니라 학교 밖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밖과 학교안의 서로 모르고 서로 미숙한 두 영역이 마주칠때 온갖가지 부작용이 일어난다. 물론 이런 부작용을 모른척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문예체 프로그램은 교육적 효과는 전혀 없이 돈만 낭비하고 끝나고 말 것이다. 그 단적인 사례가 참여정부의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례인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다.

따라서 학교안의 문예체와 학교밖의 문예체를 두루 경험하여 이 두 영역을 조율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물론 학교마다 잘 뒤져서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학교에는 이 두 영역을 두루 경험한 사람은 커녕, 문화예술을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사람들조차 드물다. 장학사, 장학관? 1년에 공연 한번 안 보는 장학사, 장학관들은 학교도 모르고 예술도 모른다. 따라서 한시적으로 이 두 영역을 조율하여 예산낭비를 막고 문예체 프로그램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할 별도의 코디네이터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로 가장 최적인 조건은 학교밖 문예체 활동을 활발히 했던 교사들일수 밖에 없다.

혁신학교의 경우에는 아무리 고루한 한국 학교일지라도 혁신학교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교사들을 학교에서 적어도 한 두명씩은 찾을 수 있다. 따라서 혁신학교 파견교사는 전체적인 조율만 하면 된다. 그러나 문예체 사업의 경우에는 아무리 진취적인 학교일지라도 문예체에 대해서는 대부분 문외한이다. 따라서 문예체 파견교사들은 조율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여섯명은 너무 적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 이들의 노동강도는 가히 살인적이다. 만약 각급 학교마다 문예체 교육의 마인드와 소양을 갖추고 학교 밖 문예체 단체들과의 네트워크도 잘 활용할 수 있는 교사들이 한 두명씩 양성된다면, 그때는 문예체 파견교사를 대폭 축소해도 될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은 어려워 보인다.

2)번 문제제기에 대해

곽노현 교육감이 원대복귀시킨 이전의 파견교사들은 거의 대부분 기술직들이거나 행정보조였다. 이들이 주로 담당했던 역할은 교육청 서버, 꿀맛닷컴 사이트 관리 등이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을 꼭 교사가 파견나와서 해야 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IT전문가를 고용하면 교사보다 1/3의 인건비만 들이고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 물론 학습 콘텐츠를 관리하는 업무도 있겠지만, 온라인이라는 특성상 이런 일을 꼭 교육청에 나와서 할 필요는 없다.

반면 문예체의 경우는, 특히 이번 문예체 사업의 핵심이 연극, 영화, 그리고 스포츠 리그 등 주로 신체 활동이 활발한 영역이라는 점에서 사정이 다르다. 이런 활동들은 온라인이 아니다. 직접 가서 봐야 한다. 그래야 컨설팅도 가능하다. 그리고 이들의 역할이 컨설팅과 연수라는 점에서 단지 행정적, 기술적 보조 역할을 했던 이전의 파견교사와는 조건이 다르다. 한 마디로 전자는 합법이고 후자는 불법이다. 그러니 불법 파견교사를 복귀시키고 합법적인 파견교사를 배치한 것은 하등의 문제거리가 되지 않는다.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평소에 줄대고, 행정서류나 끄적이면서 교육자이자 교육지원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전혀 기르지 못한 장학사, 장학관들의 무능력이다.

그래도 파견교사들이 정히 문제인가? 정말 파견교사들을 없애고 싶은가? 그렇다면 여기에 아주 간단하고 합리적인 해법이 있다. 이들을 모두 교육청의 책임있는 과장, 장학관으로 임명하여 기존의 장학관, 장학사를 지휘하도록 하면 된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윗자리에 있고, 무능한 사람들이 명령을 듣는것에 좌우가 있는가? 이건 진리 아닌가?






2011. 7. 8.

