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11의 게시물 표시

제가 민주주의 교육에 밑거름이 될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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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교육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며 두 권의 책을 내었습니다.(이하 출판사 보도자료입니다.(그림을 클릭하면 인터넷 서점으로 연결됩니다)




“민주주의의 흐름을 한눈에 보여 주는 정치교육의 필수 고전 목록을 담았다!”

이 책은 정치를 공부할 때 꼭 읽어야 하는 고전을 담고 있다. 사회교사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선정된 15편의 고전은 청소년뿐 아니라 정치 특히 민주주의에 관심 있는 시민 역시 놓치기 아까운 목록이다. 페리클레스와 공자, 마키아벨리, 홉스와 로크와 루소, 마르크스와 아렌트를 만나는 동안, 우리 정치교육이 놓치고 있는 민주주의가 무엇이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민주주의는 어느 한 사람, 한 시대의 창안물이 아니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채택된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란 많은 사상가와 정치가가 몇 천 년 동안 꿈꾸고 논쟁하는 과정에서 발전하고 변화한 결과물이다. 물론 지금도 진행형이다. 정리된 몇 개의 개념이나 간단한 요약, 짤막한 인용문을 통해 이해한 민주주의는 오해에 머물기 쉽다. 그렇다고 방대할 뿐만 아니라 어려운 고전을 다 읽기도 쉽지 않다.
이런 문제에 착안하여 현직 교사가 대표적인 정치 사상가의 저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을 발췌해서 엮었다. 교과서에서 차용한 개념의 전후 맥락이 생생하게 살아 있기에, 고전을 읽는 맛과 더불어 민주주의의 흐름을 꿰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민주주의 교육을 새롭게 시작하다 ― 현장 교사의 정치교육 노하우가 오롯이 담겨 있다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가?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개념은 무엇인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수천 년 동안 많은 사상가와 정치가들이 끊임없이 제기하고 대립하고 논쟁해 온 생각의 실타래들을 읽어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정치교육은 이렇듯 논쟁을 통해, 심지어는 투쟁을 통해 형성된 민주주의의 개념을 고정된 정답, 이미 정리된 개념으로만 가르쳐 왔다.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생각들이 어떤 사회?문화적 배경…

FTA관련 주요 외신 보도 분석

앵무새 한국 방송들과 소설가 조중동을 아무리 읽어 봐야 제대로 된 사정을 알 수 없으니 외신을 통해 한미 FTA의 득실을 따져 봅니다. 저의 기본적인 입장은 한미 FTA는 미국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으며, 또 그래야 한다입니다. 그러니 정부는 솔직하게 국제 경제 균형과 무역판의 유지를 위해 미국에게 양보할 수 밖에 없음을 밝히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위해 지혜를 모으자고 하는 것이 책임있는 자세지, 한미 FTA덕분에 대박납니다 하고 사기 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 물론 대박 날 한국인이 있기는 합니다만....(이하 기사는 해럴드 경제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먼저 월스트리트 저널입니다.
South Korea has far higher tariffs than the U.S. and, as a result, will see bigger changes in the variety and cost of goods after the trade deal takes effect. South Korea also has long had a surplus in the trade relationship with the U.S., a cushion that, over the past five years, amounted to an average of $12 billion annually. Analysts estimate that the South Korea's surplus will continue but will become smaller, chiefly because it is likely to sharply increase its imports of U.S. agricultural products.

"한국은 그 동안 미국보다 높은 관세를 부과해 왔다. 그 결과 이 협정이 효력을 발휘하면 상품의 가격이나 종류에서 미국보다 더 많은 변화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은 그 동안 미국과의 교역에서 어마어마한 흑자를 봐 왔으며(5년간  평균 120억 달러/년), 분석가…

한미 FTA는 국익의 상승 손상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다

어제 한미 FTA비준안이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시민들이 전교조 같은 진보적(?)인 교육단체에게 바라는 것은 촛불 숫자 보태주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서 무엇이 어떻게 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가르침이겠죠. 그런데 전교조는 아직까지 성명서도 논평도 한 장 나가지 못하고 있네요. 그래서 전직 전교조 부대변인인 제가 대신 합니다. 정봉주 전 의원, 김용민 전 교수... 요즘은 전직이 현직을 능가하는게 대세인가 봅니다.

