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29.

학생인권, 학교폭력, 그리고 교권(1) 개념 정의

학생인권조례가 요즘 화두가 되고 있다. 개학을 얼마 남기지 않은 지금 보수진영은 학생인권조례를 빌미로 총공격이라도 할 모양이다. 때 마침 학교폭력 사건이 크게 보도되면서 학생인권조례->교권침해->학교폭력 만연 이런 식의 논리를 펼칠 모양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를 펼치려면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학생인권이 정의되어야 한다. 둘째, 교권이 정의되어야 한다. 셋째, 학교폭력이 정의되어야 한다. 넷째 학교폭력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 이 네 가지를 먼저 분명히 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토론은 토론이 아니라 단지 말싸움에 불과하다.

그럼 이 애매한 것들을 한번 정해 보도록 하자.

1. 학생인권: 학생인권은 대한민국 1)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기본권과 2) 학생이라는 특별한 신분에서 비롯되는 권리로 이루어진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기본권은 신체의 자유, 의사표현의 자유, 참정, 평등, 복지 등 헌법 10조에서부터 37조까지의 모든 권리가 포함된다. 학생이라는 특별한 신분에서 비롯되는 권리는 크게 교육권(사회에서 생존과 자아실현을 위해 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과 성장권(자신의 소질과 희망에 따라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권리)이라고 하는 것이 들어간다(유엔 권리협약에 근거).그런데 이 교육권과 성장권은 떄로는 안전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어른의 의무사항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왕왕 국민으로서의 기본권과 상충하기도 한다.  바로 이걸 놓고 인권과 교권의 충돌 운운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문맥상 무엇이 우선되어야 하는지는 명약관화하다. 어른은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학생들의 적성, 소질, 희망을 묵살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학생인권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고 싶으면 본인의 졸저 "학교에서의 청소년 인권"의 1장을 참고하시기 바란다.)

2. 교권: 교권은 통칭 교사가 학교에서 교육활동을 통해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흔히 생각하는 바와 달리 교사의 권리는 헌법상에 보장된 권리다. "헌법 제 31조 ④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그런데 이 조문을 보면 교권과 학생인권이 충돌할 일은 없다.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하는 외부의 압력이 학생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권은 교원은 정부, 정치권, 학부모 등 기타 어떠한 교육외적인 부당한 압력에 대해 자주성과 전문성을 보장받는다는 것이지, 학생들의 기본권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통제하고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다음과 같은 것이 교권침해 사례다. 
교사가 자신의 전문성에 의거하여 수업을 하는데, 교장이 마음에 안든다고 수업방법을 바꾸라고 한다거나, 혹은 가르친 방법에 의거하여 평가하라고 하는데 교과부장관이 일제고사를 강요한다거나, 혹은 충분한 연구를 거쳐 만들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몇몇 이념적인 이유로 다 갈아치우거나, 특정 교과서의 선정을 거부하라고 압력을 행사하거나, 몇몇 이념집단이 자기들 뜻에 맞지 않는 교사들에게 이념딱지 붙여서 물러나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교총은 이런 교권침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결국 교권과 학생인권은 다른 차원이 이야기이며 기본적으로 상충되는 것이 아니다. 교권을 침해하는 요인들은 따로 있으며, 그것은 주로 권력과 사회의 비전문적이고 부당한 압력이다. 최근 느닷없이 빈번해진 경제학자들의 경제논리로 교육재단 및 특정 유형의 교육 강요하기가 가장 대표적인 교권침해다.


3. 학교폭력: 폭력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고의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그럴 가능성을 들어 겁을 주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학교 폭력은 이런 폭력이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말한다. 따라서 학교폭력은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혹은 교사와 교사간에 일어나는 일체의 폭력 사태들 포괄한다. 따라서 오장풍 사건처럼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행하는 물리적 타격이나 폭언도 학교폭력이며, 일진회 등의 빵셔틀 놀이도 폭력이며, 학급친구들이 어떤 약한 아이를 찍어 괴롭히는 집단괴롭힘도 폭력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학교폭력을 violence란 말이 아니라 bullying이란 말로 규정한다. violence가 폭력 일반을 말한다면 bullying은 힘의 불균형이 발생하여, 강자가 약자에게 지속적이고 습관적으로 행하는 폭력을 말한다. 따라서 학생들간의 우발적인 싸움은 여기 들어가지 않지만, 빵셔틀은 여기에 들어간다. 여기서 학교폭력을 정의하는 3요소를 뽑아낼수 있다. 1) 위해 혹은 그 가능성으로 겁주기, 2) 힘의 불균형, 3) 습관성 혹은 지속성


4. 학교폭력의 심각성: 학교폭력은 물론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학생인권조례와 연관지어 논의가 되려면 학생인권조례가 먼저 시행된 경기도에서 최근 1년 사이에 특별히 더 심각해졌는가 하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양자간에는 특별한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학교폭력을 빌미로 학생인권조례를 비난할 수 없다.


물론 학교폭력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그게 심각한 문제였던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라는 새로운 지평에 교사들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함으로써 여태까지 해결해오지 못했던 학교폭력문제에 대한 부채감을 청산하려 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단지 일반인의 통념에 불과하며, 교사가 전문직이라 불리려면 일반적인 통념, 상식에 입각해서 쉬운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이 두 그래프를 보면 실제로 학교 폭력은 2008-2010년 사이에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며 2010년에는 도리어 감소하기도 했다. 물론 학생들의 응답 신뢰도의 문제도 있어서 섵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학교폭력의 증가는 인권조례가 있기도 전에 크게 늘어난 것으로 보아, 다른 원인을 찾아야 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굳이 원인을 찾는다면 엉뚱한 인권조례가 아니라  일제고사, 교원평가, 수준별이동수업, 아린지로 대표되는 이명박 정부의 경쟁교육에 이유를 들러붙이는 쪽이 더 그럴듯 하다.

그런데 최근 학교폭력이 유난히 심각하게 화두가 되는 것은 결국 언론의 몽타쥬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10명 중 1명은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되어 왔다. 그리고 그 피해 사례 수천건 중에서 충격적인 사례들도 수십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도를 안하면 안 보일 것이고, 보도를 하면 보인다. 그리고 가장 센 놈만 골라서 집중 보도하면 우리나라 학교는 차마 다닐수 없는 무법천지로 보일 것이다. 그러니 TV나 신문에서 선정된 선정적인 보도에 휘둘리지 말고 직접 데이터를 찾아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최근에야 우리를 찾아온 새로운 강적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학교라는 곳이 있어온 이래 한번도 사라진 적이 없는 오랜 적수(?)로서 학교폭력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제 소결론을 내리자.

1) 교권과 학생인권은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며, 교권의 진정 심각한 침해는 학생이 아니라 관리자나 외부의 부당한 압력이다. 
2) 학교폭력은 심각한 문제이지만, 학생인권조례가 그 원인이거나 촉매가 될 것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학교 폭력은 인권 유린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인권조례는 학교 폭력에 대해 더 엄정하게 대처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학교 폭력 가해자에게 다만 교칙에 의해 솜방망이 대처를 하거나, 아니면 형법에 의거하여 너무 강한 대처를 해야 했던 일선 학교에서는 가해자를 타인 인권 침해자로서 합당한 조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3) 학생인권조례가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는 없으나, 적어도 교칙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학교폭력에 엄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마련해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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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5.

교총과 교과부의 근거도 명분도 없는 학생인권조례 딴지 걸기를 중단하라

1월 26일 서울시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할 예정이다. 이를 놓고 한국교총과 일부 기독교 단체에서 반발하고, 이를 근거로 교과부는 이것을 막을 모양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들의 주장을 떠들쳐 보아도 근거도 명분도 없다. 왜 그런가?