트랜스포머3, 그리고 평창

평창올림픽 발표가 나기가 무섭게 조성되는 이 무서운 분위기, 평창올림픽에 대해 우려하거나, 그렇게 잘된 일이 아니라는 말을 하면 즉시 "기수제외"될듯한 분위기를 보면서 우리나라가 아직도 잠재적 파시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공포를 느꼈다.

그제서야 비로소 많은 젊은이, 그리고 청소년들이 영화 트랜스포머의 스토리나 설정이 엉터리라고 외쳐댄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이 트랜스포머의 설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근거는 어째서 옵티머스 프라임은 자신들과 생판 관계 없는 지구인을 지키기 위해 같은 동족들과 치열하게 싸우느냐는 것이다. 지구인들이 특별히 뭘 잘 해준 것도 없고, 그냥 거기서 트럭으로 스포츠카로 숨어 살면 그만인 것을 왜 지구인을 정복하려는 디셉티콘과 싸우느냐는 것이다. 어차피 상관 없는 일인데...

여기에는 바로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만연된 "국익"의 이데올로기, 심지어 좌파라 불리는 집단들 중 상당수를 엉뚱하게 '민족주의자"로 만들어 버린 국익의 이데올로기가 면면이 흐르고 있다. 우리민족이 우선이다. 다른 종족은 우리에게 어떤 이익을 줄때만 관계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떤 가치도, 이상도 없다. 이런 의식을 담고 사는 사람들이니 옵티머스 프라임이 "나는 자유를 배웠고, 자유를 위해 싸운다"라고 하는 말이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사람들은 그리스 독립전쟁에 지원해서 싸운 유럽 여러나라의 지식인들, 그리고 스페인 내전에 참가해서 공화정을 지키려고 싸운 전세계의 지식인들의 말도 공허하게 들릴 것이며, 영국이나 미국의 2차세계대전 참전을 순전히 대공황 극복을 위한 경제적인 이유로만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이상한가? 만약 대한민국이 독재국가인데 아주 강성한 국가라고 하자. 그리고 당신은 이 대한민국의 독재정부와 치열하게 맞서 싸우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대한민국이 만약 중국을 침략해서 중국인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만들고 있다고 하자. 그럼 당신은 중국인들을 위해 총을 들고 한국군과 싸우지 않겠는가? 나는 기꺼이 그럴 것이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가? 물론 당신이 평범한 소시민이라면 이상하게 생각해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당신이 정치적으로 진보이며 정의의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여긴다면,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 도리어 이상한 것이다.


이제 평창으로 돌아와 보자. 평창과 달리 뮌헨과 안시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올림픽 유치 반대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올림픽 때문에 알프스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훼손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올림픽을 하려면 가장 많은 자연의 파괴가 불가피한 평창에선 이런 목소리가 완전히 묻혔다. 만약 끄집어 내었다가는 몰매맞을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도 97년에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반대 시위를 하다가 무진장 지역의 억센 사투리로 무진장한 욕과 위협을 들었던 경험이 있다. 그때도 국익, 그리고 지역경제를 위해 "덕유산 국립공원"따위는 갈아 뭉개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만찬가지다. 평창은 비록 남한에서는 가장 추운동네라고는 하나 동계올림픽을 할만한 지역은 아니다. 고도도 충분하지 않고 자연설 지역도 아니다. 이런 곳에 동계스포츠 경기장을 지으려면 멀쩡한 숲을 갈아 엎어야 한다. 그 동안 강원도의 생명이며 자랑이며 보물이었던 숲을. 그걸로도 모자라서 특별법 까지 만들어서 도로며 철도며 마구 깔아서 사실상 수도권에 편입시키려고 한다. 관광객 편의를 위해서... 그 결과 난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청정 강원도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안봐도 훤하지만 정작 주민들은 그 덕에 아파트 받고 땅 값 올라갈 꿈까지 꾸고 있다.

