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30.

우리나라 진보진영의 문제는 진보적이 아니라는 것이다(1)

요즘 진보진영의 꼴이 말이 아니다. 이제 어디 가서 진보라는 말을 꺼내면 종북, 부정, 패권주의, 음모가, 경기동부, 주사파라는 말에 대해 해명하다 정작 해야 할 말을 못하기가 일쑤다. 그래서 그런지 아예 진보라는 말 자체를 꺼내기도 꺼려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나는 이전에 비해 크게 불편하지는 않다. 나는 언제나 정치 성향을 물으면 진보라는 말 보다는 좌파라는 말을 더 선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격 혹은 삶의 태도를 묻는 질문에는 진보적이라고 대답했다. 즉 나는 "진보적 성향의 사람이며 정치적 견해는 좌파에 가깝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 잠깐이란 말이 나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진보적 성향이란 말 속에 이미 좌파란 말이 포함된 것 아닌가란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진보는 삶의 태도이며, 좌파는 정치적 당파로, 이 둘 간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어야 한다. 진보는 문자 그대로 앞으로 나가는 것이며, 퇴행을 거부하는 것이다. 여기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행진을 한다거나 그런 의미가 아니라 자유와 역량, 그리고 가능성이 커지는 쪽을 선호한다는 의미다.

반면 좌파라는 것은 정치적인 당파성으로 그 사회의 기득권층과 소외된 층 중 후자의 관점에서 정치적 선택을 한다는 의미이며, 다르게 비유하면 파이를 키우는 쪽 보다는 파이를 나누는 쪽에 선다는 의미다. 물론 대개의 경우는 그 사회의 자유가 확대되지 않고서는 기득권층의 파이를 소외계층에게 나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기존의 사회 질서를 크게 뒤흔들지 않고서는 소외계층에게 유리한 정책이 정치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는 난망이니 진보=좌파의 공식이 대충 성립되기는 한다.

하지만 초점을 국가수준보다 미시적으로 옮겨가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우파 단체 안에서도 진보적인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좌파 단체 안에서도 보수적인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파 중에서 어버이연합 같은 노인들을 동원하는 방식을 구태의연하다고 거부하고, 심지어 이들을 법적으로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진보적이다. 반면 좌파단체 안에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투쟁, 의례 등등을 답습하면서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보수적이다. 아무리 좌파적인 의제를 놓고 투쟁한다 하더라도, 아무리 진보를 내걸고 활동한다 하더라도 그 활동의 가능성과 범위를 넓히고, 새로운 영역을 소화해내려는 자세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보수, 아니 수꼴이다.

자유와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있겠느냐고 반문할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자유와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은 그 동안 익숙했던것 편안했던것과의 결별이라는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의 말했듯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노예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으며 행동을 결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유가 확장된다는 것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할 상황이 늘어난다는 의미이며 걸머 쥐어야 할 책임도 늘어난다는 의미다. 따라서 자유란 매우 두렵고 부담스러운 상태이기도 하다.

이때 이 두려움과 부담보다 정체되어 있는 상황을 더 견디기 힘든 사람이 있다. 안정과 평온함보다는 성장과 가능성의 확장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진보적이라고 한다. 따라서 진보는 어떤 특정한 입장이나 정책에 국한되지 읺는다. 마르크스가 진보적인 이유는 시장경제를 문제 삼아서가 아니라 시장경제가 자연법칙으로까지 여겨지던 시대에 그것을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그의 유명한 경구대로 "굳어진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진보인 것이다. 마르크스 사상의 핵심을 소비에트 집권층은 유물론에서 찾고, 서구의 비판이론가들은 변증법에서 찾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우리나라 진보진영이 지금 처하고 있는 이 망신스러운 상황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금방 답이 나온다. 그것은 우리 진보진영 내부가 너무도 보수적, 아니 수꼴적이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다.

전교조 본부에 있을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10년째 반복되어 오면서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하는 아스팔뜨 팔뚝질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교사들 1000여명이 모여서 아스팔트에서 팔뚝질을 하며 구호를 외쳐본들 그 동안 바뀐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교사들이 교사답게 다양한 학술적인 활동, 그리고 언론 매체나 블로그들을 활용하는 담론 활동으로 소위 투쟁방법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주장했다. 심지어 관행적으로 사용되는 "투쟁"이라는 말에도 거부감을 표현했다. 예를 들면 "교원업무 정상화 입법 청원 운동"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교원업무 정상화 입법 청원 투쟁"이라고 표현하는 언어 과잉같은 것들.  또, 행사때마다 진보단체에서 관행적으로 하는 민중의례도 거부했다. 그 이유로는 1)나는 어떤 집단적인 의례도 거부한다. 2) 나는 임을위한 행진곡의 가사도 음조도 미학적 의미에서 좋아하지 않는다 였다.

이랬더니 당시 전교조 지도부를 이루고 있던 자들(소위 당권파와 꽤 밀접한 자들임)이 사상검증을 나섰다. 그러면서 던진 질문이 "한미 FTA에 찬성하시오 반대하시오?" 였다. 그래서 내 대답은 "아직 FTA의 구체적인 협정문을 보지 못해서 말할수 없다" 였다. 그리고 나는 도리어 반문했다. "댁들은 왜 한미 FTA에 반대하는지 이유를 대시오."... 그러자 그들은 "아니 FTA반대하는데 이유를 대라니 그러고도 당신이 진보야?" 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래서 판단 내렸다. 그들은 진보가 아니라 수꼴이다.

반대한다, 투쟁한다는 말을 외친다고 진보는 아니다. 왜 반대하는지, 왜 투쟁하는지 그것을 자신의 삶과 생각으로 풀어내고 성찰할 수 있어야 진보다. 그래서 10년간 반대하던 사안을 만약 잘못알고 그랬다고 판단한다면 깊이 반성하고 찬성할 수 도 있어야 하며, 반대로 10년간 옳다고 믿었던 사안이 알고보니 아니었다면 반대하고 나설수도 있어야 진보다. 모든 굳어진 것에 대한 본능적인 반발, 이게 바로 '진보적'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런점에서 우리나라의 진보 진영은 너무도 보수적이다. 집회나 행사에 가 보면 해가 갈수록 참석자들의 연령이 높아진다. 이제는 다들 반백이다. 그런데 벌써 반올림하면 50이 되는 나한테 "아직 젊어서 그래"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꼰대들인 것이다. 할 일 보다는 해온 일에 집착한다. 그 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들의 신앙간증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 신앙자체를 검증해 볼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면서 젊은이들의 불참을 탄식하며 20대가 보수화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08년 촛불이 보여주었듯이 20대들은 보수화되지 않았다. 보수화된 것은 그들을 받아내지 못하고, 또 기꺼이 그들을 위해 내어주고 물러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진보진영의 단체와 인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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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25.

교육연극으로 풀어보는 학교폭력 일반공개

그동안 학교를 순회하면서 공연중이던 학교폭력 토론연극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합니다. 이하 보도자료를 참조해 주세요.

서울특별시교육청과 서울문화재단(서울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은 5월 25일(금)과 26일(토) 양일에 걸쳐 ‘시민과 지역, 예술의 일상을 바꾸는 문화예술교육’ 포럼과 공연 행사를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개최합니다.

□ 이 행사는 5월 14일 곽노현 서울 교육감, 박원순 시장, 서울시 의회 및 자치구 협의회, 교육 시민 단체가 공동으로 발표한 "서울교육희망선언"의 취지를 반영한 첫 번째 공식행사로서, 사회문제를 지역사회, 교육기관, 문화예술단체가 함께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성공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로 펼쳐집니다.

26일(토) 15시 에는 서울시 교육청 주관으로 44개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토론 연극들 중 한 작품인 ‘눈사람? 눈사람!’이 공연됩니다.
이 공연은 지난 5월 14일 서울특별시교육청과 서울특별시가 공동 선언한 ‘서울교육희망선언’에 따른 첫번째 실행 사례로서, 요즘 문제시 되고 있는 학교 내 폭력을 토론 연극이라는 예술적 방법으로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두 기관의 협력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 참가자들은 ‘어디에서 폭력은 시작되는 것일까?’, ‘우리는 폭력을 줄일 수 있을까?’ ‘작은 폭력 행동들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함께 풀어가면서, 학교폭력의 역학관계(가해자-피해자-방관자-동조자-방어자)를 다각적으로 분석합니다.
특히 이 날 행사에는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과 조선희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이 함께 참여합니다.
(참가 희망자는 교육연극연구소 ‘프락시스’에 전화로 신청 : 010-2259-8233)

◎ 일시 : 2012. 5. 26(토) 15:00~18:00
◎ 대상 : 중학생, 교사, 학부모를 포함한 지역시민
◎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 주최 : 서울특별시교육청, 서울문화재단
◎ 주관 : 서울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프락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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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22.

진보는 희망이며 아름다움이다. 연극으로 풀어보는 학교폭력, 그 대장정의 시작

그 동안 진보와 관련해서 너무 부끄럽고 우울한 이야기들만 난무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런 것은 진보와 무관합니다. 진정 진보적인 사람은 울분해야 할 상황에서도 풍자를 하며, 빡세게 싸워 이기기 보다는 아름답고 고결하게 쓰러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진보에는 감동이 있고, 내러티브가 있고 유산이 있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학교폭력 문제를 예술을 활용하여 해결하고자 한 곽노현교육감의 시도는 진정 진보라 할 만합니다. 물론 이 방법은 핀란드나 노르웨이처럼 연극을 포함한 3일간에 걸친 10차시 이상의 프로그램이라야 효과가 있고, 이렇게 하루 방문하여 두세시간 프로그램 진행한다고 해서 마법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경찰관이나 영감님이 와서 애들 다 재우면서 "폭력은 나빠요" 하는 강연, 혹은 교과부가 광분했던 "1진 사냥"보다는 훨씬 큰 효과가 있고, 또 교육적임에는 분명합니다. 

5월 21일 오후 13시 10분, 건국대학교 부속중학교 강당에 극단 프락시스가 들어와 무대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공연을 시작으로 프락시스는 11개의 공연을 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이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프락시스 외에 극단 해, 극단 마실, 극단 올리브와 찐콩이 11개씩의 공연을 이어 갈 것입니다.