먼저 하나 확인해 보자. 신체, 양심, 사상, 집회의 자유, 그리고 차별받지 않을 평등의 권리 등은 이유가 있어야 주어지는 권리인가, 아니면 합당한 이유가 없다면 태어나면서부터 무조건 다 누리게 되는 권리인가? 당연히 답은 후자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창시절을 "한국형 민주주의"로 포장된 "독재정권"치하에서 보낸 어른들은 이런 답이 바로 나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게 답이다. 그래서 국제연합에서도 국내법에 준하는 효력을 가지는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에 대한 기본 협약"을 반포했고, 우리나라도 이 협약에 동의한 바 있고,  이 협약에 근거하여 각종 하위법을 제정, 정비하는 작업을 아직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교총간부들이나 교과부 간부들은 이 유엔의 협약을 읽어 보았는지 모르겠다. 읽어 보았으면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기실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 이 내용을 준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한국 실정에 맞게 너무 급진적인 부분을 후퇴시켜서 인권운동가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이번 서울학생인권조례다.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학생들은 합당한 이유가 없는 한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받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학생도 국민이다. 따라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모든 권리를 보장받는다. 그게 헌법의 정신이니까. 하지만 그것에 일부 제한을 가할때는 그 반대 급부로 얻을 수 있는 법익이 있어야 하며, 그것이 인권의 일부 제한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고 할때 비로소 정당화 된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학생의 기본권을 제한해온 각종 규제, 관례들은 모두 헌법 위반이니 당연히 말소되어야 한다.

따라서 한국 교총 등이 결성한 국민연대(얼마나 되는 국민일까?)가 서울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려면 대한민국 헌법은 물론 국제법으로도 보장된 학생의 기본권을 일부 제한할만한 충분히 타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가? 그 이유를 한 번 살펴보자.

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1)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과정에서 서울시의회 차원의 공청회 등 여론수렴과정이 없는 등 절차상의 비민주성

2) 학칙을 통해 교육벌(간접체벌)이 가능토록 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과 달리 일률적으로 교육벌을 금지해 상위법령과 상충된다는 점

3) 초중등교육법상 학교실정에 맞게 학교운영위원회에서 학칙에서 정할 사항을 조례로 일률적 규제하고 있다는 점
4) 의무와 권리의 부조화로 교실붕괴, 교권추락 현상 등 

이 중 1), 2), 3)은 교육적인 정당성을 두고 학생인권 제한을 요구하는 주장이 아니라 단지 절차상의 트집일 뿐이다. 그나마 쉽게 깨어질 논리들이다.

우선 1)의 경우는 공청회가 없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시의회 차원"의 공청회가 없었다고 말하면서 교묘하게 말장난을 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말장난을 하는 까닭은 공청회는 충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총에서는 그 공청회에 와서 피켓들고 깽판까지 쳐 놓고는 공청회가 없었다고 하니 뭐라 할 말이 없다. (공청회 후기)

물론 의회차원에서 입법공청회를 열면 더욱 좋겠지만, 국회에서도 입법공청회를 여는 비율은 23%에 불과하다. 공청회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입법청원을 한 주체측, 혹은 입법하려는 의원실 주최로 공청회가 열렸을 경우에는 굳이 별도의 공청회를 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역시 의원 개인입법도 아니고 정당입법도 아니며, 주민발의안이라 그 과정에서 충분히 민간 차원의 토론과 공청회가 이루어졌고, 교육청 차원에서도 이루어졌다. 그러니 이것을 근거로 비민주적이었다라고 말할수는 없다. 비민주적 절차 때문에 정 화가나거든 교총회원들은 교과부 앞에 가서 조령모개식으로 바뀌는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개편의 비민주적 절차에 대해 항의좀 하고 오라. 그리고 자기들이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나 민주적 절차 잘 지키기 바란다.

2)의 경우는 참으로 견강부회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행령이라고 하는 것이야 말로 의결절차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입법해야 하는 것인데, 소위 교육벌을 도입한 과정이 얼마나 민주적이었는지 되돌아보기 바란다. 몇몇 사람과 장관의 사견을 하루아침에 법적 효력이 있는 시행령으로 내던지는 행태는 지양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교육적 효과가 자유, 평등, 참정권과 같은 기본권에 우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시행령은 위헌의 소지마저 있다.

3)역시 허술한 논리다. 초중등교육법에서 학교운영위원회가 실정에 따라 규칙을 제정하라고 되어 있는 규정 속에서는 당연히 상위법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내에서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운영위원회가 학교실정이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교칙을 정할 수 있나? 대한민국은 헌법으로 기본권을 보장하고, 그것을 국가의 목적으로 선언한 나라다. 따라서 기본권의 보장을 구체화한 조례가 있으면 당연히 교칙도 조례를 따라야 한다.

이렇게 허술한 형식논리를 늘어놓은 다음에야 소위 교육적 이유를 들고 있는데, 그것 역시 참으로 한심스러운 내용들이다.


4)가 그것인데, 의무와 권리의 부조화라. 이게 정말 중고등학교때 사회시간에 박정희식 헌법 배운 사람들의 발상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생각이다. 국민의 권리와 국민의 의무의 기계적인 균형론. 하지만 이건 틀린 생각이다. 헌법의 목적은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국민의 의무는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공동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 지켜야 할 약속들을 제시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권리가 10이면 의무도 10, 이런 식의 논리가 성립할 수 없다.

"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권리와 자유만을 강조할 뿐 의무에 대한 규정이 유명무실합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 총 51개의 조항 중에서 학생의 책무를 규정하는 조항은 극히 미미합니다.학교도 작은 사회라는 점에서 권리와 의무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나치게 권리에만 치우쳐 개인별 권리만 주장할 경우 갈등이 유발됩니다."

이런 드립을 날리고 있는데, 대한민국 헌법에서도 제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서 10조-37조까지28개 조항이 국민의 권리이며, 국민의 의무는 달랑 38, 39조 뿐이다. 그럼 이 자들은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의 권리와 자유만 강조할 뿐 의무에 대한 규정이 너무 적습니다."이럴 사람들이 아닌가?

인권은 기본이다. 사유가 있어서 지켜지는게 아니라 사유가 없으면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이상한 이유 말고, 실제 몇몇 권리를 제약해야만 하는 의심의 여지 없는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면 지켜야 하는 것이다.

교실붕괴와 교권추락 현상 운운은 이 드립의 주옥같은 하일라이트다. 최근 5년간 교사에 대한 폭언·폭행으로 인한 학생 징계건 39%가 서울, 26%가 경기도에서 발생하여 학생인권조례와 체벌금지의 부정적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감히 권고한다. 교육학은 사회과학에 속한다. 그러니 어떤 근거를 제시할때는 제발 과학의 룰을 지켜라. 교권침해 사례의 60%가 서울, 경기에서 발생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이게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 이상이 서울, 경기에 살고 있다는 것 외에 더 보태주는 정보가 무엇인가? 게다가 최근 5년간 이런 일이 늘어난 원인이 인권조례라는 증거가 있는가?

최근 5년이면 이명박 대통령이 원인일수도 있고, 이주호 장관이 원인일수도 있다. 또 39%라는 압도적인 다수 사례는 아직 인권조례가 없던 서울에서 발생한 일이다. 그러니 대체 인권조례와 교실붕괴, 교권추락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실제로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가장 자주 충돌하는 영역은 복장, 두발, 휴대폰이다. 그리고 이 영역들은 그 규제가 교육적으로 어떤 이유가 있다고 입증된 바도 없는 영역들이다. 하등의 교육적 이유도 없이 단지 어른들이 보기 싫다는, 혹은 예전부터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학생들의 신체에 대한 제한을 가하며, 이 때문에 공연히 교사 학생간의 갈등과 불신만을 양산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이런 소모전은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만약 교장들이 알아서 민주적인 교칙들을 만들어서 학생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라고 교사들을 윽박질러대지 않았으면 없었을 일들인 것이다. 혹은 학생들이 권리를 보장받을수록 난폭해질 우려가 있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교총은 전문직 단체를 자처해 왔다. 그러니 비전문적 통념에 입각한 말장난이 아니라 과학의 언어, 즉 논문으로 말해야 한다. 학생의 권리 보장을 독립변인으로 놓고, 교실붕괴, 교권침해를 종속변인으로 놓고 그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검증하라. 여기에 몇개의 가설을 제시해 볼테니 골라잡아 보라.