이미 지난 릴리함메르 동계올림픽때부터 "환경보존"이 강조되어 왔다. 그렇다면 뮌헨이나 안시처럼 기존의 시설을 재활용할 수 있고, 굳이 새로이 자연환경을 파괴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올림픽을 유치하는 것이 옳다. 물론 그냥 소시민이라면 언론에서 떠드는 대로 박수를 쳐도 된다. 하지만 적어도 진보라면, 지식인이라면, 마냥 박수만 칠 일이 아니다. 올림픽 정신의 훼손을, 심각한 환경파괴에 대한 우려를, 난개발에 대한 반대를, 그리고 20조라고 선전하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허구성을(GDP가 1000조원이 넘는 우리나라에 20조 유발효과 따위....) 말하는 것은 이들의 당연한 책무다. 그런데 소위 진보, 지식인들 조차 올림픽 유치에 대해 그다지 기쁘지 않다고 말하면 쌍심지를 켜며 '너 어느나라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진보좌파마저 민족주의, 국수주의자가 탈을 쓰고 들어 앉았으니...

그건 그렇다 치고, 어떤 반대의견, 다른 의견도 용납하지 않고, 그런 의견이 들리면 분노로 화답하겠다는 그런 태도는 대체 뭐란 말인가? 이게 바로 파시즘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2002년 월드컵때부터 별로 좋지 않았던 현상이지만 아직도 치료되려면 멀었나 보다.

난 옵티머스프라임의 노선을 택하겠다.




2011. 7. 4.

중앙일보의 [논평] 좌파교육감들... 논평에 대한 논평

지난 6월 30일, 이른바 진보교육감 6명의 공동선언문을 놓고 아니나 다를까 조중동에서 논평들을 내어 놓았다. 그 중 막가파 조선일보 보다는 합리적인 외피를 가지고 있는 중앙일보의 논평이 사실을 더 교묘히 왜곡할 수 있기에 몇 마디 재논평한다.

원문 링크는 다음과 같다.


이 논평의 주장은 진보교육감을 좌파교육감이라고 부르는데서 출발한다. 평소 곽노현, 김상곤 교육감을 좌파라고 보지 않던 필자에게는 매우 당혹스러운 명명이다. 그 스펙트럼이라면 나는 극좌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좌파진영으로부터 회색분자, 기회주의자 소리를 듣는 사람이다.

내가 좌파소리를 듣지 못하는 까닭은 시장의 기능을 긍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경제가 매우 효율적인 메카니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는 것과 완전한 자유방임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할 뿐이다. 심판없이 경기가 진행될 수 없듯이 사회의 관여가 필요하다고 볼 뿐이다. 그런데 곽노현, 김상곤 두 교육감과 대화해 본 내 기억으로 이 두 분의 시장경제관이 나 보다 더 급진적이라는 어떤 증거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조중동식 좌파 척도인 "종북"쪽은 어떨까? 그게 궁금한 사람은 6월25일 곽노현 교육감의 트윗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61년전인 1950년 6월25일 북한의 침략전쟁으로 3년간이나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전쟁은 분쟁해결수단이 아니라 인간성과 문명파괴범죄입니다. 모든 분쟁국들이 '각자 지키는 평화'를 넘어 '함께 만드는 평화'로 나아가길 기원합니다


종북좌파(실제 그런 놈들 있고, 난 그런 놈들을 혐오한다. 난 이정희 의원이 왜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는지, 왜 진보로 받아들여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들에게 북한의 침략전쟁이란 말은 금기사항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슨 근거로 진보교육감도 아니고, 좌파교육감인가?

그러면서 중앙일보는 좌파교육감들은 교육계 편가르기 하지 말라고 점잖게 충고한다. 그런데 애초에 좌파교육감이란 말을 만들어가면서 편가르기를 시작한 것은 바로 조중동이다. 교과부와 사사건건 충돌하는게 편가르기일까? 교육청이 교과부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독재적 발상이 아니라면 교과부와 교육청이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그 충돌은 교육청 때문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강제력을 억압적으로 관철시키려고 한 교과부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교육감들의 생각이 다 같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중 생각이 비슷한 교육감이 있을 수 있다. 그럼 자연스럽게 협력적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 다른 쪽에서 생각이 비슷한 교육감들이 협력적 관계를 만들면 되는 것이다. 이걸 편이라고 하면 편이다. 그리고 이런 편이 갈라지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렇게 갈라진 편들이 서로 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너면 안된다. 그래서 "범국가적인 교육위원회"를 만들자고 하는 것 아닌가?