이제 학생들이 들어옵니다. 원래 TIE는 100명 정도의 관객들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적당하지만 한국 학교의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네요. 무려 400명의 학생이 몰려왔습니다. 더군다나 인민군도 두려워 피한다는 중학교 2학년들입니다.


 우선 시험부터 칩니다. 아니, 시험이라고요? 아뇨, 시험이 아니라 학교폭력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시험지 형식으로 알아나가게 하는 학습지랍니다. 시험지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오히려 학생들이 더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고 봅니다. 시험범위는 저의 논문입니다. 하하.


학교폭력의 전형적인 사례 한 장면을 잡아서 조상만들기를 하면서 먼저 이 형식에 대해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너무 많은 학생들이 와 있기 때문에 TIE를 TIE답게 진행하기는 이미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조커 선생님이 쾌활하게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연극이 공연됩니다. 이후 후속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연극의 공연시간은 가능하면 40분 이내인 것이 좋습니다. 또 중간 중간에 학생들의 지나친 긴장을 풀어주는 장치들이 배치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콘이 되어버리면 안되겠죠.


연극이 끝났습니다. 하지만 TIE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연극속의 학교폭력의 원인이 된 사건을 되짚어보며 학생들이 토론합니다. 워낙 많은 학생들을 뭉쳐 넣어놓아서 사실 토론이 잘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발언하는 친구들이 몇몇 있고, 이렇게 분위기가 잡히면 결국 더 많은 학생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렇게 참여하여서 폭력의 원인이 된 상황, 폭력의 상황등을 문제제기하고 그 장면을 고쳐나가면서 해법을 찾아봅니다.


물론 이런 작업을 한다고 해서 소위 일진들이 개과천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교폭력이라고 하는 것이 뭔가 엄청난 일이 아니라 자신들이 일상에서 너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학생들이 알아나가는 것, 그게 이 프로그램의 목적이며, 그건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1회의 공연으로는 뭔가 아쉽습니다. 이건 문제제기 하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공연 전 3시간 정도의 웜업과, 프로그램 이후 7시간 정도의 다양한 후속이 3일에 걸쳐 이루어질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노르웨이나 핀란드처럼 말입니다.

어쨌든 학교폭력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권위주의나 공권력으로 억눌러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공감을 일으켜 해결하려는 프로그램을 교육청 이름으로 내걸고서 시행한 것은 아마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프로그램, 곽노현교육감이 억울한 구속에서 석방되어 나오고 설 연휴기간 동안 쉬지도 못하고 고민하다가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사업 집행과정에서 원래 교육감의 아이디어가 완전히 구현되지는 못했습니다. 학생수, 예산의 제약, 그 외 관료제 조직의 여러 경직성 등등. 하지만 이런 첫걸음들이 모여서 우리나라 교육의 큰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인 것이고요.


2012. 5. 16.

곽노현, 박원순의 서울교육희망 선언을 이해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는 동아일보

얼마 전 동아일보에 김순덕의 횡설수설곽노현의 ‘교육 희망선언’  이라는 참으로 겸손하고 솔직한 논설이 하나 게재되었다. 이 논설이 겸손한 이유는 글쓴이가 너무도 자기 수준을 겸허하게 밝이고 있기 때문이다. 솔직한 이유는 논설의 제목이 실제 논설의 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조중동 기자들 중 이렇게 기사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참으로 이 논설은 글쓴이나 그 내용이나 모두 '횡설수설이다'

이 논설의 구조는 이렇다. 어떤 훌륭한 교사의 사례를 소개하고, 교육개혁은 이런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곽노현 교육감과 박원순 서울시장의 교육희망선언은 굵고 큰 이야기만 해서 갑갑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김순덕은 자신이 원하는 작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바꾸려면 학교 현장에서는 거의 전쟁과 같은 노력, 순직을 각오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사의 깡다구와 무한노력에 기대는 교육개혁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김순덕이 예로 들고 있는 박선생을 보자. 이 사례에서 박선생은 ADHD로 교사에게 막말을 하던 승리란 아이의 밥도 챙겨먹이고 바지까지 빨아 입히고 칭찬도 해주면서 장애인인 승리 엄마 역할까지 대신함으로써 마침내 승리를 바꾸어내었다. 그러면서 내 아이가 이런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학부모의 소원이고 교육의 희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교육감과 시장이 발표한 교육희망선언의 학생회, 학보무회활성화, 교원업무정상화, 대학입시개혁, 사회의 변화 등을 답답한 원칙론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이 말을 통해 우리는 김순덕은 교육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릴수 밖에 없다. 우선 이 승리와 박선생의 사례는 아무리 봐도 소설에 가깝다. ADHD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수용기 장애지, 학생의 가치나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적절한 신경정신과 치료가 병행되지 않으면 절대 치료되지 않는다. 폐결핵 치료가 헌신적 간호로 이루어지지 않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지금 김순덕은 한국신경과학회에서 발표해도 될 정도로 놀라운 사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 사람은 ADHD를 그저 무례하고 주위산만한 것 정도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박선생이 정신 제대로 박힌 교사라면 바지를 빨아줄 것이 아니라 적절한 치료기관을 찾아주어야 한다. 교사는 보모가 아니라 전문직이다. 교사의 지원은 전문적인 것이라야지 단지 열과 성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김순덕 기자 같으면 전문적 능력이 탁월하지만 인간성은 다소 문제가 있는 의사와 열과 성을 다하나 전문성이 떨어지는 의사 중 누구에게 몸을 맡기겠는가? 교사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기자는 교사를 뭘로 보고 있는지 스승의 날에 교사를 비하하는 논설이나 쓰고 있다. 만약 신문의 날에 기자를 단지 워드나 열심히 치면 되는 직업으로 소개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또 김순덕은 모든 엄마들이 이렇게 헌신하는 교사를 원한다고 한다. 자, 모든 엄마들이 박교사처럼 밥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는 교사를 원하고, 교사가 거기에 부응할것을 요구받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결과는 아무 교육도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사의 시간과 관심은 희소성이 있는 자원이다. 교사의 하루는 48시간이 아니며 유독 교사에게만 다른 노동자의 몇배를 일하라고 강요할 근거도 없다. 그러니 학급 인원이 30명이라고 할때 승리같은 아이는 5/30 정도의 관심을 받은 것이며 따라서 네명의 학생에게 가야 할 교육적 관심을 그만큼 더 사용한 결과가 된다. 그런데 모든 엄마가 다 이렇게 자기 아이만의 특별한 대우를 요구한다면 이는 교육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설사 아주 초인적인 교사가 있어서 그렇게 하려고 하더라도 당장 두가지 문제에 부딪친다. 첫째는 헌신적 보살핌으로는 치료되지 않는 ADHD를 치료하자면 수십만원을 들여 검진을 받아야 하며, 주사 한 방에 15만원을 호가하는 고가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또 ADHD는 임신기간동안의 유해환경 노출 등으로 인해 발병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타깝게도 이는 주로 빈곤한 계층에서 일어날 개연성이 높은 일이다. 그래서 실제로 학교에서 ADHD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을 면담해 보면 대개는 가정형편이 저런 고가의 진단과 치료를 받을 상황이 못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당장 개별 교사, 개별 학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장벽을 만난다. 그래서 우리는 교육복지가 필요한 것이며, 따라서 시장과 교육감이 손을 잡고 이런 교육복지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김순덕 같은 엄마들은 자기 대신 아이 빨래 해주는 교사를 바랄지 모르지만, 제대로 배운 엄마들은 교사들의 노력을 좌절로 마무리하는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문제의 해결을 바랄 것이다. 

그런데 교육복지 체제가 잘 갖추어 졌더라도 또 문제가 있다. 현실의 학교에서 박선생 같은 교사는 설 자리가 없다. 우선 승리 바지를 빨 시간이 없다. 승리에게 관심을 좀 기울일만하면 반드시 무슨무슨 공문을 써 내라거나, 무슨무슨 사업결과 보고를 하라거나 하는 각종 행정업무가 쏟아져 내릴 것이다. 게다가 승리를 위해 필요한 기자재나 하다못해 간식 하나를 구입하려 해도 에듀파인이라는 전자재정 시스템 속에서 수십분을 헤매면서 결재를 받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헌신의 헌신을 거듭해서 ADHD 학생 수십명을 정상인으로 바꾸어 놓는 놀라운 개가를 올렸다 한들, 그런다고 해서 월급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며, 교장, 교감 되는데 0.0000001점의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다.  까먹느니 개인 시간이며, 에듀파인에 고생하다 결국 써버린 자기 돈이다. 반면 아이들을 외면하고 행정업무 열심히 한 다른 교사들은 점수 잘 받아서 교감, 교장으로 쑥쑥 승진한다.

그래서 교사에게서 행정업무를 덜어내는 교원업무 정상화가 필요하고, 왜곡된 교사의 승진제도의 개혁이 필요하고, 행정위주의 비민주적인 학교구조의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 김순덕 기자는 그런데 이런 개혁이 팍팍하고 답답하다고 말하면서 "교사가 학생을 잘 가르치는 학교, 학생이 박 선생님 같은 교사로부터 잘 배우는 학교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안 되나."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말 팍팍하고 답답한 사람이다. 말 참 잘했다. 바로 이게 그런 학교를 만들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아 참, 박선생님은 아니다. 승리와 박선생님 사이에서는 아무런 배움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안되었지만 김순덕이 예로 든 박선생님은 결코 전문직인 교사라 불릴만한 사람이 아니다.

게다가 "교사가 학생을 잘 가르치는 학교"도 결코 21세기에 걸맞는 사고방식이 아니다. 이건 교육학 용어로 전수모형(transmission)학습관에 입각해 있는데, 이미 1960년대에 모두 소멸된 낡은 학습관이다. 학교에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학교에서는 '가르침'이라는 용어 대신 '교수-학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텐데 참 한심하다. 즉 학교는 교사의 가르침과 학생의 배움이 함께 상호작용하는 곳이다. 그래서 학교에 가장 필요한 교사는 잘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학생의 배움을 잘 이끌어내는 교사다. 불행히도 우리나라 학교는 잘가르치는 교사의 판타지에 너무 빠져있었고, 이제야 거기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러더니 김순덕은 느닷없이 "부모들은 자녀가 왕따 폭력에 희생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공부하기 싫어하던 아이가 선생님 잘 만나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되고, 친구들과 잘 못 지내던 아이가 특별활동 덕분에 성격이 달라지는 것같이 작은 변화여도 고맙고 충분하다."이렇게 말한다. 이런 일들이 아주 사소하고 작은 변화인양 말하고 있다. 공부 싫어하는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갖게하는 일이 작은 변화인가? 친구들과 잘 못지내던 아이가 특별활동 덕분에 성격이 달라지는게 작은 변화인가? 이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가 선생님들의 헌신 혹은 교육감의 아주 작은 정책 하나로 가능한 일인가? 사회 구조의 문제, 제도의 무제, 학교 문화와 풍토의 문제, 교원 업무구조 왜곡의 문제가 켜켜이 쌓여 있는데? 그러니 이걸 교육감과 시장이 같이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서율교육희망선언인 것이다.