(이하 논평)

11월 22일 오후, 한미 FTA 비준안이 날치기 통과되었다. 을사늑약, 한일협정 이후 외국과의 조약으로는 역대 세번째 날치기다. 그나마 앞의 두번은 일본 제국군대와 계엄령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물리적 압박이나 있었지만, 이번은 이른대 자유롭고 민주적인 대한민국 하에서는 최초의 날치기 조약이라고 할 수 있다.

기다렸다는듯이 신문과 방송에서는 앞으로 국운이 훨쩍 피어날 것이라며 축포를 날리고, 가담한 의원들은 마치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양 거들먹 거린다. 그런가 하면 거리에서는 분노한 시민들이 절규하고, 경찰은 그들을 향해 물포를 날리다. 하지만 교육자 입장에서 흥분하거나 감정적 대응하는 것은 금물이기에 나는 차분히 그 의미와 득실을 따져보기로 한다.

나는 자유무역과 개방을 지지한다는 것을 먼저 밝힌다. 민족주의자에게는 국익을 지키는 보호무역이 멋져보일지 모르겠지만, 내 눈에 보호무역은 결국 국가가 자국 자본가들의 독과점을 보장해주는 일에 불과하다. 그 피해는 국내 기업의 제품을 더 좋고 저렴한 외국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곱절의 값을 주고 구입해야 할 이 땅의 민중들이다. 따라서 나는  FTA를 하면 국익이 손상되고, 나라가 망하고 하는 등의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어찌 보면 기분나쁠 수 있지만 ISD같은 조항을 나라 팔아먹은 독소조항으로 보지 않는다. 국제사회에서 서로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이 최대한 지켜지도록 어떤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식이라면 WTO도 국제사법재판소도 다 주권 침해로 거…

젊은 교사에게 드리는 편지 11- 교사가 되면 좋은 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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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봉사 이제 교사가 되면 좋은 점 다섯번째입니다. 이 다섯번째 좋은 점은 어떻게 보면 너무 고리타분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바로 봉사하며 살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게 전혀 장점으로 여겨지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흔히 봉사라고 하는 말은 나에게 있는 좋은 것을 혹은 나의 노력과 수고를 상대방에게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곱고 훌륭한 심성을 갖지 않은 사람에게는 도리어 고역으로 여겨지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흔히 봉사라고 하면 가치있고 훌륭한 일이기는 하지만 평범한 자신과는 무관한 일, 그러니까 마더 테레사 같은 사람이나 하는 일로 치부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보통사람의 일상적인 행복과는 아주 거리가 먼 것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편협하고 그릇된 인간관에 서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병폐입니다. 이 인간관은 이미 수백년전 토마스 홉스가 설파한 바 있는 고독하고 이기적이고 타산적인 인간관, 태초에 혼자이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며 타인을 자기 이익의 추구 대상이나 잠재적인 탈취자나 적으로 여기는 그런 인간관입니다. 
이런 인간관은 흔히 개인주의니 자유주의니 하는 그럴듯한 이름을 하고서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했을 주류 경제학을 통해 우리 저변에 의외로 깊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런 이기적이고 냉혹한 인간을 도리어 쿨하다, 엣지있다 그러면서 동경하고 따스하고 동정심 많은 인간을 구리고, 위선적이라고 보는 고약한 풍토까지 퍼져있는 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타인에 대한 관심과 공동체 등에 대해 말하면 “경쟁과 이익 추구는 인간의 본성인데, 그런 이상적이고 꿈같은 소리를 한다”는 핀잔을 듣기 일쑤인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이기적인 사람은 현실적이고 실속있으며 공동체를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은 몽상적인가요? 과연 무엇이 허구이고, 무엇이 현실일까요? 고독하고 냉철한 개인인가요 아니면 타인들 속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적 존재인가요? 일찌기 홉스의 사상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루소는 개인이 자기 안전을 위해 …

교권을 지금 누가 침해하는데 학생 인권조례 탓을 하나?

요즘 학교와 관련해서 조중동이 대서특필하는 사안은 주로 둘이다.

하나는 주로 "어느어느 학교에서 학생 혹은 학부모한테 교사가 두드려 맞았다. 아 땅에 떨어진 교권이여! 학생 인권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교권이 무너져서야!" 이런 형식으로 되어 있다. 기사가 10개든 20개든 다 똑 같다.

또 하나는 편향 타령이다. 교사가 편향된 수업을 한다, 교과서가 편향되었다. 교사 고발해라, 교과서 갈아 치워라!