편가르기 하면서 위원회를 요구하지 말라는 말이 성립되는가? 편이 갈라지지 않으면 애초에 무슨 위원회가 필요하겠는가? 교육계는 몇몇 교육감들이 모이건 말건 간에 이미 편이 갈라져있다. 진보교육감의 탄생은 교육계의 편가르기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다. 애초에 어느 정도 편이 갈라져 있었던 교육계다. 교육에 대한 관점과 소신이 전통주의(교사중심), 행동주의(교육과정중심), 진보주의(아동중심), 구성주의 등등 다양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따라서 저마다 동의하는 교육관에 따라 교육하고자 하며, 뜻을 같이하는 교육자들끼리 뭉치게 된다. 그럼에도 교육이 전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서로의 관점들의 장단점을 인정하면서 적절한 범위 안에서 논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8년 이전에는 전교조와 교총도 공존할 수 있었으며, 진보주의와 전통주의도 공존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08년 이후 바뀌었다. 일방적인 학력지상주의, 경쟁지상주의, 교육학에서는 족보도 없는 시장주의를 끌어다가 드라이브를 걸면서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 해임, 파면도 불사했다. 이건 군사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교사가 군사정권 시절보다도 더 쉽게 파면당한 시절이 2008-2009년이다. 이게 편가르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이게 일방적인 편들어주기가 아니면 무엇인가? 게다가 그쪽 편은 교육에 대한 고민은 일절 없는 오직 효율만 추구하는 경제집단인데 교육계의 슬픔은 오죽했겠는가? 이런 모든 것들이 모여서 "표로 심판"한 것이 바로 진보교육감의 탄생이다.

즉 진보교육감의 탄생은 "경제논리로 교육계에 편가르기를 강요하지 말며, 한쪽 편의 일방주의를 강제하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였던 것이다. 교육에 엉뚱한 시장지상주의를 끌어들여오고, 경제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교육에 대해 감놔라 대추놔라 하면서 교육계를 혼란과 좌충우돌에 빠뜨리지 말라는 준엄한 경고였던 것이다.

이렇게 좌파, 편가르기, 혼란과 좌충우돌. 그 어느것도 조중동이 진보교육감들에게 비판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한다면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단 한가지일수 밖에 없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2011. 7. 1.

참여정부와 운동권의 실패: 진보교육감 데자뷔?(1) 남자, 남자, 남자

나는 그 동안 수업 열심히 하고 학생들과 호의적이고 유쾌한 상호작용 하는 교사로 , 또 제법 영향력 있는 블로거, 저술가, 연구자로 나름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곽노현 교육감이 당선되고서 이런 저런 연락을 받기도 했지만, 원칙적으로 나는 전교조 조합원이며, 교육감은 설사 진보교육감이라 하더라도 사측이기 때문에 조합과 사용자의 원칙적인 관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거리를 두고 있었다. 조합은 설사 진보교육감과 협력할 일이 있더라도 교섭과 정책협의를 통해서 해야지, 조합원들이 직접 교육청에 진출해서 할 일은 아니라고 봤던 것이다. 그리고 그 생각을 포스팅 해 두었었다. (포스팅 보기)

