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9. 29.

나넬 모차르트 - 그 기막힌 여자의 길

나넬 모차르트는 결코 음악 영화가 아니다. 이점이 유명한 남자 음악가에 가려진 여성 음악가를 다룬 또 다른 영화 "클라라"와 이 영화를 구별지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지루하다, 보기 힘들다고 평한 원인이다. 실제로 로베르트 슈만의 3번 교향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중심으로 클라라 슈만, 요하네스 브람스의 작품들이 소개되는 클라라와 달리 <나넬 모차르트>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중심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모차르트의 음악이라 봐여 k.28번의 바이얼린 소나타가 잠시 나올 뿐. 게다가 나넬 모차르트의 작품은 전해오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으로 등장하는 음악은 다 가공의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음악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18세기의 궁정사회를 보여주는 일종의 역사 판타지 물도 아니다. 베르사이유 궁이 나오긴 하지만 태자의 내밀한 사생활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화려한 궁정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여성영화이며, 성장이 좌절되는 한 천재 여성에 대한 레퀴엠이다. 사실 이 주제는 나도 꼭 한 번 다루고 싶었던 것이었다. "신동 모차르트"와 관련된 기록이나 그림을 보면 항상 함께 연주하는 누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 누나 역시 대단한 음악가였을 것이다. 실제 모차르트나 아버지의 기록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나넬의 클라비어(건반악기의 독일어 통칭) 연주에 감탄했으며, 모차르트조차 자신이 누나보다 탁월한 음악가라고 별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웬만한 음악가는 전부 조롱하고 비웃는 말을 서슴치 않았던 모차르트가 누나의 음악에 대해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기록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언제나 예찬 일색이다. 심지어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악보를 누나에게 보내면서 "누나에게는 별 거 아니겠지만, 웬만한 피아니스트는 이걸 연주하려면 땀 깨나 흘려야 할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남긴 서한 곳곳에 "나와 누나만이 할수 있는..."이라는 표현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모차르트가 비인에 정착한 이후 음악가로서 나넬 모차르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 것이다. 피아노 레슨 교사로 몇년간 일하다가 나이 많은 귀족의 후처로 들어가 자작부인이 되었다는 것 정도가 다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나넬 모차르트라는 음악가는 어디로 갔는가? 이 답을 찾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다.

답은 간단하다. 나넬 모차르트가 초경을 하면서, 즉 여자가 되면서 음악의 신동의 삶은 끝났다. 신동의 삶이 끝난 자리에서 여자의 삶이 기다리고 있다. 이건 이 영화에서 나넬과 친교했던 프랑스 공주의 삶, 프랑스 태자의 삶도 사실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자기 삶, 자기 재능에 맞는 삶은 없다. 단지 그들의 배역만 강제될 뿐이다. 공주와 태자는 자유로이 예술을 하며 유럽을 순회하는 나넬을 부러워하지만 조만간 새장속에 갖혀야만 할 나넬의 처지를 알지 못한다.


물론 천재인 나넬이 이런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나넬은 아버지가 바이얼린이나 작곡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당시 여성에게 허용된 악기는 건반악기와 하프였다. 이들 악기는 실내용 악기이기 때문에 가족음악회 등에 사용되었다. 바이얼린은 오케스트라 등 공적인 연주를 위한 악기이며 지휘자나 악장이 되기 위한 악기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딸에게 가르치지 않았던 것 같다. 같은 건반악기라도 공적인 악기인 오르간은 역시 여자에게 금지되었다), 어깨너머로 바이얼린이나 작곡을 수준급으로 익힌다. 아버지는 그런 나넬을 걱정한다. 여자에게 허용되지 않은 길, 관례가 금지하고 있는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역시 딸의 재능이 출중함을 "그걸 의심하나?" 하며 인정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마침내 나넬은 가출을 감행하고 여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음악가로서 자립하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은 음악가이기 이전에 여자로 취급되고 있음을 절감한다. 태자는 음악적 후원자가 될 것 같아 보였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가가 아니라 그의 정부가 되어야 했다. 나넬은 그 길을 거부한다. 결국 그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부턴 여자의 길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식사가 끝난 뒤 수북히 쌓인 설겆이 거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나넬의 모습은 눈시울이 붉어질정도로 슬프고 한스럽다. 이제 나넬은 어머니로부터 배워야 한다. 그저 여러 귀족과 왕족들의 모임에 초대받는 것이 즐겁고, 그런 남편 만난 것이 마냥 행복한, 그리고 살림 잘하는 천상 여자인 어머니 말이다. 이제 나넬은 상상도 해 본적이 없는 자기 어머니의 삶을 살아야 한다.이제부터 그녀가 살아야 할 삶은 그런 것이다. 천재소녀나 평범한 소녀나 결국 스무살 되면 똑 같아지는 것, 단지 여자로만 취급받는 것, 그게 여자의 삶이었던 것이다.

재능은 축복이다. 하지만 그 재능을 펼칠수 있는 사회적인 영역과 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려받은 재능은 크면 클수록 축복이 아니라 저주다. 그리고 나넬 모차르트는 저주앞에 쓰러지며, 결국 여자의 삶을 살며, 단지 동생의 그림자로 남는다.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만 남자라는 특권 덕분에 재능이 꺾이지 않고 꽃필수 있었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어땠을까? 이 영화에서 소년 모차르트는 나넬과 대립적 관계에 있지 않다. 둘은 서로 끔찍히 아끼며 음악을 공유한다. 이건 상당히 긴 복선인데, 먼 훗날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 역시 관례적인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재능이 발휘될 필드를 찾지 못해 비참하게 쓰러지기 때문이다.

아버지인 레오폴드 모차르트가 기획한 두 자녀의 삶은 이런거다. 누나 나넬은 소녀시절 뛰어난 클라비어 연주자로, 처녀시절 음악선생으로, 그리고 좋은 집안에 시집가서 귀부인으로 키우는 것이다. 당시 클라비어 연주는 숙녀의 기본 소양이니 그러기에 유리하다. 결국 나넬은 좀 이상한 모양새긴 하지만 이 순서대로 살아가고 만다. 동생 볼프강은 유망한 직업 음악가로 성장하고, 높은 귀족, 더 나아가 왕실의 전속 음악가가 되어 귀족과 같은 지위를 누리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런데 볼프강은 이 코스를 거부하고 자유롭고 독립적인 음악가의 길을 선택한다. 영화속의 나넬처럼 볼프강 역시 가출을 통해 이 길을 선택한다. 심지어 볼프강은 누나에게도 빨리 가출해서 둘이서 음악계를 평정하자는 편지를 몇차례 보낸다. 하지만 나넬은 연로한 부친을 모셔야 한다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볼프강은 쓰러졌고, 나넬은 장수했다. 하지만 장수한 나넬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거세된 삶, 혼이 억눌린 삶이 아니었을까? 이 영화는 나넬이 진정 참으로 살아있었던 나날, 즉 천재로 살았던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포착하고, 살아도 산것이 아닌 그런 삶, 즉 여자의 삶의 시작지점을 포착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모든 재능있는 여성을 위한 레퀴엠인 것이다.

2011. 9. 21.

교육청 자문위원 - 단일화 댓가로 주어진 공직?

마침내 검찰이 곽노현 교육감을 기소했다. 뭐 구속까지 시켰으니 당연히 기소하겠지. 더구나 죄질이 아주 나쁘다느니, 최고형을 때려야 한다느니 아주 살기가 등등하다. 가카적 관점에서 보면 첫 공판이 10월중에 열릴 것이고 이때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기간일테고, 그런데 이때 유죄 무죄가 판가름 나는 선고공판이 열리기는 멀었고, 기껐해야 검찰이 공소장 읽고 구형하는 정도의 기일이나 잡힐 것이다.

그러니까 10월 중 열리는 재판은 검찰의 주장이 나오는 재판이다. 이때 검찰은 "징역 5년" 정도 때릴 가능성이 크다. 심지어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을 때릴 가능성도 있다. 구속=징역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의 일반인들이라면 구형=선고 라고 착각하기도 쉬울테니. 그래서 시장 보궐선거 한 복판일때 검찰이 "징역 7년!" 하고 외치면 실제 죄의 유무와 관계없이 곽노현은 징역 7년짜리가 되는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당연히 이건 자위대축하사절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기소 내용이 우습다. 공직선거법 232조 1항 1호가 아니라 2호로 기소한다고 떠들어 놓고는, 정작 기소사실에는 계속해서 5월19일 합의, 합의인지, 합의 주도 등등의 말이 나오고 있다. 물론 증거는 없다. 다만 이렇게 큰 돈을 약속 없이 주었겠느냐 하는 심증 뿐이다. 또 공소시효를 착각해서 6개월이 지난 다음에 돈을 준것이라고 정황증거를 내세우지만, 이는 거꾸로 아무런 약속의 증거가 없는데 굳이 공소시효 지난 다음 돈을 줄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주장 앞에 쉽게 무너진다. 동생에게 돈을 준 것은 아주 쉽게 그때 박명기가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며, 나눠서 준 이유는 돈이 없어서고(빌렸음을 검찰도 알고 있다), 차용증은 그건 곽노현 소관이 아니라 강경선과 박명기 동생의 소관이니 알 바 없다. 만약 차용증을 곽노현이 알고 있었다면 처음 기자회견때 "빌려주었다."라고 해서 단번에 법망을 피해갔을 것이다.