가설1 학생의 인권이 보장될수록 교실붕괴, 교권추락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가설2 학생의 학업스트레스가 높아질수록 교실붕괴, 교권추락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가설3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에 비해 학교의 민주화가 지체될 경우 교실붕괴, 교권추락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교총은 가설 1에 걸었지만 나는 가설3에 걸 것이다. 물론 확증되진 않았으니 열린 질문이고, 각자 각 가설을 검증한 데이터를 가지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인권은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에 그것이 제한되어야 하는 근거가 확증되기 전에는 무조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인권조례를 반박할만한 어떤 교육적 근거도 과학적 증거를 통해 입증하지 못한 교총은 여기에 반대할 자격이 없다.

그 밖에 교총이 내건 사유는 더욱 기가막히다.

5) '임신, 출산, 성적지향 등에 의해 차별받지 않을 권리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어떤 사회와 합의를 해야 하나? 소수 기독교 광신도들? 임신, 출산, 성적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 임신, 동성애를 조장하는 것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자들? 이 사람들 혹시 종교때문에 차별하지 않는다 그러면 미신을 조장한다면서 달려들 기세가 아닐까? 사람은 살아가다 보면 혈기에 그만 임신할수도 있다. 심지어 성폭행에 의해 임신할 수도 있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그럼 그 순간 다른 학생들과 다른 존재가 되어 핍박과 설움과 격리를 감수하란 말인가?
그리고 나는 동성애자라 하더라도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다른 사람과 똑같이 대해주려고 한다. 그럼 나는 동성애자인가? 아니면 너는 동성애자니까 안돼, 이러면서 차별하란 말인가? 그게 정당화 된다면 너는 기독교 광신도니까 안돼, 이런 차별도 감수해야 한다.

6) 학교의 정치장화를 초래할 ‘집회의 자유’

이 사람들 아직도 집회 그러면 데모질, 폭력, 이런거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정치란 말에 대해서도 엄청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목표가 민주시민양성이다. "민주시민". 얼마나 정치적인가? 우리 교육 목표 자체가 정치적이다. 그런데 학교의 정치장화를 초래한다고 문제라고? 오, 물론 학교는 정치장이 되어야 한다. 학교는 민주주의의 연습장이 되어야 하며, 그 민주주의에서 집회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학교에서 집회의 자유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이게 설마 학교에서 특정 정당 지지하는 집회하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긴 자기들이 한나라당에 몇백만원씩 바치는 교장들의 집단이니 그리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학생들의 교내집회라 해 봐야 "급식 반찬 개선하라" 수준에서 시작할 것이다. 소위 "정치적"인 집회는 손님을 모으지 못해서 어차피 성사되기가 어려울 것이다. 만약 중고등학생들의 정치적인 집회에 학생들이 모여든다면, 그건 정부가 잘못한 탓일거고. 게다가 학교에서부터 집회를 배워나가야 나중에 어른 되어서 보수 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불법폭력집회 안할거 아닌가? 그러니 솔직히 말하라. 학교의 정치장화가 싫은게 아니라 학교의 민주화가 싫은 것 아닌가? 교장이 까라면 까던 시절이 그리운 것 아닌가? 학생들이 단체로 항의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것 자체가 싫은 것 아닌가?

그러니 한국교총과 소위 보수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반대하는 솔직한 이유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1) 우리는 학생들의 신체와 소유물에 대한 통제권을 원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신체에 고통을 가하고, 우리가 원하는 스타일과 모양을 강요할 것이다.
2) 우리는 학생들의 신체와 소유물에 대해 반박의 여지가 없는 명령권을 원한다. 우리는 명령할 뿐 듣지 않을 것이다.
3) 우리는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권리를 주장하는 상황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4) 우리는 우리 기준에 맞지 않는 학생들을 다른 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라는 의미에서 차별하고, 따돌리기를 원한다.

한 마디로 우리는 학교에서 독재자가 되기를 원한다.

 이하, 참고로 학생인권조례의 필요성을 가장 잘 설명한 이재익님의 글을  링크 걸어 둔다. 학생인권조례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채 덮어놓고 흥분해서 반대했던 사람들은 이걸 읽고 깊이 반성하기 바란다. (이재익님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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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4.

혁신학교 바탕세우기 (5)

한 동안 너무 정치적인 글만 써서 제 본래의 자리를 이탈했던 것 같습니다. 곽감 판결문 분석도 길어지고 하니 우선 원래 해야 했던 교육학 연구를 다시 재개합니다.

낡은 교육의 철학적 바탕으로서 의식철학에 대한 비판까지 썼던 것 같습니다.(앞의 편 보기)


의식철학이 낡은 교육에 미친 영향

이러한 의식철학은 근대 교육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도 행함”, 그리고 머리를 통한 공부신체를 통한 공부를 분리시키는 이원론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결정적이다. “이란 철저히 머리, 즉 이성의 작용이며, “행함이란 다만 이 머리의 명령을 신체가 수행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 된 것이다
이런 식의 2원론의 깊은 뿌리는 소위 주지과목으로 불리는 국영수사과를 한 그룹으로 치면서 실업, 체육, 예술과목들과 구별하는 관행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학부모와 학생들은 전자의 5개 과목은 공부라고 생각하고 후자의 과목들은 일종의 장식으로 생각한다. 이때 전자의 5개 과목을 공부라고 특별히 생각하는 이유는 그 과목들이 실제로 그만큼 더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주로 머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만약 음악, 미술, 체육이 탁월한데 이 5개 과목에서 성적이 부진한 학생을 학습부진아로 규정하여 나머지 공부를 시킨다면 큰 저항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다섯과목에서 탁월한 학생들 중 일부를 체육을 못한다 해서 학습부진아로 규정한다면 아마 엄청난 항의전화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물론 교육행정가나 교사들 중 그런 학생을 학습부진아라고 여기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이 다섯 과목도 어느 정도의 행함이 요구되는 사회나 과학이 순전 머리로만 하게 되는 국영수보다 무시당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또 어느 정도 정서나 감정이 개입되는 국어보다 순전 이성적인 추론만을 사용하는 수학이 더 중요하고 차원 높은 교과로 대접받는 현상도 자연스레 나타날 수 있다. 심지어 진보적인 한국의 교육운동가들이나 프랑스 공립학교가 철학교육을 강조하는 것도, 한국 학교에서 수학이 교과의 왕으로 등극한 현상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는 모두 의식철학에 기반한 2원론과 신체 경시의 결과인 것이다.

또한 의식철학은 학교에서 수업이 이루어지는 방식, 학생들을 배치하는 방식, 학습이 이루어지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우선 공부는 기본적으로 머리가 하는 것이며 감각, 감정, 신체 활동은 머리가 하는 공부를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자기 역할을 받는다. 이는 체육시간이나 몇몇 허용된 시간을 제외하면 수업시간 중 학생들의 신체활동이 철저히 규제받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오늘날까지도 대부분의 수업은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서 하고 있다. 의자라는 곳은 학생들의 신체를 완전히 접어넣는 수납고의 역할을 한다. 책상은 머리가 한 공부를 기록하는 손 외에는 어떤 신체 활동도 허용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형틀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아직까지도 학생들이 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은 교사의 지시에 따라 신체를 가지런히 하는 방법이다. 일명 앞으로 나란히부터 배우는 것이다. 이렇게 운동장이나 체육관에서 신체에 대한 훈육이 마쳐지면 교실에 들어가서 자리를 배치 받는다. 왼족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학생들의 신체는 교사를 향해 집중되게끔 가지런히 배치된다. 아직까지도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수업 중에 이렇게 가지런하게 정돈된 위치에서 이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가지런히 정렬된 상태에서 학생들은 공부를 한다. 그리고 이 공부란 오른쪽 사진과 같이 머리와 손만 자유로운체 나머지 모든 신체가 구속된 상태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상태에 대해 성장기 아동·청소년의 정서와 신체가 지나치게 편협해질 수 있다고 인권적 차원에서 문제제기 할 수는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장 자크 루소다. 루소는 이른바 이성적으로 기획되고 구성된 교육내용, 교육제도가 아동의 자연스러운 성정을 억압한다면서 강하게 반발하였다. 그래서 아동의 신체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성장하도록 하는 대안적인 교육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그 역시 인식론적 측면에서 의식철학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그가 주장한 자연스러운 신체와 정서의 발달이 공부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다만 보충적인 대안에 머무르고 말았으며, 근대 학교는 이런 문제제기를 능동적으로 수용해 왔다. 그것이 바로 공부하는 과목과 구별되는 예능과목, 실과 과목들이다. 공부는 여전히 머리로 즉 이성으로 하는 것이며, 다만 그 과정에서 쇠약해지기 쉬운 신체와 감성을 가꿀 별도의 활동이 추가되는 것에 그친 것이다. 심지어 2011년 서울형 혁신학교에서도 이른바 문예체 교육을 이런 식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이 신체와 감성을 육성하는 교육활동조차 불순하다. 이 활동들이 미셸 푸코는 양순한 신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 부르며 강하게 비판했던 활동을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양순한 신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제식훈련같이 노골적인 신체 훈련은 아니다. 다만 좋은, 올바른, 그리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담론을 통해 학생들은 특정한 유형의 신체가 되도록 통제될 뿐이다. 그리하여 신체는 완전히 길들여져서 그 사회에서 권력이 이성적이고 합당한 것이라고 규정한 방식대로 움직이게 된다. 그 의식이 아무리 저항적이고 반항적일지라도 이미 신체가 포획된 이상 체제에는 어떤 위협도 되지 않는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피에르 부르디외는 근대 교육이 특정한 계급의 신체를 미화하고 모범으로 만들어 그런 신체와 행동양식을 갖추지 못한 계급을 문화적으로 복종시키는 장치로서 공교육과정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환원론적 방법
 