그런데 이 두 주장을 같이 한다는 것은 정신분열증에 걸리지 않고서야 하기 힘든 일이다. 교사의 학생에 대한 통제력은 권위에서 오는 것이지 결코 물리적인 우위,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사에 대한 권위를 스스로 뭉개고 한탄 사상검증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고서는 교권이 침해되었다니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언제든지 수업 녹음해서 빨갱이 사냥의 대상으로 만들수 있는 대상이 교사인데 누가 그 교사를 존중하겠는가?
(다음 기사 참조)

설사 저들이 원하는 대로 체벌이 허용되었다고 치자. 그럼 체벌을 받은 학생은 반성을 하는 대신 그 교사에게 앙심을 품고 그 교사의 수업을 녹음할 것이다. 그 다음 그 녹음 내용을 적절히 짜집고 편집해서 빨갱이 수업을 만든 다음 인터넷에 돌리고, 조중동에 찌르는 것이다. 혹은 그 녹취물을 빌미로 교사를 협박해서 하루에 한번씩 교사 따귀를 때려도 될지 모르겠다. 혹은 그 녹취물을 들고 학부모가 학교에 쳐들어와서 교장에게 빨갱이 짤라라 악악 거린 다음 그 교사 따귀를 때려도 될지 모르겠다.

권위는 어디에서 생기는가? 그것은 믿음에서 생긴다. 교사 개인을 믿고, 또 그 교사들의 조직을 믿고, 커뮤니티를 믿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 같은 독재국가가 아닌 다음에야 학교는 이 믿음의 바탕에서 운영된다. 학교에는 출퇴근부가 없다. 하지만 제멋대로 지각과 땡땡이를 치는 교사를 찾기란 매우 어렵다. 학교에서는 설사 형식적이라 할지라도 교사들의 각종 위원회들이 있다. 상명하복의 다른 공무원들과는 상당히 다른 조직운영 방식이 통용…

혁신학교 기반 닦기(3) 한국 교육의 구조를 이루는 낡은 교육 모형: 근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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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의 구조를 이루는 낡은 교육 모형: 근대성 혁신학교, 진보학교 지금까지 한국 공교육을 어렵게 만드는 교육 패러다임의 혼란을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혼란을 정리하면 한국의 공교육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그래서 혁신학교는 이 혼란을 정리하고 입신양명주의를 제거하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가 않다. 이런 한국적 교육 패러다임의 혼란을 정리하고 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교육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즉 한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공통으로 직면하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그런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입신양명주의가 강해 한 겹의 문제를 더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이 점을 인지하지 못하면 자칫 “혁신학교= 학교 정상화”로 오인하기 쉬우며 “혁신학교= 유럽 등 선진국 학교”라는 심각한 오해에 빠지기 쉽다. 실제 혁신학교 운동에 앞장선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일본, 유럽에서 각종 교육혁신 모델을 가져다가 무분별하게 적용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과 이명박 정부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교육 선진화”가 무엇이 다른지 애매하다. 성열관과 이순철(2011)이 혁신학교를 버전 1.0-3.0의 단계로 나눈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버전 1.0은 엄밀히 말해 혁신학교, 학교혁신이 아니다. 이것은 다만 정상적인 학교, 학교 정상화에 다름 아니다. 교사가 수업에만 전념하고 행정 잡무를 보지 않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는 엄청난 혁신이 되고, 학교장이 단지 행정가로서의 기능만을 가지고 교사들의 수업 자율권이 보장되며, 시험점수가 아니라 학습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에서는 거의 교육 혁명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모두 단지 정상적인 학교에 도달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진짜 혁신학교는 여기서부터 출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혁신학교, 교육혁신이라는 이름이 잘못되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실은 학교의 몇몇 요소를 바꾸거나 활용방식을 바꾸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

쥐왕의 몰락기

바닥소리 공장에서 책방 공연 한 판소리 쥐왕의 몰락기 입니다. 한 40여분 되는 공연인데, 이런게 정말 품위있는 저항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창하는 분의 전문성이 돋보입니다. 과연 전교조는 어떻게 저항해야 할까요? 길거리에서 악마복장 하고서 쥐잡기 퍼포먼스 하는 것은 대학생들이나 청년 유니온이 할 일이고, 그게 대세인가 보다 하면서 4,50대 교사들이 따라하는건 아니겠죠. 소리꾼은 소리로, 지식인은 해석과 분석으로......