어쨌든 약속의 증거를 찾지 못하는 한 "돈을 준 사실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라는 검찰의 자신감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약속했던 사실을 처벌하는 1호는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이전에 약속했던 사실이 있어야 사후매수인 2호도 입증이 용이한 것이다. 이때 검찰이 절묘한 한 수를 찾았다. 그게 바로 교육청 자문위원이다.

이 자문위원은 단일화 협상때 곽노현 교육감 측에서도 이미 말이 나갔던 바 있다. 그러니까 이건 분명 사전 약속이다. 그리고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으니 이건 사후매수가 성립되는거다. 결국 언론플레이는 2억원으로 하고 정작 유죄판결은 이 자문위원직으로 걸어 보겠다는 꼼수가 보이는데, 문제는 이 자문위원이 어떤 자리인가 하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에는 모두 22개의 자문위원회가 있다. 이 중 가장 발언권이 센 자문위원회가 서울교육발전 자문위원회인데, 그 마저도 기껐 열심히 만든 제안서가 장학관들에게 묵살당하기 일쑤다. 자문위원회에서 A라고 작성한 제안서를 장학관이 aaa라고 기안해서 올려도 뭐라고 할 수 없는 힘없고 백없는 자리가 자문위원회다. 그나마 서울교육발전 자문위원회, 혁신학교 자문위원회 정도가 정책에 조금이나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은 미미하다. 게다가 보수도 없고, 교통비도 안 나오고, 심지어 식사값도 없다. 재능기부도 이런 재능기부가 없다.

이 자문위원회 중 민주시민교육 자문위원회라고 있다. 교육감의 절친인 강경선 교수가 위원장으로 있는 자문위원회다. 그러니 최측근 자문위원회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 자문위원회 역시 예외없이 회의 끝나면 자기 돈 내고 밥먹어야 하며, 자기 돈 내고 택시타야 한다. 또 이 자문위원회에서 "당면 민주시민교육의 과제는 교육청의 민주화부터"라는 제안서를 작성했는데, 이 제안서는 장학사, 장학관 손에서 소리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어떤 제재를 가할수 없다. 그냥 울분만 토할 뿐.

이게 바로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회의 실상이다. 게다가 이런 자문위원회가 22개나 되고 자문위원은 300명이 넘는다. 그렇다면 사후매수의 대가라고 당당히 기소사유로 적시된 이 자문위원이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자리인지 감이 잡힐 것이다. 물론 교육계에서 탐내는 자리인 것은 맞다. 단 일선학교 교사의 경우가 그렇다. 비록 보수는 없지만 이런 걸로 위촉되면 학교에서 교장이나 교감이 슬슬 눈치를 보니 상당히 맛깔스러운 자리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서울사대와 함께 교육계 메이저인서울교대 교수이며 자문위원보다 훠얼씬 높은 서울시교육위원을 3선이나 했던 박명기 교수에게는 어땠을까? 비록 지금은 꽤 이미지가 망가졌지만, 진보교육계의 총아이며, 또 체육교육계의 실세였던 박명기 교수는 곽노현 교육감이 아니라 누가 교육감이 되더라도 어떤 이름의 자문위원이나 자문위원장 한 자리는 당연히 꿰어 찰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하찮은 미관말직, 아니 순 이름뿐인 자리가 매수댓가라? 정말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이거 교수들은 물론 교사들로도 자리 채우기 어려워서 결국은 이른바 "유지들"로 자리 차는 그런 자리다.

당장 나만해도 "교원업무정상화 전문위원", "연구시범학교 선정위원", "교육감1주년 사업 준비위원" 등등 온갖가지 위원질 하느라 지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다. 이거 처음 한 두번은 교감, 교장이 눈치보는 맛이나 있지, 좀 지나면 걸핏하면 출장달고 회의 참석하라는 공문만 날아와서 귀찮기만 하다. 그래서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최근에 이런 저런 위원으로 위촉하겠다는 요청을 거절하고 말았다.
그러니 검찰에게 정중하게 요청한다. 2억에 대해서는 알아서 최선을 다해 범죄사실을 소명해라. 단 당신들의 억측, 경험칙(! 기소장에 이 단어 나오는 건 처음 봤다) 말고 확실한 물증을 가지고. 하지만 교육청 자문위원, 이건 제발 기소장에서 빼라. 이건 매수 댓가라고 내어 놓기에는 너무 쪽팔린다. 교육감은 커녕 학교장 공모에서도 안 통할 자리다. 만약 교장 공모중 경쟁자에게 "너 교장자리 양보하면 교육청 자문위원 시켜줄게" 이러면 그 말 들은 상대방은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빙글빙글 돌릴 거다. 아니 교장이 아니라 학교 주무관이나 행정실 직원, 심지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교육청 자문위원을 댓가로 그 자리를 양보하진 않을 것이다.

뉴라이트와 동아일보의 자유민주주의 개드립

임기 말년에 들어서면서 가카와 가카의 충견들은 사회교사를 무척 바쁘게 만든다. 시작부터 BBK로 기선을 잡고, 최근 아껴써서 물가 잡자는 추석덕담과 저축은행 사태로 경제교육 준비를 잔뜩 시키더니 이번에는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 드립을 치며 정치교육 준비를 잔뜩 시킨다. 사건의 전말은 한국근현대사 교육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모조리 "자유민주주의"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 교육과정 편찬위원들이 항의하자 동아일보는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어떤 민주주의란 말인가?"라는 사설을 통해 이들을 공격했다. 이 말인 즉슨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면 니들 인민민주주의 주장하는거냐? 이 종북좌빨" 이런 뜻일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이 주제는 역사전공자들이 아니라 일반사회 전공자들 손으로 넘어왔다. 그러니 이명희 교수 등등은 제발 남의 영역에서 깝치지 말고 제 자리로 돌아가길 희망한다. 그 이유를 이제 밝혀 보겠다.

우선 동아일보와 이명희 교수 등이 팀웍이 맞는다고 볼때 이들이 사용한 자유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반대말이다. 공산주의 국가들도 대개 자기 나라를 민주주의라고 부르기 때문에 이 사이비 민주주의와 구별하기 위한 선명한 용어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는 반공이 한창이던 시절 "자유대한" "자유세계" 등과 그 맥을 같이하는 말이다. 반면 이들과 짝짜꿍을 맞추는 또 다른 세력들에게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시장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즉 "자유시장" 더하기 "간섭없는 작은 정부" 이걸 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둘이 기묘하게 뒤섞이면서 한국적 뉴라이트 자유민주주의가 탄생한다. "기업이 하는 일은 뭐든 간섭하지 않고, 여기에 딴지 걸면 공산당으로 몰아 붙이며, 민주주의라 주장하는 정치" 이게 이들이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실체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렇거나 저렇거나 정치학적으로는 몽땅 다 틀렸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런 뜻이 아니다. 사실 정치학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건 정치학 용어라기 보다는 정치가들의 용어에 가까웠다. 정치학에서 오히려 진지하게 다루는 주제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유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는 다른 뜻을 가진다. 이때 자유주의는 개인, 소수의 권리가 전체, 집단, 다수에 의해 침해받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소극적 자유를 인정하라는 것으로 이 사상의 정수는 존 스튜어트 밀, 알렉시스 토크빌 같은 사상가에게서 잘 나타난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란 대체 무엇일까? 문자상으로는 자유주의 +민주주의다. 그런데 이때 민주주의는 이념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근대적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즉 대의정치, 입헌정치를 뜻한다. 따라서 이 둘의 결합은 이런 의미가 된다.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법과 대표기구에 의해 통치되는 근대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되, 개인과 소수의견이 충분히 존중되며 억압받지 않는 정치". 이게 자유민주주의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아무리 소수의견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개진할 수 있는 언론, 출판, 집회, 시위의 자유, 그리고 아무리 소수파라 할지라도 정치적으로 그 뜻을 펼칠 수 있는 정당설립과 참정의 자유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즉 표현의 자유와 정치참여의 자유가 보장되는 가운데 다수결과 대표기구에 의해 운영되는 정치, 이게 자유민주주의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며, 다만 오늘날 민주주의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한 원리를 지칭할 뿐이다. 즉 직접민주주의가 어려운 근대 국가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식의 용어인 것이다. 이런 현대 민주주의의 원리로는 자유민주주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의 여러 계층, 계급간의 격차가 벌어지지 않게 형평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 역시 현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다.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이 원리의 훌륭한 모범이며, 브라이언 터너는 이 원리에 관한한 토크빌 만큼 중요한 사상가다. 또 스테판&린츠 같은 학자는 자유민주주의까지 달성되면 형식적 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까지 달성되면 실질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졌다고 부른다. 이 의미는 사회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보다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바탕 하에 사회민주주의까지 이루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 더하여 어떤 사람, 집단, 계층, 기구가 그 나라의 권력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된다는 원리가 추가된다. 여러 사람, 집단, 계층, 기구들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면서 권력이 독점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 이러면서 국가는 누군가의 사유물이 되지 않고 그야말로 "공공의 재산"이 된다. 이러한 원리를 공화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공화민주주의의 흐름은 마키아벨리, 몽테스키외에서부터 비롯되어 최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까지 이어져 오는 원리다.