환원론적 방법의 특징
 
우리가 만약 절대적 진리관과 근대 의식철학의 전제들을 수용한다면 연스럽게 이성적인 추론 과정을 따르는 절대적인 지식획득의 방법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즉 공부는 이성의 작용이며, 그 대상은 불변의 외부세계이기 때문에 외부세계를 이성이 취급할 수 있도록 조작할 수 있다면 우리는 절대적인 지식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식의 획득을 보장하는 일련의 절차가 바로 방법론이다
근대의 지식관은 한 마디로 누가 인식하건 간에 올바른 방법론의 절차를 따른다면 보편적인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명제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러한 방법론을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부른다. 어떤 지식의 확실성의 문제가 그 지식을 획득하고 검증하는 절차에 의해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물론 이 순서를 거꾸로 불러서 근대 의식철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정당화하는 과정에서 구축되었다고 할 수도 있다. 실제로 존 로크는 자신을 뉴턴이 가는 길을 청소해주는 사람이라고 부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 과학적 방법론의 특징은 과연 무엇일까? 그 핵심은 한 마디로 환원주의라고 할 수 있다. 환원주의는 복잡한 현실세계, 실제 세계를 비교적 쉽게 조작하고 검증할 수 있는 단순한 사실과 원리로 잘게 자른 다음(환원), 이렇게 환원된 사실과 원리를 엄격하게 통제된 조건 아래의 실험을 통해 검증한 뒤 이를 다시 재조합하여 현실을 설명하는 모델을 수립하는 방법이다. 즉 인식의 대상을 이성이 조작하기 쉬운 단순한 단위로 잘게 잘라서 하나하나 검증한 뒤, 검증된 것들을 재조합하여 원래의 인식 대상을 추론하는 것이다.

이 방법론은 두 가지 전제 조건을 가지고 있다. 우선 지식을 생성하는 주체가 세계를 작은 부분들로 자르고(분석), 검증하고 재조합(추론)하는 의식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의식은 분석하고 추론하는 이성일 수밖에 없다. 둘째, 의식 외의 것들은 모두 주체 외부의 세계이며 이 세계는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단지 사물이며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지 사물이기 때문에 잘게 잘랐다 하더라도 그 대상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잘게 잘라 검증한 뒤 다시 재조합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인식의 주체인 인간의 의식이 인식의 대상인 세계를 마음껏 잘게 잘랐다 붙였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식을 획득하고 생산하는 과정은 총체적인 과정이 아니라 잘게 잘라진 대상들을 취급하는 고도로 정밀한 분업의 과정이 된다. 따라서 지식은 깊은 통찰력을 가진 철학자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잘게 자른 뒤, 그 잘라진 한 부분 부분을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로 연구하는 분과학문의 전문가, 즉 과학자가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과학(science)의 어원이 자르다(scindere)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환원주의적 관점은 근대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사회의 모든 영역이 이런 환원주의적 접근에 의해 과학적으로 관리되게 된 것이다. 물론 이때 과학적이란 의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얻기 위해 일체의 관례와 통념에 맞서 싸운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공식화된 과학적 방법을 적용한다는 의미다. 즉 과학화 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잘게 잘게 잘려졌다는 의미다. 그리고 잘게 잘리었다는 의미는 전체의 가치가 무시된다는 뜻이며, “부분또한 전체와 맺고 있는 연관을 무시당한다는 뜻이다.
또한 미셸 푸코에 따르면 이것은 근대적 권력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잘게 잘라서 인식하는 것이 지식형성의 과정이라면 이 자름의 기준의 문제가 생긴다. 어떻게 자를 것인가? 그리고 이 자름의 기준을 규정할 수 있는 힘이 바로 권력이 된다. 현실은 이제 어떻게 자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종류의 지식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환원론적 방법이 낡은 교육에 미친 영향
 
근대적인 환원론이 교육에 미친 영향을 누구보다 잘 보여준 학자는 미셸 푸코다. 푸코에 따르면 근대적인 권력은 먼저 잘게 잘라 인식할 대상과 그럴 필요가 없는 대상을 자르는 것에서부터 자름을 시작한다. 이때 잘게 잘라 인식할 대상은 정상적(normal)인 존재이며 그렇지 않은 대상은 비정상적이거나 병리적이다. 잘게 잘라 인식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대상을 잘게 잘랐을 때 그 부분들이 각각 미리 설정된 범주들로 환원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니 결국 권력이 미리 설정해둔 범주로 환원되지 않은 요소들이나 아니면 아예 그런 범주에 따라 잘라지지 않는 존재는 병들고 비정상적인 존재이며, 사실상 존재가 아니다. 존재가 아닌 것들은 격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정신병원과 감옥의 탄생이다.
그런데 이런 병리적이고 비정상적인 존재를 가려내려면 세밀한 자료와 이 자료의 프로파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각각의 개인으로부터 세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 자료를 프로파일로 작성하는 곳이 바로 학교다. 즉 학교는 개인들이 지식을 학습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에 대한 지식을 권력에게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곳에 더 가깝다
이른바 공부라는 과정은 세밀하게 나누어진 활동들로 되어 있으며, 교사들은 이 활동들을 통해 개인들에 대한 세밀하게 분류된 특성 목록을 작성할 수 있다. 이는 세밀한 과목과 영역, 단원으로 나누어진 문항들이 출제되는 시험을 통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들은 교사에 의해 이른바 생활기록부라고 불리는 세밀하고 체계적인 양식의 문서를 통해 프로파일링 된다. 생활기록부에는 한 학생의 특성을 여러 세밀하고 체계적인 범주로 나눈 뒤 거기에 따라 기술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생활기록부는 이후 이 학생을 입학시키고자 하는 상급학교 관리자, 혹은 채용하고자 하는 기업주가 열람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작 학생 본인은 이 생활기록부를 원칙적으로 절대 열람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그러니 학교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라기 보다는 학생들에 대한 지식을 수집하는 곳이라는 역설이 퍽 잘 들어맞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학교에서 학생들은 무엇을 배우는가? 매우 세밀하게 나누어진 지식을 배운다. 이건 당연한 귀결이다. 교육되어야 할 지식들이 이렇게 환원주의적으로 얻어진 지식이니만큼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환원주의적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교사 역시 교육에 대한 지식이나 방법을 환원주의적으로 배운 사람들이다. 교육활동이 총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른바 실습기간은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교육학을 세부 분야와 항목들로 나눈 뒤 마치 각 분야와 항목들이 별개의 것들인양 세밀하게 공부하고, 그런 종류의 시험을 거쳐 교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낡은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학교에서 모든 교육은 환원주의적이다. 교육의 과정, 앎의 과정은 그 과정 전체가 하나로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나뉘어진 일련의 단순한 과정들의 합으로 간주된다. 교육은 이렇게 세밀하게 나누어진 일련의 단순한 정보획득이나 행동방식 체득의 과정들을 차례차례 익히면서 습득해 가는 과정들로 간주된다
이것들을 합치는 방법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이렇게 나누어진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익혀나가면 이것들이 단순히 누적될 것이지만, 환원주의에 따르면 이런 단순히 누적되는 것만으로도 전체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학생들은 세밀하게 나누어진 온갖 잡다한 지식과 정보를 학교에서 배운다. 그리고 이런 잡다한 것들의 단순한 합이 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근대의 학교는 매우 역설적이다.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부모들은 자녀의 성공을 바라며, 자녀가 잘 자라기를 바란다. 하지만 학교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성장과 성공에 꼭 필요한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로부터 철저히 차단당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교사들의 수중에 넘어가서 관리된다
그 대신 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세밀하게 나누어진 온갖 세밀한 지식과 정보의 조각들이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정보와 지식에는 철저하게 접근이 차단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제도적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심리 구조에까지 뿌리박혀 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바라보아야 하거나 알아야 하는 순간을 기피한다. 그리고 잘게 나뉘어진 지식과 정보의 조각이 주어지지 않으면 공부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오히려 불안해한다. 이것이 바로 근대의 학교이며, 아직까지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낡은 교육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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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23.