그랬던 내가 도리어 이런 저런 TF에 참가했다. 그래서 상당히 다이나믹한 두달을 보냈다. 이것 참 난감한 상황인데, 옛날에 써 두었던 포스트를 보니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서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전부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그 포스팅인즉 "교육감 TF에 가담한 전교조 전현직 간부들은 속히 떠나라"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전교조 전직 간부였으니 이율배반을 행한 셈이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이율배반을 범한 이유는 참여정부 데자뷔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TF에 참가한 선생님(홍일점이다)의 표현대로 "지못미"는 이제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데자뷔가 정말 보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내가 호언장담했던 만큼 구원투수 노릇을 제대로 못한 것이다. 어쩌면 블로운 세이브나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실패를 기록할 수 있는 동물이다. 그래서 내가 보았던 데자뷔나 기록해 두려고 한다. 훗날 진보진영이 집권하였을때 또 다시 지못미 하지 않도록

참여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씽크탱크의 현실감각 결여였다. 노 전대통령도 처음에는 운동권 출신들을 중용하였으나 그들의 뜬구름 잡는 소리에 나중에는 역정을 내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아주 작은 것이라도 뭘 어떻게 할지 좀 제시하라."인 것이다. 그러나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한결같이 두 가지 종류의 발언만 했다.
"지금 진행중인 ^****8는 이러저러한 문제점이 많다. 그러니 &&&&&한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

그럼 대통령은 관료들에게 "&&&&&한 방향으로 정책을 세우라"고 지시하지만 관료들이 그 방향을 이해하지 못하는데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턱이 없다. 그러니 대통령이 언론에 발표한 내용과 실제 현실에서 집행되는 정책이 따로 노는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 운동권들은 또 가서 비판한다. 하지만 실제 집행 가능한 정책까지 수립하는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그런데 만약 관료들 중 그런 정책을 쌈박하게 패키지로 수립할 수 있고, 그러면서 나름 진보적인듯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출세줄이 완전히 보장된 것이다. 이를테면 김진표 같은 사람이 그렇다.

나는 이렇게 풍성한 문제제기와 방향제시에 비해 터무니 없는 실무능력 부족을 진보진영의 남성중심주의 때문이 아닐까 가설을 세워본다. 내가 진보교육감을 돕는 일을 잠시 했을때 느낀 가장 심각한 상황은 "남자 일색"이라는 것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교육계는 원래 "여자 일색"인 곳이다. 우리 학교만 해도 3학년 담임 8명 중에 나 혼자 남자다. 그리고 1~3 학년 23학급에 남자 담임은 4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진보교육감을 돕기 위해 구성된 각종 정책 TF의 성비를 보면 마치 우리나라 교사들의 대부분이 남자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느낄 정도다. 예를 들면, 교원업무경감 TF중 전교조 추천위원 5명이 전원 남자. 서울 교육청 파견교사 9명중 8명이 남자. 서울교육발전계획 정책 TF중 전교조 추천인원 전원 남자, 교육감의 자문역할을 맡은 정책검토위원 6명중 5명이 남자. 교육감 보좌관 5명도 모두 남자. 교육청과 맞상대 하는 전교조의 지부장, 정책실장, 사무처장, 사무국장, 참교육실장도 모조리 남자. 압도적이다. 이거야 말로 "남자 만세!"가 아닌가?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교육계의 그 많은 여성들은 일체 자기 가정에만 신경쓰나라, 참교육이나 진보교육에 아무 관심도 없고, 아무 활동을 하지 않는단 뜻일까? 원 천만의 말씀이다. 실제 일선 학교에서는 여교사들이 더 진보적이다. 남교사들은 특별한 한 두명을 빼면 죄다 애 패는거 즐기는 절반 변태 아니면 월급이나 까먹으며 편히 살려는 웰빙족, 혹은 교감 승진 하려고 간도 쓸개도 다 빼놓은 무리들이다.

