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1의 게시물 표시

개나 소나 파시즘 타령이니 한번 따져 보자

요즘 나꼼수 때문에 좌우 진영이 모두 어지럽다. 우파진영에서는 감히 자기들을 향해 상스러운 말을 내뱉는다면서 저질방송이라고 부르며 분개하고 있다. 그런데 좌파진영에서는 나꼼수 뿐 아니라 나꼼수에 열광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서 "반지성주의" "노빠현상의 재현" "파시즘"이라는 담론이 난무하고 있다. 진중권은 "닥치고 정치"를 히틀러의 "나의 투쟁"과 비유하고 있는듯 하다. 이제 김어준은 FROM좌빨 TO파시즘 이라는 좌우 정치 스펙트럼의 양 극단을 총 망라하는 정치이념의 전체집합이 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일단의 좌파지식인들은 사회과학을 모르는 어리석은 대중들을 닭이라 부르며, 그 대중들의 열광에게 "파시즘"이라는 사회과학 용어를 붙여주었다.그런데 저 지식인들은 실제 사회과학자들은 파시즘이라는 용어의 사용을 매우 꺼린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파시즘을 정의내린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파시즘을 정의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번 살펴보자.
우선 파시즘의 기원에 대해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담론은 비합리주의, 반이성주의, 반지성주의의 일종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게오르크 루카치가 "이성의 파괴"라는 저작을 통해 반동적인 낭만주의 사상이 어떻게 파괴적인 파시즘의 단초가 되었는지 역설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관점에 따르면 근대 자본주의와 모더니즘(합리성에 기초한)적 질서의 답답함이 경제 위기 등과 맞물려 낭만적인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이성에 반감을 가지는 일단의 폭민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강한 반이성주의, 비합리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있으며, 본능과 감정의 해방을 갈구한다. 따라서 이들은감정을 움직이는 적절한 상징과 이미지 조작을 통해 쉽게 정치적으로 집단동원된다. 이것이 바로 파시즘이다. 이때 가장 잘 사용되는 상징조작의 소재는 국가나 민족이다. 그러고 보면 박정희도 국가와 민족을 어지간히 강조했다. 그러나 이 관점은 파시즘…

싱가포르: 유리병 속의 행복? 한국은 우물안 전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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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시아 여행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유럽이나 미국보다 편안하고, 또 안전하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복작대는 것이 좋은 관찰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음식문화가 발달한 것도 매력적이다. 특히 추위를 타는 나에게 따뜻한 남쪽에 있는 선진 중화권(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은 은 내가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다. 중국 본토는 웬지 정감이 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지역 여행을 다닌 한국인들 중 며칠간 입맛이 안 맞아서 거의 굶다시피 했다는 사람들을 제법 많이 보는데, 언어, 인터넷에 이어서 입맛까지도 갈라파고스가 되어서야 어쩔까 하는 걱정이 생긴다. 이 지역의 음식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음식이다. 입맛 짧은 것을 자랑하지 말고, 그 동안 진한 양념과 조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을 정화하고 볼 일이다.
그런데 아시아의 4룡의 일원인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 4룡은 두루두루 꿰고 있어야 할텐데, 홍콩, 대만은 수차례 방문했지만 싱가포르르를 한번도 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래서 강제로 가는 연수지만 그걸로 위안을 삼고 일단 싱가포르로 고고싱 했다.
일단 싱가포르에 대한 기본 정보(이하 CIA 월드팩트 참조)는 1인당 국민소득이 41000달러로 과거 이들을 지배했던 식민 종주국인 영국, 일본과 맞먹는다. 게다가 소득수준에 비해 물가도 싸다. 1인당 국민소득으로는 우리나라 두배나 되지만 물가는 겨우 10% 정도 비싼 수준이니 엄청나게 싼 편이다. 그래서 구매력환산 국민소득(PPP)으로는 62000달러에 달해서 세계 5위다. 인구 수천, 수만명 짜리 극소국가를 제외하면 노르웨이, 룩셈부르크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국가에 속한다(참고로 PPP기준 대만은 34000달러, 일본 33000달러, 우리나라는 29000달러). 각종 국가경쟁력 순위, GDP뿐 아니라 이런저런 것들을 통틀어 따져보는 삶의 질 지수에서도 항상 최상위권에 랭크된다. 예컨대 평균 기대수명은 81.9세로 세계 최 장수국 중 하나이며, 실업율은 2.2%로 완전고용을 넘어 거…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9 -교사가 되면 좋은 점(3)

탐구하고 사색하는 삶생물 분류학에서 인간을 지칭하는 학명인 호모 사피엔스는 다들 아시다시피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학명에는 인간의 본성, 본질이 생각에 있다는 의미가 다분합니다. 여기에 행복한 삶이란 자신의 본성에 맞게 사는 것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까지 연결하면 탐구하고 사색하는 삶이야말로 인간이 바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삶이 됩니다. 물론 이건 인간의 다양성을 무시한 고대 사상가들의 지나친 일반화입니다. 분명 사람에 따라서는 탐구하고 사색하는 삶이 진저리치고 지루한 삶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부가 좋은 분, 평생 공부만 할 수 있다면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베고 누워도 좋으신 분이라면 교사가 최선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차선은 되는 몇 안되는 직장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혹, 최선은 대학 교수가 아니겠느냐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한 때 그랬던 것 같기는 합니다만, 지금은 장담 드리기 어렵습니다. 사실 저도 대학교수가 되려고 하고, 또 될 뻔 하기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석연치 않은 이유로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만 두고요.제가 교수가 되려고 했던 이유는 세속의 영달 등과는 거리가 멉니다. 나는 교수가 교사보다 더 위의 직업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종류의 직업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되려고 했던 것은 쓸데 없는 행정 잡무에 시달리지 않고 순전히 교육과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 사회를 알면 알수록 그 곳은 공부에 전념하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오히려 그곳은 온갖 교묘한 술책과 정치술을 발휘해야 하는 곳이었고, 그것은 내가 가장 자신없어 하고 혐오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각종 연구소나 개발원의 연구원도 공부할 수 있는 직업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국책연구소의 경우는 정부의 요구에 따라, 민간연구소의 경우는 펀드를 대는 의뢰인의 요구에 따른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남의 요구에 따라 공부를 하게 되었다면…