참고로 공부 싫어하는 아이가 공부에 흥미 갖는 작은 기적을 보고 싶으면 곽노현 교육감의 혁신학교를 방문해 보기 바라며, 특별활동 덕분에 아이가 밝아지는 기적을 보고 싶으면, 곽노현 교육감의 문예체 활성화 사업을 보기 바라며, 왕따가 사라지는 기적을 보고 싶으면 곽노현 교육감이 시동을 걸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교육연극을 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에 필요한 돈, 시설,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어떻게 마련되는가 보려면 앞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펼쳐나갈 교육복지사업을 보기 바란다.

그리고 당부하는데 기자라면 적어도 글의 제목은 제대로 읽고 쓰기 바란다. 서울교육희망선언은 곽노현의 것이 아니라 곽노현과 박원순의 공동선언이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2012. 5. 13.

경기 동부에 대한 "자전거타는 유리멘탈 (@OnTheRoad_82)"님 글(퍼온 글)

긴 트윗 안 보시는 분들을 위해 블로그에 옮겨 둡니다.

진보당 사태에 대한 단상 - 종파와 진성당원제

사태에 대한 단순한 규탄은 쉽지만 당권파가 대체 왜 이지경까지 사태를 끌고왔는지에 대한 이해는 어렵다. 왜냐면 소위 경기동부라 불리는 운동집단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아서이다.

사실 경기동부라 불리는 집단과 한솥밥을 먹고 몇년간 활동하기도 했던 나조차도 이들이 사태를 이지경까지 끌고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1. 경기동부에 대한 이해
사실 운동권 술자리에서나 나오는 단어(공식 회의석상에서는 이 단어를 차마 쓰지 못한다)인 경기동부가 이렇게 전국민적(?)인 단어로 떠오르는건 나같은 꿘에게 참 감회가 새로운 일이다.

축약적으로 경기동부라 불리는 집단의 역사와 특성을 말하자면, 이들의 최초역사는 민혁당과 김영환을 말할 수 밖에 없다.현실사회주의와 몰락과 김영환의 변절 이후, 김영환의 하부는 대부분 집단 전향을 선택했지만 거기에 격렬히 반발한 집단이 몇곳 있었다. 그중 한곳이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이다. (이석기씨는 여기 총책출신이였다) 이들은 경기도권에서 핵심 동지를 모아 지역운동을 통해 다시 조직을 재건해 나갔으며, 주로 경기도권 곳곳에 청년회, 노동조합, 학생회 등에 선을 대며 운동집단을 키워나갔다. 

92년 전국연합이 창립되자 경기동부연합 이란 이름아래 이 집단을 구체적으로 드러냈으며, 인천연합, 울산연합과 함께 NL의 빅3라 불리는 정파가 됬다. 

경기동부는 시작은 미약했지만 특유의 결속력과 집단력, 무모할 정도의 패기(?)로 굉장히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3~4년 전부터는 광전연합과 사실상 통합상태로 운영되왔으며,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 지역운동, 청년운동, 각지에 단일세력으로는 사실상 NO.1 의 자리를 차지했다. 원래는 인천연합이 NL의 핵심이였지만 지금은 경기동부의 세가 훨씬 커진 것 같다. 나머지 NL들은 굉장히 나이브해지고, 유연해진 편이다. 

경기동부의 조직문화는 비공식 비선조직의 특성상 점조직적이며, 상명하복과 강한 규율성을 강조한다. 내가 활동하면서 혀를 찼던게 내가 활동하던 지역에 파견(?)된 경기동부 활동가들이 4~5명 정도 있었는데, 365일 아침 6시에 모여서 조회를 하고 활동을 시작하더라. 충격적인건 월급도 쉐어한다. 지역에서 활동하다보면 급여의 차이가 있고 심지어 무급활동가도 있는데, 이걸 n/1로 나눠서 생활하더라. 난 이들이 혹시 연인까지 점지해주진 않을까 하는 강한 의심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런 강한 집단성을 지니고 있고 서로서로 정말 돈독하게 아껴준다. 거의 종교적 생활공동체 수준으로.. 하여튼 이렇게 왕성하게 들이밀더니 각종 분란을 터트리며 결국 지역을 거의 먹어버렸다 --; 

사실 운동권 모두 어느정도 반성적으로 돌아볼 문제이지만. 경기동부 집단의 핵심적 문제는 지나친 자파중심주의이다. 이들에게 '동지'란 자파인물뿐이며, 운동 전체의 이익보다 자파의 이익에 골몰한다. 그러다보니 서로 다른 색깔의 동지들과 섞여있어도 물과 기름처럼 구분되며, 항상 딴주머니를 차고 활동한다. 즉 당에서 활동하면서도 뒤로는 경기동부 활동을 당을 통해 관철하려 한다던지, 각종 재정사업은 CNP에 몰아준다든지 등등.. 경기동부에게 뒷통수 맞아본 경험 없는 활동가는 운이 좋은 것이거나 제대로 꿘 사회에 들어와보지 않은거다. 


3. 경기동부의 이번 사태에 대한 인식

경기동부의 현실인식은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즉 지금 전국민에게 이렇게 욕을 바가지로 처먹고 있는 것을 모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사실 그래도 NL이 되려 PD보다 대중들의 정서와 여론에 민감한 편이기에, 나도 처음에는 경기동부도 결국 사퇴로 마무리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폭택을 택한 것은 경기동부의 자파중심주의와 결부해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소위 2002년 군자산의 약속 이후 경기동부의 핵심 숙원은 '자파 국회의원 배출' 이였다. 이를 위해 NL친화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이정희를 포섭(지금까진 영향을 끼치는 수준으로 생각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니 사실상 포섭된 것 같다)하고, 총선에서 7석 가량의 자파의원을 당선시켰다. 드디어 경기동부의 10년 목표가 달성된 것이다. 

근데 이런 쾌거 앞에서 감히(?) 유시민 딱가리라고 생각해온 참여계 인물들이 선거결과를 물고늘어지기 시작 한 것이다. 사실 경기동부 사람들에게 참여계 사람들이란 자신의 과격한 이미지를 살짝 덧칠해줄 수 있는 외피의 의미밖에 없다. 근데 경기동부가 바보인게 ㅋㅋ 참여당 사람들이 운동권에서는 한발 물러났을지는 몰라도 키보드 워리어질에서는 내가 보기엔 국내 넘버1이다. 어쨌든 참여계 동지들의 키워질로 진보당 자게가 초토화되며 이번 문제를 그냥 덮고 넘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의 전개상황은 다 아는 바와 같다. 한마디로 조중동은 신바람을 내며 연일 진보당 이슈 흥행에 성공하고 있고, 새누리당, BH는 대선준비를 차곡차곡 하고 있다. 당 지지율은 반토막을 넘어 세토막이 나고....

이들은 지금 자신들은 이미 대중적으로 아웃팅됬으며, 이 사태에서 밀리면 경기동부는 영원히 진보정당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고 본다. 지금 여론에 따라 사퇴하고 당의 일선에서 물러난다면 이미 대중적으로 아웃팅된 자신들은 다시 현실정치에 발붙일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강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일단 욕을 먹고 당 지지율이 반토막이 되더라도 자파 의원직을 사수하고, 그렇게 욕먹은 것은 나중에 이석기 김재연 등 자파 국회의원들의 헌신적(?) 활동으로 복구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겉으로는 당원의 명예회복이니, 마녀사냥이니 하며 '명예'를 주장 하지만. 사실 이들은 '권력'을 추구한다. 


4. 이번 사태에 대한 단상 

어제 새벽 중앙위를 보다가 정말 오랜만에 운동판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오래전에 변절하고 학원강사로 소일거리하는 나이지만, 참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하루였다.

첫번째 생각은 오랜만에 꺼내는 '종파(Sect)'란 단어이다. 
국민의 이익과 당의 이익이 충돌할땐 국민의 이익을, 당의 이익과 개인, 혹은 자파의 이익이 상충할땐 선당후사하는 것은 이념을 떠난 정당의 기본규범이다. 여기서 벗어나면 이인제류의 정치인이 되거나, 경기동부와 같은 깡패집단이 된다. 

심상정씨가 지난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지사 후보를 사퇴하고 유시민 단일화를 선언하며 '당심과 민심이 다를때 지도자는 당심을 민심에 맞춰나갈 수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백번 동의한다. 지금 경기동부는 당심은 커녕 민심조차 외면하며 자파의 이익에만 몰두하며 전체 진보운동을 해치고 있다. 정말 종파의 끝을 보는 것같다. 

다음은 의장단에게 몰려가 댓거리를 하는 행동대원들을 보며 느끼는 안타까움이다.
몇몇 아는 얼굴도 보였고, 그중 한명은 꽤 친하게 지내기도 했던 사람이였다. 이들이 왜 저렇게까지 됬을까 하는 슬픔이였다. 어제 몰려든 경기동부 행동대원들. 한명 한명을 보면 결코 나쁜사람들이 아니다. 똑똑하고 성실하며 예의바른 사람이다. 정말이다. 난 나름 저들을 잘 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저렇게 모아놓고 자파만의 구호와 행동방침으로 무장하니, 이건 뭐 호남 민주당 난닝구 이상이다. 집단이 개인을 키우는 것이 아닌, 조직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켜버렸다. 


이번 사태는 어떻게 될까? 정당운동 좀 해본 사람이라면 이렇게까지 서로의 감정선이 벌어지면 이건 사실상 수습 불가능 한 상태라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진성당원제의 약점은 경기동부와 같은 깡패집단 앞에서 무력해진다는 것이다. 26%만 장악하면 당의 모든 일을 '당원의 이름'으로 해낼 수 있다. 나머지 74%의 당원은? 흐물흐물 개별화되서 각계격파만 당하고 있다. 