따라서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할때는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공화민주주의를 모두 아울러서 지칭하는 것이다. 이중 어느 하나만 강조하면서 그것을 민주주의라고 강변하는 사람이나 세력은 모두 수상한 사람들이다. 예컨대 자유민주주의만 강조하는 사람은 불평등한 사회체제에서 이득을 보는 집단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실질적 수준까지 진행되는 것을 차단하고 형식적, 절차적 수준에서 멈추려는 것이다. 반면 사회민주주만을 강조하는 사람은 자신의 정의관에 따라 빈곤층이나 하층계급을 선동하여 이를 바탕으로 독단적으로 나라를 운영하려는 사람이다. 이 양자는 마치 형식과 내용이 따로 떨어져서는 아무 의미가 없듯이 상보적이며 상호의존적이다. 그리고 여기에 권력의 분립과 균형이라는 공화주의의 원리까지 잘 지켜질때 비로소 우리는 그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정치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의 공통점이 바로 이 세 원리가 잘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며, 1980년대 이전까지 미국이 세계의 모범이 되었던 것도 바로 이 세 원리가 조화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뉴라이트 집단과 동아일보를 보면 그들은 우선 자유민주주의 원리부터 마구 훼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교과부는 자기 뜻에 맞는 일부 교수의 말만 듣고 다수 교육과정 위원의 사표 불사한 항의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뜯어 고쳤다. 게다가 이들은 자기들 뜻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과서 내용도 마구 뜯어고치는 만행을 서슴치 않았다.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는 자유민주주의인데 정부가 공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다수의 의견마저 묵살하고 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건 지나가던 쥐가 웃을 일 아닌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자유민주주의가 이루어져 가는 과정으로 기술하는 것도 정치학적 관점에서는 기가막힌 코메디다. 물론 4.19 혁명이나 6월민주항쟁은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와 참정권의 자유를 확대시키기 위한 투쟁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이 거기서 그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자유민주주의로 한정지으면 당장 전태일 열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 같은 사건은 들어설 자리가 사라진다. 게다가 4.19나 6월 역시 단지 선거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한정된 요구가 터져나온 사건이 아니었다. 이건 기본적으로 소수의 권력자가 민주주의를 빙자하여 다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국가를 사유화하려는 시도에 대한 공화주의적 반발이기도 했으며, 이러는 과정에서 심화되어가던 불평등에 대해 항의하는 사회민주주의적 반발이기도 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상황 상황에 따라 이 세가지 요구중 어느 하나가 강조되기는 했으나 이 셋을 골고루 발전시켜나가며 궁극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지, 그 중 형식적 측면인 "자유민주주의"만 발전시켜 나간 과정이 아니었으며, 더더군다나 뉴라이트 식으로 이해한 공산주의의 반대말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간 과정은 더욱 아니었다.

이명희 교수 등 뉴라이트 역사교수, 교사들에게 고한다. 이제 역사과 영역을 벗어나서 정치, 경제 영역에서 주장을 펴고 싶으면, 즉 다른 전공에 개입하고 싶으면 먼저 그 분야의 기본적인 개론서와 역사부터 익히고 오라. 세이빈이 지은 "정치 사상사"를 강추한다. 1,2권으로 되어 있다. 그 다음에는 로버트 달 의 "민주주의와 그 비판자들"을 꼼꼼히 읽으라. 그리고 마키아벨리, 로크, 루소, 토크빌, 터너의 기본적인 저작들도 읽어보고 오기를 바란다. 그럼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거의 쓰이지 않음을, 그리고 쓰이더라도 댁들이 쓰는 그런 유치한 의미는 설 자리가 없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2011. 9. 20.

아, 이제 경제는 어디로 가나?글로벌 위기, 그리고 각하


이미 석달전에 주식과 관련한 모든 거치식 펀드를 처분하였고, 오늘은 위험이 분산되니 오래 붙들고 있으면 결국은 이익이라는 적립식 펀드도 몽땅 처분하였다. 남은 것은 이제 적립식 인덱스 펀드 뿐인데, 이건 아직 들어간 돈이 400만원 정도라 그냥 남겨 두었다.

아, 이런 얘기 하니까 "아니 자칭 진보에 좌빨이 웬 펀드?" 이런 말이 막 들리는 듯 하다. 그런데 이건 참 웃기는 얘기다. 진보는 호갱으로 살아야 한다고 누가 정해 놓았나? 남보다 검소하게 살다 보니 돈이 남고, 남는 돈을 달리 둘 데가 없으니 알뜰하게 관리 했을 뿐이다. 게다가 재테크라는 것 자체가 자본주의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신뢰하는 우파라면 당연히 장래성 있는 기업에 투자한 다음 오랫동안 이윤을 분배받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 설사 경제가 어려워 지더라도 시장의 힘을 믿으며 굳세게 버텨야 한다. 하지만 나 같은 좌파는 시장을 기본적으로 믿지 않고, 자본주의를 불안정하다고 보기 때문에 피땀흘려 모은돈이 한번에 훅가지 않게 하려고 골머리를 썩히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잘 믿지 않고, 언제든지 위기가 찾아온다고 보기 때문에 늘 각종 경제지표를 예의주시하며 대피 타이밍을 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IMF, 2008년 금융위기때도 큰 피해 없이(겨우 25% 손절매.. 반토막 속출에 이 정도면 선방)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뭔가 상당히 불길한 조짐이 있었다. 2008년에는 미국의 주택대부조합이 파산하면서 온 세계가 출렁거렸다. 그리고 이 금융권을 진정시키기 위해 각국 정부들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 은행들 입장에선 꿩먹고 알먹는 장사다. 국민 세금을 자기들 영업부실을 메우고 있으니. 이거야 말로 "대마"임을 내세워 "불사"를 요구하는 것 아닌가?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임을 내세워 정부의 통제를 거부했다는 것이다. 즉 아무것도 해결된 것 없이 그냥 정부만 엄청난 손실을 본 것이다.

그러니 이 위기의 사이클이 정부로 튈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지 망국? 복지 포퓰리즘? 다 개소리다. 이건 전부 그 잘난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 수리하다가 이렇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제 정부까지 한계에 이르렀다.

만약 정부들이 파산한다면? 미국 정부는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도 모면할 수 있을까? 프랑스까지도 살짝 불안한데? 설사 모면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부 지출의 대폭 축소를 의미하는데, 그건 승수효과를 감안하면 엄청나게 경기가 위축될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2008년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가 넙죽넙죽 충격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신흥국 경제도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이 우려되고 있다.

2008년에는 미국이 세계에 신용위기 서비스를 하더니 이제는 유럽차례다. EU는 미국보다 더 큰 세계 최대의 경제권이다. 여기서 사단이 난다면 그 여파는 메가톤일수 밖에 없다. 그런데 EU경제는 의외로 허술하다. 통합했다고는 하지만 통화만 통합되었을 뿐 사실상 각 나라들은 여전히 독자적인 경제로 남아있다. 그래서 각 나라마다 경제 상황이 상당히 다르지만 단일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각국의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통한 경제조정권한을 상실했다.

예컨대 EUR이전이라면 독일은 수출을 너무 많이해서 흑자가 누적되면 경기과열을 조정하기 위해 마르크화의 통화량을 줄이는 정책을 펼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르크화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경기가 가라 앉고 독일의 흑자는 줄어들고 균형을 이룬다. 반면 그리스가 큰 적자를 보았다면 그리스 정부는 드라크마 화의 통화량을 늘릴 것이다. 그럼 드라크마화의 가치가 떨어지고 수출이 늘어나고 경기가 살아나며 그리스의 적자도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단일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 독일 정부도, 그리스 정부도 유로화를 늘리거나 줄일 권한이 없다. 그럼 어떤 일이 일어날까? 독일이 흑자가 누적된다. 그런데 물가는 유로화의 총 통화량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물가가 올라가지 않는다. 다만 유로화가 있는 위치가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독일로 옮겨갈 뿐이다. 돈이 부산에 몰려 있다가 서울로 몰려온다고 원화 가치가 변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따라서 독일은 경기를 냉각시킬 이유없이 끝없는 흑자행진을 계속할 수 있다. (독일의 연간 경상수지 흑자는 1700억 달러에 달한다. 무역액이 아니라 흑자만! 수출은 무려 1조5천억 달러... )

독일의 무역은 대부분 유럽 역내 무역이다. 따라서 독일이 엄청난 흑자를 보고 있다는 것은 유럽 어느나라에서 유로화가 엄청나게 빠져나와 독일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바로 PIGS(포루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와 동유럽 국가들이다. 이들은 모두 독일과 같은 통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경상수지 적자가 누적된다는 것은 외환이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쓰는 자국통화가 독일로 빠져나간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건 고스란히 경기 침체로 이어진다.

옛날 같으면 이들 나라들은 통화량을 늘려서 문제를 해결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독일과 같은 통화를 쓰고 있다. 그러니 이들 나라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통화정책을 포기하고 재정정책을 펴는 것이다. 즉 정부지출을 늘려서 시중의 모자라는 돈을 채우는 것이다. 그런데 국채를 발행한다고 한들 이미 독일로 빠져나간 유로화를 어떻게 국채와 바꾸겠는가? 결국 이 국채는 독일로 넘어간다. 간단히 말하면 독일 때문에 엄청난 적자를 본 나라들이 경기 유지를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들 나라의 정부는 독일에게 채권을 판매한 뒤 독일로 흘러갔던 유로화를 되찾아 온다. 진짜 경제통합을 했으면 이게 경기도 돈 끌어나가 전라도에서 쓰는 수준이라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못한 것이 바로 유럽경제의 취약점이다. 같은 경제권 그러나 다른 나라.... 게다가 독일인들이 그리 너그러운 종족이 아니다. 독일은 절대 남유럽, 동유럽 국가들에게 호갱 노릇을 할 나라가 아니다. 이자 1원이라도 기어코 받아가는게 독일인의 스타일이다.