아이들이 뛰노는 곳, 성미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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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그동안 말로만 듣던 마을 공동체였지만 송파구에서 찾아가기엔 너무 멀어서 마음만 있었는데, 마침 연구휴식년 덕에 시간이 나서 찾아 보았습니다. 이런게 진정한 연구죠?제일 관심을 끌었던 것은 마을극장과 마을책방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을극장은 마침 어린이집 끝나는 시간하고 겹쳐서 너무 붐벼들어가 보지 못했고, 그래서 마을 책방을 향해 갔습니다. 정식 명칭은 개똥이네 책놀이터입니다. 정말 아이들이 마음대로 들락 날락 하면서 책도보고 놀기도 합니다. 물론 책을 팔기도 하고, 어른들 찻집도 있습니다.이 건물 지하에는 아이들 놀이방이 있습니다. 이벤트가 있을 공간인것 같습니다. 갔을때 아이들은 다 밖으로 뛰어나가서 방이 비었습니다. 정갈하게 잘 다듬어진 방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을 주민들의 자치를 통해 가꿔지고 있다니 참 부럽습니다.아이들이 저마다의 소원 말풍선을 붙여 놓았습니다. 만화책 많이 갖다 두라는 당부가 많습니다.새로 오픈한 서점입니다. 휴머니스트, 보리 두 출판사에서 운영하기로 하고 아직까지는 두 출판사 책들이 주로 많았지만, 두 출판사만으로도 서점이 꾸려졌습니다. 휴머니스트가 이렇게 책 많이 냈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오며 가며 책을 읽습니다. 누가 책 읽으라고 잔소리 할 필요도 없습니다. 삶 가운데 책이 들어왔으니까요. 그리고 근처에는 어른들 찻집이 있고 하니 바로바로 교육이 됩니다. 누가 일부러 가르칠 필요 없이요. 박원순 시장이 말하는 마을이 학교다라는게 이런 것일까요?골목에선 아이들이 뛰어놉니다. 지금 서울의 웬만한 동네에선 사라진 풍경입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골목을 누비며 뛰어노는 풍경 말입니다. 한계도 지적되고, 넉넉한 중산층만의 전유물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아무렴 어떻습니까?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넉넉한 중산층의 공동체기에 가능하다는 한계가 있다면, 그 차이를 정부가 메워주는게 복지인 것입니다.Published with Blogger-droid v1.7.4

얘가체프와 만델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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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가체프는 다양한 느낌을 주는 화려한 커피다. 만델링은 우직하고 강한 맛의 커피다. 이렇게 둘이 모여 있으면 세상에 못할일이 없을것 같은 행복감을 준다.
발랄함과 우직함. 바로 이 양자간의 조합이 우리가 꿈꾸는 좋은 세상으로 가는 힘일 것이다. 발랄하게 경계를 넘고 우직하게 중심을 지킨다. 그런데 우리 나라 진보진영에는 예가체프를 좀 더 많이 공급해야 한다.

풋. 커피마시며 별 생각을 다 한다. 참고로 저 매장은 서교동에 있는 카페 더 쏠.Published with Blogger-droid v1.7.4