진보당 지역위별로 많으면 1000명, 적으면 200명 수준의 당원들이 있다. 까놓고 좀 작은 지역구의 경우 자파사람 200명만 끌고 들어가면 '듣보잡'도 국회의원 후보될 수 있다. 그리고 나머지 당원들은 사실상 무관심하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 이거 외엔 방법이 없다. 74%의 당원들이 깨어있고, 저들의 난횡을 조직적으로 감시하는 것.. 아 피곤하다. 

진보, 그런게 아직도 남아 있다면, 남은 선수끼리 가자

오늘 통합진보당의 중앙위원회는 영화 어벤저스를 연상케하는 공중부양으로 막을 내렸다. 공중부양의 원조 강달프까지 멱살을 잡히는 신세로 전락해 버렸으니, 이제부터 통합진보당은 '용팔이 당'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 그나마 심상정 대표는 유시민 대표가 안경이 부서질 정도로 대신 맞아준 덕분에 큰 부상이 없다고 하며, 조준호 대표는 옷이 다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한다. 하긴 주사파들이 자기들이 쪽수가 많으면 민주주의를 강변하며 다수결로 밀어붙이고 반대의견은 아예 발언권도 묵살하다가 쪽수가 발리면 깡패로 돌변하는 역사야 수십년 된 일이니까.
그들의 종주국인 북한이 딱 그렇다. 이미 국가대표팀이 심판을 폭행하기로는 아시아 최강을 자랑하는 북한이 아니던가? 1982년 뉴델리 아시안 게임에서 북한 국가대표팀이 심판을 집단폭행해서 결국 AFC중징계를 받아 대회 참가를 몇년간 못하고, 그날로 북한 축구의 기세가 꺾인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더니 그 버릇 남 못준다고 지난해인가는 여자축구국대가 심판을 폭행해서 경기를 몰수당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결국은 몰락이다. 
편파적이든 아니든 심판은 심판이다. 심판을 폭행하는 순간 그것은 이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 되며, 그 댓가는 추방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공놀이에서조차 그런데,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정치는 오죽하겠는가? 그래서 계파 갈등이 심각한 운동권 단체들에서 그 과격한 활동가들도  "의장 편파적이다!"라면 항의는 할지언정 위원장이나 대표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었다. 이것은 하나의 금도였던 것이다. 일단 이 룰을 깨고 나면 그 다음에 "심판이 편파 판정이었느니 어쩌니"하는 말들은 다 소용 없는 일이다. 
예컨대 위의 북한 여자 축구팀의 경우 실제 심판이 중국편을 노골적으로 들었고, 그게 위원회에서도 인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려진 징계는 해제되지 않았다. 심판이 편파적으로 행동한 것은 심판이 징계받을 일이지만, 심판을 구타한 행위는 아예 이 경기의 존립을 뒤흔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사진을 보라. 누가 보면 유신시절에 심상정을 체포하려는 경찰에 맞서 유시민과 몇몇 사수대가 결사적으로 가로 막는 것으로 보인다. 누가 이걸 소위 진보진영의 "진성 당원"이 자기들 당 대표를 구타하려는 것으로 보겠는가? 게다가 저 주사파 놈들은 걸핏하면 여성을 폭행하던 무리들이 아니던가? 오늘 아주 큰 일 날 뻔 했다. 간교한 이정희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대표를 사퇴한다고 하고는 회의장을 나가버렸다. 일단 이런 행위를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말이 필요없다. 그냥 부도덕한 집단이 되는 것이다. 이제 진보진영은 구구절절 사연이야 뭐가 되었건 간에 이들을 떼어 놓지 않고서는 그냥 공멸하게 생겼다.  저들은 이미 실격했으며, 경기장에서 퇴장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

박근혜한테 배워야 한다. 다음의 그림을 보자.


이건 지난해부터 나꼼수 등의 꾸준한 노력으로 조성된 원래의 전선이다. 가카의 맹활약 덕분에 보수는 더럽고, 낡고, 부패하고, 폭력적인 세력으로 국민의 공분을 사는 집단이 되었다. 그리고 국민은 그 반대급부로 진보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실상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무기력한 전교조가 호의적인 대접을 받게되는 등 변화가 일어났다. 이게 두려웠던 보수는 대표적인 진보인사 하나를 골라서 파렴치범임을 밝혀서 "네들도 똑같아!" 작전을 쓰려고 했는데, 하필 고른 타겟이 곽노현이었다. 

사실 곽노현 교육감이 실제로 단일화 과정에서 어떤 합의나 지시를 했을 경우, 또 박명기 교육감에게 준 2억 중 수상한 돈이 한푼이라도 섞여있을 경우 보수의 이 작전은 멋지게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이게 두려워서 진중권 등은 미리 꼬리 자르고 가자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털어 먼지내기에 실패했고, 설사 곽교육감이 직을 상실하게 되더라도 이는 이상한 법조항과 해석 때문이지 어떤 부정이 있어서는 아니라는 인식이 심지어는 법관들에게까지 확인되었다. 이건 실패다. 이때 많은 진보진영 활동가들이 곽감을 믿고 간것은 단지 우리편이라는 진영의식 때문이 아니라 그가 그 동안 살아왔던 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곽교육감이 횡령이나 뇌물수수로 걸려들었다면 아마 구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곽감 낚아 진보 몰살시키기 작전이 실패하자 박근혜는 대담한 작전을 내세운다. 그것은 바로 보수 분할 및 도마뱀 꼬리 자르기다.

보수진영에서 앞의 그림의 부정적인 평가의 주된 원인이 되는 집단을 과감하게 잘라서 "쟤들 우리편 아니야" 해 버린 것이다. 즉 가카를 공주와 완전히 분리시킨뒤 가카를 보수진영에서 배제시켜 버린 것이다. 가카 매립작언이다. 이렇게 하고서는 진보진영의 일부 부정적인 집단의 행동을 부각시키면서 진보진영은 이명박진영처럼 무원칙하다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 MB심판"을 몰아 붙였으니 야권의 전략도 참으로 순진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진보진영은 다음과 같이 대처해야 한다. 보수쪽이 가카라인을 배제하고, 즉 불순물을 제거하고 포장을 한다면, 진보진영 역시 그런 문제의 근원이 되는 세력은 배제하고 나머지만으로 상대해야 하다. 그래서 저쪽에서 어쩌구저쩌구 그러면 "아, 걔들이 진보였어? 우리랑은 상관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포지션을 잡아야 한다. 주사파든 경기동부든 이제 그들은 그런 도마뱀 꼬리의 위치, 그것도 썩어서 파상풍을 옮길수 있는 꼬리의 위치가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잘라야 한다. 

주사파들 자신이 만약 운동가로서 일말의 양심과 전술감각이 있다면 자기들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국면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나가야 한다. 오늘은 4.11 총선 패배보다도 더 절망적인 날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간첩, 종북으로 몰고갈때는 "냉전적 사고방식!" 이러면서 맞삿대질이 가능하다. 하지만 "무능, 부실, 부정"으로 몰고가면서 여기어 플러스 알파로 간첩, 종북을 버무린다면 온국민의 외면과 증오를 받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 외면과 증오를 진보진영 전체가 다 받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들이 다 받고, 진보진영은 그것과 무관하게 조치할 것인가, 여기에 주사파들의 운동가로서의 양심이 걸려 있다.  부디 전향적인 선택을 하기 바란다.

2012. 5. 12.

이른바 애국가, 국민의례 문제에 대하여

최근 일주일 동안 당권파(이것 참 애매한 이름이다. 주사파를 주사파라 대놓고 부르지 못하니 이런 이상한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의 폭력적 조직운영에 맞선 유시민의 모습은 마치 민주주의의 수호자 같아 보였다. 그런데 그런 유시민의 모습에 균열을 일으킨 엉뚱한 발언이 바로 "애국가" 발언이다. 물론 나는 주사파들이 애국가를 거부하는 이유를 잘 알며(아침은 빛나라 노래가 아니라서 거부하는 것이리라), 유시민이 그것에 대해 괘씸히 여기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애국가를 부르라고 강요할수는 없다.

나는 전교조내 PD(교찾사)와는 각을 서고 있는 입장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PD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국민의례, 애국가 제창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국민의례 대신 소위 민중의례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나는 국민의례때 애국가 제창을 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교조나 민주노총등의 민중의례때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으며 집회때 구호를 제창하지 않으며 팔뚝질도 하지 않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초등학교 이래 나는 단 한번도 노래를 제창하거나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유는 별거 없다. 그냥 싫었다. 모두가 똑같이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싫었다.

즉 나는 국민의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일체의 의례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것이다. 조직이나 공동체의 어떤 상징을 숭상하는 행위는 그 조직이나 공동체를 그 자체 하나의 숭배의 대상으로 바꾸어버리는 그리하여 구성원 개인의 가치를 조직과 공동체의 가치를 위해 언제든 희생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의 씨앗이 되는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시민들의 연결망을 뜻하는 것이지 시민들의 숭배를 받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국기나 국가를 사랑할수는 있지만 거기에 경례를 하거나 그것을 마치 성가곡처럼 숭상할 의무는 없다. 마찬가지로 전교조는 참교육을 꿈꾸었던 교사들의 연결망이지 그 자체가 하나의 존재, 실체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참교육의 함성으로'따위의 노래를 부르면서 결의를 다질것을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사실 국가를 제창하는 행위 자체가 군국주의 파시즘의 잔재이다. 일본만 하더라도 뉴라이트 계열의 시장이 장악한 지역에서만 국가제창을 하고 있으며, 양심적인 교사들은 징계를 불사하고 입학식 졸업식에서 국가제창을 거부하고 있다.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는 정도로 충분하며, 국가를 연주하거나 재생할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냥 생략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군다나 정당의 운영위원회 등 대외적인 공식의전이 아닌 다음에야 무슨 의례를 할 필요가 없다. 단, 국민의례를 안하면서 민중의례를 하거나 해서는 안된다. 그냥 심플하게 의례 생략하고 회의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유시민의 발언은 다소 실망스럽다. 다만 대외적인 행사에서 애국가를 연주하거나 제창하지 않는 모습을 가지고 굳이 정치적 손실을 볼 이유가 있느냐는 전략적 관점에서의 발언이라면 참작할 점이 있다. 하지만 유시민이 구태여 진보당이라는 이름이 붙은 정당을 키워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그리고 참여민주주의의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고 자부한다면, 국기, 국가에 대한 신성화, 그리고 여기에 기반한 각종 집단적 행위와 전례에 대해서는 털어버려야 할 것이다. 거짓말도 100번하면 믿게 되듯이 집체행동도 계속 반복하면 전체주의 사고방식이 슬금슬금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정당이 나라의 상징을 완전히 나 몰라라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진보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정치집단이라면 민중의례같은  감동도 아름다움도 없는 의식 말고, 국민의례를 대신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의례, 그러면서도 전체주의적 분위가와 무관한 의례를 하나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굳이 국기, 국가가 들어가야 의례인 것은 아님도 고려하면서.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2012. 5. 9.