곽노현 판결문 분석(1) 곽노현은 상대후보를 매수하지 않았다



검찰의 주장은 이렇다.

당선되기 위해 단일화가 절실했던 곽노현은 측근들에게 박명기의 사퇴 댓가로 7억을 제시하였고, 협상이 우여곡절끝에 5월 19일 당선되면 7억, 낙선되면 5억으로 타결되었다. 곽노현은 이 사실을 보고받고 승인하였으며 단일화 하여 교육감이 되었다. 그러나 이 합의 이행을 하지 않고 박명기를 따돌리려 하다가 박명기가 기자회견을 열어 폭로한다고 협박하자 할수 없이 먼저 2억을 강경선을 통해 지급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알고 있고, 조중동은 아직도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조국 교수와 그의 귀여운 제자인 송아무개씨 역시 이런 정황을 매우 쉽게 추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진중권도 아직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상대 후보를 매수한 곽노현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이것과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즉 검찰의 저 주장은 날조 그 자체다.


판결문에 나오는 진실은 이렇다

판결문을 보면 법정은 검찰이 제출한 모든 증거자료를 거부하고 있으며, 검찰측 증인인 김A는 사실상 거짓 증언을 반복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즉 검찰은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으며, 위에 제시한 후보매수 스토리는 그야말로 검찰이 쓴 소설에 불과하다. 심지어 판사는 검찰이 상황을 먼저 설정해 두고 자료를 거기에 끼워맞추고 있다고까지 혹평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판사가 작성한 190쪽의 판결문에 철저한 검증을 통해 재구성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0년 51813시 양 캠프 회동(달개비 식당)

양측 캠프가 회동한다. 곽노현 측에선 본인과 그의 선거특보인 김**, 선대본부장인 최**, 박명기측에선 본인과 선거본부장인 양**이 나와서 회동하였다.  여기서 곽노현은 박명기에게 후보 사퇴를 요구하며, 차기 불출마 및 차기 후보 양보, 교대총장 선거시 지지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박명기는 이 조건을 거부하였다. 박명기는 구체적인 조건을 제시하지 않고 오히려 명예직에 불과한 정책자문위원장을 언급하였고, 곽노현은 충분한 자격이 있지요 등의 덕담으로 화답하였다. 이후 구체적인 협상은 실무진에게 위임하기로 하고 후보들은 자리를 떴다.
 
518일 실무진 협의(마젤토프)

곽노현 측의 김**, **, **과 박명기 측의 양**이 단일화 조건을 협의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박명기와 그의 제자인 김A(이 문제의 인물)가 도착했다. 이때부터 박측에서(박명기인지 김A인지는 명확치 않음) 7억 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누가 요구한 것인지는 명확치 않으나 당시 곽노현측 실무자들은 김A를 내쫓으라고 말했다고 할 정도니 누구가 돈 얘기를 끌고 들어왔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김A는 금전지급각서까지 요구하여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중에 곽노현도 이 자리에 도착하였는데, 도착하자마자 나가버리려는 것을 달래서 일단 보도용 사진만 촬영한뒤 자리를 떴다.
 
이후 전화로 곽노현은 금전을 조건으로 한 협상의 거부를 김**에게 지시하였는데, 김**은 박명기 캠프가 사실상 좌초 직전이니 굳이 신경쓸 필요 없이, 그냥 기다리고 있으면 스스로 사퇴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곽노현은 더 이상 단일화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고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519일 오전 박명기의 부탁을 받은 유**이 곽노현에게 박명기에게 35천 정도 도와 줄수 없는지 타진하였으나, 김**의 조언에 따라 곽노현은 이를 거절한 뒤 10억 요구하다 하루만에 3억까지 떨어진 것을 보면 사정이 정말 어려운 모양이라고 판단하고 김**의 진단이 정확하다고 판단함.
 
이에 박명기는 단일화를 포기하고 선거운동에 돌입하려고 하였으나 정작 선거본부장인 양**이 화를 내며 협조를 거부하며 단일화를 종용하여 선거운동이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고 판단. 이에 양**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단일화 협상의 마무리를 부탁함
 
519일 오후 이른바 합의

**은 곽노현측의 이**(처음 등장)를 불러내어 얼렁뚱땅이라도 금전지급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고, **에게 보증을 서 달라고 했다. 그러나 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계획도 없었으며, 다만 15천을 양**이 먼저 마련해서 박명기에게 주기로 하고 그 다음 일에 대해서는 차차 진행하기로 하였다. 양**은 이**에게 곽노현이 당선하면 7, 낙선하면 5억이라고 일방적으로 의사전달하였으나, **은 대꾸하지 않았고,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듯했지만, 일단 양**는 이걸 합의라고 생각하고 박명기에게 당선하면 7, 낙선하면 5억이라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과 최**은 이 협상 자체를 곽노현은 물론 김**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양**도 이들이 곽노현에게 알리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들이 돈만 마련해 오면 되는 것이기에 굳이 곽노현에게 알려서 판을 다시 깰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5월 20일 박명기 후보 사퇴
 
이 소식을 들은 곽노현은 캠프 사정이 안 좋은 박명기가 10억 요구하다 안되니까 3, 그것도 안되니까 결국 백기투항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에 박명기를 위로하고, 만약 어려워지면 모든 진보진영의 도움이 있을 것이라고 달래었다. 그리고 곽노현이 당선되었다.

7-10

법원의 판단에 따르면 이 기간동안 곽노현의 행동은 도저히 후보매수라는 약점잡힐 일을 한 사람의 상식적인 행동이 아니다. 따라서 합의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해야 이해가 된다.

**는 우선 자기 돈으로 박명기에게 돈을 주려고 하였으나 15천을 마련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에 같이 약속한 이**, **에게 도움을 청했으나 외면당하고 말았다. 결국 양**은 박명기와 연락을 끊어버리고 잠적해 버렸다. 김A는 곽노현이 합의사실을 알 것으로 기대하고 각종 수익사업 특혜를 요구했으나 도리어 내쫓기다시피하게 되자 격앙되었다. 박명기 역시 몇 차례 곽노현에게 합의 이행을 촉구했으나, 곽노현은 도리어 무슨 약속을 말하는 것이냐며 화를 내어 둘 간에 언쟁이 벌어졌다. 후보를 매수한 자가 자기 멱살을 잡고 있는 매도자를 이렇게 위험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일이며, 따라서 곽노현은 합의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판사는 판단한다.
 
10월-11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곽노현이 측근들에게 상황 조사를 의뢰하고, 10월 중순 경 519일의 합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에 크게 격분하였으나 그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증거는 합의사실 알게 된 다음에도 박명기가 합의이행을 요구할때 그 합의는 자신과 무관하니 이행할수 없다고 강력하게 거부하였음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에 김A는 격분하여 폭로를 하겠다면서 폭로문건을 작성하여 곽노현 측근들에게 들이밀고 협박하지만 도리어 그 문건 내용이 터무니 없고 과장되어 있다면서 면박만 당한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유력한 교육인사인 박명기와의 상황을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다고 판단한 곽노현은 선거와 전혀 무관한 인물이었던 강경선에게 박명기와의 화해를 부탁하였고, 아울러 박명기의 상황이 얼마나 어렵길래 저런 무리한 행동을 하는지 알아볼 것을 부탁했다.
 