그래서 내 눈은 시종일관 독일을 노려보고 있었다. 독일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남유럽, 동유럽에게 통큰 지원을 하는가 마는가. 음, 결론은 "통큰 지원을 하겠다는 통큰 약속"이었다. 지원이 아니라 지원의 약속. 이것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나의 모든 펀드를 환매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 예측이 빗나갈수도 있다. 그럼 잘된 거고.

문제는 우리나라다. 세계 경제가 어려워 지는건 그렇다 치고, 문제는 우리가 그 펀치를 고스란히 얻어 맞는가 아니면 좀 덜 세게 맞는가이다. 그러자면 세계에서 한국경제를 어떻게 봐주는가 하는 것이 결정적이다. 이게 무슨소린고 하니 한국에 투자된 글로벌 자금이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고 들어온 것인가, 아니면 안정적 투자를 위해 들어온 것인가가 문제라는 것이다. 개인들도 경제 전망이 어두워지면 포트폴리오를 변경한다. 성장형 펀드를 깨고 국공채 등 안전 자산에 투자한다. 따라서 이런 글로벌 경제위기 조짐이 보일때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나라는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나라보다 펀치를 덜 맞는다.
이게 2008년 미국 때문에 시작된 경제위기임에도 온 세계 자금이 미국으로 투자된 이유다. 미우나 고우나 가장 안전한 자산은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엔화가 미친 존재감을 과시하며 1원당 15원까지 기어 올라간 이유도, 지진이 났건 방사능이 났건간에 일본은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는 뜻이다. 지금 유럽이 흔들리고 있는 판에 국제 투자자들이 투자할 곳이 어디겠는가? 미국, 일본일수 밖에.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 대접을 받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리 큰 신뢰는 받지 못한다. 게다가 그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건들이 일어났다. 우선 저축은행들의 대규모 영업정지 사태가 있었다. 뱅크런이 있었네 없었네 말들이 많았지만, 토마토2 같은 경우는 명백히 뱅크런이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제일저축은행이 있어서 아침부터 험한 표정의 사람들이 수백명씩 몰려오는 광경을 보았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태를 주요 언론은 거의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유일하게 한겨레 신문만 3면에 걸쳐 이 사건을 다루었다. 금융당국은 앞으로 추가 영업정지는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때마침 제일저축은행2 은행장이 자살까지 했다.

문제는 은행의 부실이 아니다. 이들 저축은행들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불량 대출, 낙하산, 청탁의 지배를 받고, 심지어는 금융인 최대의 죄악이라 할수있는 내부자 거래의 흔적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기관이 도리어 이들과 공생하고 있다는 흔적까지 보인다. 결국 금융감독 당국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이건 금융의 사망을 뜻한다. 은행은 20% 미만의 지급준비율만 유지한체 돈을 굴리는 곳이다. 즉 예금자들 중 4/5는 당장 예금한 돈을 몽땅 인출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남의 돈을 굴려서 돈을 버는 곳이다. 그리고 예금자들중 4/5는 자기들 돈이 안전하게 보관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은행에 와서 돈을 다 찾아가지 않고 두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돈이 불투명하고 편법적인 방법으로 불량채권에 투자된다면? 이건 은행의 끝을 뜻한다. 불신과 불투명성. 이 두 단어가 나오는 순간 나는 엄청나게 불행한 예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 각하께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석 덕담을 하셨다. "물가가 자꾸 올라간다는데, 대책은 씀씀이를 줄이는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씀이었다. 이걸 다른 말로 옮기면 "한국정부는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어떠한 정책적 수단도 가지고 있지 않다."란 말이 된다.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은 인플레이션이 진행된다는 것이고, 인플레이션의 일반적인 공식은 다음과 같다.


이걸 한국말로 풀어보면 인플레이션은 1)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물가가 오를 것이라는 사람들의 심리), 2)수요충격(총수요량이 늘어나면서 물가 상승), 3)통화충격(통화량이 늘어나면서 물가 상승), 그리고 4) 공급충격(공급량의 급감으로 인한 가격 급등) 때문에 일어난다. 그런데 가카 말씀에 따르면 최근 우리 나라의 물가상승의 원인은 "씀씀이" 때문, 즉 수요충격 때문이다. 음.. 총공급이 너무 많아서 인플레이션... 이건 경기가 호황이다 못해 과열될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연 지금 한국 경제가 총수요가 너무 많아서 물가가 오를 지경이라는데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매우 궁금하다.
한 나라의 경제를 총책임지는 대통령이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 정책적 수단 대신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실상 gg를 치면 대체 어쩌겠다는 건가? 이렇게되면 안그래도 낙엽만 굴러도 소스라칠 상황인데 투자자들은 한국을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돈 빌려준 나라들은 빨리 갚으라고 성화일 것이고. 벌써 이탈리아, 프랑스가 돈 갚으라고 나대기를 치고 있다.

심지어 가카는 "내 임기때 두번의 경제위기가 와서 다행"이라고 했다. 기가 막힌 자화자찬이다. 그러니 이 말은 "경기 침체는 모두 내탓이 아니라 글로벌 위기 탓이고, 그 중 우리는 좀 덜 맞은 편이다, 내 덕분에" 이런 뜻이다. 기가 막히다. 사실은 그 반대임을 안 맞아도 될 매까지 맞아왔음을, 그리고 2008년 위기가 정리되고 짧은 호황기가 왔을때 홍콩, 대만, 싱가폴 등 경쟁국에 비해 그 과실도 훨씬 적게 맛봤음을 증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런 식의 드립질은 계속해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인도(가카 용어로 국격)를 돋게 한다. 제발 자제했으면 좋겠다. 이미 가카는 경제에 대해 아는게 없음이 증명되었다. 가카가 배운 경제는 거시경제가 아니라 초미시경제(나 한 사람의 복리를 따지는)이기 때문이다.



2011. 9. 18.

BBK 간단 정리. 이건 경제 수업의 일종




요즘 다시 BBK이야기가 떠들썩해진다. 이러 금융 사건의 경우 그 구조가 복잡해서 민간인들은 설명을 좀 듣다말고 짜증을 내면서 손을 내젓기 일쑤다. 그래서 대체 누가 뭘 어쨌다는거야 이런 식이다. 그래서 그 배후의 큰 손들은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누군가가 설명해 주어야 한다. 나꼼수의 설명은 주로 말로 이루어졌기에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간단한 도식을 만들어 보았다. BBK는 분명 머지 않은 훗날 중요한 사회수업 재료로 사용될 소재기에 미리 정리해 보는 것이지 어떤 정치적 의도도 없다.(정말?)

우선 도식은 크게 미국에서 재판이 일어나기 전과 후로 나누어 보았다.

먼저 미국에서 재판이 일어나기 전, 즉 김경준이 한국에 있을때의 일이다.

1) 김경준은 BBK라는 투자금융회사를 설립한다. 가카라고 짐작되나 누구도 알수 없다는 미지의 인물(이하 A씨: 이분은 절대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이 이 회사의 동업자로 보인다.

2) BBK는 두 방향에서 투자를 유치한다. 우선 (주)다스 라는 회사로부터 190억의 투자를 유치한다. 그런데 이 다스라는 회사는 가카의 형제와 인척들이 운영하는 회사다. 가카가 재산을 기부했다는 청계재단도 현재 이 회사의 소유주 중 하나다. 직접적으로 가카는 이 회사와 관계가 없다. 그런데 이 190억은 도곡동의 땅을 매각한 대금이다. 이 땅의 소유주는 검찰 말에 따르면 "누군지 알 수 없는 제3자"다. (이건 수사발표가 아니라 거의 시). 어쨌든 이 190억(회사 연간 순이익의 세배)을 다스는 단 30분만에 BBK에 투자한다(땅 소유주= BBK의 A씨 라야 가능한 몰빵). 여기까진 문제 없다.

3) BBK는 일반 투자자들의 자금(즉 개미부대)을 끌어 모은다. 이 돈이 300억에 달한다. 그럼 이제 이 돈을 굴려서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분배해야 할텐데, 김경준은 이 돈을 싹 싸들고 미국으로 날라버린다.(먹튀! 한 마디로 수백억대 사기친거다.) 문제는 이렇게 사기를 치면 이 회사의 공동대표라고 알려진 A씨 역시 김경준과 함께 8년형을 받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A씨가 이 회사 대표라는 증거는 본인 스스로 그렇다고 외쳐대는 동영상 밖에 없으니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다(음. 말이 되나? 그럼 녹취록 조차 없는 곽노현은?) 이 A씨의 위치가 아주 애매한데, (주)다스 관련자 입장에선 190억을 뜯긴 피해자고, BBK동업자 입장이라면 사기를 친 범죄자다. 그런데 A씨는 이도 저도 아니라 하니 이 190억은 대체 누구 돈인지 알길이 없다(그럼 나나 주지). 어쨌든 미국으로 튀었던 김경준은 여차직 저차직 한국에 송환되어 빵으로 들어가고....그런데 이 사기꾼 김경준은 미국으로 튀기 전에 (주)다스에게 50억을 곱게 반납한 뒤 튀는 예의바름을 보여준다. 미스테리...물론 챙긴 돈은 모든 검은 돈의 종결지인 스위스 은행 금고에 잘 담아 둔다.