학교를 노리는 파시즘의 음험한 눈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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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진중권과 허지웅이 나꼼수를 들어 파시즘을 우려하는 한바탕의 코메디를 펼친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절반은 옳고 절반은 틀리다. 파시즘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은 옳았지만, 그 대상이 틀렸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이 좌파를 지향한 경우는 찾기 어렵고, 또 웃음을 지향한 경우는 더욱 없었다는 점에서 그들은 완전 헛다리 짚었다. 파시즘은 통상 위대한 전체를 지향하며, 항상 숭고함과 비장미를 드러내어 대중을 압도시킨다. 바로 신자유주의가 퇴조하고, 가카와 퍼런당이 동반 침몰하려는 상황에서 위기감을 넘어 비장감마저 감도는 조중동이 바로 예상되는 주역들이다.
파시즘은 물리적 폭압이 아니라 대중의 일체화된 정신을 통한 자발적인 열광과 복종을 획책한다. 폭력으로 몸은 지배하나 정신을 지배하지 못하는 것은 파시즘의 파 축에도 못낀다. 그건 그냥 전제정이다. 정신을 지배하고자 하는 파시즘은 당연히 언론과 교육을 틀어쥐려고 한다. 이 정권이 집권 초기부터 집요하게 언론을 틀어쥐고, 전교조를 탄압한 것은 이들이 적어도 좌파 지식인들보다는 파시즘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이 말기가 되면서 공포에 사로잡혀 파시즘을 갈망하더라도 불가능한 이유들이 있다. 그건 별개의 주제고)
그들은 언론을 철저히 틀어쥐는데는 성공했었다. 사실 나는 어떻게 방송사 사장 하나 바뀌자 방송국 기조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간다. 기자들은 전부 정신분열자인가? 하지만 교육은 쉽지 않았다. 간단히 말하면 전교조는 언론노조보다 훨씬 완강하고 집요했다. 물론 학교라는 공간의 특성상 데스크만 틀어잡으면 되는 언론사와 달리 통제하기가 쉽지도 않다. 아무리 교육과정을 바꾸고 교장들을 쪼아도, 교실마다 CCTV를 설치하지 않는 다음에야 교사들이 뭘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런데 최근 나꼼수는 그들이 틀어쥔 언론망 전체를 볍진으로 만들어 버렸다. 주요일간지와 방송사를 다 움켜쥐었는데, 이걸 다 긁어 모아도 해적방송 하나만큼의 위력도 안되는 지경이니 정말 한심할 …

갑갑한 회사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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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사가 지나치게 규범적이라 답답하고 일반 대기업은 보다 능력지향적이라 보다 자유롭고 유연할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휴식년 덕분에 낮시간에 회사원을 관찰할 시간이 늘어난 지금 그 생각이 완전 잘못이란것을 알게되었다.
대기업은 관공서보다 더 관료적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다. 상사가 스마트폰을 하자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침묵의 바다를 이루는 이 장면은 코믹했다. 특히 진보적일거라 여겨지는 지역 출신이 도리어 부하들에게 더 권위적이고 고압적인것을 많이 목격했다. 이런식으로 회사생활하다 늙으면 자리 양보하라고 행패부리는 노인이 될지도.
사무직 노동자의 미시사회학. 이거 흥미있을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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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언론은 학생을 선동하지 말라

최근 수업시간에 한 말 때문에 설화를 겪는 교사들이 생기는 모양이다. 아마 설익은 정치적인 발언 때문일 것이다. 나는 기계적인 중립을 경멸하고, 스스로 좌파라고 공개하는 입장이지만 수업시간을 이용하여 나의 정치적 견해를 주입하는 행위 역시 경멸한다. 왜냐하면 학생들은 나에게 반론할 수 있는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중립적인 수업조차 "우편향이 아니라는 이유로" 좌편향으로 몰리는 이 나라의 실상은 나의 균형잡힌 수업조차 편향되었다라고 딴지 걸 지경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해도 이번에 김포와 또 어딘가에서 문제가 된 국사, 윤리 교사의 발언 내용은 도가 지나쳤다. 그런데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관련교사의 처벌을 요구하는 보수언론의 대응은 더욱 도가 지나치다. 이들은 은근히 이런 녹취가 많이 나와서 좌빨 교사들을 싹 쓸어냈으면 하는 것 같은데, 이런 그들의 태도는 자칫 철없는 학생들에게 불법행위를 조장할 수 있다.
수업내용을 녹취한 다음 이것을 인터넷에 공개하는 행위는 그 내용이 뭐건간에 매우 심각한 범죄행위다. 더군다나 그 녹취가 당사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을 경우, 또 녹음자가 그 녹취에서 대화자로 등장하는 인물이 아닌 경우 더욱 명백한 불법행위다. 물론 이런 불법 녹취를 근거로 어떤 사법적인 조치도 취해질수 없으니, 만약 이걸 근거로 해당교사에게 어떤 징계가 주어질 경우 당연히 그 교사들이 행정소송 걸면 승소한다. 문제는 이 교사들의 승소=녹취공개 학생들의 처벌 이라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법은 통신보호 비밀법이다. 이 법이 생각보다 무섭다. 벌금형도 없이 바로 징역이다.

통신비밀보호법

제3조 (통신 및 대화비밀의 보호)
①누구든지 이 법과 형사소송법 또는 군사법원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우편물의
검열,전기통신의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의 제공을 하거나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녹음 또는 청취하지 못한다.