예컨대 우리학교 남교사들 9명 중 전교조 조합원은 나 하나다. 그러나 여교사 27명 중 7명이 조합원이다. 또 남교사 9명 중 자발적인 독서모임이나 학습모임에 참가하는 사람은 나 하나다. 그러나 여교사 27명 중 12명이 독서모임에 참가한다. 그 나마 전원 여교사들로만 조합원들이 이루어지거나 학습모임이 이루어진 학교도 비일비재하다. 또 전교조 시도 지부에만 가도 얼굴도 보기 어렵던 여성 활동가들을 지회나 분회 단위로 가면 아주 쉽게 찾아볼수 있다. 사실상 지회나 분회는 여교사들이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진보적인 교사들 중 최고의 정수를 가려내어 진보교육감의 자문역을 맡기고자 했다면 그 중 적어도 2/3는 여성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났을까?

그것은 대부분의 남성 활동가들은 묵묵히 서포트 하는 역할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든 지회 이상의 단위에서 두각을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설사 분회, 지회에서 활동한다 할지라도 본부, 지부의 간부들과 연결고리를 유지하며 한 그룹을 형성하려 한다. 그러니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자기 교실, 자기 학교의 일상적인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인 것들이다. 전교조 남성활동가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기 수업, 자기 교실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육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진보정치 전반에 대한 담론을 거침없이 펼치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 여성활동가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교실, 자기 학교 문제에 관심이 많고 그 문제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모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니 주 활동 무대는 분회, 지회가 된다. 이들의 주요 대화내용도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진보적인 교육운동게에 괴이한 분업이 나타난다. 남자들은 지부 이상의 단위에서 주요 간부직들을 독점하면서 선 굵은 정책과 방향을 논한다. 여자들은 실제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처리하며 고민한다. 남자들은 민주노총, 민노당 등에 대해 관심 없는 여성조합원들을 진보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치부하며 더더욱이 자신들이 조직의 상층부 독점을 정당화 한다.

그런데 진보적인 정권 혹은 교육감 눈에는 당연히 상층부의 인사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그들을 부른다. 그럼 그들은 다시 자신들과 가까운 활동가들을 부른다. 물론 남자들이다. 이렇게 해서 각종 정책 TF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방향 제시" 까지만 했던 사람들이다. 그 방향에 따라 구체적으로 학교에서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까를 고민했던 사람들은 이들이 아니다. 그러니 이들은 "구체적인 안"을 생산하지 못하고, 설사 생산한다 하더라도 현장에서 "어떻게 돌아갈지" 생각하지 못한다. 결국 뭘 어떻게 하라는건지 알 수 없는 뜬구름잡는 정책들 아니면 현장에서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올, 그리고 현장에서 아무도 원하지 않았던 그런 정책들이 쏟아진다. "운동의 대의"를 걸고서.

이들은 당황한다. 훌륭하고 유능한 우리들이 모였는데 왜 이럴까? 답은 간단하다. 실제 일은 "여자들이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걸 여전히 캐치하지 못한다. 이들의 눈에도 여자들은 그저 여자들이고, 여자들 할 일이나 하면 되는거였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진보라고? 후훗. 웃음거리다.

지나친 표현이라고?

교육청 여성 장학관과 전교조 여성 간부의 공통점은? 정답: "남자가 하는 말을 거역하지 않는다." "설사 거역하더라도 조분조분하고 공손한 말로 거역한다." 딩동댕! "주요 정책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역할은 겸손하게 남자에게 양보하고, 그 결과 파생되는 각종 실무, 허드렛일을 말없이 티도 안나게 잘 처리한다." "딩동댕!"

마르크스가 말했나, 엥겔스가 말했나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 "여성이 얼마나 자유로운가가 그 사회 진보의 척도"라고 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수구적인 곳은 소위 "진보단체"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전교조"가 제일일 것이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민주노총"이 더하겠지만, 조합원의 성비를 감안하면 전교조야 말로 마초의 천국이며 보루이다. 이걸 해결하지 않고서 진보를 논하는 것은 넌센스다.

이제 데자뷔의 정체를 알았다. 그건 그 동안 봉건적 위계에 따라 각종 비판과 기획만 했던 남성 활동가들의 현실감각 결여, 바로 그것이었다. 그 답도 알았다. 여성을 등용하라. 적어도 정상적인 성비만큼이라도!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