이제 재판 라운드가 시작된다. 돈을 뜯긴 두 주체, 즉 (주) 다스와 개미투자자들이다.




(주) 다스는 먼저 받은 50억 외에 나머지 140억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걸었고, 당연히 개미투자자들도 300억에 달하는 그들의 투자금을 내놓으라는 소송을 걸었다. 이 재판은 미국에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재판 결과 (주)다스는 패소하고, 개미는 승소했다. 즉 김경준은 다스에게는 140억을 토하지 않아도 되지만 개미 투자자들에게는 300억을 토해야 한다. 문제는 스위스 은행에는 300억 밖에 들어있지 않으니 알거지가 되는거다. 미국 법원은 당연히 스위스에 있는 김경준 자산을 동결한다(즉 300억의 처분권을 박탈하고 미 정부가 압류했다가 투자자들에게 나누어 줄 조치를 취한다). 그런데 이런 조치가 이루어지기 위한 행정절차를 밟는 며칠의 틈을 타서 이 스위스 금고에 있던 300억 중 140억이 (주) 다스에게 이체된다.

아니, 이게 뭔 일이란 말인가? 재판에서 이겨서 굳이 주지 않아도 될 돈을 법원의 명령을 무시하면서까지 왜 준단 말인가? 그러자 미국 법원이 완전 화가 난다. 청개구리도 이런 청개구리가 어디 있나? 갚을 의무 없다고 판결 내린 상대에게 돈을 갚기 위해 법원의 자산동결명령을 쌩까다니. 이리하여 법원은 검찰에게 김경준과 (주)다스의 관계, 이면합의 여부 등등을 상세히 까발릴 것을 요청한다. 그리고 마침내 7월8일에 결과가 나왔는데, 느닷없이 한미정상회담 핑계를 대며 발표를 연기한다. 아니 사기꾼과 어느 기업간의 협잡에 대한 수사결과가 한미정상회담이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혹시 연루된 사람 중에.... 더 이상은 말 안한다.

그리고 이상의 내용은 모두 정봉주 17대 의원의 설명을 요약한 것일 뿐, 그 진위에 대해서는 본인은 어떤 책임도 없음을 밝혀둔다. ㅋㅋ 그리고 자꾸 이 글의 A씨를 가카가 아닐까 의심이 드는 사람은 종북좌빨임에 틀림없으니 서울중앙지검 공안과로 가서 자수하기 바란다. 가카는 절대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으셨다. 가카는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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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9. 14.

상식 대 비상식, 진보 대 보수

요즘 진보라는 말 대신 상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유행이다. 안철수 교수가 "상식 대 비상식"이라는 비유를 하면서 상식의 전성시대가 왔다. 진보적이라 불릴만한 인사들이나 트위터러들도 "상식이 지켜지는 세상을 위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이러는 동안 진보라는 말을 사용하면 어느새 한 시대 뒤쳐진 사람, 혹은 쿨하지 못한 사람, 아직도 진영논리에 빠진 편협한 사람처럼 들리지 않을까 저어하게 될 지경이 되었다.

물론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하는 것이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규정하는 것 보다 뭔가 입증 책임이 더 큰 것처럼 느껴질지는 모르겠다. 보통사람과는 다른 뭔가 있어야 진보일 것 같지 않은가? 게다가 몇몇 진보논객들은 거기에 고도의 도덕성까지 요구하지 않는가? 이래서야 어디 진보 해 먹겠는가? 그래서 특별히 뭔가 더 요구되는 진보 보다는 보통 사람의 건전한 생각 정도를 갖춘 상식이 더 매혹적으로 느껴질수도 있다.

문제는 그러려면 대한민국의 상태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진보라고 규정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상태가 어떤 상태이건 간에 더 나은 상태를 요구할 수 있다. 진보에는 끝이 없고, 대부분의 진보주의자는 역사의 종말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지금 상태가 훌륭해도 진보주의자는 개혁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을 상식이라고 규정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상태가 정상이하임을 입증해야 한다. 그럭저럭 정상상태라면 그냥 아닥하고 일상의 생업에 충실해야 건전한 상식적 시민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다른 면에서 보면 국가가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잠시 공공문제에 참여했다가 정상을 되찾으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얼마나 속편한 포지션인가? 게다가 때마침 MB시대다. 여기에 글 쓰면서조차 조마조마해야 하고, 거대 방송사 사장이 불려가서 조인트를 까이는 참으로 몰상식적인 시대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나는 상식을 지키려는 시민이다."라는 선언만으로도 엄청난 투쟁성을 보이는 시대인 것이다.

아니, 그런데 여기서 잠깐.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1) 시장경제가 잘 유지되고, 반칙쓰는 정치가나 재벌이 없으면, 만사형통, 이땐 각자 자기 일만 열심히 해도 되는 그런 사회일까? 즉, 비상식이 아니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 인가 하는 문제이다.

2) 상식이라고 하면 대다수의 보통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옳다고 느끼는 상태, 지식,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상식은 다수 의견인가? 하지만 이런 다수의 생각, 통념이 사실은 인류의 발전을 저해하고 다양한 발상을 억압해 왔던 것이 역사적 사실 아닌가 하는 문제다.

우선 1)의 문제다. 조국교수는 철수는 진숙과 만나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부분은 꽤 함축적이다. 안철수는 스스로 상식을 대변한다고 했다. 김진숙은 말할것도 없이 진보를 대변한다. 안철수는 현 상황을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규정하고 빨리 환부를 도려내고(즉 한나라당을 응징하고) 정상상태로 되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과연 백신 개발자!). 반면 김진숙은 인간의 가치, 노동자의 가치를 다만 화폐가치, 이윤으로 환산하는 사회에 대해 전면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기업이 타산이 맞지 않으면 사업규모를 줄이고 사업규모를 줄이면 안타깝지만 노동자들은 해고되는 것은 "상식적"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수용하는 한 매우 정상인 것이다. 그런데 기업의 이해타산에 따라 가정의 생계를 책임져야하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일거에 박탈하고 헌신처럼 버리는 현실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김진숙과 희망버스는 바로 이 "상식"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지극히 정상적이고 반칙이 사용되지 않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라 할지라도 이들은 여전히 항의할 것이 있으며, 대안적인 체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를 비롯한 많은 진보지식인들은 "진보를 상식으로 대체하는 일"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수구좌파라서가 아니라.

다음은 2)의 문제다. 사실 이건 더 어려운 문제다. 토마스 페인이 "상식"이란 소책자에서 자유, 인권, 평등을 역설하고 군주정이 상식에 어긋나는 제도라고 질타하는 바로 같은 시대에 에드먼드 버크는 그 군주정을 철폐한 프랑스 혁명이 "비상식적"이라고 비난하고 있었다. 이때 페인은 "이성적으로 판단해 볼때 부정할 수 없는 이치"의 의미에서 상식을 말하고 있었고 버크는 "오랫 시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여 왔던 이치"의 의미에서 상식을 말하고 있다. 전자의 상식은 자칫 독단이 되어 상식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어떤 원칙과 원리가 상식의 이름을 얻게 되었으니, 여기에 반대되는 의견은 모조리 단죄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너무도 당연히 보수주의의 스탠스를 잡고 변화와 발전을 거부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이치가 있는데 왜 거기에 딴지냐 하고 버티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상식 대 비상식"의 문제로 사회 개혁이나 현재의 정치 구도를 파악할 경우에 발생하는 두 문제는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실제 많은 정치학자들은 "상식"의 이름을 내거는 정치를 경계시하기도 한다.

물론 상식을 마땅한 어떤 원리, 혹은 다수나 오랜 전승에 의해 굳어진 의견과 원리라는 두 의미 외에 다르게 해석할 길은 있다. 그것은 키케로가 강조했던 "공공의 합의"의 뜻으로 상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키케로는 공공의 합의야 말로 공화국의 근간이라고 보았다. 논쟁이 벌어지거나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그 사회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동의하는 "공공의 합의"로 일단 되돌아가서 다시 차근히 따져보면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이를 키케로보다 훨씬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공통의 장소"라는 말로 표현했다. 문제는 이때 이 공통의 것이 명시적으로 합의된 것인가, 아니면 묵시적으로 공유하는 것인가의 문제다. 전자라면 상식은 변경가능하고 확장가능한 유연한 개념이 된다. 하지만 이렇게 변경가능하고 유연한 원칙을 과연 상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후자라면 다시 문제2)로 되돌아가고 만다.

이렇게 상식을 말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더욱이 상식에 기반해 정치를 하거나 정치를 평가한다는것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서 로버트 달 같은 정치학자는 구체적인 가치나 내용이 아니라 그런 가치나 내용이 논의되고 정책화되는 과정과 절차에서 민주주의의 이념형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한 줄 요약: "진보"는 아직도 유효하다. "상식"의 정치는 위험하다.

음... 좀 더 보론이 필요할 것 같지만 졸려서 여기서 그만


2011. 9. 10.

아주 냉정하게 곽노현 교육감 구속 이후를 생각하자

지금 트윗이 불타고 있다. 불타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불타서 소진된다면 그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니 가슴을 잠시 부여잡고 냉정하게 상황상황을 따져 보아야 한다.