여기서, 적법한 녹취는 피녹음자의 동의를 받았거나, 혹은 피녹음자에게 녹음이 된다는 어떤 신호가 주어진 경우,…

S대 바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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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대로라면 단풍이 다 떨어졌어야 하는 11월 이지만 올해는 아직도 푸르름이 가득합니다. 원래 오늘은 콜로키움(소규모 학회)을 해야 하는 날이지만 이 샌님들이 가는 가을이 아쉽다고 나들이를 가자고 합니다. 그런데 일기예보는 토요일 비. 원래 노는 것 싫어하고 공부를 더 좋아하는 저는 잘되었다 하고 대학으로 가서 은사님도 뵙고, 일도 봤는데, 기어코 이 사람들이 한성대 입구에 모였다고 연락합니다. 성곽길 걸은 뒤 삼청동 나들이를 한다나요?도리없이 다시 먼 먼 길을 떠나 삼청동 쪽으로 가서 북악산을 걸어 올라가 숙정문 입구에서 접선합니다. 가을이 지나가는 북악산에서 내려다 보는 서울 풍경은 고즈넉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내려와서 삼청공원을 거닐었습니다. 명산들에서는 맛이 간 올 단풍, 그나마 삼청공원은 그럭저럭 봐줄만 했습니다. 어쨌든 책읽고 세미나를 하지 못해 우울해 하는 나를 제외한 다른 동학들은 모두 즐거워 합니다.전체적으로 준비된 프로그램대로 착착 진행됩니다. 한성대 입구- 간송미술관- 성곽길- 숙정문입구-삼청공원 하산 - 삼청동 보리밥집.이제 마지막 프로그램인 삼청동 보리밥집으로 의기양양하게 행진해 갑니다. 어딘지도 정확하게 좌표 찍고 갑니다. 그렇게 보리밥집 앞에 도달한 일행이 당황합니다. "자리가 없다!"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준비된 프로그램이 어긋납니다. 안타깝게도 플랜B는 준비된 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지?" 다들 멀뚱 멀뚱 얼굴만 처다봅니다. 배는 고프고, 다리는 아프고, 날은 저물어갑니다. 인파로 미어 터지는 삼청동 길에 중장년 10여명이 마치 미아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 얼굴만 쳐다 봅니다. 그 면면을 보자면 S대 교수도 한 분, S대 박사가 여섯분, 그리고 S대 박사과정생 세분.... 하지만 이렇게 모여도 가장 기본적인 문제 "어디 가서 밥먹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누가 나서지도 못하고 멍하니 서있습니다. 가히 패닉이 따로 없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오직 &q…

혁신학교 기반닦기 (2)

한국 교육 문제의 진단
먼저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물론 한국 교육의 문제점이라고 말하면 입시교육, 사교육문제 등의 이야기들이 쏟아지지만, 여기서는 이런 표면적인 현상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서는 이런 표면적 현상의 외피 안에 숨어 있는 본질적인 부분, 이런 문제를 끊임없이 재생산하게 만드는 패러다임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두 패러다임이 혼재된 잡탕 교육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운운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제가 없는 상태에 대한 상을 가져야 한다. 만약 의사에게 건강한 신체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그는 어떤 병리현상도 진단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하려면 먼저 교육에 대한 준거가 있어야 한다. 이런 준거가 있어야 잘되고 있는지, 잘 안 되고 있는지, 또 무엇이 문제인지 말함으로써 한국 교육을 진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그런데 문제는 건강한 신체의 준거와 달리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의 목적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만 모아도 책이 한권 만들어질 수 있다고까지 한다. 하지만 슐라이어마허는 이 답들 속에서 가장 근본적인 핵심을 찾아내었는데, 어떤 형태의 교육이건 간에 교육은 비대칭적인 관계(성인과 미성년자, 마스터와 제자)에서 시작되며, 교육 대상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며, 이 변화의 정도가 점점 줄어들면서 종료된다는 것이다(Boyd, ).즉 교육은 어떤 종류이건 어느 시대이건 간에 반드시 다음의 조건 하에 이루어지는 인간 행위, 그리고 그것과 관련되는 인간의 제도다.1)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있다. 아무리 진보적인 교육자라 해도 어쨌든 학생과 완전히 대등한 관계가 될 수는 없다.2) 교육의 최종 목적은 어떤 바람직한 상태에 학생이 도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바람직한 상태란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인간의 본성을 상정하고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