혁신학교 기반 닦기 (1)

이건 제가 준비하고 있는 저서의 기본 얼개를 일단 차례차례 던저보고 반응을 보려는 것입니다. 제 논리 대로라면 여기는 제가 본격적으로 논객질 할 수 있는 홈 그라운드입니다^^서론: 혁신학교의 꿈과 우려: 어디로 가야 하나?2008년 경기도를 시작으로 2010년 전국 6개 시도에 진보교육감들이 당선되면서 교육의 일대 혁신이 시작되었다. 이 혁신은 무엇보다도 6개 시도에 들불처럼 확산되는 혁신학교를 통해 구현되기 시작되었다. 이것은 환영해야 할 일이면서 또한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사실 우리 교육이 억압과 통제의 식민지 교육, 군사 독재 교육의 잔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학생들의 성장을 돕기는커녕 이들을 편협하고 불행하게 만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어 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특히 공교육의 핵심기관인 학교부터 이런 구태를 벗어나야 한다는 학교혁신의 요구는 1980년대부터 거세게 솟구쳐왔다. 하지만 1987년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학교만큼은 민주화의 무풍지대였다. 오랫동안 학교를 지배해왔던 교육관료와 사학재벌 집단은 거대한 마피아처럼 뭉쳐서 자기들의 지배체제를 절대 양보하지 않았다. 일부 교사들은 아예 제도권 밖의 각종 대안학교를 통해서만 미약하게나마 그 꿈을 실천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제도권 학교에서는 아주 작은 혁신이라도 관철시키려면 거의 전쟁에 가까운 충돌과 갈등을 거쳐야만 했고, 심한 경에는 해직의 위험까지 감수해야 했다(전국교직원 노동조합, 2011).그런데 경기도, 서울을 필두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혁신 시도마저 강압적으로 억압하며 해직으로 위협했던 시도 교육청이 앞장서서 혁신학교를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낡은 교육의 혁신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징계했던 교육감이 앞장서서 혁신학교를 장려하기 시작한 것이다. 탄압을 각오해야 했던 교육혁신을 이제는 교육청의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박수 받아가며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경기도의 경우는 이미 2년 이상, 서울에서도 벌써 1년가량 혁신학교가 교육청의 전폭적인 지원을…

나꼼수와 함께 논객의 시대가 갔나?

모처럼 잉여시간이 남는 날이다. 나는 진모 허모 선생처럼 전업 논객이 아니라 한 편의 글을 공들여 쓸 수 없다. 그러니 잉여시간 남는 날 여러편을 우루루 쓰는 수 밖에. 그러니 꼼꼼하게 논지를 다듬고 하는 건 기대도 못한다. 오타나 안 나길 바랄뿐(그런데 많이 난다.)
요즘 나꼼수 대세론에 대해 논객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고, 그게 또 화제가 되고 있다. 사실 나는 "논객"이 대체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 논문 쓰는 사람은 아닐테고. 그렇다고 문학작품을 쓰는 사람도 아닐테고. 주장이 담긴 글을 직업적으로 쓰는 사람이라면 저널리스트, 칼럼니스트일텐데, 굳이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저 말을 쓰지 않고 "논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까닭이 뭘까? 논객들이 대체로 PD출신인 것을 보면 "우리말 사랑하기"의 민족정신의 발로도 아닐테고.
어쨌든 이 특별한 종류의 글쟁이들이 나꼼수를 까기 시작했다. 심지어 허지웅은 나꼼수에 대한 건전한 비판이 없는 현상을 개탄했다. 허지웅은 슬기롭게도 나꼼수 자체를 까는게 아니라 김어준을 다른 세사람과 분리해 내고, 김어준만 집중적으로 무책임한 선동꾼, 반지성주의자로 매도했다. 굳이 따지면 김어준을 매도한것이 아니라 유사 메시아 기질이 강한 김어준의 반지성주의적 위험을 지적하지 않은 지식인들을 매도했다. 반면 김규항은 주둥아리로만 주절대는 나꼼수따위가 뭐냐 우리끼리 낄낄거리는건 가치없다. 나가자 투쟁이다, 실천이다 라면서 어김없이 도덕적인 질타를 했다. 진중권이야 이미 널리 알려진 바 대로 나꼼수만 적당히 패는게 아니라 곽감을 검찰 이상으로 두드려 패다가 오히려 진보인사들에게 뭇매를 맞고 잠시 은퇴했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를 개탄하거나 "반지성주의"를 개탄하는 것을 보면, 이들 논객들은 자신들이 "논객"이니만큼 "논"으로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