일단 나는 법리공방으로 가면 판사가 법적 안정성을 중히 여기는가 아니면 무죄추정의 원칙(검사의 유죄 소명책임)을 더 중히 여기는가에 따라 판결이 나겠지만 무죄가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곽노현 교육감의 최초의 기자회견 뒤 즉시 범법자 취급을 하고 바로 도덕적 단죄를 하는 조리돌림을 식히고 싶었을 뿐이다. 즉 법적으로는 따져볼 여지가 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이다.

하지만 나는 구속영장 발부에 대해서는 엄연하게 잘못이며, 박원순 변호사의 말을 빌리면 오버라고 생각한다. 검찰 구속은 수사의 한 방법이며, 법원 구속은 재판에의 출석을 보장하는 것이 그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검찰은 이미 2004년부터 자체 내규를 통해 구속이 아니고서는 수사할 방법이 없을때 구속이라는 수사방법을 쓴다고 정해 놓은 바 있다. 법원 역시 구속이 아닐 사유를 소명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 해야만 하는 사유를 소명하여 미심쩍은 부분이 있으면 구속영장을 기각하는 쪽으로 변해 왔었다. 2002년부터 구속영장 기각율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피의자가 "범죄에서 사실관계를 부인할 경우",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는 경우", "중요 증인이나 피해자를 위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매우 위험한 피의자로 풀어 놓으면 계속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경우(대개 이 경우는 10년 이상의 중범죄)", "도망갈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여기에 해당되지 않음은 구태여 다시 말 할 필요도 없다. 그 해석과 의미를 달리 했을 뿐 "팩트"에 대해서는 부인한 적이 없다. 그리고 사전합의 인지여부는 단지 검찰의 의심일 뿐 피의자가 소명할 사항이 아니다. 게다가 그건 영장에 적시한 2호에 해당되는 내용도 아니다. 도주의 우려야 당연히 없다 할 것이다. 게다가 모든 검찰의 소환에 협조적이었다. 박명기 교수와의 형평성도 웃기는 얘기다. 박명기 교수는 일수 빚에 쫓기는 사람인데 만약 피의자까지 되면 도주의 우려가 매우 높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판사가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겠지만, 구속이라는 수사방법이 피치못할 상황이라고는 전혀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정희 변호사 말대로 일단 검사가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영장실질심사에서 이를 저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어떤 관행적 사고 같은 것이 문제일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단 영장은 발부되었고, 착한 사마리아인은 구치소로 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우린 또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다.

일단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구속적부심을 신청하는 것이다. 연휴기간에 법원이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좌우간 당장 내일이라도 구속적부심을 신청한다. 그래서 인용이 되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면 되는 것이다. 그럼 적어도 1심 판결이 나는 12월 말까지는 결재를 할 수 있다. 이게 중요한 까닭은 2012년 서울교육예산이 9월중에 확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1심 결과에 따라 법정 구속이 되더라도 교육혁신사업의 예산을 내년도까지 확정해 놓고 갈수 있다. 게다가 그 사이에 서울시장 재보선이 한바탕 지나갈것이기 때문에 1심 판결 역시 크게 달라질 수 있다(혹자는 판사가 정말 법률 로봇처럼 중립적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강아지 풀뜯어먹는 소리고, 오히려 그것은 자연인으로서 판사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다. 판사는 당연히 여론을 살펴야 한다. 여론을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판결문마다 단골로 나오는 건강한 상식, 사회적 통념이 판사 개인의 생각이 아니게 하라는 것이다 )

그래서 실형이 선고되지 않는다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1년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1년이면 마음 독하게 먹으면 교육혁신을 못 박아놓고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설사 대법원 판결로 인해 직을 상실하게 되더라도 이미 도덕적 위신의 손상은 충분히 회복했기 때문에 억울한 정치검사의 피해자 혹은 허접한 공직선거법의 빈틈의 희생자로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보궐선거에서 능히 진보교육감을 재창출하여 정책을 연계할 수 있다. 사실 이게 내가 생각했던 최고수준의 결과였다. 도덕적으로는 무죄를 믿지만, 적용 법 자체가 전례가 없는 것이라 논란의 여지가 많았기 때문이다.

더 나쁜 시나리오는 구속적부심이 기각당하는 경우다. 이때는 양 갈래 길에 서게 된다.

1. 뜨겁게 생각한다면

끝까지 싸운다. 최상의 경우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을지도 모르며 다시 직무에 복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1년간 이주호가 파견한 부교육감은 서울교육을 전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수준으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벌써부터 교장들이 세상만난듯이 술렁거리고 있다. 교원업무경감은 물건너가고 학생인권도 물건너가며, 다시 국영수 심야 방과후가 꿈틀거리고 있다. 확정판결까지 1년이면 혁신을 못박을 수 있듯이 그 역도 가능한 것이다. 사실 나도 이 문제 때문에 가장 큰 고민이다. 끝까지 싸워야 할까 아닐까.

2. 차갑게 생각한다면

구속적부심 기각과 함께 울분을 토하며 교육혁신의 1년간 후퇴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교육감 직을 사퇴하며, 10월 26일에 시장과 함께 교육감의 재보선을 실시하게 하고, 사퇴의 변 등을 통해 진보진영 교육감을 다시 선택해줄 것을 간절히 호소한다. 진중권이 사퇴를 종용할때는 도덕적으로도 회복되기 전이었기에 파렴치범으로 남는 것이지만, 이 시점에서의 사퇴는 교육혁신의 지속을 위해 피눈물나는 희생자의 이미지로 물러나는 것이기에 그 도덕가가 다르다. 35억 환수 안한다 문제는 별개의 것이다. 이건 법원에서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재판 결과에 따라 선관위에서 반환을 요구하는 문제기때문에 확실한 것이 아니라 다만 사퇴를 유도하는 낚시에 불과하다.

하지만 누가 서울교육혁신의 지속성이라는 명분으로 이런 요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만약 사퇴했는데 대법원에서 무죄라도 받으면? 어차피 2호 적용이라면 선거후 금품거래를 처벌할수 없다는 법적안정성 논리와 사실상 공소시효 무제한에 한번 선거로 겨루었다면 앞으로 어떤 사적 거래도 할수 없게 만드는 범죄의 확대해석의 문제 사이에서 머리 터지게 고민할 것이다. 박명기 교수의 경제적인 위급상황의 정도, 그리고 박명기 교수와 곽노현 교육감간의 사적인 관계가 쟁점이 될 것이다. 그래서 어느 변호사의 말대로 대한민국 사법부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바로 이런 부분이 바로 도덕적 딜레마를 만든다. 그러니 누군가를 도덕적으로 폄하할때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나도 솔직히 어떤 판단도 내릴 수 없다. 서울교육의 혁신이 꾸준히 진행될 것을 바라는 마음과, 저 바보스러운 착한 사마리아인(직접 만나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나의 이 견해에 대해 토 달지 말라)에 대한 신뢰와 애정 사이에서.

그래도 끝까지 가는게 더 나을것 같기는 하다. 이주호와 부교육감이 서울교육의 시작하다 만 각종 혁신 사업을 닥치는데로 뒤로돌아 시키겠지만, 그때는 투쟁하면 된다. 어차피 나나 전교조는 교육청 사업을 협조하는 것 보다는 교육청을 상대로 투쟁하는게 익숙하니까. 그렇게 1년쯤 투쟁하다가 교육감이 귀환하면 그 다음에는 폭풍우를 휘날리면 된다. 만약 생환하지 못한다면(35억 환수는 걱정하지 않는다. 그 동안 베푼것이 많은 만큼 분명히 도움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또 다시 진보교육감을 옹립하면 되는 것이다. 그 때는 대통령 선거와 맞물리기 때문에 아주 조건이 좋을 것이다. 이미 곽노현 재판을 통해 진보진영의 파렴치범으로 몰 가능성은 봉쇄되었고, 끌면 끌수록 분노게이지만 높일 것이기 때문이다.

모르겠다. 일단 잠을 자야겠다. 그리고 만약 끝내 곽노현 교육감 체제가 무너진다면 나는 딱 2년만 더러운 꼴 보며 학교에서 버티고(쒸파, 1년만 더 버티면 연금 수급권 생긴다구), 곽교육감과 함께 학교를 바꾸려던 꿈을 접고, 학교 밖에서 이놈의 썩어버린 공교육 전체를 대체할 대안적인 교육활동을 모색할 것이다.

20년 교육활동하면서 꿈꾸어왔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 막 이루어질 것 같은 상황에서 주저앉게되는 이 참담함은 차가운 법리나 들이대는 법률가 혹은 법률가연 하는 로스쿨생은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재판 결과와 관계없이 조중동의 인격살해에 가까운 허위날조 보도에 대해서는 기자와 신문사에게 철저히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또 피의사실을 슬슬흘린 책임자는 반드시 찾아내어 처벌해야 한다. 그들은 반드시 응징되어야 하며,검찰 빨대노릇한 신문들에게서 모조리 배상을 받아서 혹시 모를 환수 사태에 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2011. 9. 8.

박명기와 곽노현(사진으로 보는). 그래도 석연치 않은...