11월-12월
강경선은 박명기에게 곽노현이 519일의 합의에 대해 아무 관련이 없으며, 따라서 이행해야할 이해가 없음을 이해시켰다. 둘간의 대화는 만약 딱한 사정이 있으면 도와줄수는 있지만 합의를 이행해라 따위의 말은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에 동의하면서 마무리 되었다. 이후 박명기는 합의이행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다. 박명기가 합의이행을 요구하지 않으면서 곽노현과 박명기의 우호관계도 회복되었다.

그러나 서울교대 총장선거 실패로 선거빚이 누적된 박명기의 상황은 이때부터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강경선은 그 상황을 매우 어렵고 위급하다고 판단하였다. 상황을 물어보는 강경선에게 박명기는 3억 이상의 재정곤란을 호소하였지만 강경선은 곽노현에게 금전 2억을 지원할 것을 제안하였다. 곽노현은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강경선이 재차 설득하자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이후 이들은 순차적으로 금원을 마련하여 총 2억을 박명기에게 전달하였다.  이후에도 박명기가 재차 추가의 금원을 요구하였으나 더 이상 응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확인된 사실은 딱 두가지다.

1.곽노현은 박명기와의 금전합의와 무관하다. 즉 매수하지 않았다.


2.곽노현은 박명기에게 합의를 이행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돈을 지원하지 않았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이 두 가지 불변의 사실을 인정하였다. 따라서 곽노현을 후보 매수범 따위로 부르는 것은 명백한 사실 호도이며, 심지어 명예훼손이다. 설사 유죄라고 했다 해도 이는 선의로 행한 일이라도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라는 의미이지 결코 고의적인 범법자라는 뜻이 아니다. 이건 주관적인 판단이 아니라 판결문의 취지다.

문제는 이 판결문이 사실관계를 이렇게 완벽에 가깝게 재구성하는데 성공하고서도, 즉 진실을 다 밝히고서도 정작 엉뚱한 양형을 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건 좀 더 읽어 보고 쓰겠다.(무슨 판결문이 책 한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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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위원장께 이 노래를 바칩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님께 바치고 싶은 노래, 영국의 "세계적인 명품 밴드!" Pulp의 명곡 "Common people"
가사는 아래에 있으니 아마 이 정도 영어 잘 번역해서 보실듯.


video






She came from Greece, she had a thirst for knowledge
She studied sculpture at Saint Martin's College
That's where I caught her eye
She told me that her Dad was loaded
I said "In that case I'll have rum and coca-cola
She said "fine" 
And then in 30 seconds time she said
"I want to live like common people
I want to do whatever common people do
I want to sleep with common people
I want to sleep with common people like you"
Well what else could I do?
I said "I'll see what I can do"
I took her to a supermarket
I don't know why 
but I had to start it somewhere
so it started there
I said "pretend you've got no money"
but she just laughed 
and said "oh you're so funny"
I said "Yeah
Well I can't see anyone else smiling in here
Are you sure
you want to live like common people
you want to see whatever common people see
you want to sleep with common people
you want to sleep with common people like me?"
But she didn't understand
she just smiled and held my hand
Rent a flat above a shop
Cut your hair and get a job
Smoke some fags and play some pool
Pretend you never went to school
But still you'll never get it right
'cos when you're laid in bed at night
watching roaches climb the wall
if you called your dad he could stop it all
yeah
You'll never live like common people
You'll never do whatever common people do
You'll never fail like common people
You'll never watch your life slide out of view
and then dance and drink and screw
because there's nothing else to do
Sing along with the common people
Sing along and it might just get you through
Laugh along with the common people
Laugh along although they're laughing at you
and the stupid things that you do
because you think that poor is cool
Like a dog lying in a corner
they will bite you and never warn you
Look out
they'll tear your insides out
'cos everybody hates a tourist
especially one who thinks 
it's all such a laugh
yeah and the chip stain's grease
will come out in the bath
You will never understand
how it feels to live your life
with no meaning or control
and with nowhere left to go
You are amazed that they exist
and they burn so bright
whilst you can only wonder why
Rent a flat above a shop
Cut your hair and get a job
Smoke some fags and play some pool
Pretend you never went to school
But still you'll never get it right
'cause when you're laid in bed at night
watching roaches climb the wall
if you called your dad he could stop it all
yeah
You'll never live like common people
You'll never do whatever common people do
You'll never fail like common people
You'll never watch your life slide out of view
and then dance and drink and screw
'because there's nothing else to do
I want to live with common people like you..... 

2012. 1. 21.

곽노현 석방의 화성인 판결을 지구인 언어로 번역하면..


곽노현 교육감의 벌금형과 석방에 대해 말들이 많다. 특히 후보매수죄로 기소되었는데 어떻게 매수한 측이 벌금형이고 매수된 측이 징역형이냐 하면서 화성인 판결이라면서 펄펄뛰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말이 안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건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고 이례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김형두 판사는 이 비상식적인 사건의 사실관계를 거의 그대로 밝혀내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이 이슈가 필경 명절 밥상머리 화제가 될 것이기에 이렇게 정리해 본다. 이것도 일종의 사회수업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다음의 그림을 보자. 이게 검찰 공소장의 내용이며, 일반인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상식적인 상황이다. 

1. 곽감이 박교수의 사퇴 딜을 지시했고,
2. 그결과 5억으로 합의를 봤다.
3. 이후 합의 이행을 미루고 있었더니 박교수측이 와서 깽판을 쳐서
4. 결국 다시 달래고 달래 2억을 주었다.

이렇게 되면 곽감은 중형을 면치 못한다. 박교수도 중형을 받겠지만 곽감보다는 가볍다. 하지만 그러자면 검찰은 5억 합의과정을 곽감이 지시했거나, 나중에 보고받아서 승인했음을 증거로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 제출한 증거자료 중 인정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 녹취록 무효, 조서는 조작, 그리고 이를 입증할 증인도 없음. 한 마디로 검찰은 아무것도 내어 놓은 것이 없다. 대체 구속은 왜 시켰던 것인가?

다음 그림은 곽감측 변호인의 주장이다.

이건 정리하면
1. 곽감은 돈얘기가 나오자 협상을 깼다.
2. 박측근인 양**이 동서인 곽감측의 이**과 최++를 불러다가 5억 이야기를 했는데, 술자리에 심야라 이, 최는 전혀 진지하게 듣지 않았고 보고도 하지 않았지만, 양++은 이걸 진지하게 보고했고, 박교수가 사퇴했다.
3. 박교수측이 댓가를 요구하지만 곽감은 뭔소린지 전혀 모르며 같이 성을 낸다.
4. 곽감은 나중에 참모들간의 이야기를 알게되고, 박교수는 곽감이 전혀 보고받지 않았음을 알게된다. 그 결과 곽감은 박교수에게 미안한 마음과 동정심을 갖게 된다.
5. 박교수의 상황이 매우 위급하다는 강경선의 조언에 따라 돈을 모아서 전달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사실상 곽감은 무죄다. 사퇴의 댓가를 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사의판단은 좀 다르다. 흥미로운것은 판사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리에 대해서는 곽감측의 주장을 거의 다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즉 판사는 이 주장의 1-5까지를 모두 인정했다. 다만...


제일 마지막 한 칸이 다르다. 곽감은 박교수의 상황이 매우 어려워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지만 실상 그렇게까지는 어렵지 않았다는 것이 판사의 판단이다. 이건 박교수가 재판중에 명예를 회복하겠다면서 자승자박한 결과다. 곽감이 "박교수가 자살을 생각할 정도이며, 사채쟁이한테 쫓겨다니고 있다고 한다"라고 전해들었음은 명백하다.  문제는 박교수가 정말 그 정도 절박함에 처해 있었나? 어럽쇼, 본인이 스스로 아니라고 한다. 내가 무슨 돈도 안되는게 무모하게 선거 나가서 패가망신 당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이건 명예훼손이라고 한다.