나의 80년대 NL PD 경험기 (2) PD라고 까방권 아님

제목은 NL PD 경험기지만 이번 포스팅의 실제 내용은 내가 NL을 나온 다음의 이야기니까 PD에 대한 것이다. 이는 지난번 포스팅이 NL만 비판하고 은근히 PD를 옹호하는 종파주의적인 글이라는 항의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나는 절대 PD에게 까방권을 주지 않았다. 실제로 전교조 활동가로서 나는 족보는 PD에 두고서 활동은 NL과 가까운 참실련 언저리에서 하고 있어서 PD성향의 교찾사로부터 배신자급 비난을 받으면서 정작 참실련에도 온전하게 어울리지 못하고 있는 처지다. 어쩌면 그런 경계인으로서의 위치가 나의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시야를 유지시키고 있는건지도 모른다.

흔히 PD라고 하지만 실제 내가 그쪽 그룹에 포섭(?)된 1988년에는 CA 그룹이라 불렸고, CA그룹이 나중에 ND와 PD로 갈라졌다. 그리고 PD도 하나의 단일 정파가 아니라 반제반파쇼PD, 여명, 노동계급 등의 정파들의 느슨한 연합이었다. 하지만 서로간에 거의 인격말살적인 논쟁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NL을 칠때보다 결코 더 약하지 않게 자기들끼리 치고 받았다) 이들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CA그룹에서 흘러나온 정파들, 그리고 그와 유사한 CPC그룹에서 흘러나온 정파들(CPC가 뭐냐고? 너무 깊게 파지는 말자. 지면이 한정되어 있으니. 그냥 그런 사람들 있었나보다 하자)을 가리지 말고 그냥 PD라고 통칭하자.

PD의 가장 큰 특징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기반한 혁명투쟁을 꿈꾸고 있었다는 것이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자면 혁명 전위당(전위조직)이 구성되고, 이들의 철저하고 과학적인 전략 전술에 의해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한 혁명이 성공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NL과 PD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민족 대 계급, 대중 대 전위, 품성 대 과학 인 것이다.

따라서 PD는 NL과 달리 빡치고 울분을 토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설사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착취에 빡치고 흥분할 수 있지만, 과학적인 전략 전술을 통해 사회주의로의 경로를 세밀하게 밝혀내야 할 '전위'들은 철저히 냉정하고 합리적이라야 했다. 이건 레닌의 영향력 있었던 책 '무엇을 할것인가?'(What is to be done이나 무엇이 되었어야 했나 아닌가? 여튼 번역본 이름은 저랬다)에서 비롯된 것인다.

여기에 따르면 착취받고 억압받는 자들이 지배자들에 맞서서 저항하는 '자생성'은 그 자체로는 '사회주의'로 나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분노와 직관에 의존한 투쟁은 먼 미래를 설계해 낼수 없기 때문에 작은 목표라도 달성하면 쉽사리 사그라들며, 지배계급의 사탕발림, 즉 개량 시도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을 조합주의라고 부른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자기 공장, 자기 조합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를 폐절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워야 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하지만 이 책무는 자본가들에 대해 빡친다고 해서 깨우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과학적 사회주의'에 대한 의식적인 학습을 통해서만 깨우칠수 있다. 이 깨우침은 개별 공장, 노조 단위에서 천만번 투쟁한다 한 들 생겨나지 않으며, 노동계급 외부에서 유입, 즉 교육되어야 한다. 이게 당시 PD들은 노래처럼 외우고 다녔던 자생성과 의식성 테제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투쟁은 실제 투쟁의 힘을 발휘할 노동계급(주로 노동조합)과 이들에게 과학적 사회주의의 이론과 전망을 수혈해줄 사회주의 지식집단(전위당)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서만 승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학생운동권의 PD들은 자신들을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노동자가 아니니 당연히 전위다. 그런데 PD의 전위는 NL의 전위처럼 먼저 각성하고 먼저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싸움의 전망과 미래사회에 대한 설계도를 그리고 그 경로를 과학적으로 제시해 줄 수 있는 존재다. 따라서 PD의 전위는 빡 세게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졸라 공부하는 사람이라야 한다. 한국 근현대사에 밝은 사람들이라면 87년 789 대투쟁이 바로 PD가 등장하게 된 배경임을 이론만으로도 바로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PD의 운동관 조직관은 학생회를 대하는 태도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PD들은 공식적인 학생회 외에 일종의 지하 학생회인 'PD건추'라는 지하당을 세웠다. 나는 당시 'PD건추'의 노학동맹위원장이라는 무시무시한 타이틀을 강제로 부여받았다. 각 단과대학별로 PD세포들을 건설하였고, 각 단과대학 PD대표들이 PD건추 중앙 회의에 참석했다. 이 중앙회의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조금만 덜 투쟁적인 안건을 제시하면 즉시 "개량주의자!" "수정주의자!"라는 비난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그래도 NL보다 조금 나은 점이 있다면 학번이고 뭐고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봉건적 위계서열은 벗어났다고 할까? 제 아무리 명망가로 높은 존경을 받던 선배라도 일단 "개량주의자!" 소리 듣기 시작하면 그날로 실각이었다. 그러니 이 중앙회의는 저마다 자신의 선명성을 강조하는 자리가 되었고, 결국 졸라 치열하고 과격하고 심지어 자기파멸적인 투쟁지침이 채택되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여기에서 총 지침이 확정되면 각자 자기 단과대학으로 가서 단과대 학생회를 이 지침에 따라 움직이도록 프락했다. 물론 이들은 각 단과대학에서 다수의견이 아니었지만, 소수파로서 다수파를 주도하는 능력은 당시 PD활동가에게는 생명과 같은 능력이었다. NL10명과 PD 1명이 같이 회의를 해도 언제나 말하는 쪽은 PD였으니까. 말로 해서 안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뜻을 관철시킨다. 혁명을 위한 길에는 모든 행위가 '전술'로서 정당화된다. '품성'(?) 이런건 PD에게는 개풀뜯어먹는 소리다. 혁명가의 유일한 품성은 싸움을 이기게 해주는 능력이지 다른 거 아니니까.

만약 5월 5일 통합진보당 운영위원회 실력저지가 주사파가 아니라 PD가 시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운영위 표결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욕지거리를 하는게 아니라 일단 단상부터 점거하고 유시민 감금해서 아무데도 못가게 했을테니...부끄럽지만 그게 전형적인 PD방식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게 경기동부연합 주사파가 민노당이나 통진당을 말아먹은 방식이 딱 이랬다는 것이다. 완전 피디건추 방식이다. 다만 경동연은 쪽수로 밀어붙이고 PD는 말빨로 밀어붙인게 다르달까?)

이러한 PD들의 등장은 당시 학생운동권의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일반적인 자유민주주의나 감상적 민족주의 수준을 넘어 노동자, 빈민들의 투쟁과 학생운동의 동맹이 시도되었다. 나 역시 구로공단을 집처럼 드나들었고 '슈어 프로덕츠'라는 공장에 들어가서 파업하는 노동자들과 같이 먹고자고 하면서 싸움을 이끌었고(내 혼자 생각에 ^^), 구사대와 들이 받고, 사당동, 신림동, 서초동, 도곡동, 봉천동 등지의 판자촌에 공부방을 세운 뒤 빈민들을 각성시키려고 했으며, 철거가 개시되자 철거민들과 같이 철거용역들과 박이 터지게(정말 박이 터졌다) 싸웠다.