박명기 교수의 변호사가 "댓가성을 부정"한 인터뷰가 나온 뒤 그 동
안 박명기를 오해했다 등등의 말이 나오고 환호작약이 터져나오고 있다. 나는 시종일관 박명기 본인보다는 그 측근중에 부도덕한 누군가 A씨를 지목
하고 있었는데, 그게 사실인듯 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 인터뷰가 석연치 않다. 왜냐하면 이변호사 본인의 말 대로 변호사가 해야 할 일은 법정에서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지 언론 플레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댓가성을 부인하고 검찰의 언플임을 확신한다면 오마이 기자와 인터뷰를 할 것이 아니라 수임 직후 바로 구속 적부심을 신청했어야 했다. 기소 전 구속영장의 기한이 10일이니 이
제 기한이 다 되었을 것이고, 필경 검찰은 1회에 한하여 더 연장할 것이다. 그걸 막는게 바로 변호사가 할 일인 것이다. 그래서 박명기 교수가 구속상태에서 풀려 나와서 인터뷰를 하던 기자회견을 하던 해야 그게 올바른 방향이다.

게다가 "사퇴 댓가는 없었다." "실무진들은 경비보전을 협의하고 있었다."라는 말도 해괴하다. 기존 판례들을 보면 후보사퇴의 댓가와 선거비용 보전을 동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고단수 떡검 2중대가 아닐까 살짝 걱정이 드는 것은 기우일까? 하지만 또 다른 관점이 있을수도 있다. 그건 사퇴 전과 후의 박명기 교수와 곽노현 교육감의 관계가 달라졌다는 점이다. 즉 후보 단일화를 협상하던 상대방에서, 그 어려움에 안타까움을 느낄수 있는 가까운 사이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사진은 두 후보가 단일화를 발표할때의 모습이다. 가히 어색함의 종결자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다. 이해학 목사의 증언대로라면 곽노현 당시 후보는 박명기 측을 신뢰하지 않고, 박명기 측은 억지춘향 격(완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사실상 백기투항)으로 단일화 한 셈이니 어색할 수 밖에 없다.

이 사진은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을때의 모습이다. 곽노현 후보는 출구조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듯 담담하지만 박명기 교수가 오히려 기대 만빵인 모습이다. 그런데 박명기 교수의 위치를 보라. 후보 부인 바로 옆에 있다. 사퇴 후보의 예우? 그럼 다른 사퇴후보인 이부영, 최홍이, 이삼렬 후보는 어디 있는가? 박명기 후보는 단지 사퇴한 것이 아니라 곽노현 후보의 선거운동본부장을 맡았던 것이다. 즉 곽노현 후보의 측근이 된 것이다. 사퇴한지 2주동안 둘 간의 관계가 많이 개선된 것이다.




이 사진은 개표방송을 초조하게 보다가 잠시 선거사무소를 떠났던 곽노현 후보가 다시 선거사무소를 찾아서 당선이 유력해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여기서도 박명기 교수가 다른 사퇴후보들과 달리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후보자 본인보다 더 좋아하는 얼굴은 분명 정치적으로 꾸민 얼굴은 아니다. 즉 박명기 후보는 단지 곽노현 교육감의 경쟁후보였다 사퇴한 후보가 아니라 선거운동기간 내내 고락을 함께한 최측근이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2억의 선의를(엄밀히 말하면 2억의 이자 한 1000만원? 뇌물치곤 초라....)입증하기 위한 개연성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실제 박명기 후보가 곽노현 당선자와 사이가 틀어진것도 돈문제 때문이 아니라 박교수가 천거한 인사들을 곽교육감이 중용하지 않아서라는 설이 중론을 이루고 있다. 그랬다가 11월에 강경선 교수의 중재로 둘 사이의 관계가 다시 형님, 아우 관계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울교대 총장선거가 있었고, 또 낙선한 박명기 교수의 상황이 몇 달 뒤에 거의 한계상황에 이르렀을 것임은 거의 분명하다(이 무모한 선거중독은 비판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선거운동 책임자였고, 동료였던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있다면 당연히 자금을 융통해 주는 것은 도리이며,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일이다. 만약 박명기 교수 말고 다른 선거운동 책임자가 그런 처지였으면 어떻게 했을까? 아마 틀림없이 자금을 융통해 주었을 것이다. 즉 2억은 박명기 교수가 경쟁후보였기 때문이 아니라(그런 생각을 전혀 안할수는 없지만), 기본적으로 선거운동시 측근이며 동료였기 때문에 지원해 준 것이다(그리고 곽노현 교육감의 과거행적을 보면 친구에게 아주 후했던 사례는 여럿 있다).

또 다른 팩트인 선거비용 보전 부분.(사실 이건 불법이다. 이런 말을 꺼낸 변호사의 저의가 이상하다.) 이건 추측이지만 박명기 후보의 사퇴가 그냥 사퇴가 아니라 두 후보의 선거운동캠프의 합병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후보가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후보를 포함한 그 후보의 선거운동 집기, 사무소, 그리고 그떄까지의 선거운동 성과, 정보등이 모두 곽노현 후보캠프에 인수되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선의로 지금까지의 성과와 집기 등을 그냥 내어 줄수는 없다. 후보들과 달리 선거 운동을 담당하는 선거전문가들은 냉혹하고 계산적이다. 사무실 보증금 얼마, 유세차 몇대에 얼마, 책상 몇개, 컴퓨터 몇개 등등을 꼼꼼하게 사정할 것이다. 비용 보전이라기 보다는 중고캠프 매입에 가깝다. 이 와중에 실무자들간에 설왕설래가 오고 가는 것이다. 이 설왕설래를 이리저리 짜집어서 편집하면 꼭 후보매수거래같이 들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인수시킬 대상 없이 소모성으로 지출된 선거운동경비는 보전해줄수 없다. 그 순간 그건 불법매수가 되니까. 곽노현 후보 캠프측 사람들도 그 부분은 정확히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박명기 후보에게 돈을 빌려준 사람들은 상당부분을 변제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초조해진 김**이 계속해서 선거캠프 인수비용에다가 +@를 요구했던 것이며, 그게 계속 거절당하는 과정이 기록된 것이 소위 녹취록의 전부다.
결론. 박명기 교수는 곽노현 교육감에게 단지 사퇴한 경쟁후보에 불과하지 않았고, 충분히 동정심을 느낄수 있는 충실한 측근이고 동료였다. 양 캠프간의 협상과 합의는 선거운동캠프의 인수비용이다. 이른바 이면합의...이게 핵심인데, 아무도 말 안한다. 빨대들이 대서특필 안하는거 보니 곽노현 교육감에게 유리한 내용인 모양이다. 아마 추측컨대 박명기 후보가 파산할 경우 집담보잡혀 덩달아 파산하게 생긴 동서에게 그럴일은 없게 해주겠다며 잘 달래 본 수준의 이야기다. 예컨대 곽교수가 착하고 동정심이 많은 사람인데 파산하게 그냥 두겠느냐, 잘 해 보자, 뭐 이수준...

결국 녹취록 증거 안됩니다. 합의 없습니다. 자백 번복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전합의 정황는 깨지고 자연스레 2호로 넘어가는데, 이 때는 둘 간의 관계가 2억을 빌려줄만한 사적관계인가, 그리고 대가를 의식할 필요없이 긴급한 측은지심을 일으킬만한 상황이었느냐, 즉 댓가를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 정도 돈을 지원할 상황이었는가 등이 판단의 근거가 될텐데, 뭐 그렇다는 거다.

2011. 9. 5.

녹취록이 있으면 만사형통?

이른바 녹취록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조선일보가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녹취록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했을 경우 명예훼손이 되어 민형사상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겠다. 저 녹취록에 이름이 나오는 사람들은 반드시 해당 기자 개인에게(신문사가 아니라) 위자료를 물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녹취록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하 법무부 블로그의 내용을 요약)

녹취록은 녹취를 법정에 제출하기 위해 문서화 한 것이다. 녹취는 계약서나 각서가 없을 경우 상대방의 진술을 증거로 삼기 위해 대화내용을 녹음한 것이다. 이때 유의할 것은 반드시 본인이 대화하면서 녹음해야 한다는 것이다. 3자가 몰래 녹음할 경우에는 오히려 도청으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을 수 있고, 당근 증거로 인정받지도 못한다.

또 녹음이 되는 당시의 정황이 강압적이거나 상대방의 정신을 사납게 만들거나 한 상황이 아님이 충분히 드러나야 한다. 녹음은 소리만 들리는 것이기 때문에 조작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하면 음질이 깨끗해서 주변 정황이 충분히 저달되는 상태에서 이쪽에서는 말을 적게 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말을 많이 하게 하면서 이쪽이 원하는 진술을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여러 번 반복 진술하도록 해야 증거능력이 제대로 인정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연스럽거나 억압적이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우발적인 진술로 간주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음원을 편집한 것으로 오해 받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럴 경우 증거효력은 크게 떨어진다.

녹취는 상대방 몰래 녹음되었을 경우 상대방이 이것은 짜집기다. 내 대화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우기면 증거로 채택되지 못한다.