그럼 당장 판사는 이런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아주 어려운 사람이라면 2억을 주면 정말 눈물 흘리며 고맙게 받겠지. 그런데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다면서 왜 느닷없이 주는 2억을 받았을까?" 그럼 당연히 답이 이렇게 나온다. "사퇴의 댓가라고 생각하고 받았구나."

그러니 이게 아주 기막힌 사건이 되는 것이다. 판사는 1) 곽감이 후보매수를 한 적이 없음도 인정했다.  2) 곽감이 돈을 준 동기가 선의(미안함, 동정심, 종교심 등 복합적이라고 판결문에 되어 있지만 한 마리로 선의)였음도 인정했다. 3) 그러나 건내진 돈은 "댓가"가 되고 말았다고 판단했다.

그럼 아주 복잡한 상황이 된다. 법적 판단은 건내진 돈이 최종적으로 선의로 기능했느냐 댓가로 기능했느냐에 따라 내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1. 곽감은 분명 댓가를 주지 않았다. 따라서 처벌할 수 없다. 그럼 박교수도 댓가를 받지 않은것이 되기에 처벌할 수 없다. 하지만 판사가 보기에 박교수는 댓가를 받았다.
2. 박교수는 분명 댓가를 받았다. 그러니 귀여워서 쓰다듬었는데 상처가 난 과실치상범 처럼 곽감은 선의의 돈을 주면서 결과적으로 후보사퇴의 댓가를 준 셈이 된다.

고심끝에 결국 김형두 판사는 2번을 선택했다. 자, 그럼 누구의 형벌이 더 무겁겠는가?

이 돈에 댓가라는 성격을 부여하게 만든 원인제공자가 곽감인가 박교수인가? 만약 박교수가 댓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무죄로 끝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박교수가  1) 정말 상황이 찢어지게 어려웠다는 증거를 제시하거나  2) 돈을 받을 당시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나 그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아. 어쨌든 마음은 고마워"라는 제스쳐가 있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박명기는 자존심을 세우며 자기 개털 아니라고 한다. 또 판사가 보기에 3) 돈의 액수나 주어지는 방식으로 보아 선의로 받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독심술? 추정?) .

따라서 이 돈은 댓가로 기능했다. 준 사람은 선의라도 받은 사람이 댓가라고 여겼다면, 현행 법규의 논리상 모두 처벌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판사의 결론이다. 그래서 돈의 댓가성를 초래한 당사자는 준쪽이 아니르 받은쪽이며 곽교육감은 단순한 돈 마련자, 강교수는 돈 전달자로 본 것이다. 판결문에도 나오지만 만약 진짜 처벌해야 한다면 합의의 당사자인 이**이나 최**를 4년 때려야 하지만 기소된 사람은 합의 당사자가 아니라 돈 마련자와 돈 전달자 뿐이니 벌금형인 것이다.



하지만 이게 과연 타당한 논리인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법리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이미 사실관계는 모두 확인되었고, 결국 남은 것은 "돈이 댓가인가 선의인가는 주는 사람의 동기에 달려있나, 그 돈이 주어지는 방식과 기능에 달려있나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돈을 준 사람이 어째서 돈을 받은 사람의 마음 씀씀이에 대해서까지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건 너무 확대해석 아닌가 하는 것이다. 김형두 판사는 결과적으로 선거문화를 혼탁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들었다. 이 부분은 장차 치열한 논란거리가 된다.  

결국 곽감은 검찰이 기소한 거의 모든 내용에 대해 혐의를 벗었다. 검찰은 공소장에 적시한 내용을 거의 대부분 부정당했고, 사실관계는 모두 곽감측의 주장이 인용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곽감의 후보매수사건으로 표현하면서 매수자가 어떻게 사퇴자보다 처벌이 가볍냐며 앙앙거리고 있다. 오히려 어떻게 받은쪽의 마음씀씀이 때문에 선의로 준 쪽이 처벌받아야 하냐며 변호인측이 반발하는 것이 사리에 맞다. 

물론 지금까지의 주장에 대해 반론이 있을 수 있다. 반론이 있을 수 있으니 재판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반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 가능하며, 적어도 화성인의 판결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후 재판에서 이기려면
1) 곽감측: 앞에서 제기한 법리 논쟁에서 이긴다. 또 이**과 최**는 곽감으로부터 아무런 권한위임도 지시도 받고 나간 적이 없으니 애초에 합의도 없었음을 강조한다.
2) 박교수측: 받을때 댓가를 의식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입증한다. 즉 일단 댓가에 대해서는 깨끗이 포기했음과, 2억 긴급 수혈이 없었으면 정말 큰일날 상황이었음을 자존심 포기하고 객관적으로 입증한다.(이렇게 되면 양측 모두 무죄 가능)
3) 검찰: 곽감이 이**, 최**에게 지시했거나 보고받고 승인했음을 정황이 아니라 실제로 입증한다. 정황은 오히려 김형두 판사도 낮에 3억5천도 거부한 사람이 밤에 5억을 합의해 주었다고는 믿을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자, 이게 화성인의 판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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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18.

부러진 화살 관련 허재현, 진중권 논쟁을 리뷰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봤다. 나는 원래 정지영감독을 좋아한다. 이 분의 영화는 한국 영화의 특징인 "신파조" "감동" 이런게 없다. 정말 드라이하며 영화가 구조적으로 꽉 차있다. "하얀전쟁"같은 영화는 아직도 한국영화에서 다시 찾기 어렵다. 이번 작품 역시 가히 정지영답다라고 할만한 수작이었다. 그런데 영화 리뷰는 그렇다 치고, 얼마전 허재현 기자와 진중권 선생의 트윗 논쟁(사실상 논쟁이 아니라 허기자에게 진선생이 따따따따 한 것)때의 찜찜함이 남아서 이걸 먼저 해결하려고 한다.

먼저 사건의 발단은 허재현 기자가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날린데서 시작된다.




허기자의 이 트윗들에는 옳은 부분과 틀린 부분이 섞여 있다. 옳은 부분은 이 영화가 김교수의 증언이 아니라 재판기록을 보고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실제 이 재판 속기록을 한번 보면 누구나 금방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게 정말 재판 맞나 싶을 정도의 명대사의 연속이다. 판사가 아니라 개그맨이 애드립 친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다.
잘못한 부분은 "재판과정이 100% 사실묘사"라고 쓴 부분이다. 이건 불가능하다. 재판 속기록은 말하자면 지문이 없는 대본이기 때문이다. 이 발언들을 웃으면서 했는지 호통치며 했는지, 티꺼운 표정으로 했는지 정중한 표정으로 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예술가의 힘이 발휘된다. 이 건조한 재판 속기록을 보고서 감독은 상황을 이미지로 재구성해내며 배우는 말투, 표정등을 창조하여 이것을 입체적이고 생생한 as if 현실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재판 장면을 보면서 실제 재판이 그랬다라고 생각할 것을 요구한다면 명백히 허기자의 잘못이다. 예술가로서 감독은 이 재판 장면을 통해 이 사건, 이 재판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감독의 의도가 이 재판을 실제에 가깝게 재구성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여기에는 감독의 느낌, 배우의 느낌 등이 얼마간은 섞일 수 밖에 없다. 100% 재현은 심지어 실제 법정에서라 할지라도 불가능하다.

만약 진중권이 이 부분을 지적한 것이라면 그것은 매우 타당한 지적이다. 그런데 진중권의 지적을 보니 그게 아니다.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픽션이 아니라 사실의 영화화로 봐줄 것을 당부"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쨌다고? 이건 이 영화의 성격을 그냥 재진술 한 것이다. 이건 절대 거짓말이 될 수 없다. 이 영화가 실제로 사실의"재현"이 아니라  "영화화"기 때문이다. "영화화"라는 말 자체에 이미 예술적 작업을 의미하며 얼마간의 허구가 들어갔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아니라면 영화가 대체 뭐란 말인가? 그러니까 이 말은 결국 허기자가 이 영화를 그냥 허구가 아니라 대체로 사실을 기반으로 하면서 허구를 가미한 것으로 봐달란 뜻이다.