당시 내 자취방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걸핏하면 들이닥쳐서 칼잠을 자곤 했다. 그 중에는 아직도 내 인생에 큰 짐이 된 친구도 있다. D산업이라는 공장의 노동자였는데, 나보다 두어살 어렸다. 그 친구는 나의 마르크스 강의(?)에 너무도 감격한 나머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세상을 절딴내는데 평생을 바치기로 젊은 혈기에 같이 맹세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마르크스주의자로 사는 것과 노동자가 마르크스주의자로 사는 것은 그 결이 달랐다. 결국 그 친구는 회사에서 해고되었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다른 회사에도 쉽게 취직하지 못했다. 그리고 몇년 뒤에는 영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이 사건은 PD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었고 나 역시 가지고 있었던 관념적인 과격성과 이상주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이때 부터 나는 PD적 경향만 유지한체 PD조직 자체와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수배자 신세가 되었다. 여기서도 PD조직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데, 당시 안기부(지금의 국정원)는 PD를 일망타진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당시 정부는 공안부는 주사파, 안기부는 PD를 조지는 환상의 분업이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안기부 요원들의 꿈은 단병호를 잡는 것이었다.). PD건추에서는 여기에서 조직을 지키기 위해 가짜 그림을 그렸다. 가짜 지도부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가짜 지도자가 체포되었고 적당한 고문 끝에 가짜 지도부 요원들을 불었다. 빌어먹을 나는 그 가짜 조직도에서 무려 PD서열 3위의 초 거물이 되어 있었다. 당시 각 단과대학 책임자들은 죄다 학생회장에 당선되었는데, 나만 사범대 학생회장 선거에 낙선하고 말았으니 아마 조직에서는 나를 도마뱀 꼬리로 배치한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두달 도바리를 쳤다. 대구 경북 등지까지 도바리 쳐서 하양에 있는 농장에서 돼지 똥치우는 인부로 지냈다. 그런데  조직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에서도 '집시법 위반'으로 소환장을 보냈으니 대처하란다. 젠장 더블수배다. 그런데 묘수가 떠올랐다. 당시 경찰과 안기부는 절대 정보를 교환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안기부에 잡혀가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경찰에 체포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경찰서에 자수해버렸다. 조직사건에 연루되는 쪽 보다는 집회와 시위법률 위반으로 걸리는 쪽이 당연히 타격이 적었으니 합리적인 선택이라고나 할까? 어찌어찌하여 간신히 기소유예 정도로 마무리 되어 별은 달지 않게 되었다. 당시 경찰들은 내 얼굴이 선명하게 찍힌 채증사진을 들이댔지만 나는 그게 누군지 모른다고 버텼고, 다른 건으로 체포되어 온 후배들에게도 "이 새끼 권재원 맞지?"라고 다그친 모양인데, 그들도 꿋꿋하게 "첨 보는 사람인데예?" 하고 버텼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들이 받은 고문이 푸시업과 오리걸음이었다니 나중에 마주앉아서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가난한 사람들, 노동자들을 선동질하고 다니는 PD들은 지배층들에게 실질적인 위협이었다. 이들은 품성론 따위의 세례를 거부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싸움과 갈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사실은 즐기는 경향도 있었다. 한 마디로 PD는 싸움꾼이었다. 언제 어디서라도 대립과 갈등의 지점을 찾아내었다. 그래서 노동자, 도시빈민들을 어떻게든 싸움터로 끌고와서 들이 받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게 PD를 영원히 소수파로 머무르게 만들었다. 그들은 싸움을 좋아했고, 싸울 상대가 마땅치 않을때는 자기들끼리라도 싸웠기 때문이다. PD가 10명이 모여 있으면 10개의 정파가 생긴다고 할 정도로 이들은 어디서나 특히 자기들끼리 싸웠다. 처음에는 노선에 대한 논쟁이었지만, 결국 사람의 일인지라 감정적인 대립까지 번졌다. 그래서 PD는 1989년 처음 등장해서 거대한 정파로 자리잡던 그 때 이외에는 한번도 단일한 정파를 이루지 못했다. 경기동부연합, 울산연합, 나아가 전국연합, 이런 식의 조직은 PD의 성향상 불가능했다. 그 정도 규모가 모이면 서로 투쟁방향의 올바름을 놓고 다투는 소리로 밤을 지새워야 했으니. 그러다 보면 그 속에서 "네가 개량이다." "너는 좌익 모헙주의자다!" "에잇 수정주의자" "뭐라고 블랑키스트!" 등의 소리가 난무했으리라.

게다가 PD들은 모두 나름 치열한 이론학습을 통해 성장한 과학적 사회주의 전위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모두 자신이 이론가이며 지도하는 위치에 있다고 여겼고,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용어로 논쟁하는 것을 즐겼다. 그러다 결국 이들은 대중을 상대로 말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겠다. 89년 전노협, 전교조의 등장으로 노동운동이 활발해지자 드디어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시작되었으니, 전위답게  우리는 단위 조합의 경제투쟁이 아니라 지배계급 전체와 싸우는 정치투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문제는 이 말을 공단에 가서 직접 그대로 했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출퇴근하는 길목에 가서 "해방의 길"이라는 참 노골적인 제목의 유인물을 뿌리면서 "이제 노동자들이 주인되는 사회주의 세상을 건설합시다! 자본주의 질서를 폐절하고 국가기구를 장악합시다!" 하고 외쳐대었던 것이다. 당연히 아무도 듣지 않았고, 심지어 누군가가 신고까지 해서 죽도록 달려야 했다. 이미 출근시간이 지난 공단에는 공장 벽들만 몇 킬로미터에 걸쳐 뻗어 있었고, 인적이라고는 찾을 길이 없었고 어디 숨을데도 없었다. 결국 전투복을 입고 무장을 해서 우리보다 더 빨리 지쳐버린 경찰들이 추적을 포기할때까지 얼마나 달렸는지 모른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내가 다소 PD에게 온정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그 속에서, 그리고 지금까지 서술에서 PD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대체로 PD들은 순수하다. PD조직에서는 슬로건 잘 만들고 팜플렛 잘 만드는 사람이 왕이다. 그러니 술 잘받아주고 인간관계 잘 맺어서 중책에 올라간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조직에서 크고 싶으면 글을 잘 쓰던가 싸움을 잘 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소위 인간미는 찾기 어렵게 된다. 까칠하고 오만하고 대중들이 다가서기 어렵고, 대중들에게 다가서려 하지도 않는 그런 인간이 된다. 전위의식에 쩔어서 어딜 가나 지도하려 들고 지적질 하려드는 그런 버릇도 생긴다. 사상투쟁이 버릇이 되어서 상대가 무슨 말을 해도 꼬투리를 잡아서 언쟁을 벌이는 그런 버릇이 생길수도 있다. 비단 진중권 뿐 아니라 PD출신들은 대체로 모두까기 인형이다.

이런 부분들은 PD출신 활동가들은 깊이 되새겨야 한다. NL들의 패권주의가 잘못된 것은 사실이다. 또 NL의 주장이 낡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째서 지식인 집단인 전교조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운동조직, 단체에서 NL들에게 압도적인 다수를 내어 주었는지 되새겨봐야 한다. '소수파'라는 것으로 핑계를 삼아서는 안된다. '소수파'가 된 것에도 책임을 져야하며, 번번히 소수파로 밀려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면 분명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까칠한 PD는 이런거 잘 인정 안한다. 심지어 소수파인 상황을 즐기는듯해 보이기도 하며, 설사 다수파가 된다 하더라도 그럼 자기들끼리 싸워서 반드시 두 세개 파로 찢어진다. 그리고는 마르크스 레닌은 커녕 푸코, 들뢰즈, 네그리까지 섞어가며 졸라 어려운 말로 왜 찢어져야 했는지를 잔뜩 설명한다. 그런 말 듣고싶어하는 사람은 자기들 뿐이다. 참으로 고질적인 문제다.

주인장이 쓴 책들  셀프 스폰서: 부정변증법의 저서들

2012. 5. 6.

나의 80년대 엔엘(NL)과 피디(PD) 경험기

80년대의 망령이 아직까지 살아남아 결국 진보의 발목을 붙잡아 버리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명색이 국회 제 3당이라는 공당에서 이미 역사적으로 내용적으로 완전히 소멸되어야 마땅한 옛 정파놀음이 재현되고 있다. 나는 엔엘의 쪽수로 밀어붙이기는 잘알고 있었고, 그들의 낡은 정세관과 도저히 국민과 호흡할수 없는 대북관을 우려하긴 했지만, 주둥이만 열면 품성 타령하는 이들이 이렇게 후안무치하게 막장으로 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다소 찝찝한 맛은 남지만 그래도 노, 심, 그리고 서기호 변호사 등을 지원하자는 뜻에서 그리고 아무리 엔엘 패권주의자들이 패악질을 해도 염치는 있겠지 싶어서 가장 결정적으로는 진보당의 의석이 크게 늘어나서 메이저 정당의 꼴을 갖추면 경기동부연합이 오히려 소수파가 될 가능성이 클것이라 보아 진보당을 선택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서영석 씨 말대로 엔엘 주사파들의 서기호 끼워팔기에 낚인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아무리 그래도 엔엘들이 24년이나 지났으니 뭔가 배우고 바뀐 게 있을 것이리라 기대했건만 결국 또 속고 말았다. 하긴 2006-2007년에도 참실련에게 속아서 선거공보에 폼날 말들 실컷 만들어줘서 교찾사 이기게 만들어 줬더니만, 정작 선거공보의 내용은 하나도 실천 안해서 병신된 적이 있었다. 역시 그 버릇은 절대 남 주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1987년에는 엔엘에 속해있다가 1988년 부터 피디로 옮겨갔기 때문에 두 정파의 특징에 대해 모두 아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최근 이 정파간의 갈등에 어리둥절할 일반 시민들을 위해 경험담을 좀 풀어보려 한다. 무려 25년전의 청산되었어야 할 낡은 이념 서클들이니 새누리당만도 못한 사실은 둘 다 청산되어야 할 것들이지만, 그래도 청산되어야 한다면 엔엘이 먼저 청산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미리 내린 결론이다. 그 이유는 엔엘은 1980년대에도 이미 낡고 시대에 뒤떨어진 집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처음에는 엔엘이었냐고? 처음 엔엘에 몸담았던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원래 엔엘이 더 흔했으니까. 운동권이다 싶으면 일단 엔엘일 정도로 당시에도 엔엘과 피디의 쪽수에는 차이가 많았다.

엔엘이 더 흔한 이유도 별 대단한 것 없다. 엔엘은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한국 근현대사 책 몇 권 읽고서 "아 빡친다. 식민지의 설움이여!" "아, 갈라진 내 조국이여!" 하고 울분만 토하면 되었으니까. 그리고 "모든게 미국과 그 앞잡이 때문이다.!"하고 피끓는 증오심을 드러내며 소주잔만 탁 내려 놓으면 되었으니까. 그러니 입시공부하느라 기본교양이 부족한 사실은 청소년에 불과한 한국 대학생들이 이런 감정 놀음에 울컥하며 빠져드는 것은 신기할 것도 없다. 게다가 대학생의 특권도 인정해준다. 대학 졸업하고 그럴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것도 "진보적 사회진출"이라 불렀고, 가부장적인 행동도 "민족 정서"로 합리화 시켜 주었으니 사실 엔엘에서 학생운동을 할때는 존재론적인 고뇌는 그렇게 많이 할 필요가 없었다. 피끓는 청년학도면 되니까. 게다가 민족의식, 애국심 따위의 덕목은 놀랍게도 박정희 덕분에 초, 중등학교때 귀에 못히 박힌 친근한 덕목들이었다. 그러니 박정희가 펼쳐놓은 이순신장군, 김구선생 신성화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일본놈에 대한 증오를 미국놈에게로만 바꾸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엔엘 선배들은 듣기 좋은말, 들으면 청소년의 감정에 확 와 닿는 말을 했고, 술도 잘 사주었고, 핀잔도 잘 주지 않았고,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즉 품성이 좋았다. 그러니 주변에 학생들이 모여들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엔엘이 되었다. 이렇게 엔엘은 강고한 조직망을 갖추기 보다는 인맥과 알음알음으로 엮어나가는 재주가 있었다. 사실 이건 일종의 다단계 판매업자들의 기술인데, 이걸 그들은 대중조직 사업이라 불렀다.