상대방의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경우에는 상대방이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동의하지 않는 이상 법원이 소송에서 그 내용을 증거로 채택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이 기계적인 조작 없이 당사자가 말한 그대로 녹음한 것을 속기록으로 풀어낸 것 이라는 점이 입증되고 녹음을 할 당시의 상황도 강압이나 사실관계에 대한 착오가 없는 신뢰할 수 있는 상태여야한다. (대법원. 2001. 10. 9. 선고 2001 3106 판결 참고)

즉 녹취는 녹취가 상대방과의 대화 전체를 빠짐없이 취한 것이며 음원이 조작되지 않았고, 그 대화가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대화이며, 대화 상대방을 속이거나 유도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은 몰래 녹취의 경우 상대방이 부정하면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녹취를 증거로 제출하기 위해서는 문서화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이것을 본인이 녹음을 들으면서 직접 작성하면 안 된다. 그럼 짜집기가 의심되기 떄문이다. 따라서 반드시 허가받은 업소에게 음원을 넘겨주어 녹취서를 작성하게 하며 모든 음원을 빠짐없이 문서화 했음에 대해 공증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녹취서를 음원과 함께 제출할 때 비로소 녹취록이 증거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자신있게 보도한 녹취 내용은 어떤가? 우선 이 녹취는 몰래 한 녹취이기 때문에 녹음한 음원 전체가 제출되기 전에는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 그래서 김성오씨가 이것은 내 대화를 왜곡한 고의적인 짜집기다. 인정할 수 없다.” 하면 그걸로 쫑이다. 그래서 김성오씨가 녹취록 전체 공개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녹취록을 보면 상대방의 혐의를 입증하는 내용이 상대방의 입이 아니라 본인의 입에서 계속 언급되고 있다. 즉 자연스러운 대화가 아니라 뭔가 대답을 유도하는 대화다. 게다가 전후 맥락도 생략되어 있다.

조선일보 기사에 편집해 놓은 녹취록을 살펴보자.

8월초 서울 시내 모처

박정진(가공의 인물이라고 한다. 이걸로도 큰 문제가 되지만 그렇다 치고 넘어가자)="(김성오)이 이보훈한테 들은 얘기는 그러면 다 내년인데, 내년에 어떤 스케줄이나 내용이 있어요?"(본인입으로 중요팩트를 말하고 있다. 낚으려는 거다.)

김성오="구체적인 내용은 없지. 그냥 '올해는 곤란하다. 올해는 방법이 없다'는 거야(본인이 유도한 팩트를 상대는 부정한다. 안 낚인다). 내년 정도에 천천히 하자. 그런데 그것은 둘(이보훈·양재원)이 집안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해서 했다.(중략: 이런 부분이 있으면 증거로 인정받기 매우 곤란하다) 그때 세 사람이 얘기를 한 거거든. 두 사람하고 최(최갑수) 교수."

박정진=", 빨리 차량(계약금)이나 이런 것 정리할 게 있으니 1.5(15000만원)는 양재원 형이 아파트 담보로 해서 해주고, 그 다음에 25000까지 해주고…."(이 역시 본인의 입으로 나온 말이다. 이런 식이면 나도 조선일보 사장한테 가서 나한테 빌려간 10억 빨리 갚아 그럴거다. 사장이 아니 이 자식이? 그러면 아, 그럼 2억이라도 먼저 해 줘. 이러고 녹음 딸거다.)

9월 서울 여의도 렉싱턴호텔 커피숍

김성오="12월 말 출판기념회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걸로 생각하고 있었지. (중략) (재원) 선배가 처리를 하든 어떻든 그거를 동서(이보훈)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약속이 있었다고 들었어.(이렇게 앞 뒤 뚝 끊어진 짜집기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까다로운 규정이 있는것이다)"

박정진="그러면 출판기념회 하면 한 몇 개 정도가 정리될 것 같아요?"

김성오="그거야 뭐라고 얘기할 수 없지. 나는 절반 이상 된다고 봐."

박정진= "전체 7(7억원)에서?"

김성오="7개라는 얘기는 하지 마."(이 대목 역시 상대방으로부터 7억이라는 진술을 유도했으나 실패하고 있는 대목이다.)

9월 여의도 맨하탄호텔 커피숍

박정진="양재원 선생님은 '(곽노현 측에서) 다 못들은 걸로 하고 있는 거고, 지금 8월 말까지 하기로 한 것이 있는데 왜 이행을 안 하냐'고 했다. 박 교수님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곽 교육감이) 선거비 환급받아서 혼자 선거비용 다 처리하지 않았냐. 그러면 여기는 어떻게 하라는 얘기냐.(역시 원하는 진술을 자기가 말하고 있다)"

김성오="아니. 그런 얘기가 원래 없었다니까 그러네.(또 다시 원하는 진술을 부정당하고 있다)"

(이 사이에 뭔가 이야기들이 있어야 하는데 매우 어색하다. 심지어 이 대사들이 실제 대화 순서대로 배치 되었는지도 의심스럽다.)

박정진="지금 큰 덩어리가 8월 말까지 하기로 됐던 게. 8월 말로 분명히 못 박았어요.(중요 진술을 본인이 하고 있다.)"

김성오="그러면 내년 이후로 천천히 하자는 것은 뭐야? (중략: 수상하다) 양재원·이보훈 선배가 합의한 내용을 둘이서 잘 알고 있다고. 나는 이보훈 선배한테 전해들은 거고, 그 다음에 박명기 교수는 양재원 선배한테 전해들은 것 아니야."

9월 경기대 앞 일식집

(이하의 내용은 죄다 박명기 교수의 일방적인 진술로 상대방의 진술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특히 박정진이라는 가명을 쓴 자가 채권자 중 하나라는 점에서 박명기 교수의 진술의 신빙성은 거의 없다. 또 이렇게 같은 편끼리 녹취 할 경우는 미리 대본을 짜 놓고 한 사람 얼마든지 빙신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이하의 내용은 몽땅 빤쓰가 아니라 똥이다.)

박명기="정책연대가 안 지켜지는 게 사실이고, 선거비 보전도 1차적으로는 여러 사람이 알았던 거야. 그래서 사당동에서 (5) 17~18일 만나서 그것도 각서를 남겨야 된다고 했지만 그때 안 하는 걸로 했고(거부당암), 이해학 목사하고 곽노현·최갑수 교수 셋이서 사진도 찍었고…. (곽노현 측이) 경제적 어려움이 다시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다만 지원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만 받아냄). 7억 중에 우선 급한 게 2억 정도라고 우리가 이야기했잖아(이건 일방적인 주장)."

양재원="(곽 교육감 측에서 그때: 실제 음원인가 삽입인가?) 후원금으로 우리 빚을 갚게 해주겠다는 말을 듣고 나왔어요. 실질적인 돈은 그 후원금 받는 돈에서 융통할 수 있는데…."

김상근="맨 처음에는 (경제적 지원에 대해: 음원, 혹은 임의 삽입?) 인정을 했다면서요."

박정진="금액은 인정을 했는데 시기가 달랐어요."

김상근="금액은 인정을 하고, 시기는 말을 자꾸만 바꾸고?"(중략)

양재원="최갑수 교수는 도의적인 책임은 있는데 나한테 '지들이 알아서 하지, 뭐 그까짓 걸로 나한테 연락하냐'면서 자기가 곽 교육감에게 통보를 해주겠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곽 교육감에게: 이것도 임의 삽입) 연락이 간 것으로 알고 있어요(혼자 생각이다). 최갑수 교수가 처리를 해주라고 통보를 (한 거죠). 곽노현은 모른 척하고 그 밑의 애들은 자꾸 시간 끄는 작전을 펴고 있어요."

박정진="처음에는 7개 정도로 얘기했었는데 나중에 5억 그렇게 안 하면 안 하겠다 이렇게 나와요."

박명기="(5 19일 단일화 당일) ()재원이한테서 전화가 와 '얘기가 잘 됐다. 대신 처리는 제3자가 우회적으로 하기로 했다. 다만 기간은 1년 이내에 해달라'고 하길래, 내가 '무조건 8월 말까지는 돼야 하고, 급한 건 1주일 이내에 줘야 한다'고 말해 줬다. 나중에 재원이가 다시 '인사동 모임'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안 되면 5, 되면 7, 일단 1주일 이내에 15000만원을 해주기로 했다'고 보고하더라."

◆박 교수 작성 '단일화 협상 경과와 내용'(이 부분도 역시 일방적이다. 그냥 혼자 쓰면 된다. 이런 식이면 나는 MB가 독도를 일본에 넘기려다 이재오가 반대해서 넘기지 못했다고 쓸수도 있다.)

(5 18) 10시경 곽 후보가 내 휴대폰으로 전화해 "(단일화가 안 돼 선거에 떨어지더라도) 나는 잃을 게 없지만 박 교수는 잃을 게 많지 않으냐?"는 등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기에 전화를 끊어 버림.

―다음날(19) 오후 양재원으로부터 '합의 내용은 박명기와 양재원, 저쪽에서는 곽노현과 회계책임자(이보훈)만 알기로 한다. 선거비용은 7억원을 지원받기로 하되 사정기관이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양재원이 책임지고 처리하기로 했다'전해 들음.

결국 이 녹취록에서 7억이건 5억이건 간에 돈 이야기랑 기타 그런 이야기들은 모두 박명기측에서 이야기한 것들이다. 반면 곽노현측 인사는 김성오 한 사람만 나오며, 김성오 입에서 구체적인 액수나 합의가 진술된 부분은 전혀 없다. 게다가 무수히 많은 중략과 전후맥락의 어색함 등은 이 기사가 짜집기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10쪽에 달하는 대화록에서 한쪽을 편집하면서 앞 뒤 순서를 이리저리 짜맞춘다면 피가로의 결혼대본을 가지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만들수도 있을 것이며, 플라톤의 향연을 아동 동성애 성애물로도 둔갑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녹취록 기사를 왜 낼까? 웬지 사실적으로 보이니까. 그리고 진보는 잘 쪼니까. .

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