허기자의 트윗에도 분명히 "아무리 영화라 해도 너무한 것 같아서"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즉 영화적 과장, 허구적 요소의 가미등을 감안해도 너무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실제 재판기록을 봤더니 의외로 과장이나 허구가 생각보다 많이 가미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 어디에 "이 영화를 실제라고 생각하라"라는 당돌한 요구가 들어 있는가?

게다가 사실을 미적 표현의 소재로 활용한 수준을 넘어 사실 그 자체의 구현을 목적으로 한 작품은 의외로 많다. 이를테면 올리버 스톤 감독은 사실의 영화화의 대가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영화를 만드는 목적이 어떤 사실에서 소재를 얻어 미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일수도 있고, 정말 어떤 기록이나 증언들을 실제 영상을 통해 재현해보고자 한 것일수도 있다. 즉 직접 가서 찍을 수 없는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에 대한 유사 기록물을 남기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 영화는 나레이터가 없다는 점에서 다큐멘타리보다 더 사실적이다. 사실을 직접 체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리 안 감독의 "우드스톡"을 보는 것이 "우드스톡"관련 다큐멘타리 보는 것 보다 더 생생하지 않은가?  물론 그렇기 때문에 연극, 극영화는 진실이 아닌 것을 마치 진실인 것인양 포장할 수 있는 위험한 도구가 될수도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호메로스를 교육과정에서 완전히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따라서 만약 진중권이 "영화 내용을 모두 사실로 믿으라고 당부하는 거짓말 믿지 마세요"라고 했다면 이 지적은 타당했다. 하지만 "사실의 영화화로 믿으라고 당부하는 거짓말 믿지 마세요"라고 말했다면 이건 틀렸다. 게다가 진중권이 영화 말고 사실에 대해 충분히 알고서 이런 말을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진중권은 허기자를 까기 전에 재판기록을 읽어 보았는가? 아니, 영화라도 봤는가? 적어도 허기자는 재판기록을 보고 영화를 보고 비교한 다음에 저 트윗을 날린 것이다. 나꼼수 17회 10분 들어보고 나꼼수를 말살하려 했던 만용이 오버랩된다.
사실을 영화화한다고 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다. 진중권은 설마 허기자가 그 정도로 바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 말을 보니 그 반대인것 같다. 진중권은 허기자가 바보가 아니라 똑똑하다고 본다. 얼마나 똑똑하냐 하면 픽션인 영화를 은근슬쩍 사실로 착각하게 만들어서 이 힘을 이용해서 정의로운 사법부에 대한 팩트를 공격하려는 선동가로 보는 것이다. 아, 여기서 용어를 잘못썼다. 이럴떄는 '의지'가 아니라 '의도'라는 말을 써야 하는데, 굳이 '의지'라는 말을 쓴 '의도'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
비유하자면 고대 그리스에 어떤 발칙한 녀석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를 아주 리얼하게 묘사하면서 마치 실제 역사 기록인것 처럼 보이게 한다면 그 자는 장차 "자, 봐라. 신들은 질투쟁이, 호색한이며, 왕들의 조상인 영웅들은 치졸하고 옹졸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주장하면서 기존의 권위를 공격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것이다,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리라.
직설 하자면 허기자는 정지영감독의 노련한 기술덕에 마치 사실인것처럼 생생하게 묘사된 영화를 이용하여 사법부의 권위를 공격하려는 것인데, 이런 자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마라,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리라. 

개그는 개그로 듣고 영화는 영화로 봐라. 이것만큼 진중권 스스로의 미학을 완벽히 배신하는 발언이 또 있을까? 그렇다. 개그는 개그고 영화는 영화다? 그러니까 레니 리히펜슈탈의 선동영화도 내용을 보지는 말고 그 영상미만 봐라. 영화는 영화니까? 만약 1960년대 사람들에게 솔제니친의 소설은 단지 소설이니까 그 미학적 부분만 음미하고 그걸 근거로 소련사회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갖지마라고 주장하면 받아들일까? 아무리 왕년에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끌어들여서 문화판을 초토화시킨 과거를 반성해도 그렇지 이렇게 정 반대의 주장을 할 수 있나? 게다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서 어떻게 발터 벤야민 강의를 할 수 있을까?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도시 아케이드에서까지 정치를 읽어내는 사람의 미학을 강의하고 다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이 영화는 감독이 명백히 사실을 재구성하고 사회에 문제제기 하려고 만들었다고 밝히고 있다. 감독 스스로 단지 영화로 보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 그 메시지가 어느정도 진실성이 있는 것인지 재판기록과 비교해 보는 것은 기자가 당연히 할 일이 아닌가? 그리고 비교 결과 상당히 진실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고. 그러니 진중권이 정 허재현을 까고 싶으면 영화는 영화로 봐라 같은 자기 미학 부정하는 이중잣대 들이댈 것이 아니라 역시 재판기록을 읽어 보고 영화가 재판기록을 상당히 많이 왜곡했는데 허기자가 그걸 아닌듯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밝히면 그 뿐이다. 

그런데 심지어 다큐에다가 기사까지도 일종의 극영화로 간주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럼 이것들을 다 통틀어서 뭐라고 분류해야 할까? 극영화, 다큐, 기사 모두 허구의 요소가 포함된 것이니 서사물이라고 할까? 하긴 문화심리학자 제롬 브루너는 본질적으로 재판과 서사예술은 개연성있는 내러티브를 구성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보았다. 그러니 극영화, 다큐, 기사, 재판진술, 정치연설 등은 모두 내러티브의 구성이라는 점에서 같다. 대충 이런 얘기를 한건가? 기사까지 극영화랑 같은 범주에 밀어 넣었으니?

그럼 진중권은 대체 조선일보에 대해 왜 그리 흥분했던가? 조선일보 기자 입장에서 이렇게 말하면 뭐라고 대답할까? "기사는 기사로 보세요. 왜 기사를 팩트로 보세요?". 아 참, 이 팩트라는 말. 사회학에서는 이 팩트를 객관적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지 않는다. 팩트 자체도 이미 가치가 함축된 사회적, 문화적 구성물이다. 그러니 팩트 역시 허구의 요소, 의도(의지?)가 포함된 산물이다. 그럼 이제 "팩트는 팩트로 보세요. 팩트를 진실로 넘기지 마세요"라는 말까지 성립 가능할지 모른다.

이상하게 요즘들어 진중권은 유난히 사법부의 권위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나꼼수와 곽노현을 묻어버리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덕분에 변희재 관련 재판에서도 자승자박에 걸리고 말았다. 좋다. 사법부의 권위가 유지되어야 공동체가 안정된다는 그 충정으로 이해하자. 하지만 "도가니" 열풍때 "픽션은 픽션이고 사실은 사실입니다" 하고 발끈했더라면 그 충정의 진정성을 이해하겠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법부 욕하고 학교 욕하고 그랬나? 그때 진중권이 나서서 사법부의 권위를 존중해야 하며 픽션을 팩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노력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지금은 가히 도가니의 도가니다"라고 편승한 듯한 느낌마저 남겼다. 

그런데 "부러진 화살"에 대해선 왜 다르게 반응했을까? 진선생은 절대 그러실 분이 아니겠지만, 혹시 면 " 허재현이 한마디 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럼 허재현과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아마 곽노현을 옹호했기 때문이리라. 그럼 곽노현과는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밉살스런 김어준이 옹호했기 때문이다. 아, 모든 길은 김어준으로 통한다? 하지만 진선생님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 이건 말도 안된다.

다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겨우 트윗 몇줄가지고 너무 많이 나간 것 같다. 트윗 몇줄을 가지고 이렇게 몰아붙이는 건 인간적으로 할 짓이 못된다. 이건 단지 까기 위한 깜, 한 마리로 생트집밖에 안된다. 그런데 그게 바로 요즘 진중권, 혹은 망치부인 등 별안간 순정, 순결, 도덕의 화신으로 변신한 진보(?) 인사들의 모습이다.

추신: 이 글은 이 영화를 보고 사법부에 문제의식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닭취급을 당한 여러 관객들을 위로하기 위해 쓴 것이지 진과의 키배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19일 곽감이 석방되면 그를 도와 교육혁신 전략 짜야 하고, 못되면 교육퇴행에 맞서 싸워야 하고, 이래 저래 바쁘니, 소모적인 키배로 나를 끌어들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절대 진중권에게 이 글 멘션시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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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