반면 피디(처음에는 CA) 선배들은 매우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들이었다. 언제나 어려운 말을 했고, 눈빛은 너무 결연해서 잘못 말 걸었다가는 쳐 맞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자꾸 어려운 공부를 하자고 하고, 학생의 기득권을 놓고 노동자가 되는 것 때문에 존재론적 고뇌를 하게 만들었다. 한 마디로 같이 엮였다가는 신세 완전히 망칠 것 같은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철저히 조직적이었다. 자기들끼리 모였고, 자기들끼리 미리 의사를 결정한 다음에 공식적인 협의체에 들어갔다. 그 비밀조직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듯 오만하기 짝이 없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대중들을 살짝 경멸하는 느낌마저 있었다. 그러니 대학 1학년때부터 바로 PD되는 녀석들은 매우 드물었다.

NL과 PD의 차이를 한 마디로 보여주자면, 어떤 중요한 집회에 친구를 동원할때 엔엘은 "집회 같이 갈거지?" 하고 친근히 종용하며, 피디는 "집회의 정당성"에 대하여 강의를 한다.

그럼 왜 나는 엔엘을 집어 치웠는가? 1980년대에도 이미 말이 안되는 주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깊게 들어가자면 끝이 없는데, 그 대표적인 엉터리 이론중에 식반론이라고 있다. 식민지 반자본주의(반봉건주의)론이라는 건데,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기 때문에 정상적인 자본주의로 발전하지 못하고 봉건적인 모순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기형적 사회라는 것이 그 주장의 골자다. 따라서 한국의 당면한 변혁과제는 우선 미국놈을 몰아내고, 그 다음에 자주적인 자본주의 근대화를 이루고, 그 다음에 노동자 계급의 사회주의로 나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이 중 미국놈 몰아내는 단계를 먼저 확립한 선진사회로서 이미 사회주의에 들어선 우리의 지향점이라고 제시되었다.

그런데 1987-1988년 한국 사회는 어느모로 보나 반봉건사회라고 보기는 어려웠고, 전형적인 근대 자본주의 사회로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국이 일본처럼 식민통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도 박약했고,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북한의 모습은 어디를 보아도 평등한 사회주의 사회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막말로 김일성에 비하면 전두환은 훨씬 착한 편이라고 여겨졌고, 북한의 지배를 받을 바에는 차라리 미국의 식민지로 남는게 났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아, 그 품성 좋던 선배가 별안간 악마로 변했다. 너무도 분노해서 부들부들 떨기까지 했다. 아무리 품성 좋은 엔엘 활동가라 할지라도 "나는 부칸이 싫어요" 하는 순간 악마로 돌변하는 데는 10명이면 10명 모두 1초면 충분했고, 예외는 없었다.

그러다가 1988년 3월, 아크로폴리스라 부르는 학내 광장에서 집회가 열렸다. 전방입소훈련 반대 집회였는데(놀랍게도 당시에는 대학생들을 1주일씩 전방 부대에 보내서 군사훈련을 시켰다. 참 대단한 시대였다), 슬로건은 "양키 용병 교육 반대"였다. 그러니까 대학생에게 강제로 군사훈련을 시키는게 문제가 아니라 남한의 군대는 양키용병이기 때문에 그 훈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하긴 그렇게 주장할수밖에 없을 것이, 온 국민을 강제군사훈련에 동원하다시피 하는 부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선군정치의 부칸을 부정할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 그들의 대갈빡 속에 든 생각은 대학생이 군사훈련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다만 미국이 지배하는 남한군이 아니라 자주적인 부칸군이라는 전제하에서.

듣다못한 어느 학생이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 "전방입소 군사훈련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양키 용병교육 이런게 아니라 이 제도가 비민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을 병영화 하는 그런 반민주적 제도의 철폐를 요구하는 맥락 속에서 전방입소 훈련을 거부해야 한다. 게다가 많은 국민들은 아직도 군사훈련을 거부한다고 하면, 북한이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무슨 소리냐 라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마무리 되지 못했다. "북한이 쳐들어올지 모르는데...."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사방팔방에서 "품성이 훌륭한" 엔엘 학생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그 학생을 집단 구타했기 때문이다. 조 대표의 부정경선 발표를 심한 욕설로 저지하고, 심지어 운영위원회를 마치 어버이 연합처럼 깽판쳐서 가로막는 경기동부연합 청년들의 모양을 보니 엔엘은 저 24년전 버릇을 전혀 버리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바로 그날로 나와 엔엘의 관계는 끝났다. 이미 1988년에도 엔엘은 민주주의와는 영 거리가 멀고, 다수가 형성되었다 하면 자기들과 뜻이 다른 소수를 주먹과 발길질로 몰아내는 그런 집단이었던 것이다. 저 야만적인 모습을 견딜수 없었던 나는 몰매맞던 학생을 구하려고 소리쳤고, 다행이 이성을 갖고 있던 대다수의 일반학우들의 제지로 엔엘들의 만행은 중단되었다. 나는 그때 6.25 남침도, 도끼만행사건도, 아웅산테러도, 기타 북한의 수많은 만행도 반공교육 때문에 조작된것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들은 민주화 운동권이 아니며, 다만 북한에 동조할 세력을 늘리기 위해 당시 인기가 많았던 민주화 슬로건에 편승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관용과 부드러움은 "부칸을 비판하지 않는 한도내"에서의 관용이었으며, 부칸과 관계되는 사안, 그리고 자신들의 주도권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철저히 불관용적이고 야만적이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나이까지 처먹어서 꼰대가 되었다면 과연 어떤 인간이 되었을지 안봐도 3만리 아닌가?

그렇게 몰매맞던 학생을 구하고 나도 마이크를 잡고 뭐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엔엘 학생들이 집단구타대신 큰 소리로 "반전반핵가"를 부르며 발언을 방해했던 기억은 난다. 몰매맞던 학생은 바로 인접한 학과인 역사교육과 과회장이었으며,그와 나는 금새 의기투합했다. 그는 2학기때 PD진영의 후보로 나와서 사범대 학생회장으로 당선되었는데, 나는 그 옆에서 북을 치며 문선대 노릇을 했다. 알고보니 그 역시 원래 엔엘이었다가 건대사태 이후 환멸을 느끼고 나온 케이스였다.

이렇게 나의 PD시절이 시작되었다. PD들의 삶은 자뭇 비장했다. 술도 별로 안 마시고, 세미나는 징그럽게 많이하고, 문건들 쌓아놓고 밤새도록 회의하기 일쑤였다.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 유물론', '정치경제학'으로 이어지는 입문서에 이어서 '공산당 선언', '공상에서 과학으로', '고타강령 비판'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독일이데올로기', '정치경제학 비판 강요', '자본론' 등 마르크스의 저작,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무엇을 할 것인가?','국가와 혁명',  '일보전진 이보후퇴', '임박한 파국' 등의 레닌의 저서들을 숨가쁘게 읽고 토론했다. 당시에는 다들 금서였기 때문에 번역본이 없으면 몰래 입수된 원서를 읽었고, 따라서 독어과인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노동자 계급의 전위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회사원이 되어 부르주아의 돈을 벌어주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빛나는 국립대 졸업장이 주는 기득권을 버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PD그룹 내부에서는 늘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엔엘처럼 진보적 사회진출로 모두 미화할수는 없었다. 그나마 사범대학에 다닌 나는 교육운동이라는 영역으로 진출한다는 미명하에 임용고시를 보았지만... 몰매맞았던 학형은 끝내 교직진출을 거부하고 노동운동판에 뛰어들었다가 뒤늦게 교직으로 진출했다.

선후배간에도 가차없었다. 아무리 선배라 해도 조금이라도 기회주의적이거나 개량주의적인 헌행을 보이면 사정없는 비판의 칼날이 날아왔다. 한 후배는 모든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극좌 모험주의자라면서 면박에 가까운 비판을 했고, 나 역시 그 정도 수준의 반격을 했다.  남자친구가 다소 중도파의 포지션을 취하자 가차없이 결별을 선언하는 여학생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삭막한 분위기 속에서 운동을 했으니, PD활동가들은 자연스레 언제나 심각하고 찌푸린 얼굴을 하게 되었으며, 늘 어렵고 까칠하게 말하고, 오만하게 행동했다. 그러니 엔엘에 비해 쪽수가 발리는 건 당연했다. 그래서인지 PD들은 소위 커트라인 높은 대학에서나 집단을 이룰 정도의 숫자가 나왔고, 지방에서는 특히 호남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마 도시의 경험은 엔엘의 식반론을 공허한 담론으로 여기게 만들지만, 낙후된 지역의 경우는 오히려 식반론이 그럴듯해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가난한 농민들도 대개는 자영농이라는 사실은 뭘로 설명할런지....

여튼 결론은 엔엘은 다수파가 되고 피디는 소수파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 심각히 여기지는 않았다. 엔엘은 단지 대중주의자에 불과하고 우리는 빛나는 전위조직이니 소수라는 것이 오히려 더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 자랑스러움과 확신은 1989년 천안문 사태때 크게 타격을 받고 1990년 소련의 해체와 함께 천지사방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사회주의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으니 전위조직도 필요성이 사라졌다.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삶을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그 폐단과 고통이 너무 뻔히 보였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 대안을 찾기 위해 PD의 지도급 인사들은 유학을 떠나거나 연구모드로 돌입했다. 진중권, 이진경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로써 단일 대오로서 PD는 사실상 해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따지고 들자면 제파그룹, 노급그룹 하면서 복잡하지만 그건 접어두고).
물론 과거의 PD이념은 절대 바꿀 필요 없다는 완강한 집단들도 있었지만 일부에 불과했다. 결국 그 숫자로도 더 적은데다가 다양한 써클들로 분화된 PD는 무슨 이유인지 확신할 이념도 이론도 없는데도 강철같은 대오로 뭉친 엔엘에게 당할수가 없게 되었다. 엔엘의 철학과 이념은 24년이 지나면서 모두 낡은 것이 되었지만 "뭉치자, 대동단결주의"는 면면히 이어져왔던 것이다. 뭉쳐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 철학도 비전도 없는 집단이 진보진영의 사실상 유일한 조직된 힘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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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4.

나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에 실망하지 않았다

제목만 보고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나는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한다. 혹자는 이걸 생트집이라고 하며, 실수라고 하며, 침소봉대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더 심각하다.


물론 문제가 되는 경선은 통합진보당 내의 내부 경선에 불과하다.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그렇다. 하지만 이 경선의 1위는 당선 안정권 순번을 받고 2위는 당선권 밖의 순번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 경선은 사실상 국회의원 선거나 다름 없었다.


따라서 국회의원 선거에 준하는 선거관리가 이루어져야 했으며, 만약 인력과 장비가 부족했다면 적어도 그런 수준의 각오와 태도는 보여주어야 했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런 수준에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강남을구 투표함에 문제가 있는 것이 국기를 흔들 정도의 사건이라고 주장한다면 통합진보당 내부경선에 문제가 생긴 것 역시 같은 수준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내부경선에 부정의 소지가 있다는 의혹일 뿐이며, 실제로 그 부정의 소지가 당락을 결정지었는지 구체적 인과관계는 없다고 주장한다. 궤변이다. 그런 논리라면 강남을구 투표함 부정 사건에 대해서는 아주 입을 닫아야 한다. 부정한 투표함이라 주장되는 투표함이 원래 정동영 몰표였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그 역시 당락과 어떤 인과관계는 입증할 수 없다. 그러니 통합진보당의 소위 당권파는 자신을 김종훈, 새누리당과 동급에 놓지 않는 한 그런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통합진보당의 부정경선 사태에 대해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심지어 관악을 내부경선 조작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전혀 실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애초에 통합진보당이 이런 세력일 것이라는 우려를 계속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민주노동당 시절에도 유령 당원들로 세를 불리고, 심지어 당비를 대납해가면서 까지 자기들 표를 불렸던 집단이다. 그리고 그 핑계는 항상 더 나쁜 놈들과 싸워야 하니 우선 단결이 필요하고, 그러니 이런 작은 허물가지고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였다.


이 논리는 이미 80년대부터 지루하게 반복되어 왔던 논리다. 학생회도 그따위로 운영했다. 그래서 비판이라도 할라치면 “전두환하고 싸워야지 우리끼리 싸워서야 되겠느냐? 대동단결 얼쑤” 이러면서 얼버무렸다. 그때 나는 “전두환보다 주사파를 먼저 제거해야 한다”라고 주장해서 골통 PD내부에서조차 분파주의자로 찍혔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나의 주장 역시 그들의 주장과 같은 맥락에 있다. 더 큰 적과 싸우기 위해 우리 안에 있는 몹쓸 것들을 먼저 제거하자는 것이니까.


그렇다면 진보진영에서 가장 나쁘고 몹쓸 것들은 누구일까? 그건 진보의 미덕을 갖지 못하고 도리어 갉아먹는 무리들일 것이다. 진보의 미덕은 무엇인가? 그것은 가능성의 확장이다. 진보지력은 어떤 가능성에 불과한 것을 확장하여 그것이 단지 꿈이 아니라 현실적임을 보여주는 세력이다. 따라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그 비전을 실행할 로드맵을 보여주지 못하는 집단은 스스로 뭐라고 부르건 간에 진보가 아니다. 하물며 이런 퇴행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무리들은 뭐라고 불러야 하겠는가?


이명박과 싸우면 진보인가? 박근혜도 이명박과 싸우고 정두언도 이명박과 싸운다. 그럼 그들이 진보인가? 나는 애초에 이런 무리들이 민주노동당을 말아먹었고, 민주노총을 말아먹었고, 전교조를 말아먹었고, 김상곤을 말아먹었음을 잘 알고 있다. 곽노현과 박원순이 돗보이는 것은 주사, 엔엘 세력들과 선긋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통합진보당에서 횡횡한 이 수치스럽고 퇴행적인 행위는 사실 실망할 일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 일어난 것이며, 그나마 빨리 터진 것이다. 그리고 어떤면에서는 차라리 잘된 일이기도 하다. 이 기회에 이 무리들을 낱낱이 밝혀내어 퇴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에게 기대하지 말자. 검찰은 절대 주사파들 솎아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사파는 이쪽 진영에서 사실상 저쪽을 도와주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마음만 먹으면 국보법 들이대면서 일망타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쪽 X맨 하라고 남겨두고 가끔 언론플레이용으로 한 두명씩 잡아 족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쪽에서 솎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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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5. 3.

교육운동가 수잔 오하니언과의 대화


래리 퀸에 이어 나의 교육운동 이력에 큰 영향을 준 또 다른 한 분 수잔 오하니언. 이 분 역시 2007년에 전교조가 개최한 국제 컨퍼런스에 초청되어 오셨던 분. 정작 전교조 간부들은 국제행사라는 폼새 내는것에 만족하고 이 분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경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분에 대한 안내와 수행을 맡아서 했던 관계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었고, 덕분에 교육운동에 대한 신선한 새로운 관점을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이분과의 대화를 정리해서 전교조 신문에 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이 기사를 다시 한번 읽어 본다.



수잔 오하니언은 

리씽킹 스쿨의 설립자 중 한 분이시며, 미국 버몬트주에서 신자유주의 교육과 싸우고 계시는 전형적인 68세대입니다. 이 분 남편은 왕년에 체게바라 부대였다고 하더군요. 어제 하루 종일 씨티버스 타고다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분의 책도 한 권 받았습니다. 다.다음은 그 분과의 대화, 그분의 책 등을 대화체로 정리한 것입니다. 대담은 2007년 10월에 있었습니다.

문: 미국은 NCLB로 대표되는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이 극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주로 교육에 대해 무엇이라 말합니까?

답: 극심해지는 경쟁 세계에서 국가 경제를 좀먹는 획일화된 교육적 태만 행위 척결, 학교에 대한 선택권, 경쟁, 기술의 필요성, 학생을 인적 자본으로 정의하기, 교수 학습 계약을“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보호된 독점으로 정의하기 등등. 결국 국가의 경제 부흥이 매년 치르는 8살 어린이의 다지선다형 시험 점수에 달렸다는 것이죠. 우습죠? 일본이 미국 자동차 산업보다 더 좋은 차를 만드는 것이 미국 교사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문: 한국에서도 최근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밀려들어오는데 그것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답: 사실 놀랐습니다. 한국 정부의 보고서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교육은 일꾼을 준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사업(비즈니스)이 교육의 내용을 결정해야 한다, 교육은 공급초과지만 훈련은 부족하다, 훈련을 통해 실업이 줄어들 수 있다 등등의 말이 나오더라고요. 미국것을 거의 베낀게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문: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의 가장 큰 폐단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답: 흔히 경쟁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그 보다 획일성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은 학생들의 차이를 무시하고, 학생과 교사간의 수 많은 관계를 파괴합니다. 어떤 교사에게 물어 본다고 해도 그 교사는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한명 한명이 얼마나 다른지 말해줄 것입니다. 그러나 기업-정치-언론의 동맹은 도통 교사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학생과 180일이나 같이 지내는 교사의 판단을 그저 일화 정도로 치부해버리고, 차가운 연구실의 이른바 전문가들의 판단을 전국에 강요하려 합니다. 그러나 단언하지만 차이를 인정하고 교사들의 다양한 교육권을 확보할 때 오히려 ‘인적자원개발’(?)조차 더 잘 될 것입니다.

: 예를 들자면요?

답: 제 학생이었던 마이클은 1학년 때부터 심각한 독서 장애가 있었습니다. 그가 작성한 노트는 엉망이고 철자도 다  틀리고. 그래도 읽어 보면 사랑스러운 유머가 있고 위트가 있으며 연민이 있었죠. 언젠가 나는 무심결에 신문의 아스파라거스 광고가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엉뚱하게 아이들이 선생님을 위해서 가장 좋은  아스파라거스를 찾을 수 있는지 경쟁을 했습니다. 재밌죠? 마이클은 이 경쟁에서 1등을 했다. 그리고 15년 뒤 마이클은 1류 레스토랑의 주축 요리사가 되었습니다. 그 아스파라거스 게임이 아이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만약 마이클이 지금과 같은 학교에 다녔다면 고등학교 졸업장을 못 받았을 거고 요리사가 되지도 못했겠죠. 모두가 다 대학에 갈 필요는 없습니다. 대수학을 익히는 것이 사람의 가치를 정하는 것도 아니고 유용하고 생산적인 삶으로 이끌고 지역사회에 공헌할 능력을 결정짓지도 못합니다.

문: 네, 정말 뭉클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마이클이란 아이의 사소한 가능성 하나하나를 찾아낼 수 있는 존재는 결국 교사일 수 밖에 없는 것이군요.

답: 그렇습니다. 학생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교사만이 진정한 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협박을 하거나 달래서 배우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가능성을 위해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의 획일적 결과주의는 괴짜 학생들을 무능한 탈락자로 만들고 말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야 말로 진짜 창조력의 원천인데 말이죠. 물론 국가 차원이란 큰 기준을 들이대면 괴짜는 이상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상함에 대해서 포용하는 것과 더 나아가 이 이상함을 발전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교사들이 무엇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규칙을 세세히 결정해야 마음이 놓이는 표준주의자들이 절대로 인정할 수도 이해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문: 한국의 교육 당국자에게 한 마디 해 주고 싶다면?

: 양심 없는 지식은 우리의 영혼을 황폐화시킵니다. 우리의 가슴이 차갑다면 아이들에 대한 통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문: 그런데 제가 듣기에는 원래 신자유주의 정책의 일환인 차터스쿨(헌장학교)이나 바우쳐 제도를 진보적인 교사들이 역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 그런 것이 가능합니까?
답: 분명 신자유주의는 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유연하게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노골적 관료주의보다 유연한 면은 있습니다. 이 점을 우리는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 분명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오히려 공교육의 일정 부분을 장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합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그리고 그 속에 잠재된 신자유주의적인 교묘한 통제 장치를 어떻게 돌파하느냐 하는 것이죠. 이 두 가지를 잘 고려한다면 차터스쿨은 오히려 이용가치가 있고, 실제 미국에서 진보적인 교사들이 팀을 구성하여 차터스쿨을 운영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다만 그 성패는 아직 판단할 단계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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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의 교육과 교육운동의 길을 찾아 출항합니다

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교육을,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우리는 막연히 학교가...